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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08-29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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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2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3부예배)
제 목 이 성들이 다시 세워질 것이다
본 문 이사야 44:21-28

 

 오승주 목사

 

Ⅰ. 인내의 아비투스(Habitus)

 

7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가 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는 과정에 대해서 계속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예언입니다. 실제 회복되는 장면이 아니라 예언이고 어떻게 회복을 하시겠다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고 다음 주부터는 더 구체적으로 고레스를 어떻게 세우는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주실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딱 봐도 하나님이 다시 너희를 회복해서 하나님의 성,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겠다, 중건하겠다, 다시 무너진 기초를 세울 것이다 이런 내용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읽어보면서 이런 내용이구나 알 수 있습니다. 아비투스(Habitu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아비투스(Habitus)에 대해서 읽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아비투스(Habitus)라는 책이 한 동안 유명 했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 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만든 단어입니다. 아비투스(Habitus)가 굉장히 의미가 있습니다. 굉장히 좋은 단어입니다. 뜻을 살펴보니까 사전적으로는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고 또 하나는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그리고 또 하나는 계층 및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이다. 이렇게 사전적인 의미들이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아비투스(Habitus) 무슨 말이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비투스(Habitus)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어봤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운동이든 인생이든 어떤 공부든 뭐든지 과정이 있잖아요?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이 필요한데 그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특별한 취향이라든지 습관, 과정들을 통틀어서 아비투스(Habitus)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똑같이 두 사람이 가난한데 한 사람이 나는 가난에서 벗어날래 해서 아비투스(Habitus)를 가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아비투스(Habitus)냐? 저축하고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아비투스(Habitus)를 가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엄청 고달픈 인내입니다. 그전에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막 놀았는데 이제 자기는 비전이 생겨서 나는 이 삶을 살고 싶지 않아 라고 그 기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기간을 가지고 나면 그것에 대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에르 부르디외 하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인류 역사나 문명이나 국가가 꽃을 피우기 위해 그냥 갑자기 꽃 피운 문명은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지도자나 리더십을 통해서 뭔가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그럼 반대도 있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나라가 무너지거나 갑자기 문명이 사라지거나 이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무너진 이유가 있겠죠. 타락했다거나 부패했다거나. 그런 습성들이 생기다보니까 그런 습관들이 생기다보니까 무너지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비투스(Habitus)가 그런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비투스(Habitus) 책을 읽으면서 이것은 완전 신앙이야기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는 과정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보면 제2의 본성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우리가 딱 그렇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삶, 거듭난 삶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아비투스(Habitus)를 이해하지 못하면 거듭난 삶과 새로운 삶에 대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가 굉장히 어렵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초대교회. 초대교회라고 하는데 초대교회는 말 그대로 초대 교회이고 초기 기독교는 주후 100-300년까지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교회사를 공부하고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우리는 초대교회, 초기 기독교하면 전도와 선교에 특화된 교회라고 배웠습니다. 실제로 신학교에서 저도 그렇게 많이 배웠습니다. 전도, 선교해서 교회가 부흥했다 이런 식으로 그렇게만 배워서 진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적인 교회를 만들자, 교회가 전도, 선교를 외치는데 항상 거기에 예화가 되는 것이 사도행전, 초대교회, 초기 기독교 이런 예화를 드는데 제가 초기 기독교에 대한 문헌이나 자료를 살펴보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뭐냐면

 

  • 초기 기독교는 전도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전도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요즘 이야기하는 전도, 선교라는 단어가 그때는 그런 의미로 쓰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조금 놀라웠습니다. 그럼 초기 기독교는 뭐에 관심을 많이 가졌냐? 외형적인 성장보다 전인적인 변화.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말씀을 내 삶에서 살아내고 그래서 내가 거룩해지고 성화되는 그런 전인적인 변화에 엄청난 관심이 있었다. 교회공동체도 교회 외적인 성장, 교회 건물이나 어떤 시스템, 프로그램이 아닌 교회 안에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교제하고. 그런 예배 공동체. 뜨겁게 예배하고. 그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성경교육, 교리교육을 받는 일에 엄청나게 몰두했다. 그것을 인내하고. 얼마나 인내했냐면 초기 기독교는 로마가 기독교를 핍박했기 때문에 무려 300년 넘게 그 인내 속에서 그 일들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가 이런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 언제 갑자기 돌변하게 되었냐면 조금 역설적이기는 합니다. 초기 기독교가 그렇게 인내의 꽃을 피워서 수많은 크리스천들, 엘리트들, 로마 정권 구석구석에 복음 가진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세웠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로마 황제 중에 한 사람인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하늘에서 십자가 환상을 봤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십자가 환상을 본 거 가지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는 것도 조금 웃기지만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환상을 보고 자기가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십자가 환상을 본 것은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실력 있는 기독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나는 예수를 믿겠다 이렇게 이야기한 것 일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바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굉장히 많은 응답이다, 축복이다 이야기하지만 사실 교회사로 보면 암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는 뭐가 없냐면 예수님, 십자가를 하늘에서 환상으로 보고나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초기 기독교 성도들처럼 인내의 과정, 십자가를 통과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내 속사람이 진짜 거듭나고 변화되는 그런 아비투스(Habitus)의 과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은 왜 그런 과정이 없냐? 이유는 분명합니다. 엄청난 권력을 가졌고 재물을 가졌고 정치에 실력자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빨리 포교하는 일에 자기의 모든 권력을 사용해버린 것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공무원들 다 교회 가. 심지어 이방나라들에게도 이렇게 포교했을 것입니다. 로마에서 지원하던 모든 지원을 끊어버릴 거야. 예수님을 안 믿으면.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지 않으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모든 것을 다 끊어버릴 거야 이렇게 협박을 하겠죠. 여러분 지금은 반대의 협박이지만 예수님 믿으라고 협박하는 것도 끔찍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전도, 선교가 외형화 된 것입니다. 프로그램이 된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내가 전도해야지, 선교해야지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가 진짜 변화되는 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역설적으로 밖에서 성도들이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사도행전 기록에 있잖아요? 이방인들이 뭐라고 이야기했어요? 비로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다. 요즘은 우리가 나 예수 믿어, 나 장로야, 나 권사야, 나 예수님 영접했는데 너도 예수님 영접해 이런 거지만 초기 기독교는 아예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 믿음의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들 그리스도인이구나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부터 기독교의 선교, 전도는 폭력적이 되었습니다. 안 믿어? 기독교를 국교로 안 해?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이것은 아비투스(Habitus)가 없어진, 사라진 황제의 조급함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가 사라졌어요? 감사, 감격, 간절함들이 사라지고 뭘 잃어버렸죠? 기초를 잃어버렸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아주 중요한 베이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비투스(Habitus)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오늘 날 한국교회, 우리교회에 아비투스(Habitus)가 다시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은 아비투스(Habitus)라는 단어를 배후, 배경에 가지시고 들으셔야 합니다.  

 

Ⅱ. 이 성들이 다시 세워질 것이다

 

- 너희가 내 종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_이사야44:21-22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_이사야44:21-22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뭘 기억하라고 하시냐면 너는 내 종이야. 너는 내 종이야. 왜 너는 내 종이냐? 내가 너를 지었으니까, 내가 너를 창조했으니까 너는 내 종이야. 그리고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나는 너를 잊어본 적이 없어. 잊혀지지 않아. 그래서 내가 네 허물, 네 죄를 빽빽한 구름처럼 안개처럼 다 사라지게 할 거야.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게. 그래서 구름과 안개라는 단어를 쓴 것입니다. 그냥 흩어지게 할 거야. 그러니 내게로 돌아와. 내가 너를 구원할게. 오늘 이 말씀은 포로 된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가 되신다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은 주인이시고 우리는 종이다 이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주인인가? 우리가 종에 대해서 2-3주 전에 충분히 설교를 했습니다. 악한 주인이 아닙니다. 악한 주인에게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십자가로 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데리고 오셔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죠? 선한 주인이기 때문에 너 공부해, 너 기술 배워, 내가 다 지원해줄게, 네가 스스로 자립하고 자유 할 수 있을 때 까지 내가 너를 서포트 해줄게 이런 선한 주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주인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유일하신 참 신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구원자이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잊어버리고 망각한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최초로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을 향한 유혹이 뭐에요? 네가 왜 종이냐? 네가 왜 종이야?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지. 이게 그들에게 최고의 유혹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잖아요. 종? 되게 기분 나쁜 단어야. 내가 왜 우리가 왜 종처럼 살아야 돼? 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야 돼? 왜 하나님을 경배하고 경외하고 살아야 돼?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게 우리 손에 들고 있는 우상들인 거예요. 돈, 행복, 물질, 쾌락. 다 같은 것들입니다. 사람, 비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행복하려고 종의 자리로 가지 않으면 그 행복은 하나님 앞에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편리함 때문에 우리의 쾌락 때문에 종의 자리에 가지 않으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리에 가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잠깐은 좋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다보니까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을 진짜 많이 만납니다. 정말 종류도 다양하고 이렇게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만나고 상담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저한테 와서는 신앙생활이 어렵다 상담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다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은 제가 장로인데요. 제가 교회를 몇 년 다녔는데 그게 저에게 와서 첫 마디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상담하러 오시면서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러면서 신앙생활 잘 한다는 거예요. 잘하는데 이게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신앙생활 잘한다고 하시는 분들을 삶을 통해서 마음을 들여다보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간다, 예수님 영접하고 끝난다 이게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을 경외하기까지 가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주인이고 내가 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경외한다는 단어는 두렵고 떨림으로 섬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인이니까 얼마나 두렵고 떨려요. 경외한다는 말이에요, 주인으로 섬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이 임하거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고 깨달았거나 기도해서 은혜를 받아서 응답을 받았거나 그래서 자기의 삶이 변화되었다 이 기준이 뭐여야 되냐면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경외하지 않느냐 여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응답 받았다하면 뭐가 잘 됐다, 인생문제가 풀렸다, 건물이 생겼다, 안 생겼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삶이 변화되었다, 성령이 임했다, 기도해서 응답 받았다의 그 응답은 하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성령이 임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내 그릇된 감정일 수 있고 내 그릇된, 잘못된 지식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랑받는 종에게 가장 중요한 기초는 지혜와 총명입니다. 종으로 주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지혜와 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을 잘 섬기고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게 종의 역할이잖아요. 우리가 회사에서도 사장님을 모신다고 하면 비서라고 하면 사장님이 뭘 좋아하는지 그 분이 뭘 원하는지 잘 파악하면 사랑 받을 수 있겠죠. 똑같은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 하신 큰 일_이사야44:23-25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25. 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 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_이사야44:23-25

 

23절. 이 일을 행하셨다는 말은 무슨 말이에요? 네가 나의 종으로 다시 나에게 구속되는 일, 너의 죄가 다 사해지고 네가 다시 나를 경외하는 일. 이 일을 행하셨으니 얼마나 큰 일인지 하나님이 이렇게 노래하고 계십니다.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_이사야44:23

 

하나님께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 것인가요? 우리가 종의 자리로 가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그냥 교회 좀 다닌다고 아무 사람에게나 그 복되고 아름다운 영광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큰일은 저와 여러분 입장에서 큰일은 뭐에요? 죄를 사해주신 것입니다. 죄 사함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일, 하나님이 하신 가장 큰 일은 뭐냐? 죄 사함 한 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은 죄 사함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은, 죄가 사해졌다는 말은 다시 하나님을 경외할 기회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할 수 없습니다. 죄인은. 그래서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고 어떻게 보면 특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셨냐면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모태에서 지으시고 만물을 지으시고 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치셨던 하나님이 무슨 일을 계획하셨냐면 이방나라. 갑자기 바벨론이 그 당시 패권국가고 이스라엘이 거기에 포로가 되어 있는데 도저히 바벨론이 무너질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그 정도로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방에서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생기고 거기에 한 왕이 생겼는데 고레스라는 왕이 생겼습니다. 예수 믿는 나라도 아니고 예수 믿는 왕도 아닙니다. 지금 이란입니다. 고레스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갑자기 바벨론을 치는데 강력합니다. 그래놓고 칙령을 발표하는데 무슨 칙령이죠? 포로 된 이스라엘 너네 나라로 돌아가, 갑자기 자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런 줄 모르겠죠. 이유를 밝히고 있죠? 하나님이 고레스를 통해서 하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고레스를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서 너희 나라 성전을 재건하고 너희 신을 다시 섬겨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여러분 하나님이 이런 일들을 하실 때 그냥 하셨겠어요? 아니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유대라는 나라가 원래 뭐하는 나라죠?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이방나라들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나라잖아요. 그런데 그 일을 이스라엘은 어떻게 깨달았냐면 우리가 애굽처럼 우리가 바벨론처럼 우리가 앗수르처럼 강대국이 되고 문화를 발전하고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어야 전도와 선교를 하는 나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되냐고요? 이방나라 우상을 받아들이고 나라는 부강해졌는데 사람들이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가 폭력적이 된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가셨습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돼서 7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뭘 세우셨어요? 기초, 아비투스(Habitus)를 다시 세우신 것입니다. 뭐에요? 인내입니다. 포로니까 뭘 할 수 있어요? 그들이 다시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내용들이 느헤미야, 에스라, 학개에 나와 있습니다. 다시 그들이 언약을 기억하기 시작하고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가 포로 되고 아무 것도 외적으로 할 수 없을 때 뭐하셨어요? 성전을 다시 재건하십니다. 갑자기 한 나라를 세우시고 왕을 세우셔서. 무슨 말이에요? 너희 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내가 할 건데 너희들의 할 일은 명확해. 나를 경외하는 거야. 그럼 의문입니다. 우리가 선교와 전도를 하는 것입니까? 초대교회는 왜 전도와 선교가 없었을까요? 아유 목사님 초대교회에 왜 전도와 선교가 없었어요? 가서 제자 삼으라, 사도행전만 봐도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여러분 자세히 읽어보세요. 그들이 전도와 선교를 했는지. 아닙니다. 그들이 진짜 예수님 믿는 사람이 돼서 정말 삶이 변화되어서 전도가 된 거 아닙니까.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려고 할 때는 우상을 섬기고 세상방법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포로로 있을 때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을 위해 인류를 움직이고 계세요. 아멘? 이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 그런 말 많이 합니다. 우리나라가 어떻고, 국가가 어떻고, 세상이 어떻고 이런 많은 말들을 합니다. 전 세계 경제, 의료 환경 대화 속에 전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우리 대화는 그렇습니다. 실상 우리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하루하루 밥 먹고 살아가면서 아이들 키워가면서 직장 다녀가면서 사는데 우리의 대화는 막 국가, 경제, 정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아우릅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념, 사상을 아우르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우리 입으로 합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는 그것과 별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아닌가요? 그게 맞는 것입니다. 엄청난 의료 기술이 발달해서 암을 치료하고 우리의 질병들을 치료해서 감사하고 그런 혜택들을 우리가 받아야 되지만 그러나 우리 코끝에 호흡이 멈추면 우리는 다 죽어야 됩니다. 나라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수많은 이야기들, 인류 발전과 문명을 위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다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역사적으로 남아있는 문명이 없습니다. 소련이 영원할 거 같았는데, 영국이 영원할 거 같았는데. 여러분 미국이 영원할 거 같으세요? 우리시대는 그럴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빠져가지고 정작 무엇을 놓치죠? 정말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내 자녀가 지옥 간다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지옥에 간다면. 그런 비참함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사라져서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자라는 세대가 온다면. 사사기 시대처럼. 우리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진지하고 진심으로 고민한다면 우리가 해야 될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건물 짓는 것입니까? 외형적으로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입니까? 아니잖아요. 지금 그렇게 외형적으로 전도하고 선교해서 기독교가 욕먹고 있는데. 우리가 정말 해야 될 선교는 아비투스(Habitus)인 것입니다. 내면의 변화인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참된 신앙인이 되도록 고민하고 인내하고 교회 안에 정말 사랑과 용서가 있는 인내가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초기 기독교처럼 우리는 그 일에 집중하고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밖에서 이뤄지는 국가와 나라와 수많은 문제들은 누구 손에 계십니까? 하나님 손에 계시는 거예요. 우리가 코로나 문제를 풀 수 있습니까? 코로나가 이미 정치, 경제, 문화, 의료, 기업들까지 다 짬뽕되어서 코로나를 풀 수가 없습니다. 이해관계가 너무 많이 얽혀버렸습니다. 나라마다 입장이 다 다릅니다. 공산국가에서 다루는 코로나 내용이 다르고 서방국가에서 다루는 코로나 내용이 다릅니다. 코로나 우리가 풀 수 있나요? 이 이야기 들으면 이 이야기가 맞는 거 같고 저 이야기 들으면 저 이야기가 맞는 거 같습니다. 백신에 관한 이야기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 힘으로 못 풉니다. 하나님이 푸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될 것은 뭐에요? 우리가 정말 관심가지고 회복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요? 아비투스(Habitus) 아닌가요? 신앙의 기초 아닌가요?

 

- 이 성들이 다시 여기에 세워질 것이다_이사야44:26-28

 

26. 그의 종의 말을 세워 주며 그의 사자들의 계획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에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27.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_이사야44:26-28

 

26-27절. 강물은 뭘 뜻하죠? 핍박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벨론을 뜻합니다. 바벨론을 다 마르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니까 바벨론이 두려운 것입니다. 어떻게 예루살렘에 다시 가서 살 수 있어? 어떻게 유다 성읍이 중건될 수 있어? 황폐한 곳이 복구될 수 있어? 포로로 있으니까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예언을 주셔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었습니다. 왜? 내 안에 믿음의 기초가 회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28절. 쉬운성경에는 ‘이 성들이 다시 세워질 것이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로 된 인생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시냐 너희가 다시 기초를 세우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완벽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그 일을 아무에게나 시키지 않으십니다. 죄악 된 백성들,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초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 기초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포로에서 벗어나고 전적인 은혜입니다. 자기의 공로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의 의가 하나도 없습니다. 너희의 힘으로 포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이방나라 페르시아와 고레스를 세워서 너희를 벗어나게 할 건데. 이스라엘이 볼 때는 완전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와, 이건 하나님이 하셨어. 이렇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가는 과정, 포로에서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우리가 느헤미야, 에스라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돌아갔나요? 그들이 아비투스(Habitus)를 거친 증거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뭐에요? 느헤미야가 학사 에스라와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도록 합니다. 집회를 엽니다. 학사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모세오경을 낭독합니다. 우리 그 장면 기억나시죠. 에스라서를 읽으면서. 이스라엘 그 앞에 통곡하고 웁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기초를 세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것은 성전 건물이 아닙니다. 자꾸 한국교회, 목사들이 교회 건물 지을 때 느헤미야 설교를 자꾸 하잖아요. 헌금 걷으려고. 느헤미야 설교를 시리즈로 합니다. 그 외에는 하지도 않습니다. 꼭 성전 뭐 할 때마다 느헤미야가 성전 건축하는 성경본문이 됐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건물 지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해서 우리가 느헤미야에 나온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 서자는 것은 맞는 말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악합니다. 지금 느헤미야서에서 하나님이 이야기하시는 것이 건물입니까? 아니죠. 하나님이 지금 세우시는 기초는 건물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그들 삶에 다시 세워진 신앙입니다. 건물이 무너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전이 무너진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증거가 뭔지 이야기해 드릴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예언하신 것이 예언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도록 무너뜨리셨습니다. 그게 성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세워야 될 기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게 너희들이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 신앙이라고 이야기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시 기초를 세우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 기초는 우리가 생각할 때 그저 예배, 묵상, 교회, 신앙, 기도 이런 것 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누군가에게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거라면 그것은 기초가 아니에요. 아비투스(Habitus)가 아닙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같은 사람은 기도해야 돼? 황제가 꼭 그렇게 해야 돼? 이랬겠죠? 핍박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은혜 받아야 될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감격이고 간절함이고 감사이고 기쁨이라면 그 별거 아닌 거 같은 예배나 그 별거 아닌 거 같은 교회나 신앙이 엄청난 힘과 열매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은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오늘 날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일에 쓰임 받고 싶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거치고 싶습니다. 이 아비투스(Habitus)의 과정을 거치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가 오승주 목사가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일을 위해서 쓰임 받고 싶습니다. 무엇을 위해서라도. 그런데 저에게 고민이 있습니다. 큰 고민, 작은 고민이 아니라 제가 항상 하고 있는 고민입니다. 가스펠교회를 개척하고 2-3년 되는 해 제 친구가 분당우리교회에서 행정목사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저는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을 목사님께서 사랑의 교회 부목사로 청소년 파트를 맡고 계실 때부터 알았습니다. 책도 보고 강의도 보고 세미나도 직접 참석도 하고. 이제 교회를 개척해서 몇 만 명 되고 이러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데 예배를 가기는 좀 그렇고 친구에게 이야기했는데 그러면 교역자 예배를 오라는 것입니다. 월요일 아침 9시에 드리는 교역자 예배를 오라는 것입니다. 교역자 예배가 따로 있어? 이렇게 하고 가보자 했는데 교역자 회의가 아니고 예배일까? 우리는 교역자 회의인데. 가서 보니까 이해가 되었습니다. 목사들이 200명이 앉아 있더라고요. 전도사, 목사들이 200명이 되는 것입니다. 200명이 넘게 앉아 있습니다. 교회 규모가 대충 짐작이 됩니다. 그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시는데 시작하는 설교 때 엄청 역정을 내시는 것입니다. 제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화를 내셨는데 이런 것입니다. 목사들 지목해서 윤덕현! 너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나가, 너 같은 거 우리 교회 필요 없어 진짜 이렇게 하셨습니다. 듣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상처 받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최주은 이러면서 너 같은 거 우리 교회 필요 없어 나가. 저는 시험들 뻔 했습니다. 저는 이찬수 목사님 존경하거든요. 목사님 저런 분인가. 내가 오해했나, 이중적인가. 제가 친구에게 화나셨냐고 물어봤는데 가끔 저러셔 이랬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그러면서 끝까지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그 날 설교를 1시간 30분을 하셨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느꼈습니다. 목사님이 교역자들을 혼내고 이름까지 불러가면서 혼냈는데 그 사람들이 기쁨으로 아멘하고 있는 거 보니까 뭔가 관계가 있는 거죠. 그런데 제가 들으면서 뭘 느꼈냐면 얼마나 성도들을 사랑하시는지 목사 너네들이 똑바로 신앙생활 안 하면 성도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영적으로 다 가는 건데 사역만 똑바로 할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혼을 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역자들도 사랑하십니다. 너 네들이 나중에 다 목사가 되고 주의 종들이 되고 지도자들이 될 건데 지금부터 그렇게 신앙생활하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교회를 이끌어 갈 거냐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조목조목 다 설명하시는데 사실 그날 저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제 약점이 여러 이해관계입니다. 저는 배경 없이 자랐기 때문에 그런 이해관계를 되게 중시 여겼습니다. 누가, 어른들이 불러서 무슨 일을 시키면 거절도 잘 못하고 여러 이해관계, 여러 사정들을 다 생각하고 목회라는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바르게 이게 아니라 이해관계가 우선이었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이렇게 될 거야, 그래서 이런 말은 안 해야지. 이런 게 더 우선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교회가 바르게 잘 가고 있다는 확실한 한 가지 증거가 있는데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 제가 주님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게 그 마음이 커지는 게 내 삶이 조금씩 그렇게 변화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제 스스로 확신이고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너무 감사하죠. 교회가 외적으로 성장했냐 안 했냐가 증거가 아니라 제가 주님을 더 사랑하고 있구나. 저는 신앙의 경험들이 어떤 일순간, 한 번의 자극으로도 가능할 수 있겠죠? 그러나 성경을 보고 믿음의 사람들을 봤을 때 아비투스(Habitus) 즉, 인내의 시간으로 신앙이라는 것이 꽃 피운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한 순간의 어떤 깨달음이 아니라 인생을 다 살고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셨구나, 내가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구나,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이런 게 깨달아져야 합니다. 이게 진짜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우리 삶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기초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초를 빨리 빨리 다시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 기초가 없는데 무너졌는데 거기에다가 지붕을 씌우면 지붕은 곧 무너집니다. 기초가 없는데 뭔가를 쌓아 올리면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립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도 어려움이 있을 때는 빨리 기초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베이직(Basic)부터. 신앙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가정문제가 오든  경제문제가 오든 인생에 어떤 인간관계 문제가 오든 항상 체크해야 될 것이 뭐냐면 기초입니다. 내 마음이 바뀌었는지 변질되었는지 내 삶이 뭐가 문제가 있는지 항상 기초로 돌아가서 확인하고 거기서부터 점검해가야 합니다. 신앙은 오죽하겠습니까. 우리 신앙의 기초를 하나님이 세워 가시는데. 사람들이 저에게 상담하러 오면 다 죽을 거 같다고 합니다. 앞, 뒤, 좌우가 다 막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니잖아요. 살 길이 있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해두신 은혜가 있잖아요. 오늘 말씀을 누구에게 주셨냐면 포로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포로라면 꽉 막힌 것입니다. 포로라니까요? 종이라니까요? 그런데 너희는 내 종이야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너희를 구속하고 너희의 허물을 도맡아주고 그리고 너희를 위해서 페르시아를 일으켜서 고레스 왕을 일으켜서 너희를 회복시켜서 너희 성전을 다시 재건할 거야라고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을 믿었나요? 믿었습니다. 7년 동안 아비투스(Habitus)가 되었습니다. 포로 된 동안. 초대교회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았던 이유는 그들이 아비투스(Habitus)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핍박 속에서 기초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기초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데 이 기초는 신약으로 넘어와서 정확하고 뚜렷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기초가 누구라고? 예수님이라고. 예루살렘 성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유대, 바리새 어떤 조직 시스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려고 하시는 신앙의 기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실력과 우리가 만든 문화로는 신앙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유일하게 우리에게 주신 기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기초를 건물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기초를 자기들 바리새파, 사두개인파라는 조직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럴 수 있습니다. 당회, 목회자그룹, 스텝들이, 리더그룹들이 교회 기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닙니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신앙의 기초, 교회의 기초는 예수님입니다.

 

Ⅲ. 너의 기초가 다시 놓일 것이다_이사야44:28, 요한복음8:31-59, 전도서12:1-14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_이사야44:28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요한복음 8장에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대화가 나옵니다. 여러분 재미있습니다. 주의 깊게 잘 보시면 거기에 뭐라고 나오냐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뭐라고 하시냐면 자꾸 유대인들에게 이해 못 할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가르침을 받아야 내 제자가 돼, 너희가 종이었는데 내가 가르친 진리를 받으면 너희가 자유인이 될 수 있어.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못 알아먹고 아니 당신이 누구인데 당신의 가르침을 받으라고 하냐 이게 아니라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아니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아브라함 이후로 우리는 종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왜 우리보고 종이라고 하느냐 이딴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도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으면서도 자기들이 종이었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죄의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우리는 종 된 적이 없다, 아브라함 이후로 이렇게 따져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죄의 종이다 종은 영원히 가족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아들은 영원히 가족의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며 너희는 참으로 자유로워질 것이다_요한복음8:34-36(쉬운성경)

 

진정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라면, 너희는 나를 사랑했을 텐데 너희는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지금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_요한복음8:42(쉬운성경)

 

유대인들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먹지 못합니다. 무슨 말이에요? 너희가 죄의 종이라는 거예요. 나 예수님이신 진리를 받아들이면 너희가 자유케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종의 자리로 가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들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의 아들 삼게 만든다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해요?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진짜 믿는다면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습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에요?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믿잖아요? 교회들도 하나님을 믿고 콘스탄티누스 대제도 하나님을 믿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섬겼는데 십일조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제사도 드리고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은 거부했습니다. 이게 뭐에요? 아비투스(Habitus)를 거부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이해가 되셔야 돼요. 지금 예수님이 그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한국교회가 잘못하다가는 겉으로 목사의 전략과 유학파 목사의 뛰어난 설교와 전술, 전략, 전도 전략, 선교 전략 이런 게 쏟아져 나오잖아요. 그런데 교회 안에 뭐가 없어요? 예수님이 안 계세요. 우리 안에 진리이신 예수님이 안 계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뭐라고 이야기하십니까?

 

너희는 너희 아버지 마귀에게 속하여 너희 아버지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기를 원한다_요한복음8:44(쉬운성경)

 

유대인들보고 너희에게 아버지가 진짜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 보내신 나, 너희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받아 들였을텐데. 초기 기독교, 초대교회는 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말씀을 살아내려고 노력했는지. 이건 성령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신앙이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이 마음속에서 간절히 찾아지고 바라고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리새인 유대인들처럼 마귀에게 속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거 맞죠? 아버지를 사랑하는 거예요. 그러면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 교회나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되죠? 정죄하게 됩니다. 정죄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겉은 화려한데 안이 텅텅 비어있으면 뭘 하죠? 그 겉의 모양 가지고 남을 정죄합니다. 그게 율법주의입니다. 그게 중세교회가 그렇게 했습니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마녀사냥을 하고. 왜? 외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니까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을 다 죽였습니다. 나쁜 사람 취급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복음서에서 그렇게 전도하셨나요?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함께 식사하시고 죄인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발을 씻겨주고. 그게 우리가 아비투스(Habitus)를 거쳐서 진짜 우리 내면에 복음을 가진 사람의 전도이고 선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법이다 이는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_요한복음8:47 쉬운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들이 듣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이제는 교회들이 만든 전략이 메시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교회 주일학교 설교 들어보세요. 성경 강해하는 설교가 있나. 없습니다. 초등부, 중고등부 전도사들이 어떤 책 한 권 읽어가지고 비전 이야기하고 마케팅 이야기하고 성공하려면 이런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이런 거 설교하지 성경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안 듣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들이 나의 의로 내 것으로 남을 정죄하는 폭력적인 전도, 폭력적인 선교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뭐죠? 명절 때. 추석, 설 명절 때 한국교회들이 주보에다가 가정예배, 미션 이런 것을 줍니다. 이번에 누구 영접 시켜 와야 한다, 가족들 이번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복음 전하고 영접해야 한다는 미션을 줍니다. 정말 많이 봤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알 것입니다. 저희 집의 명절은 늘 놀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그런데 제가 왜 그 이야기를 하냐면 미션을 받고 성도들이 뭐하는 줄 아세요? 시골에 가서 집에 가서 다른 데 관심이 없습니다. 누구 영접 시킬까만 생각합니다. 설거지도 안 하고 전도 부치지 않고. 어른들이 전 부치고 있어도 누구 영접 시킬까.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말 못하니까 조카들 꼬셔서 방으로 몰래 데리고 들어가서 예수님 영접 시킵니다. 너 지금 예수님 영접 안하면 지옥 가, 영접해라, 이모가 맛있는 거 사줄게. 너 용돈 안 준다. 영접해라. 아이들이 마지못해 영접합니다. 그리고 또 가서 누워서 티비나 보고. 더 놀라운 충격적인 사실은 명절이 끝나고 교회들이 그런 분들의 간증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오 하나님이 나에게 한 영혼을 붙여주셔서. 조카 누구를 영접했습니다. 너무 폭력적이지 않으세요? 그 아이가 평생 신앙생활 할까요? 그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을까요? 그게 사랑입니까? 그게 진짜 변화된 사람의 사랑입니까?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지금 우리의 선교도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선교사들 협박하고. 교회에서 선교헌금 좀 보내준다고 보고하라하고 협박하고. 열매 안 맺히면 선교비 줄인다고 협박하고. 여러분 그게 선교입니까? 우리가 다시 기초를 세워야 된다는 의미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회복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말씀이 들리고 회개할 수 있는. 완전 자유입니다. 아비투스(Habitus)의 과정을 거쳐서 맺힌 열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그것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그것은 자유입니다. 완전히 감사함이 있고 감격함입니다. 신앙인들만 느낄 수 있는 자유함 입니다. 하나님이 노예시장에서 우리를 건지셔서 내가 너를 서포트 해줄게 공부해. 너 기술 배워, 자유롭게 살아. 이것입니다. 그 아이가 어찌 그 감사함, 고마움으로 자기 민족과 나라와 자기 자녀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지 않겠습니까. 전도서 전체는 솔로몬이 인생을 다뤘습니다. 인생을 좋은 것도 해보고 안 좋은 것도 해보고 솔로몬이 다 해본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세상만사의 결론을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켜라_전도서12:13-14(쉬운성경)

 

다 해보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다. 하나님은 선악간의 모든 행위와 남몰래 한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이다_전도서12:13-14(쉬운성경)

 

우리의 본분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리셋이 필요하다면 리셋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의 무너진 곳을 수리하고 그 안에 더러운 죄를 제거하고 무너진 예배,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에 무너져 있으면 예를 들어 건강이 무너졌다. 빨리 기초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병원에 가서 체크하고, 어떤 영양분이 부족한지 어떤 운동이 부족한지 기초를 확인해서 해야 됩니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무너져 있으면 다른 것을 아무리 세워도 헛수고인 것입니다. 

 

  • 가스펠 교회의 기초는 무엇일까요?

 

저는 저희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미래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 이사 오자마자 코로나 터져가지고 이게 목회를 하고 있는 건지. 코로나가 벌써 2년째입니다. 이 건물에서 코로나 밖에 기억이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올해도 6-7명이 태어나고 내년에도 7명인가 태어난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책임져야 될 교역자직원, 저희 가족들도 있고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걱정거리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당해야 될 사명보다 결코 그게 크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우리 교회 허락하신다면 저는 한국교회 부흥의 씨앗이 저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같은 교회가 할 수 있냐? 할 수 있다라고 저는 생각이 드는 것은 처음에는 제가 미련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성경을 보면 볼수록 미련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누가 성경을 매일 읽습니까? 누가 매일 기도할 수 있습니까? 누가 매일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미련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비투스(Habitus)를 경험한 적인 몇 차례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광주 사셨던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저희 학교를 보고 친구들이 똥통 학교라고 했습니다. 인문계 학교 다 떨어지고 마지못해서 가는 그런 학교에 제가 간 것입니다. 시골에서 전학 와서. 그 학교 다닐 때 교회에서도 교회 선생님들이 승주 저 학교 다녀?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학교 덕분에 좋은 신학교도 가고 예배도 실컷 드렸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믿었는데 2년 반 고등학교 때 예수님을 믿고 신학교를 간 것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짧습니다.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아빠, 엄마 설득해서 갔는데. 신학교 갔는데 우와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일단은 수업 내용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교회들이 성경 읽으라고 안 하던 시절이니까 전도해야지 이런 메시지 하던 시절이니까 성경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수업을 듣는데 친구들은 전부 목사님 아들, 장로님 아들, 모태신앙, 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이 탄탄한 아이들인데. 갔더니 영어, 헬라어, 히브리어를 떠나서 그냥 구약총론, 신약총론, 교의학, 조직신학 이런 거 들어갈 때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거기다 제 삶에 문제까지 찾아와서 완전히 주저앉아 버린 것입니다. 낙심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선배를 하나님이 보내주셨습니다. 김상욱 목사님이십니다. 그 분이 낙심해 있는 저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야 너 21살이잖아, 나도 너 나이 때 고생했어 이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이제부터 시작하면 되지, 왜 포기해. 너무 간단한 상담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하면 되지, 21살인데. 그러면서 저에게 두 가지를 요청하셨습니다. 목사가 되려면 성경을 알아야 돼. 신학공부의 모든 기초는 성경이야. 네가 신앙생활이 짧아서 성경을 안 읽었다면 가자, 형이 성경 읽는 모임이 있는데 가자. 그 모임에 갔더니 일주일에 3일 도서관에서 신학생들이 2시간씩 성경 읽는 모임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혼자 의자에 앉아서 성경 2시간 읽어보실래요? 미칩니다. 10분만 지나도 엉덩이가 근질근질합니다. 핸드폰 봐야 될 것 같고. 밖에 농구하는 것 보이고. 혼자는 절대 2시간 성경 못 읽어요. 내가 암이 걸렸으면 읽겠지, 내가 곧 죽을병이 걸리면 읽어. 그런 게 아닌 이상 멀쩡한 정신에 2시간동안 앉아서 성경책 읽지 못합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있으니까 하더라고요. 선후배와 친구들과 같이 합니다. 같이 하면서 옆에 메모장 두고 오늘 읽어야 될 성경을 나누고 거기에 대해서 모르는 것들을 기록하고 끝나고 그것으로 토론 합니다. 그것을 제가 3학년 때부터 했으니까 2년 동안 한 것입니다. 일주일에 총 6시간을 했습니다. 엄청나게 성경을 읽었겠죠? 거의 한 달에 한 권씩 읽었습니다. 그렇게 성경 읽는 것이 시작이 됐고  또 하나 그 선배가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저보고 신앙서적을 읽으라고 한 것입니다. 너 신앙서적 읽어봤어? 아니요. 우리는 전도만 하러 다녔지 신앙서적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 선배 이야기가 두란노 서원에서 신앙인물에 대한 시리즈가 나오는데 그거 좀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점에 갔더니 두란노 서원에서 나온 신앙인물 시리즈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만난 C.T.스터드,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스펄전, 리빙스턴. 저는 그렇게 신앙의 영웅들이 많은 줄 몰랐습니다. 읽는데 뭐가 도전이 되냐면 이 사람들이 나 같은 것입니다. 나처럼 가난한 사람도 있고, 예수 안 믿는 가정에서 예수 믿는 사람도 있고, 뒤늦게 예수님 믿은 사람도 있고 그런 인물들이 정말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책 읽을 때마다 얼마나 힘이 났는지 모릅니다. 그때부터 제가 책을 읽었는데 군대 가서 책을 조금 많이 읽고 전도사가 돼서는 교회에 십일조 하듯이 내 인생에 무엇으로 투자하지 해서 십일조를 책 사는데 썼습니다. 지금도. 사례가 늘면 책을 더 많이 사겠죠. 평균적으로 지금도 한 달에 책을 20권씩 읽으니까 작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연평균 200권씩 읽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비투스(Habitus)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만약 책을 5년 동안 읽고 10년 동안 읽고 이런 결과를 내야지 하고 읽었으면 저는 책을 읽다가 중단했을 것입니다. 책 읽는 기쁨이 없었으면. 그런데 사실 책을 읽는데 그래프가 반듯이 갑니다. 아니 어쩔 때는 책 읽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조금 내려갑니다. 대각선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비투스(Habitus)의 그래프는 뭐냐면 ---- 이렇게 가다가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떤 신학자가 아비투스(Habitus)를 발효라고 표현했습니다. 발효되다. 저는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책을 한 20년 읽고 나니까 이제 뚫리는 것입니다. 보여요. 성경도 수십 독 하고 나니까 이제 성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도 많이 읽어서.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지금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사역들이 결코 작은 사역이 아닙니다. 여러분 내면, 우리의 속사람, 우리 공동체. 우리가 지금 선교, 전도를 할 때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선교, 전도는 해야 됩니다. 선교비도 지출할 거고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도 도울 거고 네팔도 도울 거지만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용도 없이, 우리 안에 예수님도 안 계시는데 무슨 전도를 하고 선교를 해요. 우리가 에스라가 되어야 하고 느헤미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세상 고레스를 사용하셔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따르고 그 분의 가르침으로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듭니다. 그럴 때라야 세상이 그리스도인이구나. 지금은 교회가 필요할 때야. 지금은 교회가 정말 중요한 일을 할 때야 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다시 우리 삶을 아비투스(Habitus) 할 수 있어야 돼요. 중요합니다. 여러분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련하고 바보 같아서 포기하지 마시고. 우리가 포로로 되어 있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겠데요. 우리를 다시 사용하시겠데요. 그런데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_요한복음8:31-59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6.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9.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_전도서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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