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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09-19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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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1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1부예배)
제 목 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 문 이사야 47:1-15

 

 오승주 목사

 

Ⅰ. 열방의 공주처럼 군림하던 바벨론_이사야47:1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바벨론이 왜 멸망했는지 이 본문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을 가지고 멸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망할 거 같다면서, 망했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특히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보니까 그런 분들이 교회를 많이 옵니다. 세상적으로 잘 나갈 때는 교회 가서 예배하고 말씀 듣고 은혜 받고 이런 것이 하찮게 보이다가 이제 뭔가 망했다 싶으니까 의지할 때가 없으니까 교회라도 가볼까 이런 마음으로 교회를 오면 다행인데 점술가, 점쟁이를 찾아가면 악순환입니다. 오늘 바벨론의 말씀이 우리에게 참 많은 지혜가 되었으면 좋겠고 가스펠 성도님들에게 살아가면서 여러분을 현명하게 만드는 길라잡이, 나침판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했습니다.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임이라_이사야47:1

 

왜 처녀, 딸, 여자, 아름다운 여인, 나주에 보니까 여주인으로 예언을 하고 있을까요? 바벨론이 어떤 처절한 모습, 바벨론이 멸망해가는, 몰락하게 되는 처절한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경은 의인화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봅니다. 아름다운 처녀, 딸, 공주, 여주인 이렇게 기록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당시 바벨론이 열방 위에 공주처럼 군림했다라는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바벨론의 수도바빌로니아는 엄청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거기에 있는 궁중정원은 지금도 따라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설계였고 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었습니다. 여러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되었고 바빌로니아가 그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도 되게 아름다웠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너무 잘 아시는 것처럼 함무라비 법전이 함무라비라는 왕 때 만들어진 법전이 있었고 요즘 계속 발견이 됩니다. 문자, 점자 이런 것들이. 그 전에는 다른 것이 최초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고고학자들이 발견해 보니까 전부 다 바벨론에서 나온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아름답고 도도하고. 주변 사람들은 다 야만인처럼 살던 시대에 바벨론, 바빌로니아는 명성이 뭐였냐면 그 당시 고고학에 보니까 열방의 여왕과 같다 이렇게 칭송하고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그것을 빗대어서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 가지입니다. 처절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의인화했던 것과 또 하나는 그 당시에 바벨론이 스스로 자기들이 열방 위에 군림하던 공주, 여주인.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처녀 딸, 바벨론아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진짜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제가 앞전에 설교 할 때 자료를 많이 보여드렸습니다. 너무 화려한 나라였고 여러 수식을 가지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정말 겉으로 너무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벨론이 왜 도대체 순식간에 멸망하게 되었느냐? 순식간에 망하게 되었느냐? 그들이 멸망해서 땅에서 수치가 너무 심하고. 여러분 수치라는 것은 아리따운 공주, 열방 위에 군림했기 때문에 수치가 더 심합니다. 원래 공주가 아니었으면 땅에서 사는 것은 수치가 아니었을텐데. 그런 지위를 가지고 있다가. 지금 저는 어찌 됐든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든 없든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박근혜 대통령이 되게 짠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전라도 사람인데 짠한 마음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었는데 감옥에 계속 있습니다. 보통일이 아닙니다. 아마 그 수치심은 말로 다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보복정치가 심해서 대통령이 끝나면 감옥으로 직행하니까 제발 그런 것을 어떻게 좀 했으면 합니다. 물론 대통령을 잘 해야 되겠지만. 아마 오늘 말씀의 바벨론이 느끼는 수치심은 말로 다 못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나라가 순식간에 다 사라졌습니다. 문명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 바벨론을 멸망시켰는가? 왜 망하게 되었는가? 더 이상 곱고 아름답다는 말을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영원히.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Ⅱ. 바벨론이 멸망하는 이유

 

- 긍휼이 없는 바벨론_이사야47:2-6, 역대하36:17

 

2.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3.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4. 우리의 구원자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 5.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여러 왕국의 여주인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리라 6. 전에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_이사야47:2-6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_이사야47:2

 

2절.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이 사람들이 원래는 여왕입니다. 열방을 다스리는 왕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땅에 내려와서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고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이 말은 뭐예요? 피난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치마를 들고 내 온 몸이 드러나도록 강을 건너서 도주해야하는 수모를 겪을 것이다. 너희가 이전에는 지배국이었지만 이제는 피지배국이 되어 페르시아가 공격해오면 너희가 그렇게 도망가야 될 것이다.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_이사야47:3

 

3절. 하나님이 보복이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그런데 이 보복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인간이 하는 복수와 같은 단어가 아닙니다. 이 보복은 하나님의 공의에 바탕을 둔 죄악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번역들은 조금 잘못된 번역입니다. 보복 이러면 하나님이 복수의 하나님으로 느껴지는데 그게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바벨론을 멸망하게 하신 것이 아니고 바벨론이 스스로 멸망했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흔히 응답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잖아요? 응답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하나님은 그 응답을 받도록 우리 삶에 그 노력과 애쓰는 과정을 선물로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이 이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짠하면 나타나는 신앙.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서 우리에게 모든 축복을 주시는 신앙. 이런 식으로 한국교회가 기복신앙을 가르쳤기 때문에. 아니죠? 축복도 그런 것이고 응답도 그런 것이라면 반대로 멸망도 똑같은 것입니다. 그냥 멸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균열이 있었고 부정, 부패, 쾌락, 교만, 오만. 오늘 바벨론이 멸망한 이유를 성경에서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계시는데 이 세 가지 때문에 바벨론이 결국 멸망한 것입니다. 그 멸망의 때를 하나님이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전혀 무시한 바벨론이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질서가 있습니다. 이 지구를 창조하신 분이, 인류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기독교인들은 자꾸 신자와 불신자를 나누는데 성도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잖아요? 이거는 우리가 구원 받고 죄 사함을 받아서 천국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눠야 되는데 교회들이 불신자와 신자를 어떤 성공과 실패로 나눠버리더라고요.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 불신자라도 하나님의 창조섭리대로 사는 사람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안 믿어도 술, 담배 안하고 운동하고 그러면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반은총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지구를 다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수님을 믿고 매일 흥청망청 내 몸을 아끼지 않고 살면 몸이 병드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한 사람들 우리가 부러워합니다. 예수 안 믿고 성공한 사람들, 곧 멸망할 거야 이러면서 저주하고 이럽니다. 부러워가지고. 그러지 마세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누구보다 노력했고, 공부했고 애썼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인류 자체, 질서를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왜 지구가 몸이 아프죠? 우리가 환경을 오염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될 것이고 우리 자녀들이 받아야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을 빨리 이해해야 되는데 교회가 마치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되고 예수 안 믿으면 이렇게 되고 이분법으로 다 구분해버렸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오면 다 건강해지고 응답 받고 축복 받고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이 죄악 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질서로 회복된다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운동, 공부, 사업, 우리가 노력하며 살아가는 모든 것에 다 뭐가 있죠? 열매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장사해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교회 다니니까 사업처에 십자가 걸어놓고 교회에서 주는 액자 걸어놓고 있으면 장사가 잘 됩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장사가 됩니까? 음식 개발 안하고, 서비스 개발 안 시키고, 사업장을 깨끗하게 해서 사람들이 오도록 노력해야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뭐냐면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더 깨끗하게 해야 되고, 음식을 더 개발해야 되겠고. 그 깨달음이 더 빠를 뿐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도 내가 장사를 하는데 물론 동기가 다를 수 있겠지만. 그것을 가진 사람이 성공할 수 있겠죠. 저는 어떤 집 가보고, 성도님들 심방 가보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찬송 틀어놓고 벽에 교회 성구 붙여놓고 십자가 걸어놨는데 음식 먹어보면 너무 못 먹겠고, 너무 더럽고. 그래놓고 뭐라고 그러시냐면 목사님 우리 가게 잘 되게 축복 좀 해주세요, 우리 가게가 왜 잘 안될까요 이럽니다. 안 되는 이유가 너무 많이 보이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_이사야47:3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어떤 뜻이냐면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보복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심판을 그 어떤 사람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수를 한낱 피조물이 막으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피하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하나님의 징계이고 심판입니다. 마치 우리 죽음처럼 막을 수 없습니다. 막을 수 없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심판을 당했고 왜 바벨론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뭐냐면 그들이 긍휼이 없었다. 긍휼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면 불쌍히 여기다 입니다. 그러니까 불쌍히 여긴다는 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에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_이사야47:6

 

6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벨론이 어떻게 다뤘는지 역대하 36:17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_역대하36:17

 

갈대아 왕이 바벨론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다 넘기셨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시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깨닫게 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바벨론에 넘겨주셨는데 이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엄청 비참하게 다뤘습니다. ‘칼로 사람들을 죽이고’ 쉽게 말하면 긍휼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노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메여서 고된 노역을 시키고’ 하나님은 그것을 지금 바벨론에게 따지시는 것입니다. 네가 이렇게 하라고 내 백성을 너희에게 보낸 것이 아니지 않냐? 특히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느뷰갓네살이 악한 왕인데 젊은이나 늙은이나 여자나 남자 노인, 병약한 사람을 정말 잔인하게 칼로 살육했고 도륙했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자비가 없는 왕이다. 긍휼, 불쌍히 여기는 게 없는 왕이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 신이 되려고 했고 만약에 내가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풀면 나는 연약한 왕이라는 이미지를 받기 때문에 느부갓네살 왕은 그런 자비를 일제히 허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렸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셨는지 아시죠? 여러분 감독이라든지, 국가의 지도자들은 저 개인적으로 잔인한 사람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덕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유능한 사람들을 많이 쓰고, 팀이 되어서 나라를 섬기고 스포츠 팀을 섬기고. 이런 사람들이 감독도 오래하고 그럽니다. 그러나 잔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 반드시 대가를 치룬다는 거,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히틀러, 악한 독재자들, 자인한 사람들, 북한의 인간들. 다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그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당장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저 사람을 칭송하는 척 하지만 그 칭송은, 그를 높이는 것은 진짜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잔인하고, 무서워서 그 사람 앞에서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 긍휼을 베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악독한 행동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보복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에는 왕들이 되게 많았습니다. 사사기 1장에 보면 베섹이라는 나라가 나옵니다. 여러분이 사사기를 읽어보면서 사사기에 나오는 나라들을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베섹이라는 작은 국가 있었는데 그 왕 이름이 아도니 베섹입니다. 그런데 이 베섹이 주변 국가들을 다 정복합니다. 아주 재밌는 일화입니다. 그래서 70개의 국가를 점령했습니다. 그래서 70명의 왕을 포로로 끌고 왔습니다. 여러분 보통 아무리 악한 국가라도 이웃나라를 정복했으면 누구는 대우하죠? 왕과 왕가는 대우를 합니다. 우리나라도 역사에 보면 신라, 백제, 고구려 그 나라를 정복했으면 그 왕가는 우리나라의 왕의 후손은 아니지만 관리직이라는 것을 주었습니다. 그게 예우입니다. 이웃나라에 대한 예우. 그런데 이 베섹은 70명을 데려다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다 잘랐습니다. 그리고 밥을 줄 때 길바닥에 밥을 뿌려놨습니다. 개와 돼지에게 주듯이. 그리고 70명을 우리에 가둬서 그것을 주워 먹게 만들었습니다. 이 왕들이 얼마나 비참하나요. 베섹이 정말 잔인합니다. 하나님이 이 베섹을 치게 하시려고 이스라엘 연합군으로 베섹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갚아주셨습니다. 베섹의 엄지손가락, 엄지발가락을 잘랐습니다. 무슨 메시지예요? 똑같이 당한다는 것입니다. 잔인하게 행동하고 긍휼이 없으면 똑같이 그 인생은 당한다는 것입니다. 용서가 없는 정치인들은 똑같이 당합니다. 용서가 없는 지도자들은 똑같이 그 일을 당합니다. 그런데 왜 바벨론이 이런 긍휼이 없는, 용서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지 않고 잔인한 나라가 되었냐? 성경은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자기들의 본능을 따라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본능이 무섭습니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잔인합니까? 아니죠. 그런데 내가 남을 정복하고 어떤 왕의 자리에 군림하기 시작하면 본능이라는 것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본능을 따라 살다보면 이 본능은 뭐예요? 죄가 본능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본능대로 살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본능대로 사는 게 아니라 왜 우리가 말씀대로 살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살려고 하냐면 이 본능은 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본능대로 살면 인간은 뭐가 돼요? 인간 쓰레기가 됩니다. 여러분 본능대로 한 번 살아보세요. 재벌 2세들이 마약하고 노인들 괴롭히고, 청소년들이 할머니들 담배 셔틀 시키고. 전부 아이들이 본능대로 살아서 그렇습니다. 교육 받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지금 바벨론에 대해서 그대로 보복하시는데 여러분 유난히 페르시아가 바벨론에 악하게 행동했습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에게 했던 것처럼 바벨론도 맷돌을 갈고 강을 옷을 다 벗고 뛰어서 도망가기도 하고. 자기들이 악하게 행동했던 것을 페르시아에게 그대로 바벨론이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셨기 때문에 우리 같은 죄인이 당신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긍휼이라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아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받은, 긍휼히 여김을 받은 기독교인이 우리 이웃을 향해서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간혹 그런 목사님들, 그런 기독교인들 봅니다. 되게 잔인하구나.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 저렇게 악할 수 있지? 어떻게 냉정할 수 있지? 바벨론이 망한 두 번째 이유가 있는데

 

- 교만한 바벨론_이사야47:7-8

 

7.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들의 종말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도다 8.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_이사야47:7-8

 

7절. 바벨론이 스스로 자기가 여주인이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뭐에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한 계획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계획을 마음에 두지도 않고 그들의 종말을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8절. 바벨론이 평안히 지냈습니다. 정복자이고 지배자였으니까. 지금 바벨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오만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나뿐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자기는 ‘과부로 지내지도 않고 자녀를 잃어버리지도 않는다’는 말은 이제 나는 이제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 후손들까지도 다 잘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 바벨론의 부흥기가 바벨론의 발전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상 한 나라의 부흥기가 영원한 나라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단 한 나라도 없습니다. 나라는 다 일어섰다 사라집니다. 미국이 영원할 것 같습니까? 중국이 영원할 것 같습니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소련이 지구의 한 축을 담당했는데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바벨론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 이게 하나님의 보복을 초래한 또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교만. 그래서 사치하고 평안히 지냈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가진 것이 보통 교만합니다. 그래서 평안하다 생각을 합니다. 안전하다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치합니다. 물 쓰듯이 막 씁니다. 그것으로 자기의 교만과 오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는 뭐죠? 교만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나뿐이라. 이게 교만입니다. 사실 바벨론이 그럴 만 했습니다. 얼마나 잘 나갔는지. 그들이 평생 주변 국가에 조공을 받으며 과부로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강대국이었는지 말도 다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바벨론을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까지 계속해서 바벨론을 상징적으로 악한 나라, 사단의 나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성경역사에서도 절대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강력한 나라, 악한 나라의 표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상을 세워주시는 분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기 자신들 스스로 세운 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명에 대한 권한까지 쥐락펴락하는 오만함이 바벨론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의 문화 속에 새로 생긴 문화가 있습니다. 여자를 그러니까 자기 부인을 남자들이 돈을 주고 사는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바벨론이 만든 시스템이 로마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로마가 바벨론을 보고 세운 국가니까. 여러분 로마가 대단한 나라라고 하지만 바벨론이 그 옛날에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해서 모든 인간 삶의 기본 틀을 다 만들었습니다. 엄청 똑똑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뭐냐면 지금으로 말하면 결혼정보회사 비슷한 것이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시집을 가고 싶으면 거리에 나가서 자기의 외모라든지, 나는 이런 여자야 이런 것을 드러내면 돈이 많은 사람이 제일 좋은 여자를 골라가는 것이 바벨론의 결혼문화였습니다. 요즘은 반대죠. 남자들이 나는 연봉이 얼마에요, 집이 있어요, 차가 있어요하면 여자들이 고르는 시스템인데. 결혼정보회사에 갔더니 저는 최하계층이더라고요. 바닥. 저는 요즘 같으면 결혼을 못합니다. 이미 연봉에서 안 됩니다. 여자들이 그런 것을 보고 남편을 고른다는 시대인데 옛날에는 반대로 남자들이 돈으로 여자를 보고 고르는. 그게 바벨론의 문화였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교만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교만함과 오만함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뼛속 깊게 자리 잡은 교만. 그것을 누가 경계했냐면 다윗이 그 오만함과 교만함을 경계했습니다. 그게 시편 1편에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왜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매일 기도하고 심지어 그것을 글로 적어서 나눴는지. 그것은 다윗이 유일하게 한 가지 교만하지 않기 위해서, 오만하지 않기 위해서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봤습니다. 자기의 선임 왕이었던 사울이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왕이 아닙니까? 그런데 사울을 하나님께서 버리셨습니다. 이유가 뭐였어요? 교만함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이 뭘 교만했습니까? 사울은 사실 어쩌면 인간적으로 볼 때 다윗보다 죄를 덜 지었을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법으로는. 솔직히 사울은 괜찮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때문에. 뭐였죠? 그가 제사를 드려버렸습니다.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가 제사장의 업무를 월권을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밑바닥에 깔린 교만함을 하나님은 엄청 화를 내셨습니다. 사울은 그 때 끝이었습니다. 아니, 다윗처럼 여자를 범한 것도 아니고 도덕적인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우리가 생각했을 때는 왕이 예배를 좀 드리면 안 돼?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것은 겉모양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엄청난 교만이었습니다. 내가 이 정도 왕이 되었으니까 이제 내가 제사도 직접 드려도 돼지, 내가 사무엘의 지도를 꼭 받아야 돼?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나에게 주는 말씀을 내가 들어야 돼? 나 직접 하나님 만날 거야라는 교만함이 사울에게 깔려 있었습니다. 나는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고 있는데 이게 내 능력이지. 이게 하나님의 능력이야? 사무엘이 기도해주어서 승리한거야? 라고 생각하는 교만함. 여러분 아시겠죠. 그래서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를 딱 한 번 드렸는데 하나님은 그때 불 같이 화내셨습니다. 끝났습니다. 내 마음에서 사울을 지워버리리라. 여러분 엄청 무서운 말입니다. 사울을 지워버리셨습니다. 영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영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영을 진짜 잘해요. 그래서 사업이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정이 개판. 설교할 때 개판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되나. 사업은 엄청 잘하는데 가정이 쑥대밭이 된 사업가들이 있습니다. 행복할까요? 또 반대로 가정은 엄청 화목하고 맨날 손잡고 다니고 달링, 여보 당신 밖에서 없어 했는데 밖에서 무능력한 남자들도 있습니다. 이게 영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각자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목회자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잘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저에게 그렇게 허락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설교를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지만 제가 행정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저는 찬양인도도 잘 못해요. 박자치, 음치입니다. 오늘도 걱정되어서 죽겠습니다. 괜히 어려운 찬양 골라가지고. 그러니까 영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위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게 인간이 반드시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되는 영역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벨론은 스스로 사치하고 평안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세상 걱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질과 문명 모든 것이 완벽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류역사, 고고학을 통해서 바벨론이 멸망한 이유들을 이번 주에 공부해봤는데 심각한 균열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는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음란과 쾌락. 여러분 바벨론의 쾌락은 어느 시대나 선진국, 발전된 나라는 그 뒤에 성적인 쾌락이 발전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남자들이 세상에서 잘 나가면 제일 경계해야 될 것이 성적인 쾌락입니다. 돈이 많으면 제일 1번으로 오는 것이 음란입니다. 가난하면 돈 없으면 그런 짓도 못합니다. 돈이 없는데 어디에 가서. 여러분 룸싸롱을 저는 왜 못 가봤는지 아세요? 제가 가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왜 못 가냐? 돈이 없습니다. 술 먹으면 몇 백만 원 씩 나오는데 어떻게 갑니까? 클럽을 왜 못가냐? 고급 클럽가면 옷, 차 이런 것을 다 확인해서 들여보내 준데요. 신분 다 확인해가지고 이 사람이 재벌인지, 연예인인지. 저 같은 사람은 갈 수가 없어요. 결혼정보회사도 제 이름을 못 올리는데 무슨. 균열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음모, 권모술수, 이간질, 정치. 바벨론이 무너진 이유가 수백 가지가 넘습니다. 가정이 깨지고, 그러면 하던 사업이 나를 평안하다? 잘나가던 사업이 행복하다? 아닙니다. 그것도 곧 무너지겠죠.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 안에 지도자를 세울 때 항상 가정을 살펴보고 지도자를 세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을 교회 안에 장로와 직분자로 세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항상 겸비해야 합니다. 겸비라는 단어 아시죠? 우리는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바라보고 겸손해야 된다는 뜻이 겸비입니다. 그냥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신뢰한. 우리가 성공해서도 그렇고 우리가 대단한 것을 소유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건강, 자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들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섰다 하면 넘어질까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교만함이 들어오니깐. 우와, 내가 일어 서있어. 하나님이 일으켜주었는데 일어서서 보니깐 교만함이 들어옵니다. 내가 일어섰어 이런 식인 것입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었어 이런 것입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넘어지는 이유가 다 그런 것입니다. 내가 이 교회를 개척해서, 내가 이 교회를 부흥시켰는데. 감히 너희들이 나한테 그럴 수 있어?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큰 부흥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을 스스로 겸비하신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교회가 이만 명 이렇게 되는데도 스스로 겸비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것을 겸비해서 하나님 앞에 건강한 후임, 후배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기도 하고. 어느 것 이상 교회에서 받지 않기도 하고. 스스로 조절해서 겸비하는 사람.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것이 겸비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바벨론처럼 교만하면 안 됩니다. 나 밖에 없다고요? 그런 교만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바벨론이 멸망한 세 번째 이유는 9-11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에 빠진 바벨론_이사야47:9-11

 

9. 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11.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_이사야47:9-11

 

9절. 바벨론이 이렇게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과부가 되고 자녀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후대가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완전 종말, 최악입니다. 가족을 잃는 것, 후대를 잃는 것은 최악입니다. 그런데 뭐라고 이야기를 하십니까? 그만큼 바벨론은 주술과 주문에 의지해서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으로도 완전 타락한 것이 바벨론입니다.

10절. 네가 의지했던 네 지혜, 네 지식이 그게 너를 유혹했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1절. 왜 재앙이 임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이 바벨론이 순식간에 파멸 당했는데 그 파별되기 직전까지 자기 자랑, 자기 과시에 빠져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걸 지금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뭘 자랑했냐? 네가 의지하는 주술, 네가 의지하는 주문. 1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과 많은 주술을 가지고 맞서 보라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놀라게 할 수 있을는지_이사야47:12

 

이 말은 바벨론이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수많은 주술과 점성가들과 실력 있는 고급스러운 점쟁이들입니다.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 주변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똑똑한 사람이 많은 것하고 내가 멸망하는 것하고 하나님이 그들이 너희 멸망을 막지 못해 라고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자기 자랑, 자기 과시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럴 만 합니다. 함무라비 법전을 만든 민족입니다. 여러분 함무라비 법전이 우리 모든 법의 근간인 거 아시죠? 보통 민족이 아닙니다. 함무라비 법전을 만든. 그런데 그것을 의지한 것입니다. 야, 우리가 함무라비 법전을 만든 민족이야 이걸 의지한 것입니다. 그 지식과 지혜가 바벨론을 유혹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 바벨론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왜? 바벨론 안에 포로로 와 있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들은 끝내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랑, 자기 과시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참 진리의 문이 열리고 그 진리 안에서 우리는 참 자유를 만끽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구원의 문을 열 수 있다 이렇게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는 바벨론 같은 시대의 사람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에 빠진 사람들. 우리 SNS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여행 다니면서 여행 사진 올리고 맛집 다니면서 맛집 사진 올리고, 자기 본 얼굴을 올리지 않고 다 깎아서 늘씬하게 만들어서 SNS에 올리고, 자기 자랑에 빠져 있습니다. 현실은요? 현실을 외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탕주의에 빠져있습니다. 저는 그것도 보았습니다. 요즘 카푸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자기 집을 살 능력이 안 되니까 집은 포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좋은 것을 사는. 집은 없는데 차는 수 억짜리 외제차를 사는 2-30대들. 월급은 300만원인데 차 값이 월 250만원이 나가는 청년이 있더라고요. 이해가 안 되시죠. 그럼 50만원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더라고요. 인터뷰하는 것을 보니깐 자기는 다 포기했다고 합니다. 집도 포기하고 삶의 희망이 없는 나라, 나라 탓을 계속합니다. 자기 자랑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걸로 예쁜 여자들 꼬시러 다니고 클럽 다니고. 왜 교회 안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고 성경을 읽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지 아세요?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에 빠져 있으면 하나님을 경외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왜 성실하게 일하지 않냐면 자기 자랑과 과시에 빠져 있기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것입니다. 명품에 빠져있고. 그러니깐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삶의 가치, 삶이 주는 행복은 그런데 있지 않다는 거를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서로 사랑하는 데에서 힘이 있고 위로가 있고 따뜻한 말 한마디, 가족, 공동체. 이런데 우리의 위로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점차 멀어지는 시대가 왜 오냐?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에 빠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 그래서 자기의 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나요? SNS에서 그렇게 올리는데 교회 올 수 있나요? 교회 못 옵니다. 그런 사람들 절대 교회에 못 옵니다. 왜요? 자기 것을 드러내기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은혜, 위로는 내 안에 있는 연약함들이 드러났을 때 내 부족함이 드러났을 때 하나님께 위로를 받을 수 있고 긍휼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멸망하기 직전까지 자기 과시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웃 나라에게 도와주세요 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되는데 자기주변의 점술가들과 그 동안에 해왔던 우리나라가 망할 리가 없어. 끝까지. 도움의 손길을 구하지 않고 멸망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때 우리의 얼굴을 들어서 하나님께 긍휼을 구할 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세요. 기독교 신앙의 꽃은 그거라고 생각해요. 하나님께 우리가 도움을 구하는 것. 그런데 요즘 우리는, 한국교회는 자기과시에 빠져있습니다. 이야, 우리가 한국교회를 이렇게 부흥시켰고. 목사들이 그렇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영웅이고. 인간이 어떻게 영웅이 될 수 있어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감사해야 되고,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오늘 이 바벨론의 말씀을 통해서 13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Ⅲ.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열쇠_이사야47:13-15, 요한계시록 16:15, 22:7, 12-15

 

13. 네가 많은 계략으로 말미암아 피곤하게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들에게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하게 하여 보라 14. 보라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덥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불도 아니니라 15. 네가 같이 힘쓰던 자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장사하던 자들이 각기 제 길로 흩어지고 너를 구원할 자가 없으리라_이사야47:13-15

 

13절. 바벨론에 너무 많은 계략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더 피곤하게 된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점술가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바벨론에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거를 해서 너를 구원해봐라. 그런데 못하는 것입니다.

14절. 바벨론이 의지하는 그들은. 초개는 뭐냐면 마른 볏짚, 볏짚 단이 아니고 마른 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마른 풀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 어떻게 되나요? 순식간에 타버립니다.

15절. 힘썼겠죠. 망하지 않으려고 멸망하지 않으려고 힘썼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의 심판이 확고하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정도 확고하냐면 이 모든 것을 다 동원해도 이 심판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표현하면 이해가 되실까요? 평생 담배를 폈습니다. 의사가 피지 말라고 했는데 폐암이 올 수 있다고. 한 30년 담배를 폈습니다. 그래서 결국 폐암이 왔습니다.  물론 담배 핀다고 다 폐암이 오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담배를 피면 확률이 높습니다 라고 의사에게 들었지만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하면서 계속 담배를 30년 폈습니다. 결국 폐암이 왔어. 폐암이 오고 나서 담배를 끊으면 폐암이 사라집니까? 마치 바벨론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잘 살아야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_요한계시록16:15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_요한계시록22:7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_요한계시록22:12-15

 

12절. 갚아 주리라. 우리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 죽음 앞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구원 받는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돈, 우리가 의지하던 건강, 우리가 의지하던 우리 주변에 친구, 인맥, 명예 다 구원 받는데 사실은 방해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 바라보는데 다 방해가 될 뿐입니다. 그게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그런데 어린 양 예수님은 도둑같이 속히 우리에게 오시는데, 심판하시는데 누구는 복이 있냐? 누구는 그 심판을 면죄 받냐? 두루마기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데. 이 옷을 말씀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입어야 될 옷은 말씀의 옷을 입어야 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누구에요? 요한복음에 예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주는 것이 인간의 심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50-60년을 살았다 그 산 것에 대한 그대로 심판을 받는 것이 인간에게 저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구원은 뭐냐?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은 뭐냐? 거기서 건짐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심판이 무서운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행한 대로 값아 주신다고 합니다. 그게 심판입니다. 우리가 산대로. 여러분 평생을 죄 짓고 살았는데 그 죄 값을 다 그대로 갚아주는 것이 심판입니다. 특별한 심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더 무서운 심판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았던 삶을 그대로 겪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행위를 조금이라도 줄여서 사는 것이 세상 도덕입니다. 착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려고 착하게 사려고 하지만 그것으로 죄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옷 입으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예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뭐라고 말씀하시냐?

14절. 빨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원어에 보니깐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묵상하고, 새롭게 도전하라는 말입니다. 자기 두루마기는 빠는 자는 복이 있으니. 그러니깐 이 두루마기를 더러워지지 않도록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이 말씀이 지겹거나 이 말씀이 듣기 싫거나, 무엇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지겹거나 하찮게 느껴지지 않도록 매일 빨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까이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죄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살아야. 내 안에 죄 나를 멸망시키는 잔인함, 교만, 자기 과시, 자기 자랑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겸비하고 섬겨야지 만이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 교만함과 긍휼 없는 삶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삶을 사냐?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방법이 뭐냐? 요한계시록에 이야기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 말씀을 지키는 자, 듣고 행하는 자. 이 말씀이 곧 자기라는 겁니다. 자기를 입으라는 겁니다. 빨아서 입으라고 합니다. 심지어 깨끗하게. 사람은 금방 악해집니다. 여러분 그거 경험하시잖아요. 사람은 금방 교만해집니다. 사람은 자기 자랑과 과시에 빠집니다. 그러면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수 없어요. 교만하면 절대 주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예배와 세상, 하나님 사랑과 세상 사랑을 같이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열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자세는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을 열심히 하냐는 것입니다.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바벨론은 자세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함무라비 법전도 만들고 강력한 나라의 규범도 만들고. 그러나 내용이 무엇이었나요? 내용이 틀렸습니다. 틀린 내용으로 열심히 하면 더 악해지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애써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것. 그거에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내용은 있는데 열심은 또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한다고 말은 하는데 아무런 열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아내를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도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 있으면 위로도 해주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 사랑 아닙니까? 신앙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조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낙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또 교만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바른 내용으로 바르게 노력한다면 반드시 신앙은 결과가 있습니다. 여러분 음식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 아시죠? 지금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했습니다. 밀가루 음식을 계속 먹으면 그 밀가루 음식 속에 있는 성분이 우리 뇌에 무언가를 자극해서 계속 짜증이라는 것을 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밀가루 음식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짜증이 많다는 것이 논문으로 발표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티를 마시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그 짜증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아, 저는 짜증이 마음의 문제인줄만 알았는데 음식의 문제이기도 하구나. 아 하나님 신비롭다. 음식 관리도 하셔야 됩니다. 왜 짜증나느냐? 계속 술 먹고, 밀가루 음식 먹고, 안 좋은 음식 먹으니까 짜증이라는 것이 난다고 합니다. 술 먹는 사람이 기쁜? 물론 술 한잔하면 기쁘죠. 그건 좀 좋은 술인가? 인삼주 이런 거? 명절 때는 가족들과 한 잔씩 하셔도 좋습니다. 명절 때 안 마시면 언제 마십니까.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음식 하나만 봐도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섭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과 좋은 차를 한 잔만 마시기만 해도 우리 마음이 안정이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뭘 이야기하고 계시는 거예요? 내가 너희에게 이 말씀을 주었다. 이거 하늘의 양식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이해를 못 하시면. 성경을 어떻게 안 읽을 수 있고 묵상을 안 할 수 있지? 여러분 성경 읽을 때 나쁜 생각이 드시는 분 손 들어보세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말씀 묵상하는데 나쁜 생각이 든다?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으면서 회개가 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생기고 위로가 됩니다. 나쁜 생각은 나쁜 사람들과 나쁜 의논을 하니까 나쁜 생각이 듭니다. 술집 같은 곳에서. 나쁜 드라마를 보고 나쁜 영화를 보고 악한 것들 속에 있기 때문에 악한 생각이라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음식처럼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다윗이 오만한 자리에 교만한 자리에 앉지 않기 위해서 주야로 묵상했는지 기억하셔야 합니다. 왜요? 우리 인생은 심판이 있기 때문에. 그 심판을 손에 쥐고 계신 분이 어린 양 예수이기 때문에. 우린 희망이 있습니다. 바벨론처럼 되지 않고 신앙의 길을 갈 수 있는 희망이 오늘 여러분에게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바벨론이 멸망할 이유들을 우리가 묵상해야 합니다. 혹시 내게도 그런 모습이 있나? 내게도 잔인한 모습이 있는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고 우리도 나도 모르게 잔인한 모습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에게도 교만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되고 자기 자랑과 과시에 빠져서 내가 지금 뭘 자랑하고 사는지 그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과시하고 싶어서 사는지. 그래서 우리는 하루하루 신앙의 열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옷 입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처럼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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