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21-08-22 주일예배

2021-08-22 주일예배.hwp
0.30MB

2021년 08월 2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3부예배)
제 목 나처럼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본 문 이사야 44:1-20

 

 오승주 목사

 

Ⅰ. 무엇이 진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가_잠언15:21, 23, 30-33, 18:14, 21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특별한 사명을 맡기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하지 않고 반대로 우상을 섬기고 있는데 그 우상이 어떤 우상인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섬기는 것에 대해서 비꼬는 투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단지 우상을 섬기지 말아라, 너희가 우상에 빠져서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이다가 아니라 왜 그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러면 도대체 이스라엘이 뭘 놓쳤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지는 않습니다. 위아래로 인생의 절반을 산 나이입니다. 그래도 제가 90년대도 살았고 2000년대도 살았던 사람이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 요즘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면 저를 포함해서입니다. 요즘은 인터넷도 엄청 발달하고 네이버나 다음이나 구글이나 이런 것이 엄청 발달했습니다.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 아닙니까. 옛날처럼 신문이 한겨례, 조중동 이런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신분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에서 온갖 기사들과 정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과 대화하다보면 되게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저 같은 경우는 정확하게 팩트를 확인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에 대해서 조금만 더 대화를 들어가보면 거의 다 모르더라고요. 그러니까 모른다는 표현이 그렇지만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정작 가지고 있는 내용이 없습니다. 요즘 시대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을 접하고 많은 이야기를 듣지만 내 속은 약간 비어 있는 느낌. 요즘 젊은이들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래서 뭔가 지성인이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뭔가 알고 있다, 전문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더 위험한 것은 나쁜 정보들, 옳지 않은 정보들, 그릇된 정보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게 그릇된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그냥 확신 삼아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나무 조각한 것, 철로 만든 우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게 나를 구원할 거야, 이게 나의 신이야 이러듯이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되게 안타깝습니다. 이게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미국에도 친구가 있고 일본에도 친구가 있습니다. 거의 다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복잡하고 공부하고 이런 것을 너무 싫어하고 그래서 교회에서 성경 공부한다하면 젊은 친구들이 한 명도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에 제 친구교회도 그런다고 합니다. 젊은 청년들이 교회에서 스포츠 한다, 피크닉 예배 드린다하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오는데 교회에서 성경 공부한다 하면 한 명도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시대입니다. 귀찮은 것입니다. 지식에 대한 갈급함이 사라지고 야외예배 드리러 간다, 피크닉 간다, 교회에서 축구대회를 한다고 하면 안 보이던 아이들도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국, 미국, 일본이나 다 비슷한 것입니다.

 

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 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_잠언15:21

 

여러분 무지한 사람이 미련한 것을 즐겨한다고 합니다. 미련한 것을 즐겨하면 어떻게 돼요? 인생이 어떻게 되겠어요? 바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명철, 지혜 있는 사람은 길을 바르게 하겠죠. 영적인 지혜만 있어도 하나님 말씀만 바르게 알아도 우리 인생의 궤도를 계속 수정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무지하기 때문에 우상 같은 것을 가지고 미련한 것을 즐겨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축복이다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잖아요?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_잠언15:23

 

이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입의 대답이라는 말은 질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방인들이 우리에게 질문을 했을 때 올바른 대답으로 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 인생을 진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에 맞는 말, 대답이 이스라엘에게 없습니다. 왜? 무지해서 미련한 것을 즐기고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구약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유대인 말고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겠어요. 물어봤는데 유대인들이 우리가 섬기는 나무 조각을 계속 섬기고 있네,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30. 눈이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31.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 32.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_잠언15:30-33

 

여러분 우리 육신적으로만 생각해도 눈이 밝아야 마음이 기쁩니다. 눈이 아파도 스트레스 받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것은 더 그렇습니다. 좋은 기별은 좋은 소식입니다. 굿 뉴스입니다. 좋은 소식은 뼈를 윤택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 이거는 뭐에요? 우리 인생에 죽고 사는 전체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내가 언제 죽을지 내가 어떤 인생을 살지 다 계획하고 설계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그런데 이 지혜, 내 눈이 밝아지고 좋은 소식을 듣고 생명의 경계를 듣는 지혜는 어디서 나오냐면 여호와를 경외하는데서 나오는데 그런데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하려면 뭐가 되어야 하냐면 오늘 32절에 훈계, 견책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훈계와 견책이라는 단어는 잠언의 메시지이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고 살려면 뭐를 지나쳐야 되요? 죄 사함을 지나쳐야합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십자가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싫은 것입니다. 견책 당하기도 싫고, 훈계 받기도 싫고.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32절에 자기 영혼을 경히 여긴다고 합니다. 자기 영혼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시대에 운동을 진짜 많이 합니다. 옛날에 자기 몸, 건강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시대가 온 것이 얼마 전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한강도 가보고 하천 옆에도 가보고 청계산에도 운동하러 가보면 사람이 바글바글합니다. 남녀노소 할아버지, 젊은 사람 할 것 없이 운동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저도 그렇게 합니다. 저도 매일 한 두 시간씩 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겉 육신은 강해지고 운동을 하니까 컨디션은 좋아지지만 사람들이 진짜 행복하게 사냐?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이 진짜 가치 있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육신의 건강이 포함은 되겠지만 진짜 건강하게 사는 것은 결국은 마음과 영혼입니다. 마음이 괴로우면 육신의 건강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마음이 바르고 마음이 바른 방향을 향해서 가고 마음이 즐겁고 행복해야 진짜 우리 인생은 중요한 일들도 많이 하고 우리 인생이 존귀하게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마음을 경히 여긴다는 말은 내 마음을 돌보거나 내 영혼을 돌보는 시간을 우리 사람은 특히 하찮게 여깁니다. 왜? 그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큼 좋은 결과를 준다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외국사람들, 특히 미국사람들은 육신의 운동을 하는 시간보다 마음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은 보이지 않으니까 마음을 운동한다? 마음을 단련한다? 그런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묵상도 안 하지, 마음을 위해서 영의 양식이나 책 같은 것도 잘 안 읽지, 성경도 안 읽지. 그러니까 육신은 되게 좋은 것 같은데 그것으로 뭐하죠? 마음이 병들어 있으니까. 우리가 진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 사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리를 세상에 전해주는 선지자적인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선지자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교회인데 그 교회가 진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이방에게 진리를 전해야 되는데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제가 지금 한국교회 상황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코로나 때 국가정부에서 조금 형평성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억울하다 뭐하다 많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게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제 한빈이와 뮤지컬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제 친한 동생이 기획해서 어린이 뮤지컬을 하고 있는데 뮤지컬을 보러 갔는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우리와 다르네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물어보니까 80% 좌석 앉습니다. 거의 꽉 찬 것입니다. 100석이면 80명이 앉는 것입니다. 뮤지컬은 다르네 왜 다르지? 거기도 한 칸 띄고 둘, 셋, 둘, 셋 이렇게 좌석이 배정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는 한 칸만 띄웠습니다. 앞은 아예 띄우지 않았습니다. 제가 거기 앉아서 70분 동안 뮤지컬을 보면서 형평성에 안 맞긴 하다, 왜 교회는 10%일까, 20명일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기독교단체에서 국회의원을 만나서 이것에 대해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왜 형평성이 안 맞습니까? 형평성으로 질문을 하니까 그 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명쾌한 답변을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배 끝나고 모여서 밥 먹잖아요. 아 그것까지 추측해서 못 하게 하는구나. 미리 예측해서 법이라는 것을 정하는구나. 그럼 뮤지컬은 밥 안 먹나. 뮤지컬은 끝나면 가족끼리 먹는데 교회는 끝나고 모르는 사람과 밥 먹는다고 생각을 하는구나. 미리 예측해서 법이라는 것을 만드는 구나. 그럼 교통사고 날 거 같으면 차를 허가해주면 안 되지, 고속도로 다 폐쇄하고 걸어 다니게 해야지. 미리 교통사고 날 거 예상해서 운전면허증을 주면 안 되잖아요? 그렇죠? 그런 비슷한 답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국회의원도 공부를 하셔야겠다. 그러니까 그런 게 있지만 교회 안에 우리가 비대면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사실 그것은 쓰면 안 됩니다. 비대면 예배라는 것은 없습니다. 성경에 비대면 예배라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비대면 가족이라는 단어를 쓰십니까? 우리 집은 비대면 가족이야. 우리는 모여서 밥을 먹지 않고 각자 배달시켜 밥을 먹고 대화할 때는 페이스톡으로 카톡으로 서로 너는 안방에서 이런 식으로 합니까? 가족은 비대면 가족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가족이라는 것 자체가 뭐냐면 서로 힘든 일, 어려운 일 같이 겪어가면서 또 좋은 일을 나눠가면서 같이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부모의 역할, 자식의 역할, 가족이라는 것은 북작북작 거리면서 배려하며 이해하며 성장하는 것이 가족입니다. 가족이 떨어져 산다? 그것은 가족이 아닙니다. 아빠는 102동에 살고 엄마는 103동에 살고 자녀들은 101동에 사는 것은 가족이 아닙니다. 서로 불편하니까 청소 같은 거 하는 거 불편하고 밥 먹는 거 같은 라이프스타일 다르니까 떨어져 살자? 그런 사람은 결혼을 하면 안 됩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서로 성격도 안 맞고 서로 다르지만 같이 어울려 살기 위해서 결혼하는 거 아니에요? 사랑하니까.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 본 뜻이 뭐냐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라는 단어자체가 에클레시아인데 에클레시아는 부르심을 받은 모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공동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비대면 교회요? 비대면 예배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편의상 아파서 못 나오거나 사업 때문에 못 나오거나, 비즈니스 때문에 가끔 사람이 못 나올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아이를 출산하여 못 나오거나. 그래서 온라인 방송, 인터넷 방송을 하는 거지 비대면 예배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교회는 함께 어우러져서 서로 섬기고 교사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힘든 일 있으면 같이 울기도 하고 예수님을 머리로 한 지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신앙생활 하다가 그런 분들 보셨나요? 나는 교회와 수준이 맞지 않아 나 혼자 신앙생활 할래 해서 집에서 인터넷, 유튜브에서 유명한 목사님들 설교 일주일 내내 틀어놓고 자기 혼자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아. 아니요. 비성경적입니다. 그것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신앙은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나의 달란트, 나의 은사를 개발해서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교회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이 교회가 세상에 선지자적인 역할을 해야 되는데 진리를 전하는 그 역할을 해야 되는데 왜 진리를 전하는 역할, 선지자적인 역할을 할 수가 없게 되었냐?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진짜 많겠지만 그 중에 몇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첫째, 교회가 윤리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윤리적, 도덕적 타락은 우리 성경에서 쓰는 단어는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우리끼리는 신비적인 성령의 역사라든지, 회개라든지, 죄 사함이라는 이런 단어를 쓰지만 왜 윤리적, 도덕적 타락이라는 단어를 쓰냐면 밖에 있는 이방인들이 교회 안에 성령의 역사를 이해를 못 합니다. 우리는 복음 이야기를 하지만 그 사람들은 복음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교회를 봤을 때는 윤리, 도덕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무너졌습니다. 그럼 우리가 윤리와 도덕을 회복하는 운동이라도 해야 되냐? 아니요. 하나님 바르게 믿으면 윤리, 도덕은 자연스럽게 회복이 됩니다. 아주 기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13장에 국가에 세금도 제대로 내라, 나라를 위해서 일도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꾼이 되라, 헌신도 해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부정하지 말고 세상을 부정하지 말고 세상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야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청교도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신앙에 자유가 없는 영국을 탈출해서 신대륙 미국에 가서 자기들이 처음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청교도들끼리 모였습니다. 우리 이 나라에서 어떤 나라를 세워야 되냐?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우면서 우리가 병원도 짓고 학교도 짓고 이런 나라를 만들어야 된다는 많은 의논을 했지만 자기들이 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모여서 한 회의가 뭐냐면 우리 하나님 앞에 예배하듯이 우리 삶을 살아가자. 성실하게 일하고 직장생활도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듯이 직장생활하고 가정주부도 하나님 앞에 예배하듯이 가정주부하고. 그렇게 우리가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가자. 그게 지금 미국에 선한영향력을 다 끼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모여서 예배는 끝장나게 드리는데, 뮤지컬 뺨치게 하는데 그런데 삶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다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허공에 메아리치는 것처럼 그 사람들에게 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대해서 신뢰를 못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적인 역할. 헤르만 바빙크라는 신학자는 교회 역할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권세를 포괄적인 방식으로 계속해서 행사해야 합니다. 교회는 자신의 영적인 권세를 포괄적인 방식으로 계속 행사해야 되는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모든 피조물, 학문, 과학, 가정, 사회 그리고 국가에 촉구해야 됩니다. 쉽게 말하면 진리를 계속 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구는 무력이 아니라 오로지 메시지와 윤리적 증거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서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강제가 아니라 설득입니다.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와 설득과 증거를 통해 사회의 변혁을 추구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우리만 아는 메시지, 우리가 강압적으로 전해서 저들이 우와 메시지 진짜 좋다고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설득할 수 있는 삶과 그것을 설득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야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네 인생을 보니까. 너네 교회 보니까 맞는 거 같아. 헤르만 바빙크가 설득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들을 설득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외치고 데모하고 해도 세상이 교회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왜요?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믿지 않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자기들도 나무 깎아서 쇳덩이로 우상 만들어서 품고 있는데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겠죠. 여러분 세상이 복음 메시지가 없어서 변화되지 않는 것이 아니잖아요. 여러분 세상이 영접 메시지, 구원의 길을 몰라서 변화되지 않는 거 아니잖아요. 뭐가 없어서 그래요? 정말 우리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준비해야 됩니다. 복음 메시지가 없어서 세상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듣지를 않습니다. 선교적으로 특화된 큰 대형교회 어떤 목사님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감옥에도 갔다 오고 그랬습니다. 왜 감옥에 갔냐면 그분이 평상시에 하는 설교를 파일에 있길래 들어봤는데 이런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커피 값 아껴가지고 지금 아프리카에, 선교지에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저도 그런 설교를 가끔하는데. 그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잖아요? 커피 값 아껴서 선교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죠. 헌금해야지, 아프리카가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설교를 하시더라고요. 불쌍하지도 않아? 이렇게 하시더라고요. 중요한 것은 그 목사님의 생활을 고발한 성도들이 찍어 놓은 영상자료를 보니까 그 목사님이 입고 있는 양복이 천 얼마짜리, 차는 B로 시작하는 4억 얼마짜리 차를 두 대, 세 대 가지고 계시고. 그러니까 말도 안 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커피 값 아껴서 선교하자는 그 메시지는 틀리지 않지만 그의 삶은, 그의 삶 때문에 그의 메시지는 효력을 잃은 것입니다. 심지어 횡령죄로 감옥까지 갔다 왔습니다. 그게 지금 우리 모습이 아닌가, 이스라엘의 모습이 아닌가.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진짜여야 합니다. 목회자인 제가 진짜 예수님을 믿어야지 제가 하는 설교라든지, 메시지라든지 이게 성도들에게 설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를 듣지 않으면 진리가 들리지 않으면 삶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삶이 변화되지 않는 삶은 세상에 아무런 설득을 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_잠언18:14

 

여러분 마음과 영혼이 얼마나 강하냐면 이 심령이 육신의 병도 이기게 합니다. 그런데 심령이 상하면 누가 일으키겠냐는 것입니다. 못 일어납니다. 마음이 상해버렸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저 분에게 꼭 복음을 전해달라고 약속을 잡고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복음 이야기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복음 메시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많이 합니다. 대화를 하는데 목사님 진짜 좋으시네요, 신앙생활 그렇게 하는 게 맞고 그게 저도 이해가 되는데 당장 마음이 안 열려요 이랬습니다. 왜요? 이랬더니 사실 저희 부모님이 사기를 당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사기 친 사람이 교회 장로고. 그게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마음이 상해버리면 일으켜 세우기가 너무 힘듭니다. 누가 마음을 상하게 했어요? 사단이 역사한 거예요? 그 사람이 연약해서 사기를 당한 거예요? 교회 장로가 장로답지 못하게 산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_잠언18:21

 

결국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말입니다. 복음 메시지입니다. 설교입니다. 그러나 그 혀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말이 어떤 열매를 맺느냐는 그 말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혹은 국가에 선지자적인 역할을 하려면 교회는 국가와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국가에 아부하거나 아첨하거나 그러면 교회는 국가가 잘못했을 때 선지자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도 그렇습니다. 목회자가 성도들과 골고루 친밀하게 교제하고, 저도 친한 집사님, 장로님들 계시니까. 그러나 완전히 같이 술 먹고 벽이 없이 같이 어울리고 그런 목사님도 계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성도가 잘못했을 때 혹은 목사가 잘 못했을 때 반대로 성도가.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도 똑같으면서. 오늘 본문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Ⅱ. 우상에 빠지면 벌어지는 일

 

- 하나님께서 미리 알리신 것, 성경 그리고 예수님_이사야44:1-8

 

1.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2.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4.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5.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7.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_이사야44:1-8

 

1-2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8절.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너희에게 전해준 것을 전해야 되는 민족인데 너희가 그것을 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듣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하나님이 예언하신 말씀을 듣기만 하면 뭐에요?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심지어 하나님의 영을 내 자손에게 부어주시고 부흥이고 구원입니다. 풀 가운데 솟아나는 시냇가에 버들나무. 시편 1편처럼 시냇가에 심은 버들나무. 부드러운 나무. 성령이 임하셔서 변화된 후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강퍅한 후손이 시냇가에 심은 버들나무처럼 부드러운 후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된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일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뭘 주셨냐면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한 사람은 여호와께 속했다고 할 것이요, 어떤 한 사람은 야곱의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고, 어떤 한 사람은 그것을 기록할 것이고. 이것은 특별한 한 사람을 지정한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각자가 하나님 말씀으로 기도도하고 기록도 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정확히 말해서 신앙생활을 하나님이 설명하시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성경 자체를 우리에게 너희가 이것을 진짜 깨닫고 이것을 듣고 배우면 너희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거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가 부산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입니다. 신학교에는 모든 선교단체들이 동아리로 다 들어와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 제일 큰 선교 동아리 중에 하나가 C.C.C입니다. 지금 제 친구도 C.C.C 중앙 간사도 있고 C.C.C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대게 많거든요. C.C.C를 저는 되게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C.C.C 처럼 우리나라 대학교 현장에서 많이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하는 단체는 제가 볼 때 유일합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정말 우리나라에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심어주셨고 은혜를 주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얼마나 대단하냐면 C.C.C 수련회하면 천막 쳐놓고 낮에 모여서 집회하고 저녁에 천막에서 자고 몇 만 명씩 모여서 합니다. 그리고 수련회 끝나면 거지순례라고해서 사영리라든지 메시지를 들고 무전여행을 합니다. 시골 같은 곳에 가서 돈이 없으니깐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 농사 도와주고 밥 얻어먹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C.C.C가 했던 위대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 때문에 시골에 교회들도 많이 개척되었습니다. 진짜 중요한 단체입니다. 그런데 제가 학교 다닐 때 이 C.C.C가 하는 훈련들을 가봤습니다. 무엇을 하냐면 전도하는 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그 전도하는 훈련을 하는 교재가 뭐냐면 사영리를 가지고 합니다. 여러분 사영리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조그마한 쪽지 복음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늘 아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것을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 자녀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아주 심플합니다. 그런데 이 사영리라는 영접메시지는 구원의 길은 우리가 선교지라든지 우리가 시골에 가서 전도를 할 때 필요한 아주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훈련을 하고 전도하던 수많은 대학생들이 얼마나 뜨겁게 두 손들고 헌신하고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던 대학생들이 지금 제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대학 졸업하고 결혼하고 직장 다니면서 그 뜨거움이 식다 못해서 교회도 안 가는 아이들이 C.C.C 자체추정으로 60-70%라고 합니다. 엄청납니다. 100명이 헌신했다면 교회를 안가는 불신자처럼 사는 C.C.C 출신들이 60-70명인 것입니다. 엄청납니다. 그런데 우리도 비슷합니다. 왜 그러냐면 성경 전체를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고 내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영리 같은 성경구절 몇 개 가지고 신앙생활을 배워버린 것입니다. C.C.C 아이들은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요. 복음을 성경 몇 구절로 이해하고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3:16에 갇혀버렸습니다. 요1:12에 예수님이 갇혀버렸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창세기 몇 장 몇 절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승주, 담임목사를 소개할 때 어떻게 소개하나요? 우리 목사님이 나를 진짜 특별히 사랑하셔. 그러니깐 너도 한번 만나 봐. 그 친구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 너를 사랑하는데 내가 너희 목사님을 왜 만나야 하는데. 그 분이 누군데? 왜 만나야 하는데? 어떤 분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알리신 것이 성경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이 성경 전체입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말씀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사라지니까 뭐에 빠져 버리냐면 자연스럽게 우상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뜨거웠던 대학생들이 결혼, 직장생활하면서 세상적인 것을 겪어보니깐 돈이 중요하구나, 이게 중요하구나 하면서 전부 우상으로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상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경을 멀리했기 때문에 우상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문맥상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상 때문에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잖아요. 마귀, 사단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이미 계시해주신 알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했기 때문에 우상이 자연스럽게 손에 쥐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저앉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 그러나 우상에 빠진 무지하고 어리석은 백성들_이사야44:9-17

 

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10.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11.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12. 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 13.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14. 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을 베며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 15.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16.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_이사야44:9-17

 

하나님이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너희가 만든 우상에 대해서 이야기해줄게. 너희가 쇠로 철로 만든 우상. 그러면 대장장이가 쇠는 어떻게 하나요? 불에도 담구고 물에도 담갔다가 망치질하잖아요. 하나님이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그 망치질하는 사람, 인간이 망치질 하다가 배고프면 힘들잖아, 그리고 망치질 하다가 물을 못 먹으면 팔이 아플 수도 있잖아, 그 연약한 인간이 만든 그 우상을 너희가 지금 손에 쥐고 우리의 신, 구원이야 라고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또 예화를 듭니다. 나무로 만든 우상, 주로 아세라 목상 이런 것입니다. 너희가 나무로 만든 우상을 만들려고 산에 가서 좋은 백향목 나무라든지 좋은 나무를 구하잖아. 심지어 나무가 없으면 너희가 직접 기르기도 하잖아. 그런데 그 나무가 다 우상이 돼? 아니지, 너희가 땔감으로도 쓰고 땔감으로 쓰면서 그 위에 떡도 구워먹고 고기도 구워먹고 하나님이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추울 때는 불도 쬐고 새까만 재가 되는 것을 너희가 보잖아. 그런데 그 나무를 손에 쥐고 예쁘게 깎았다고 손에 쥐고 이게 나의 신, 나의 구원이라고 말한다고? 그렇게 인간이 하나님 말씀에서 멀어지면 우상이 손에 들어오고 마음에 들어온다고 성경은 지금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이 헛되고 헛된 이방의 우상들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신앙은 여러분 정치는 중도라는 게 있잖아요. 사실 정치도 중도는 없어요. 그런데 신앙은 중도가 영원히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죄와 멀어지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죄와 가까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중간에 신앙생활 내가 알아서 잘 할 거야 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 우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상 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대학교 때 오직 예수, 오직 복음. 그런데 그게 성경 몇 구절로만 가지고 있었지 성경 전체적으로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살아가면서 돈이 어느 순간 내 마음에 들어와 있고 권력이 내 마음에 들어와 있고 음란과 쾌락이 내 마음에 들어와 있고. 그런데 그게 얼마나 헛되냐? 하나님은 곧 다 사라질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코끝에 호흡을 멈추시면 끝나는 인생인데. 그런 헛된 우상에게 사로잡혀서 허우적거린다. 그래서 인간은 성경을 떠나면 말씀을 떠나면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다 라고 오늘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상태인지 18-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우상에 빠지면 ‘내가 붙들고 있는 이 우상은 헛된 신이다’라고 말하지 못한다_이사야44:18-20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19.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20.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_이사야44:18-20

 

18절. 상태를 아시겠죠?

19절. 총명이 사라진 것입니다.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와, 이거 우상, 우상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우상은 너희가 숯불로 쓰는 나무 조각이잖아 라고 설명하시는 겁니다. 그 가증한 물건.

20절. 개역개정이 말이 어렵습니다. 현대어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이 우상은 헛된 신이다 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왜요? 내가 만들었거든. 그리고 이 우상을 이미 이것을 나의 신이다, 구원이다 말해버렸기 때문에 놓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헛된 신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런데 모르는 것이죠. 그게 눈이 가려졌고 무지하고 무식하고 총명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 손에 있는 것이 나무 조각인데 그게 헛된 신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상담을 왔습니다. 제 설교를 들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냐면 자기의 은밀한 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네, 벗어나세요 라고 했습니다. 저 상담은 정말 심플하거든요. 벗어나면 되지 왜 오셨어요. 잘 안 벗어나진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잘 벗어나시면 되죠. 제가 이렇게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목사님, 왜 답변을 이렇게 성의 없게 하시냐고. 성의 없게 하는 게 아니라 죄를 벗어나고 싶으시다면서요? 벗어나세요. 성경 읽으세요? 안 읽는데요. 읽으세요. 죄 지으려고 할 때 기도도 하시고 그러면 벗어나면 되죠. 그게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게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저희 교회 성도들도 제가 어떻게 못해줍니다. 자기들이 알아서 하지. 그 분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진짜 못 버리겠다고 합니다. 은밀한 죄를 못 버리겠다고 합니다. 그게 너무 좋고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래요? 그럼 버리지 마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나요? 아니요, 안 괜찮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셔야죠. 책임? 뭐 이렇게 이야기 하시길래. 제가 죄라는 것은 그렇다고 은밀한 죄를 해결하고 싶으셔서 저한테 오셨으면 제가 해답을 드렸잖아요. 그만 죄를 지으세요. 제가 이랬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 읽고 물론 제가 2시간동안 한 이야기를 요약해서 여러분에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마지막 대답이 끝내줬습니다. 잘 안 되고 해결이 안 된다고 합니다. 명쾌한 답이 안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가시면서 하는 이야기가 그래도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죠? 이렇게 하시고 가셨습니다. 제가 그 뒷말을 목까지 나왔는데 참았습니다. 제 진심은 안 사랑하시는 거 같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게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성도들의 본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데. 그런데 은밀한 죄는 계속 짓고 싶다고 합니다. 코미디 아니에요? 내 와이프하고 결혼해서 사랑해서 사는데 불륜은 계속해서 저지르고 싶은 것입니다. 더 심하게 이야기해드려요? 그런 것입니다. 내가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해야죠. 죄를 안 지으려고 그런데 그 분은 계속 짓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데요. 안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그러니깐 자기가 붙잡고 있는 우상이 헛된 신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죄를 계속 짓고 있기 때문에 이 교회, 이스라엘 백성, 오늘날 교회가 국가나 세상에 대해서 선지자적 역할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말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책망해야 되고 우상 섬기지 말고 하나님 믿으세요 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 세상 사람들이 섬긴 우상을 우리가 은밀히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영적대각성 운동을 이끄셨던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성경을 온전히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목사님이 하시는 이야기가 그 시절에 미국교회에 목사님들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미국교회 목사님들이 주로 주제설교를 했습니다. 주제설교하는 목사님들을 경고했습니다. 당신들은 교회 성도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좀 심하죠? 주제설교 했다고. 주제설교가 뭔지 아시죠? 목사들이 매주 성경본문이 다른 것입니다. 매주 하고 싶은 설교, 이번 주는 기도, 다음 주는 선교, 그 다음 주 전도. 그래서 성경구절 거기에 맞는 거 가져와서 논문 한편 발표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가 나빠요? 어떻게 보면 주제설교가 성도들 입장에서는 훨씬 더 은혜로워요. 그런데 그 설교 때문에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읽고 묵상하는 것을 다 빼앗아 갔다는 것입니다. 미국교회는 그것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경건운동을 하면서 가장 회복했던 것이 성도들이 성경을 읽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뭘 회복해야 하는지 이사야서를 통해서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꼭 지켜야할 신앙인의 삶이 있습니다. 꼭 지켜야 될 신앙이 아니라 우리 신앙은 다 압니다. 예수님 믿는 것, 천국 가는 것, 예배드리는 것 다 압니다. 그런데 신앙의 삶을 지켜야 합니다.

 

Ⅲ. 꼭 지켜야 할 신앙의 삶_잠언30:1-9

 

1.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 곧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2.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6.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_잠언30:1-9

 

1-2절. 아굴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자기를 엄청 겸손하게 낮춥니다.

3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합니다. 

4절. 다 누굽니까?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아굴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너는 아느냐? 그게 다 어디 있냐?

5절. 하나님 말씀은 다 순전한데 그 말씀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 세상에 방패를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6절. 더하지 말라. 신학교를 가면 문자적 해석을 주의하라고 배웁니다. 문자적 해석은 고대근동지방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도 있습니다. 고대근동지방은 일부다처제입니다. 성경에도 일부다처제인데. 이슬람이 그렇게 합니다. 그걸 그대로 믿는 것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것을 우리도 그대로 해야 된다? 틀렸습니다. 시대가 발달했고 많은 것이 발달했기 때문에 성경의 본질, 원형이 훼손되지 않게 우리가 적용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성경자체를 믿지 않으니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니깐 아예 이 원형을 덮어버리고 새로 자기 생각들을 짚어 넣는 것입니다. 이게 신신학 같은 것들입니다. 말씀은 이렇게 말씀했는데, 이 말씀이 오늘날하고 이게 맞겠어? 지금 그거를 경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이런 말씀을 막. 그러면서 아굴이 뭐라고 하나요? 이 말씀을 가지고 총명해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거룩한 자를 알고 싶은데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뭘 기도하냐? 

8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건 부자가 되라, 가난에서 벗어나라 이런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 잠언을 가지고 내가 적당히 중간으로 살아라? 이 말이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총명해지고 우리의 삶이 진리를 전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 첫째는 헛되고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라고 합니다. 헛된 것과 거짓말이 있으면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수많은 성도들이 왜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냐? 마음에 아세라 목상 같은 헛된 것, 그게 우상이고 거짓입니다. 그 헛된 것과 거짓은 경건의 능력을 빼앗아갑니다. 내가 진짜 예수 믿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교회 와서 겉치레, 포장, 가식적으로 하는 척, 위선 이런 것을 하는 것입니다. 왜요? 속은 헛된 것, 거짓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거짓과 헛된 것이 있으면 내 영혼이 살지 못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지를 못합니다. 내 안에 헛된 것, 거짓이 가득한데 어떻게 총명해질 수 있겠어요. 

9절. 또 하나가 뭐죠. 내가 부하게도 마시고 가난하게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부자가 되어서는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까하고 가난해서는 내가 도둑질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이 말은 무슨 말이냐 부자가 되라 가난하게 되라 이런 돈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그만큼 총명이라는 것. 총명은 무엇인가요? 내 영혼이 살아있는 것, 어떤 영적인 감각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 깨어있는 것이 신앙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기준이 아니라. 부자가 되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이게 목적이 아니라. 그래서 우리가 모든 것을 초월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총명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이가 어리면 어리다고. 나는 나이가 어리니깐 총명하고 상관없지, 이러기도 하고 또 나이 드신 분들은 몸이 나이가 들어가고 늙어가니깐 이제 총명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같이 게을러지고. 여러분 신앙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총명해져야 합니다. 겉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총명이 사라지는 겁니다. 왜 사라집니까? 헛된 것과 거짓 것이 내 안에 있고 세상에 먹고 사는 것, 외식하는 것 때문에 중심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총명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처럼 그들에게 알리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처럼, 하나님 자기 자신처럼 너희들도 그들에게 진리를 말하라고 합니다. 하나님 자기 자신은 우리에게 공수표를 날리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거짓말로 우리를 사랑한다, 너를 구원한다. 말로만 메시지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왜? 그 증거가 뭐에요? 자기가 직접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사건을 감당하셨어요. 성육신 사건을 감당하셨어요. 말로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처럼 너희도 세상에 진리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선지자적인 역할을 왜 못하냐? 말만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말은 효력이 없습니다. 교회가 다시 교회다워져야 되고 성도가 다시 성도다워져야 우리가 하는 메시지가 저들에게 길이 되고 저들의 영혼을 살리는 진짜 복음,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흥과 개혁을 외쳐도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을 외쳐도 우리 삶이 총명하지 않고 따라가 주지 않으면 그것은 허공의 메아리 같은 것입니다. 오래 걸리겠죠. 그래서 우리 가스펠교회 성도 여러분 제일 먼저 올바른 신앙과 올바른 국가관, 교회관, 세계관을 가지기 위해서 성경으로 내 자신을 먼저 교육해야 합니다. 자꾸 주일학교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먼저 교육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목사인 저는 저부터 성경으로 교육받아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 자녀들에게 이 신앙을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앞으로 굉장히 집중해서 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 주일학교는 이 일이 굉장히 중요하고 여러 다각도로 실험도 할 것입니다. 우리 전체 예배, 가족예배도 드려볼 예정이고 테스트를 많이 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밖으로 그런 내용이 알려지도록 책도 만들고 방송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것을 누가 하냐? 할 수 있냐? 이 말이 아니라 실제로 해야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 모든 중직자들, 실력 있는 어른들은 교회 안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사나 지성인의 역할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직분은, 중직자들은 성경대로 직분을 감당해주셔야 합니다. 톱니바퀴처럼. 나는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 나는 기도하는 사람. 여러분 원래 성경대로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성경대로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성경대로 목사장로입니다. 심방하고 설교하는 것이 제 직분입니다. 교회 장로님들은 성경에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를 위로하고 안수하는 것이 장로가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권사님들은 심방하고 교회를 보살피고 살림하는 것이 권사님들이 하는 일입니다. 안수집사는 성경적으로 전통교회에서는 교회 행정과 예산을 다루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성경대로 직분을 감당하지 않고 우리가 이 일에 역량을 쏟다 부어야 하는 일에 쏟아 붓지 않으면 우리는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내부적으로 교회다워지고 성도다워지고 교회가 내부적으로 투명하고 헛된 것과 거짓 것이 사라져서 진실한 교회로 세워지지 않으면 우리가 전한 복음을 저들이 듣지 않습니다. 여러분 복음 메시지가 없어서 세상이 지금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압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인지. 불신자들이 모를 것 같으세요? 하도 많이 들어서. 너나 믿어 하는 시대입니다. 너나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살아. 이런 시대입니다. 교회가 국가와 세상에 대해서 선지자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교회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 자체적으로 자구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제법 단단하게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진짜 예배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그냥 예배가 아니라 청교도들처럼 여러분 삶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일하셔야 합니다. 그게 예배라고 믿으셔야 합니다.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 게 뭐가 예배에요? 주일날 교회 가는 게 예배지? 아닙니다. 청교도 이야기를 괜히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그런 그릇된 교회관을 다 바꿔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공동체 예배로 모여서 뜨겁게 힘을 얻고 위로를 얻고, 또 여러분의 삶에 직장 동료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같이 예배에 나와서 같이 은혜를 받고, 이런 선순환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일날 교회가서 예배하는 것을 예배라고 생각하지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예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불신자들과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사기치고, 헛된 것을 구하고 저게 집사인지, 장로인지 꿈에도 생각 못했네. 하도 나쁜 짓을 많이 하길래. 지금 세상에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이러는 것입니다. 우리 가스펠교회 성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사람으로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이게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릇된 배움과 무지에서 벗어나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이 말씀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신데요.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영을 부어주셔서 시냇가에 심은 버들나무처럼 성령의 사람으로 우리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우리가 전한 복음이 우리가 전하는 진리가 저 세상 사람들을 천국으로 안내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적인 역할을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래 걸리겠죠. 오래 걸려도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이 아주 간단한 말씀 같지만 어려운 말씀입니다. 은혜가 되기를 바라고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신앙생활 해야 될지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한 것, 그를 의지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진짜 신앙인이 되고 교회는 교회다워지고. 그런 아름다운 비전을 가지고 함께 신앙생활하기를 원합니다.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9-05 주일예배  (1) 2021.09.05
2021-08-29 주일예배  (0) 2021.08.29
2021-08-08 주일예배  (0) 2021.08.08
2021-08-01 주일예배  (0) 2021.08.01
2021-07-25 주일예배  (0) 202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