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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09-1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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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12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1부예배)
제 목 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본 문 이사야 46:1-13

 

 오승주 목사

 

Ⅰ. 누구의 잘못인가?

 

코로나가 되고 나서 성도들이 교회 예배를 못 오니까 온라인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유튜브, 이런 것들이 조회 수가 급성장했다  이런 것으로 한 목사님이 자랑하는 설교를 들었는데 성도들이 예배에 오지 않고 유튜브로 많이 보니까 유튜브로 보니까 좋아요도 눌러주고, 조회 수도 많이 늘어나고 그래서 이거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랬는데 결과적으로 그 목사님께서 지난주에 하신 설교가 뭐냐면 자신이 그것을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배를 오지 못하니까 그 유튜브로 보던 조회 수도 확 줄고. 왜냐하면 그럴 수밖에 없겠죠. 사람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 눈앞에 당장 보이는 유혹들. 그래서 말도 함부로 하고 그게 하나님의 뜻이니, 하나님의 계획이니 함부로 이야기하다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한다는 것은 굉장히 복잡한 것입니다.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 레위기서가 그렇게 복잡하고 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민수기, 신명기가 그렇게 복잡한지. 하나님께서 성막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놓으셨는지. 그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카페에서 예배 잘 안 된다는 것도 아시고 우리가 이런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을 집중해서 듣지 못한다는 것도 하나님이 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극장이 있을까요? 사람들이 집에서 영화 보면 되는데 왜 극장가서 보죠? 집중이 잘 되잖아요. 화면도 크고. 그것을 다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복잡한 규례와 율례를 만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그런 제사 제도를 다 만드신 것입니다. 지금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비록 양을 잡아다가 각을 뜨고 목을 따서 피를 흘리고 피 냄새가 흥건한 제사를 드리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과정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에게 뭐가 있어야 돼요? 경건. 그래서 우리에게 뭐가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어떤 우리의 성화되는 과정들.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교리가 필요하고 신앙의 율례, 규례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게 마음이 없어서 형식이 되어버리니까 문제인데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없어서 형식이 되어버린다고 해서 그 형식을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없다고 형식을 버려버리면 그것처럼 바보 같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마음을 회복해야지 마음이 없는 형식이 되어버렸으니까 이걸 버리자,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바벨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가? 하나님이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그냥 History로 보면 누가 봐도 바벨론이 잘못한 것입니다. 바벨론이 약소국을 침략한 것입니다. 바벨론니아 문맹이라고 하는데 여러분 인터넷에 가보시면 어마어마합니다. 바벨론 문화는 제가 봐도 진짜 아름답습니다. 어떻게 이 시기에, 고대근동지방에서 이런 문화를 꽃 피울 수 있나 할 정도로 정말 화려한 문화를 꽃 피운 나라가 바벨론인데 그 바벨론이 나라를 침략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 듯이 로마가 연약한 나라를 침략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것을 경험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우리를 속국 삼고. 이런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할 때는 무조건 일본은 나쁜. 지금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바벨론이 너무 나쁜 것입니다. 로마 이런 나라는 진짜 나쁜 나라인 것입니다. 맞아요 그게. 그러나 우리가 성경으로 구속사로 하나님이 하시는 계획으로 살펴보면 하나님은 그런 나라를 일으키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사라지게도 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뭘 하시냐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시고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나라에게 하나님은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바로 제사장 나라, 이방인을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 삼으시겠다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그 모습을 일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뭘 섬겼죠? 우상을 섬겼습니다. 어떤 우상을 섬겼습니까? 바벨론의 우상. 벨과 느보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온전한 경배와 찬양을 드리지 않았던 이스라엘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바벨론이 나쁩니다. 우리 일반적인 시각은 그게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경배와 찬양을 드리지 않고 우상을 섬긴 우리의 문제도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제가 전도사 때 교회 장로님을 통해서 신문사에서 먹고 자는 청소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신문사에서 먹고 자고 신문배달을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도와달라고 도움을 받아서 다녀왔습니다. 그 친구가 소년원에도 다녀오고 보니까 가정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보통 그런 비행청소년들은 부모님이 이혼했거나 가정에 상처가 있거나 합니다. 너무 어린데 어린 친구가 신문사 사장님이 이 장로님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신문사에서 신문배달 하면서 먹고 자고 할 수 있도록 숙식을 제공해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신문사에도 가보고 신문사에 숙소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제가 가서 그 친구를 만나고 또 장로님이 부탁하시니까 장로님이 저한테 돈도 쥐어주시면서 전도사님 이 친구와 밥도 먹고 그리고 제가 줬다고 하지 마시고 전도사님께서 책도 사주시고 이 아이가 다시 공부할 수 있도록 길도 만들어주시고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또 저희 교회에서는 암암리에 교사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이 친구가 학교를 다니든지, 학원을 다니든지, 검정고시 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장학금을 청소년부 교사들끼리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복음 전하고 영접해서 교회 나와 이런 스타일이 아니고. 저는 누군가를 전도하려면 그 친구가 갈 수 있는 모든 길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친구가 바르게 갈 수 있도록 네가 마음만 먹으면 네가 공부하려고 마음만 먹고 바르게 살려고 마음만 먹으면 다 도와줄게 이런 시스템을 다 만들어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가 장학금도 받고 공부도 하고 마음도 잘 먹고 이러면 좋겠잖아요.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교회를 와서 교회의 다른 친구들과 만나게 하는 것도 제 생각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얼마나 자괴감이 느껴지겠어요. 교회에 오면 다 엄마 아빠들 밑에서 크는 아이들, 정상적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가 우리 교회를 왔을 때 느끼는 그런 상처가 있을 수 있겠구나. 제가 교회를 데리고 오는 것도 되게 조심스러웠습니다. 모든 것을 다 계산해가지고 이 친구를 도울 수 있는 모든 길을 다 열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와 한 5-6개월을 만났을까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소년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또 도둑질을 한 것입니다. 소년원에 간 것을 제가 또 도와서 2번 더 도왔는데 또 소년원에 갔습니다. 여러분 주변에서 아무리 도우려고 해도 본인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주변의 도움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안타까운 친구입니다. 정말 이 친구가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준비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노력한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들 꼬시고 교회 부탁해서 장학금 만들고. 모든 것을 다. 이 친구가 가서 새롭게 살 집까지 생각하고. 집사님, 장로님들의 도움까지 받아가지고 이 친구가 어떻게 하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을 까 이런 계획까지 다 세웠습니다. 교회 아이들에게도 그런 설명을 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본인이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왜 포로가 되었는지 조차 지금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지금은 엄청난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포로가 되었을 때 바벨론이 우리를 침략해 왔을 때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왜 우리를 포로로 그냥 가게 내버려두셨습니까. 이런 식으로 오히려 하나님께 따지고 어떤 상황이나 환경, 부모 탓 상처를 가지고 하나님을 엄청 원망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 원망이 하나님을 속상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만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포로가 되었는지. 그들이 섬긴 우상 때문이라고. 우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신문사에 있었던 그 아이는 그것을 절대 놓지 못하는 자기의 우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권사님들 반찬해서 밥 따뜻하게 해서 그 신문사에 얼마나 많이 넣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우상이 있는 것입니다.

 

Ⅱ. 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 사람 손에 만들어지고 또 버려지는 우상_이사야46:1-2

 

1.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렸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들이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2.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들도 잡혀 갔느니라_이사야46:1-2

 

무슨 이야기입니까? 바벨론의 우상이 벨과 느보라는 우상인데 이것을 짐승이 싣고 간다는 것입니다. 우상이 너무 무거우니까 짐승이 너무 고통스럽고 짐승이 너무 괴로울 정도로 무거운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우상. 그 우상이 바벨론이 무너질 때 고레스 왕이 일어났을 때 바벨론이 무너졌습니다. 그 강대국이, 바빌로니아 문명이 하루아침에 무너졌거든요? 페르시아가 완전히 정복해버렸으니까. 그 우상이 엎드려졌는데 자기들도(우상들) 잡혀갔다는 것입니다. 오늘 표현을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우상인지. 이 헛된 신들이 넘어졌는데 스스로 서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합니다. 금으로 은으로 만든 목상이 넘어졌는데 사람이 세워야 합니다. 우상들이 스스로 설 수 있습니까? 어떤 절에 가니까 불상을 이렇게 세워놨습니다. 그런데 불상을 잘 못 세워놓은 것입니다. 기반을 튼튼하게 하지 않아서 불상이 넘어진 것입니다. 그게 인기가 있어서 유명한 절도 있더라고요. 참 어리석습니다. 스스로 서있지도 못하는 우상. 이 우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오늘 본문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우상을 사람들마다 왜 손에 쥐고 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너무 이해가 됩니다. 그것이 전부 상황 때문에 손에 들어왔거든요. 어떤 상황 때문에. 그런 삶 때문에 우상이 내 손에 들어온 것입니다. 어떤 분이 자기 자식이 교통사고가 나서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내 자녀가 교통사고 나서 숨졌다. 저는 아무리 목사지만 제정신이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 한빈이 윤빈이가 그런 상황이라면? 둘 중에 한 명이 그런 상황이라면? 저는 제 정신 아니게 살 것 같습니다. 목회를 할 수 있을까? 쉽지 않겠죠. 그래서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는데 점쟁이에게 찾아간 것입니다. 남은 자식이 둘이 더 있습니다. 그 점쟁이가 남은 자식도 위험하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해요? 굿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굿 하지 않을 뿐 손 들어보세요. 그게 미신이니 어쩌니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식이 죽었는데 그리고 남은 자식이 똑같이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굿 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굿에 빠져서 100만 원짜리, 500만 원짜리, 1000만 원짜리, 5000만 원짜리 굿하고 사시는 분 만났습니다. 굿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자식들 지키려고. 그게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 상황 때문에 우상이 내 손 안에 확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긴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왜 이렇게 어리석게 우상을 섬기냐, 넘어진 거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는 우상을 섬기냐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 일상과 문화적, 인류학적으로 봤을 때는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우상, 우상 그러냐?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상이 별 거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데 왜 우리 손에 있냐? 그렇다면 우리도, 신앙생활 하는 저와 여러분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냉정하게 우리의 삶, 신앙을 점검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우상은 무서운 것입니다. 우상을 섬겼을 때 결과가 뻔하니까 우상을 어떻게 하면 섬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집은 교통사고 이야기가 나왔지만 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성공, 목적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게 우리에게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공해야 돼, 우리 어떤 목적을 이뤄야 돼.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저 여자를 얻어야 돼 이러면서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놓고 나중에 사랑 안 해준다는 말이에요. 그게 남자들이 속성입니다. 그런 것처럼 어떤 목표나 상황들. 제가 한 남자 집사님을 도와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저는 몰랐습니다. 겉으로는 굉장히 젠틀하고 뭐라고 할까요 전형적인 교회오빠의 이미지의 집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집에 부부간의 갈등이 좀 심하고 가정적으로 자기가 표현하기로 자기 인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라는 것입니다. 해도 해도 안 되는, 뭔가 꼬여 있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안 풀리는 것입니다. 그 분이 훈련도 잘 받고 예배도 잘 드린다고 스스로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점검해보니까 예배는 주일에 딱 한 번 드리더라고요. 그런데 예배를 잘 드린다고 저에게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누가 봐도 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주일날 겨우 예배 딱 한 번 드리더만요. 그러니까 자기가 생각하는 신앙생활하고 제 3자가 어떤 멘토나 지도자가 와서 그 신앙생활을 같이 점검하고 컨설팅 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그런 것 많잖아요. 내 생각에는 내가 경제 개념이 잘 잡혀 있는 거 같은데 경제 컨설팅을 받으면 세는 돈이 너무 많고 저축도 잘 못하고 있고 투자도 잘 못하고 있고 이게 많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우리 자녀를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나는 우리 자녀의 체질이 문과 인 거 같아, 내가 생각할 때, 부모가 생각할 때. 그래서 문과, 문과 했는데 전문가가 우리 자녀를 테스트해보더니 당신 자녀는 이과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말 한단 말이에요. 요즘은 그런 것을 다 해줍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그 집사님을 제가 만났습니다. 만나서 제 성향의 사역은 1-2시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한두 번 만나서 해결하지 않고 오랫동안 그 분을 만납니다. 그분의 삶이 제가 궁금했습니다. 남들이 다 괜찮은 집사님이다, 이런 분이다. 그런데 왜 이런 문제가 있을까? 그래서 제가 몇 번 만나고 그 분의 삶이 파악이 됐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집사님 일주일동안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시간이 얼마나 되세요? 혹시 있으세요? 처음에는 저보고 당당히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아유 당연히 기도하는 시간이 있죠. 아니 그렇게 어설프게 이야기하지 마시고 정확하게 이야기해주세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시간이 얼마나 되세요? 생각해보니까 무릎 꿇는 시간은 없는데. 그러면 언제 기도하세요? 밥 먹을 때, 아침에 잠깐 일어나서. 아니 그 기도를 정확히 어떻게 하세요? 정확히 안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기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일주일의 삶 동안에 단 10분도 무릎 꿇는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게 그 사람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물어봤습니다. 그 기도하는 시간에 뭐하는 지 한 번 살펴보세요. 게임하고 인터넷하고 친구들과 밥 먹고. 저한테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안 그럴 줄 아는데 자기는 술도 좋아한다고 합니다. 다 드러내니까 나옵니다. 친구들과 커피마시면서 수다 떨고. 네, 그게 우상이고 그게 죄입니다. 우상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삶. 자기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 삶을 들어가 보니까 하나님과 교제가 없습니다. 그것을 그 집사님은 영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저보고 처음 만났을 때 그랬습니다. 자기는 신앙생활을 너무 잘한다고.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저 친구는 신앙생활 잘 해, 다들 이랬습니다. 사역도 잘 하고. 실제로 들여다보니까 내용이 없습니다. 일주일동안 무릎 한 번 꿇지 않는 사람이 신자인가요? 사명자인가요? 우상은 땅을 쳐다보고 살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그 집사님은 자기는 하늘을 쳐다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하늘을 쳐다볼 시간이 일주일에 한 번도 없는 것입니다. 실제는 땅을 쳐다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욕망을 신앙으로 대체하는 것뿐입니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우리의 것으로 생각하고 계산하고 살지 않을 텐데. 땅을 바라보고 살면 땅의 것으로 우리가 판단하고 땅의 것으로 계산하고 땅의 것으로 우리 삶을 점검하고 살아갑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했냐면 너도 나도 다 우상을 섬기고 있으니까 점검 받을 때가 없었던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가 와서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왜? 다수가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 엄청 무서운 이야기를 제가 여러분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환경, 문화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남들 다 하니까. 

 

- 하나님의 공의 : 안고 품고 다니신 하나님_이사야46:3-7

 

3.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5.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6.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도금장이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며 7.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_이사야46:3-7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_이사야46:3

 

3절.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원어에는 이 본문이 뭐냐면 포로에 끌려갔는데 살아남은 자여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그러니까 포로 때 많이 죽었잖아요? 그리고 살아남은 자여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포로로 끌려갔는데 살아남은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시냐면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_이사야46:3-4

 

3-4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네가 나에게 안겼고 네가 나에게 엎혔고,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렇게 했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었다. 우리는 백발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이라고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입니다. 어린 자녀입니다. 우리 하나의 인생이 하나님께는 어린 자녀입니다.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_이사야46:4하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공의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 합니다. 단순히 법이다 이게 아니고 공의는 하나님의 사랑을 위한 책임입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밑에 깔아놓으신 약속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 수 있도록 하나님 스스로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으려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화가 나가지고 진노로 우리를 다 멸하시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스스로 약속해놓으신 약속이 공의입니다. 그런데 이 공의가 없다면 저와 여러분은 다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 공의가 없다면 우리는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공의는 하나님이 항상 한결같다는 것입니다. 항상 한결 같으십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에 있어서는 항상 한결같으시기 때문에 한결 같으신 분이 항상 그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수학을 잘 못합니다. 그래도 4x5 정도가 무엇인지는 압니다. 여러분 4x5가 뭔가요? 20입니다. 너무 쉬운 가요? 4x5 20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들이 정답을 19라고 썼습니다. 또 어떤 친구는 10이라고 썼습니다. 우리 생각에, 문제를 출제한 선생님 생각에 20이 정답인데 19라고 쓰면 너무 안타깝잖아요. 아 1만 더 보태면 정답인데. 10이라고 쓴 아이는 아예 틀렸어, 그런데 19라고 쓴 아이는 너무 아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90점 줬어. 그게 맞나요? 수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수학은 19나 0이나 0.1이나 200이나 300이나 틀린 답은 다 오답입니다. 만약에 19를 수학 선생님이 90점이라고 줬다면 그 아이는 평생 정답을 찾지 못합니다. 그리고 수학은 엉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인류는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공식이 깨져 엉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학 선생님은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우와 19는은 아깝다고 선생님이 90점을 줬어, 그러나 나중에 그 아이에게 신뢰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는 정답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게 공의입니다. 하나님에게 정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우리 인생을 18-19점 인생을 구원해줄게 이렇게 되면 우리는 다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를 죽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정답을 맞추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두고 우리가 바뀌어가고 변화되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19점, 18점, 17점 점수를 차등해서 매기는 종교가 아닙니다. 진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공의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그런데 그 죄 값을 누가요? 본인이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대신 우리의 죄 값을 치러주신 것입니다. 누구나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공의의 정점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 아이가 수학 정답을 맞추기 위해서 많은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이해시키고 깨닫게 하고. 그래서 정답을 맞추면 이 아이가 얼마나 기쁘겠어요.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공의를. 공의의 하나님으로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의를 오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뭐라고 말씀하시냐 내가 너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태어날 때부터 업었고 네가 백발이 돼서도 품에 품고 다녔다. 이것은 뭘 뜻하고 있죠?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가 너를 구하여 내리라. 하나님이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사는 동안에 우리에게 구원 하시려고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기회를 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십자가의 어린양으로 우리를 지금도 구하시려고.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업고 다니시고 품고 다니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입니다. 여러분 공의잖아요? 공의는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고 사랑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공의와 사랑을 베푸셨는데 문제는 우리인 것입니다. 십자가로 나아가면 살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공의. 기도하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공의. 회개하면, 돌아오면 용서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공의.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것은 잘못된 구원론이고 잘못된 신학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까? 신문사의 그 친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나요? 제가 몇 번을 부탁했습니다. 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저도 그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야기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네가 해줘야 될 게 있어.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마, 그리고 네 미래를 두고 이런 공부를 시작했으면 좋겠어. 검정고시를 준비해보자. 그 친구는 그게 싫은 것입니다. 그것을 구속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답답하고 간섭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중에 짜증난다고 했습니다. 아, 그런 게 짜증나는 거구나. 우리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그 공의가 무엇을 통해서 드러나죠? 믿는 자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나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깨달아서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은 완성입니다. 여러분 짝사랑은 스토커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랑은 상호간에 Give&Take입니다. 공의도 똑같습니다. 국가에서 모든 사람들이 약속을 했습니다. 국가적인 법을 정할 때 약속을 했습니다. 보통 법이라는 것은 모든 나라, 국가가 똑같이 약속을 합니다. 교통법규도 그렇고. 무슨 무슨 잘못을 했을 때 이런 벌을 준다는 것도 다 약속입니다. 그게 공의입니다. 그게 무너져버리면 국가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의를 지키는 사람은 혜택을 받고 사는 것이고 그 공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만 왜 그래? 그 사람이 정상이 아닙니다. 자기가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아서 벌금이 나오는데 짜증이 너무 나는 거예요. 4만 원짜리, 5만 원짜리, 6만 원짜리 날아오면 짜증낼 것이 아니라 지키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제가 요즘 80-90년대 집회 영상들을 되게 많이 봅니다. 궁금합니다. 그때 집회를 보면 중, 고등학생들이 나옵니다. 왜 중, 고등학생들인지를 아냐면 교복을 입고 학교가 끝나고 집회에 온 것입니다. 앞자리에 아이들이 앉아있는데 거기서 아이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게 쇼가 아니고 TV 프로그램이 아니잖아요. 제가 그 모습을 보고 이럴 때도 있구나. 요즘 청소년 수련회를 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하셔서 아이들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 되서 회개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이런 것을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스데반 목사님이 하시던 경배와 찬양팀 집회 때는 항상 집회 들어오는 입구에 큰 바구니 함을 가져다놓는다고 합니다. 그게 뭐냐면 집회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거기다가 담배도 넣고 라이터도 넣고 자기가 자기의 삶을 회개하고 가면서 그런 것을 다 넣고 간다는 것입니다. 가득 쌓인다고 합니다. 그런 집회를 80-90년대에는 했다는 말입니다. 그게 그 시절의 힘이 아니었나. 그 시절에는 세상에서 예수님 믿는 사람하면 다들 뭐라고 생각했냐면 귀한사람들. 참 어려울 텐데 믿음으로 사람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되게 존경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목사님 이러면 목사님이시냐고. 믿지 않아도. 그러나 지금은 저 사람 교회 다니는데 똑같이 술 먹고 똑같이 음담패설하고 똑같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는. 더 합니다. 그러니 우리 삶이 뭘 잃어버렸죠? 공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다 잃어버렸지 않나요? 우리 하나님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 삶이 전혀 공의롭지 않은 것입니다. 일주일을 살아도 단 한 번도 무릎 꿇지 않는다니요. 집사님이. 본부에서 일하시는 집사님인데, 일하시는 집사님이 더 무릎 꿇지 않는 모습이 더 충격이 됩니다. 하긴 주일예배 한 번 드린 것으로 신앙생활 잘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이니까. 무릎 꿇는 것은 뭐 완전히 예수님의 열두 제자 쯤 되겠네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침대 머리맡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게 그 정도 되면 완전 초특급 사명자 쯤 되겠네요. 당연한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 우상에게 마음을 주니 않으려는 신앙_이사야46:8-12

 

8.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마음에 두라 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10.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11.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12.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내게 들으라_이사야46:8-12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_이사야46:11

 

11절. 페르시아입니다. 고레스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우상들을 다 무너뜨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내게 들으라_이사야46:12

 

12절.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인 것입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공의에서 멀리 떠나 있는 너희여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하십니다. 장부처럼. 대장부 이럽니다. 원어에 장부라고 번역에 되어 있는데 장부라는 말이 조금 잘 못 되었습니다. 뭐냐면 이 일을 진실하게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너희 삶을 좀 정직하게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장부처럼. 바벨론의 우상을 섬기고 있는 너희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너희들이 어떤 상황 가운데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상황이나 시대 탓을 하지 말고. 너희가 어떤 상황으로 지금 우상이 너희 손에, 너희 마음에 있는지, 어떻게 거기까지 가버렸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떻게 그렇게 죄악 된 삶을 살고 있는지. 어디서 시작됐고 어느 순간에 우상에게 빠져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살리려고 하는데 내 말을 좀 들어볼래? 하나님이 자주 쓰시는 표현입니다. 나와 함께 변론해보자. 하나님이 우리를 진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설명 안 하고 포로로 보내고 멸망시켜버리면 되는데 하나님은 항상 변론해보자, 따져보자고 하십니다. 그 말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마음에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옛적에 하셨던 일들을 너희가 다시 기억을 떠올려서 내가 누구인지 다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냉정하게. 그런데 왜 우리가 우리의 삶을 점검하지 못하냐면 대다수의 분들이 제가 그 집사님하고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집사님, 보니까 집사님의 삶이 겉으로는 예수 믿는 삶이고 본부에서 일도 할 정도로 사명자이고 하지만 집사님의 은밀한 삶이 엉망진창이네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것을 못 바꾸죠? 자존심 때문에. 자존심이 셉니다. 그놈의 자존심. 우상입니다. 계속 남 탓하고 환경 탓, 상황 탓 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이 어떻고 저렇고. 내가 이러는데 이유가 있고. 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자기가 무릎 꿇는데 무슨. 여러분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데 환경이 어디 있습니까? 옥상에 가서라도, 화장실 가서라도, 교회 와서라도 무릎 꿇으면 꿇을 수 있잖아요. 계속 환경 탓 하는 것입니다. 바쁘고 분주하고. 바쁘고 분주한 거 알겠어요. 그런데 집사님이 기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것을 물어보는 거지, 바쁜 것 관심 없으십니다. 제가 집사님 바쁘지 않게 기도해드릴까요? 암에 걸리면 안 바쁘시겠네. 암 걸리면 병원에 계속 계셔야 하니까 한가하시겠죠? 기도도 하시겠네? 그거는 아니고요. 정말 내가 하나님 그 이름을 잃어버리고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살고 있으면서 그것을 안다고만 하지 실제로는 그 상황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보통 가난하다 이런 분들을 만나잖아요. 요즘 우리나라 상황에 가난의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비브릿지로 사역을 하다보면 진짜 가난하게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비닐하우스 같은데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 가난, 극심한 가난함. 그런 분들 만나면 그런 분들 중에서도 성실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열심히 자기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서 일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가난하지만 집에 가보면 깨끗하고 삶이 정의롭고 반듯하고. 저는 그런 분들은 그 가난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죄인 것입니다. 몸이 장애가 있다던지. 그래서 어쩔 수 없지만 그 가난 속에서도 멋있게 사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면서.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런데 뭐가 죄냐면 가난합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야, 그런데 자식이 그  아버지 원망하고 똑같이 술 먹고 다니고 똑같이 정부에서 주는 돈 가지고 흥청망청 쓰고 다녀. 그 가난은 죄인 것입니다. 사실 상황이 힘든 것이 아닙니다. 진짜 힘들고 어려우면 간절해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없으니까 늘 삶은 땅만 쳐다보고 우상만 쳐다보고 살게 우상에 메여버린 것입니다.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내게 들으라_이사야46:12

 

그래서 12절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경제가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이 문화가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습니까? 이스라엘이 원하는 거 하나님이 다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내게 와서 들으라. 내게 들으라. 우리가 왜 예배를 드리고 묵상을 하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공의에서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살핌, 하나님이 우리를 안고 업고 구원해 내시는 그 공의에서 벗어나니까 그 예배와 묵상을 통해서 우리 삶을 늘 점검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진짜 힘든 일이 있으면 저는 기도가 되지 않더라고요. 진짜 힘든 일 있으면 무릎 꿇고 기도하면 될 거 같은데 그 기도가 안 됩니다. 저는 제 방법인데 저는 진짜 힘든 일이 있으면 찬양을 부릅니다. 여러분 진짜 신기합니다. 찬양 한 곡 부르고 나면 그 마음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으로 회복되고 정신이 차려집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그런 것이 묵상입니다. 이스라엘은 것을 지금 그것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잃어버린 거예요,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 그게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신앙이 없고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남들 보기에 좋으라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Ⅲ. 아침마다 새롭게 늘 새로우신 주님_이사야46:13, 예레미야 애가4:1-17, 3:17-26, 다니엘1:1-21, 6:1-10

 

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나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_이사야46:13

 

하나님은 공의를 다시 가깝게.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인데 뭘 가깝게 하신다는 말이에요? 이스라엘을 다시 가깝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를 통해서. 그래서 교회가 멀리 떠나 있다면 하나님은 그 교회를 다시 당신에게 가깝게 공의를 가깝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로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환란, 박해, 그 고난은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론적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근육이 필요합니다. 요즘 세대들이 겉은 장성한 거 같은데 마음이 약합니다. 자기들은 마음이 약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자유분방하게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겠다고 하는데 강한 척 하며 사는데 그래서 기도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교회 와서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도움을 구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약한 사람들이라고 요즘 세대들은 손가락질 합니다. 저보고도 그럽니다. 제 친구 목사들도 저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목사 네가 교회 가서 기도한다고. 지금 네가 기도할 때냐. 말 뉘앙스가 그렇잖아요. 아니 힘들 때 기도하지 그럼. 힘들 때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지. 네가 기도할 때냐. 뭔가 하라는 것입니다. 도움을 구하는 것을 연약하다고 요즘 세대들이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여러분 도움을 구하지 않고 사는 것이 연약한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우면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왜요? 우리의 아버지시잖아요.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잖아요. 나를 지으시고 나를 구원해내시려고 지금 일하고 계시는 분이잖아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회개하고 아버지 앞에 엎드리는 것이 어떻게 부끄러운 일입니까. 여러분 자녀가 방황하다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와서 이제 정신 차리고 살겠다고 부모님에게 오는데 그게 어떻게 부끄러운 것입니까. 자랑스러운 거지. 인간은 내 스스로 절대로 내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파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의 사람들은 압니다. 어떻게 하냐? 기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니까 그의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을 압니다. 절대자인 하나님으로 내 마음이 보호를 받기 때문에 내 마음이 자존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남의 발도 씻겨주는 것입니다. 전도하려고 남의 집 청소도 해주고 그러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어딨어요. 하나님 마음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은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버러지 같은 우리의 모습을 하고 오셔서 어린양 되셔서 대신 죽어주신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연약함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연약하다고 이야기합니까? 강하다고 이야기하지.

 

1.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2.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4.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5.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6.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7.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8.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9.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10.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11.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12.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3.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 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 15.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7.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_예레미야애가4:1-17

 

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4.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_예레미야애가4;3-4

 

3-4절. 지금 이스라엘이 얼마나 멸망해버렸는지 어떤 우상에 빠져서 어떻게 되어버렸는지 예레미야가 슬픈 노래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들개도 자기 새끼들에게 젖을 주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자녀가 입천장이 달라붙어 있다는 거예요. 먹을 거를 구해도, 떡을 구해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줄 사람이 없어요? 다 우상에 빠져서 사니까. 이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부모가 포로로 끌려가서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남아있는 어린 자녀들이 입천장이 붙어있다는 육신적인 의미도 있고 또 하나는 영적인 의미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구원의 말씀, 메시야에 관한 말씀을 전해줄 부모가 없어서 자녀들이 영적으로 황폐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순금이 빛을 잃었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순금 같은 존재였어요.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신 존재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땅만 쳐다보고 사는 겁니다. 우상을 섬기는 겁니다. 그러니 마음이 강퍅해지고 완악해지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돈, 돈, 돈, 돈하니까 이제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그런 마음도 다 사라지고 그러니까 패역한 세대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영상을 하나 봤는데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 영상을 그렇게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들이 편의점에 가서 나이제한에 걸려서 담배를 못 사니깐 폐지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때려서 폭력을 행사해서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있더라고요. 이 빌어먹을 놈들이. 그런 놈들 잡아다가. 국가에서 뭐하는지 모르겠어요. 죽일 놈들, 나쁜 놈들. 제가 옆에 있었으면 진짜 반 패고. 그럴 때 폭력을 쓰는 거예요. 국가가 그런 애들은 데려다가 곤장을 떼려야 합니다. 미친 거 아니에요? 제정신이에요? 그래놓고 뭐라고 그래요? 애들의 음성이 들리잖아요. 늙다리 같은 것들아 심부름 시키면 똑같이 할 것이지. 우리 청소년들이 지금 그래요 여러분. 애들 공부시킨다고 좋은 거 먹인다고 우리 그렇게 교육했잖아요. 인성교육 하나도 안 하고. 좋은 거 좋은 거 오냐 오냐 그렇게 키워서 애들 다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공경합니까? 그런 친구들이 대학, 직장, 어른이 되어서 이 사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빛을 잃지 않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같이 고민해야 됩니다. 그 빛이 무엇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을 늘 살펴야 합니다. 주님을 예배하도록 부모와 어른들을 공경하도록 친구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교회는 그런 교육을 해야 돼요. 물론 공부도 해야 되고 최선을 다해서 저도 제 자녀들에게 제 모든 힘을 다해서 제공할 거예요. 공부할 기회를.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이 예배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사는 삶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교회는 노력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입천장이 혀가 달라 붙어버렸다고 합니다. 목 말라서. 떡을 구하는데 떼어줄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땅만 쳐다보고 사니까, 우상만 섬기고 살면 잘 될 줄 알았습니다. 우상 섬겨서 느보와 벨을 섬겨서 우리 집이 부자가 되면 내 자식들도 잘 될 줄 안 것입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목사들이 교회가 부흥하고 성전건축하고 천명, 이천 명, 삼천 명 모이면 성공한 목회인줄 압니다. 그 집사처럼 무릎 한 번 꿇지 않는 신자들 만들어 내는 것을 목회자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목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신자를 만들어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계산은 그게 맞아 보이는 것입니다. 저 우상을 섬기면 우리는 이렇게 되고 하나님은 적당히 섬기고 뭐 이런 계산을 하잖아요.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_예레미야애가4:17

 

17절. 헛되이 도움을 바랬다는 것은 우상에게 도움을 바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았나이다. 이들이 바벨론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 그러면 바벨론에 포로 돼 이것입니다.

 

17.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_예레미야애가3:17-26

 

17-19절. 예레미야가 괴로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쑥과 담즙을 이야기하겠어요. 

20-21절. 고난을 통해서 소망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22-23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은 공의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우리가 진멸되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아침마다 새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이 아침마다 새롭다는 것입니다. 주의 성실하심이 그게 아침마다 새로운 데 영원히 성실하시다는 것입니다.

24절. 그를 바라리라.

26절. 예레미야가 다 망해가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삶을 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예레미야의 기도. 다 망해가고 다 우상을 쳐다보고 마음이 완악하고 패역해 가는데 하나님이 여전히 아침마다 우리에게 인자와 자비를 베푸신다고 합니다. 성실하시데요. 돌아오라 이 말입니다. 돌아와라.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6.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18. 왕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가니 19.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21.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_다니엘1:1-21

 

8절. 여러분 잘 아시니깐요. 다니엘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돼서 갔는데 바벨론의 정책입니다. 유대민족이 워낙 똑똑하니깐 어린 아이들에게 바벨론식 이름을 주고 바벨론에서 일을 시키려고 특별히 똑똑한 아이들을 뽑은 것입니다. 그런데 뽑힌 아이들을 왕 앞에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왕의 음식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기, 포도주를 먹이는데.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뜻을 정했다고 합니다. 나는 왕의 음식을 먹지 않겠다. 그 당시에 왕의 음식은 우상 섬기는 음식입니다. 우상에게 제사를 지낸 음식이 왕의 음식입니다. 우상에게 제사를 지낸 음식을 가지고 왕들이 먹기 때문에 우상섬긴 음식을 먹지 않겠다. 그 환관장이 이거 먹어야 네가 윤기가 나고 윤기가 안 나면 내가 혼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테스트 하라는 것입니다. 나 10일 동안 채소만 먹고 물만 먹을 테니깐 다른 아이들, 다른 이방민족들에서 잡혀온 아이들보다 얼굴이 윤기가 더 났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지혜를 주셨고 그 지혜로 바벨론 왕의 꿈을 해석해줘서 높은 자리로 갑니다.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다니엘에게 위기가 옵니다. 다니엘 6장에. 

 

1.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_다니엘6:1-10

 

원래 바벨론에 신하들이 충신들이 다니엘이 그 높은 자리에 가서 왕에게 사랑을 받으니까 법을 만듭니다. 다니엘을 들여다보았어요. 다니엘을 무엇으로 모함을 할까? 무엇으로 이 친구를 죽여 버릴까. 털어서 먼지 하나 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너무 깨끗한 삶을 사는 겁니다. 뇌물을 먹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왕을 모함하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성실하게 사는지. 그런데 한 가지 흠이 있는 거예요. 이 친구의 한 가지 흠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가 시간이 되면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하는데. 그래서 이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입니다. 이 나쁜 사람들이 음모를 꾸민 거예요. 왕에게 가서 아부를 한 것입니다. 왕이여, 이 나라에 모든 이방민족들이 와있고 이러다 보니 왕이 우리의 유일한 신인데 왕에게만 예배, 기도하지 않고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사자 굴에 넣읍시다. 왕이 다니엘을 좋아하지만 그 순간에는 도장을 찍어버린 겁니다. 왕이 너무 나중에 너무 안타까워 가지고.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갈 때도 따라갔고 아침에 사자에게 먹혀 죽었을 텐데도 왕이 살아계신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기에 합당하셨더냐.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그때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뭐라고 그러나요?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그 다니엘이 포로가 되었는데 이 예레미야 애가의 신실하신 하나님께 예배하고 아침마다 은혜를 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포로가 되면 짜증내고 화내고 할 텐데. 다니엘은 아침마다 그 새 은혜를 받기 위해서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 다니엘. 여러분 우리가 지금 공의롭게 살고 있나요? 우리가 지금 예배하고 있나요? 우리가 기도하고 있나요?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게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게 하나님 사랑입니다. 우리의 상황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고. 우리의 환경이 엄청난 고난이고.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진짜 신앙을 한다면 그것은 부끄럽지 않은 일입니다. 그에게는 총명이 주어지고 지혜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이 땅을 닮아가려고 애쓰고 노력하면서 우상을 섬기면서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아침마다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삶입니다. 요즘 우리가 코로나니, 정치니, 이념이니 사상이니 이야기를 하지만 그게 기독교인들에게 진짜 문제인가요? 진짜 문제는 내 영혼이 주님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요? 은혜를 잃어 버린 것 아닌가요? 교회가 진짜 회복할 것은 무엇인가요? 아침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 우리가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 삶에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가깝게 하신다는데 우리가 주님께 가깝게 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바로 저와 여러분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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