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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09-26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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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26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3부예배)
제 목 내 이름을 위하여, 내 영광을 위하여
본 문 이사야 48:1-22

 

 오승주 목사

 

Ⅰ.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에게 도망쳐라

 

이사야 말씀이 쉬운 것 같아도 개역개정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단어로 쓰여 있고 그래서 여러분이 이사야서를 읽을 때는 쉬운성경으로 읽으면 훨씬 도움이 많이 됩니다. 여기서 평강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지금도 평강이라는 단어를 쓰긴 쓰지만 평강, 평안 조금 다른 의미가 있지만 저는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행복이라는 단어와 거의 흡사하고 같은 단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 맞죠?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고 또 죄악으로 그 행복에서 멀어지니까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다시 행복하도록 우리를 구원해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 가면 어떤 교회 설교를 들으면, 또 제 설교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지 마라, 거룩을 위해서만 기도하라.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가짜, 거짓 행복을 기도하지 말라는 거지 우리는 행복한 존재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이 행복은 거룩과 일맥상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행복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_데살로니가전서5:16-18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행복이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행복한 것이 늘 감사하고, 늘 기뻐하고 그러면 우리가 사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늘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도할 수 있으면 그게 축복이잖아요. 그게 행복인거죠.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가 살기를 원하시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행복에 대한 미혹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 행복을 그릇되게 바꿔버렸습니다. 죄는 행복을 오염시켜버렸습니다. 행복을 오염시킨 것이 뭐냐면 이런 것입니다. 돈 많이 버는 것. 돈 많이 버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해야 되는 일이지만 돈 없고 실패하니까 불행하다, 돈 많이 벌면 행복하다 이것을 진리처럼 사람들 머릿속에. 그래서 뭐 돈만 있으면 그 과정, 목적 이런 것 다 상관없고 돈 있으면 행복하다 이렇게 왜곡된 행복을 죄가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돈이 없으면 불행한 것 같고. 어떤 목사님이 쓰신 책을 봤습니다. 별 거 없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아주 작은 개척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제가 조금 감동이 된 게 있습니다. 교회를 사임하고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는 개척 날 사모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원래 지병이 있으셨습니다. 아이가 너무 어립니다. 2-3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개척해놨지, 사모는 죽었지. 남들이 볼 때 얼마나 불행해요. 목회가 제대로 될 수가 있어요? 딸을 아빠가 키워야 되니까 제대로 목회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딸과 같이 살면서 목회를 하기는 하지만 목회도 잘 안 되고. 그래서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딸이 8-9살 때 아빠 아빠는 하나도 안 기뻐? 왜 얼굴이 늘 어두워?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초등학생 딸 아이가 그렇게 질문을 하니까 아빠가 생각해봤습니다. 이 아이가 이 질문을 왜 하지? 너는 뭐 때문에 기쁜데? 아빠가 되 물었습니다. 딸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빠 우리 예수님 믿잖아, 나 아빠랑 같이 살고 있잖아, 나 너무 행복한데? 너무 기쁜데?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아빠가 별거 아닌 딸아이의 기쁨의 원인에 대해서 너무 충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그 책을 쓴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다른 데 있지 않구나. 그래서 그 뒤로 자기의 어떤 마음가짐도 바꾸고 딸이 주는 메시지가 엄청 컸던 것입니다. 그런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왜곡된 행복이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행복할까요? 네, 하나님은 행복하신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행복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거룩이시라 이런 것처럼 하나님은 행복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면 행복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우리가 행복이라는 것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행복을 누리는데 장애물이 있다. 세상이 이 행복을 왜곡시켰다. 그것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에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_누가복음21:34

 

방탕함, 술 취함, 생활의 염려라고 합니다. 그게 어느 날 우리를 덫으로 발목을 잡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방탕함, 술 취함, 생활의 염려 세 가지가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하는 요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이라는 것은 누구나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본능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물들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 되어서도 본성은 남아있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행복을 찾지 못하고 가짜 행복, 왜곡된 행복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그 중에 하나가 방탕입니다. 오늘 이 첫 번째 방탕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방탕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드신 인물, 바로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탕자.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탕자라는 이름이 방탕한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진짜 이름인지 방탕한 아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이름이 탕자면 웃길 것 같습니다. 오탕자, 박탕자 이러면 웃길 것 같습니다. 잘 모르겠는데 그 탕자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입니다. 그 친구가 원래부터 방탕한, 생각부터 방탕한 아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방탕했냐면 자기가 생각하기를 내가 아버지 밑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즐겁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받을 유산을 받아서 아버지의 제약 없이 아버지의 그늘이 아니고 내가 마음껏 자유롭게 살아야지 하고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사업을 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 아버지 밑에 있다가 재산을 물려받아서 재벌 2세가 방탕하게 산 것입니다. 어떻게요? 클럽 같은 곳에 가서 돈을 물 쓰듯이 쓰면서 산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망했냐면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얼마나 흥청망청 썼냐면 나중에는 돼지우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탕자가 방탕한 사람의 표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탕자가 아버지에게 돈을 받고 집을 나간 게 무엇 때문에 나간 것일까요? 본인 입장에서는 행복 때문에 나갔겠죠. 행복해지려고, 행복하고 싶어서. 아버지 밑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파멸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게 방탕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방탕한 삶을 살기 전부터 이 사람은 원래 방탕입니다. 생각이 방탕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아버지 간섭 없이 마음대로 살면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한 것. 이 아버지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뜻합니다. 비유로든 예니까.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탕자처럼 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런데 여러분 팀 켈러의 탕자 이야기를 읽어보셨죠? 저는 그 책을 보고 엄청 깨달았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이 탕자의 이야기가 탕자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팀 켈러의 탕자 이야기를 읽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이야기가 탕자의 형, 큰 아들 이야기라는 것을 팀 켈러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예수님이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대치하고 있을 때니까 바리새인을 깨우치기 위해서 이 비유를 드신 거구나. 그러면 바리새인을 깨우치기 위해서 이 비유를 들었기 때문에 이 큰 아들이 바리새인이거든요? 큰 아들 이야기가 맞는 거구나. 놀라웠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 다 나는 교회 다니고 있어, 나는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어, 나는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아, 나는 클럽을 다니지 않고 흥청망청 돈을 쓰고 쾌락, 마약 이런 거 안해. 여러분 다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그런 분들이라면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겠지. 그런데 나는 탕자가 아니야. 나는 방탕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방탕함과 거리가 멀어. 그런데 탕자 이야기는 큰 아들 이야기입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를 잘 모시고 열심히 살았던 모범생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집을 떠날 생각도 안 했고 아버지한테 재산을 물려 달라고 이야기도 안 했습니다. 그러면 이 큰 아들은 늘 칭찬을 들어야 되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버지가 큰 아들을 칭찬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이후로부터 맨날 마을 어귀, 입구에서 둘째 아들이 언제 돌아오나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짜증나는데 둘째 아들이 안 왔으면 괜찮았을텐데 거지꼴을 하고 나타난 것입니다.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책망해야 되잖아요? 돈 다 써버렸지, 거지꼴을 하고 왔으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옷을 갈아입히고 목욕을 시키더니 잔치를 베풀었네? 큰 아들이 뭐라고 그랬어요? 큰 아들이 동생을 얼마나 미워했냐면 내 동생이라고 말도 안하고 아버지한테 뭐라고 하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큰 아들이 화가 난 것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다 실패하고 왔는데 왜 잔치를 베풀어 주냐는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서 단 한 번도 잔치를 안 베풀어줬는데 왜 저 탕자가 돌아왔는데 잔치를 베풀어 줬냐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경건하고 믿음이 좋고 그런 우리의 모습. 그런 것입니다. 이 동생이 너무 미웠고 너무 싫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동생보다 큰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탕자입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 유대인들을 비유로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큰 아들이 많습니다. 정말 많습니다. 일꾼인 것 같고 사명자인 것 같은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지 않는 사람들. 겉으로는 엄청난 모범생 같지만, 자기는 방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유대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이야기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이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요한복음 5:42에 보니까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 유대인들, 바리새인들을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미워하시나? 뭐라고 기록이 되어 있나요?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_요한복음5:42

 

지금 겉으로는 엄청나게 큰 아들처럼 살고 있지만 아버지를 사랑하거나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성경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영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빼앗기면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가복음16장14절에 이런 성경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_누가복음16:14

 

바리새인들이 속으로는 돈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지만 속으로는 뭘 섬기고 있냐면 돈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큰아들이 영적으로 방탕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방탕함이 예수님 안에 행복을 빼앗아 간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가 뭐에요? 술 취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술 취함 이러면 다 찔리실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1등을 하고 있는 것이 진짜 많습니다. 자살 1위, 1인당 술 소비량 1위. 우리나라가 1위하는 게 많습니다. 교통사고 1위. 안 좋은 건 다 1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정말 전 세계가 경악할 만 한 게 술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나라입니다. 얼마나 술을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냐면 선교사님들이 조선시대에 복음을 전하려고 조선에 왔는데 선교사님들 일기장에 기록해 놓은 글들이 뭐냐면 조선 사람들은 다 술에 취해있더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려고 집집마다 방문했는데 다 취해있더라는 거예요. 사람이 취해 있으니까 복음을 전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기록해놓았습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술에 취하지 않고 술을 먹지 않고 맨 정신으로 말씀을 듣게 할까, 복음을 듣게 할까. 맨 정신이어야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하고 예수님 믿으라고 말을 하지. 다 술에 취해 있고 또 하나는 담배에 그렇게 중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독한 담배.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수명이 짧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술 먹지 마라, 담배 피지 마라 이런 것이 죄라는 것이 한국교회 설교에만 있습니다. 미국교회 설교에는 술 먹지 마라는 설교가 아예 없습니다. 담배 피는 것에 대한 설교도 없습니다. 그 배경이 조금 이해가 되죠.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왜? 한국은 오랜 세월 노동을 해서 농사를 짓고 새벽부터 밭농사, 모내기 하고 내일 새벽에 또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힘든 몸으로 빨리 잠에 들어야 되는데 그래서 술 한 잔 하고 자는 것입니다. 막걸리 한 잔 하고 자는 것입니다. 그게 이해가 되잖아요. 그런데 그 술 취함이 어느 정도가 되었냐. 중독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을마다 술꾼이 없는 마을이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대표적인 예인데 늘 술에 취해 계셨습니다. 그런데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술을 왜 마시세요? 이렇게 물어보면 행복해서 마신다고 합니다. 술 먹는 게 행복하대요. 또 물어봅니다. 술을 왜 먹죠? 기쁘면 기뻐서 마시고 슬프면 슬퍼서 마시고, 일이 잘 풀리면 잘 풀려서 마시고, 일이 안 풀리면 안 풀려서 마시고. 술 먹는 이유가 만 가지 되는 것 같아요. 술을 먹기 위해서 이유를 만드는 것 같죠? 오늘은 부부싸움해서 한 잔 마시고 부부 관계가 좋아서 마시고 이런 식입니다. 술 좋아 하시는 분들은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 그게 뭐죠? 본성, 본능입니다. 행복에 대한 갈망입니다. 술 한 잔 마시면서 그 순간의 기쁨, 술에 취해있는 순간의 쾌락. 그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술 취함의 술은 꼭 소주, 맥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죠. 이게 돈 일수도 있고, 이게 쇼핑일수도 있고 이게 드라마일수도 있고 이게 음란물일수도 있고. 뭔가에 취해있는 것입니다. 드라마에 취해있는 사람 보셨어요? 요즘 TV에 나오는 모든 드라마를 다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드라마 중독이라고 합니다. 저도 명절에 누나 집에 가면 누나들과 조카들이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심심해서 옆에 가서 앉아 있으면서 물어봅니다. 저희 집에는 TV가 없어서 드라마를 보지 않습니다. 앉아 있으면서 드라마를 보잖아요. 그러면서 물어봅니다. 무슨 내용이야? 서로 저한테 줄거리를 다 이야기해줍니다. 성경 줄거리를 그렇게 이야기 좀 하면서 살아봐라 조크를 하는데. 드라마 내용을 얼마나 완벽하게 분석해서 이야기를 해주는지 그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입니다. 음란물 이런 것. 여자 분들은 모르겠는데 남자 분들은 이런 음란물 다 접해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음란물도 순간적으로 엄청 쾌락이 있습니다. 자극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순간적으로 기쁩니다. 그런데 그게 술 취함의 영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취함이라는 것은 중독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어원입니다. 똑같은 단어입니다. 중독되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기쁨 그것을 메꾸고 채우려면 더 자극적인 것으로 계속 메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뭐가 되죠? 중독이라는 것이 됩니다. 중독이 취함입니다. 이것을 단호하게 끊으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이것 때문에 뭐가 되죠? 예수님 안에 진짜 즐거움, 행복, 감사, 기쁨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느헤미야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시고 성전재건을 하라고 기회를 주십니다. 느헤미야가 학사 에스라와 함께 성회를 소집합니다. 그런데 그 성회에 누가 끼어있냐면 암몬과 모압 사람이 끼어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느헤미야가 단호한 사람이라고 느낀 장면이 있는데 암몬, 모압 사람을 성회에 못 들어오게 합니다. 물론 그것을 옛날 언약을 따지고 과거 행적을 따지고 이런 것도 있지만 이 문제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 문제가 쉬운 것이 아니냐면 이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 70년을 하는 동안 암몬과 모압 족속과 섞인 것입니다. 결혼을 했다는 말입니다. 가족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회에 못 들어오게 하니까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이것을 단호하게 끊어냅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에 대해서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건들이 몇 개 벌어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암몬 사람 도비야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도비야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죠? 성전 안에 은밀한 곳에 자기 처소를 차렸습니다. 거기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암몬의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화가 났습니다. 성전이 무너져있는데 그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삶을 살아가는데 거기서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우상과 짐을 집어 던졌다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사를 시킨 것이 아니라 집어 던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도비야가 나중에 성전재건을 방해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간질하고 이런 장면들이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에 은근슬쩍 취해있는 것들, 술취해있는 것들, 벗어날 수 있을까요? 네, 단호하게 끊으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어떤 청년이 저한테 고백했습니다. 주일예배를 계속 못 오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주일예배를 왜 못 오지? 회사를 가나? 일이 있나? 궁금하기도 하잖아요. 저는 전도사님들에게 물어보라고 하기는 하지만 제가 잘 못 물어봅니다. 이 청년이 저한테 갑자기 연락이 오셔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주일날 교회에 못 가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 드릴테니까 기도 좀 해주세요 이러는 것입니다. 이유가 뭐냐면 게임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평일에는 회사생활을 하니까 게임을 잘 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토요일 잠자기 전에 게임 1시간만 하고 자야지 하고 시작한다고 합니다. 1시간만 하고 자야지 하고 시작하는데 시계를 보면 새벽 5시라는 것입니다. 무섭죠? 1시간만 해야지, 1시간만 더 해야지, 1시간만 더 해야지 해서 새벽 5시인 것입니다. 그때 자서 어떻게 일어나서 교회를 오겠어요. 또 일어나서 온다한들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가 안 되겠죠. 여러분 뭔가에 취해있다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제 후배 목사도 게임을 좋아하는데 저는 목사들이 게임 좋아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데 취미생활로 그럴 수 있죠. 그런데 그게 신앙생활이나 자기의 영성이나 목사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방해가 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게임이 얼마나 무서운지 잠자기 전에도 게임, 아침에 일어나서도 게임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중독이 되어버린 거죠. 그것은 끊어내야 합니다. 그만해야 됩니다. 어떻게 끊냐? 그냥 끊어야 합니다. 그만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게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빼앗아가는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에. 세 번째는 생활의 염려입니다. 어? 생활의 염려? 방탕과 술 취함은 꼭 죄 같잖아요? 단어가. 그거는 진짜 죄고 끊어야 돼, 이겨야 돼 이런 마음이 있는데 생활의 염려? 이것은 약간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은 것입니다. 단어 자체가. 인생을 살다보면 염려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요? 방탕이나 술 취함보다 작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생활의 염려가 왜 죄야? 그게 무슨 문제가 있어? 이렇게 우리가 적당히 생각하니까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생활의 염려가 얼마나 무서운지 성경은 우리에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 염려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근심걱정하지 마라. 이런 말씀들이 진짜 많습니다. 이유가 뭐냐? 이게 왜 죄냐? 생활의 염려를 하다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인생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일평생 죽을 때까지 염려만 하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염려만 하다가 인생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일평생을 염려만 하다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단 한 번도 쓰임 못 받고 인생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염려입니다. 무섭지 않나요? 이것은 죄가 아니야. 우리는 쉽게 생각하지만 이 염려는 우리 인생을 계속 그 염려 속에 살게 만듭니다. 여호수아 1장에 마음을 담대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우리 삶에 염려거리가 쉽게 사라지나요? 사라지지 않습니다. 염려가 계속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염려가 들어오는 것을 분별하라고 그리고 이 염려를 진단하고 해결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나는 무슨 염려를 하고 사나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제 염려가 무엇일 것 같으세요?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빚이 많아, 우리 교회 코로나 때 교회가 어려워. 저는 그런데는 염려가 없어요. 교회에 대한 염려는 없습니다. 이미 개척을 한 번 해봤기 때문에. 오히려 장로님들이 걱정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교역자도 앞으로 더 쓸 것입니다. 채워주시겠지 이런 마음으로. 교회 시설도 더 확충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그 부분은 무대포인 것 같습니다. 이미 경험을 했기 때문에 염려가 없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한 가지 염려는 설교에 관한 염려입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저는 설교가 굉장히 스트레스입니다. 저는 머리가 나쁘고 감각이 떨어져서 설교 준비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명절 때는 연휴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였습니다. 제가 월, 화, 수 설교 초안을 작성하는데 명절이니까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합니다. 제가 혼자 목사랍시고 도서관에 가서 성경책 보고 있으면 조금 밉상이잖아요. 저는 그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놀 때 같이 실컷 놉니다. 그런데 제 방법은 새벽 2시 이렇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남들 다 잘 때. 그럴 때 일어나서 설교준비를 다 했습니다. 물론 낮에 조금 졸았지만. 그러니까 이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진짜 염려하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 안 주시면 어떻게 하지? 하나님이 성경을 읽고 있는데 영감을 안 주시면 어떻게 하지? 사실 쓸데없고 바보 같은 염려잖아요. 당연히 주시겠지. 그런데 그런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가스펠편지도 써야 됩니다. 이것도 개척할 때 매주 쓴다 해서 좀 패스하고 넘어가도 되는데 어떤 사명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것도 엄청 부담인 것입니다. 글 쓰려고 앉아 있으면 멍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염려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귀가 얼마나 교만하냐? 별 희한한 염려들을 우리한테 다 주는 것입니다. 그 염려가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합니다. 왜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하냐?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에너지가 없고 힘이 없다고 합니다. 제가 그럽니다. 우리 예배드립시다, 은혜 받읍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삽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다들 아니, 지금 내 삶이 힘들어 죽겠는데, 목사님 지금 직장생활 하는데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아이들 키우는데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돈 벌어먹고 사는게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전부 생활의 염려를 이야기 합니다. 심지어 저한테 화도 내십니다. 목사님이 그런 말만 한다고. 여러분 그래서 행복하신가요? 생활의 염려를 많이 해서 행복하신가요? 해결이 되나요? 제가 광주에서 전도사로 사역할 때 저희 교회 권사님 한 분이 새벽마다, 또 교회에 공식 예배가 없는데도 교회 와서 항상 기도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교회에서 저 분 기도의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기도의 사람이라고 생각을 안 한 이유가 뭐냐면 그 기도제목이 자녀, 아들 때문인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빗나간 것입니다. 삐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에 와서도 아들, 월요일도 아들, 화요일도 아들, 금요예배 와도 아들, 평일날도 아들. 아들을 위해서만 기도를 계속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날 그 집에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대타로. 제가 그 권사님에게 그랬습니다. 권사님 진짜 기도의 사람인 것 같다고, 어떻게 새벽마다 밤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있냐고 했더니 전도사님 전도사님도 우리 아들. 또 아들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거는 좋은 기도가 아니죠. 집착이죠. 제가 권사님보고 그랬습니다. 권사님, 아들이 삐뚤어져서 이렇게 기도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처럼 되게 하시려고 그런 것 같다고, 하나님도 자기의 잃어버린 백성을 위해서 지금 기도하고 계신다고. 하나님 뜻인 거 같다고 하니까 저를 째려보시는 것입니다. 아들이 빗나가고 그런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까. 그래서 권사님께 설명을 했습니다. 뭐라고 설명을 했냐면 권사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느껴보세요. 권사님 아들이 문제가 아니고 기도를 조금 넓혀보면 어떨까요?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제가 청소년부를 맞고 있었으니까 우리 아이들. 그리고 우리 이웃에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이 탕자처럼 살고 있는데 그 분들을 품는 기도를, 이왕 하는 기도 아들 기도만 하지 마시고. 권사님이 그 말을 알아들으신 것 같습니다. 그 분의 기도가 조금 달라졌고 어느 날은 저한테 와서 교사 할래요 이러셨습니다. 교사도 하고 같이 기도회도 참석하시고. 같이 전도하러 다니시고.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어떻게 돌아왔을까요? 엄마가 변했으니까. 엄마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더 이상 아들에게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상황들을 주셨는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염려한다고 우리 인생의 문제가 해결이 되나요?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야, 하늘의 새를 봐라, 들에 백합화를 봐라, 너희들이 걱정한다고 꽃의 키가 한 자라도 자라냐? 너희 키가 한 자라도 자라냐? 내가 저것들을 다 먹이고 입히고 한다. 때가 되면 자라게 하고 꽃이 피게 하고. 너희가 그런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염려에 묶여 있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냥 염려로 인생이 끝나버립니다. 이 세 가지가 예수님 안에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왜곡된 행복이라고. 그것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Ⅱ.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일

 

- 그릇된 신앙생활의 결과_이사야48:1-3

 

1. 야곱의 집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너희는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허리에서 나왔으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면서도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도다 2. 그들은 거룩한 성 출신이라고 스스로 부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며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나 3. 내가 예로부터 처음 일들을 알게 하였고 내 입에서 그것들이 나갔으며 또 내가 그것들을 듣게 하였고 내가 홀연히 행하여 그 일들이 이루어졌느니라_이사야48:1-3

 

1-2절. 2절은 더 심합니다. 무슨 말이에요? 이스라엘이 왜 바벨론에 포로가 됐는지를 설명하는 본문인데 이스라엘이 어떤 상황이냐면 지금 하나님의 말씀도 듣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도 듣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기도 하고 절기를 다 지킨다는 거죠. 그 거룩한 성 출신이라고도 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뭐가 없다고요?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뭐에요? 우리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고 합니다. 누구와 비슷해요? 바벨론. 탕자의 형과 같이 속에 방탕함이 있는 것입니다. 또 뭐가 없죠? 공의가 없대요. 공의는 뭐죠? 하나님의 공의는 구원, 십자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겉으로는 다 하는데 마음으로는 진실이 없고 하나님 사랑이 없고 십자가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탕자의 형, 맏아들처럼, 바리새인들처럼. 그래놓고 뭘 섬겼죠? 바벨론의 우상, 앗수르의 우상, 애굽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왜? 그것에 방탕했습니다. 속에 방탕함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왜 포로가 되어야 되냐? 바벨론에 70년 동안이나 왜 포로가 되어야 하냐? 하나님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 이스라엘이 저렇게 예배를 잘 드리는데 저렇게 헌금도 잘하고 신실한데? 아니요. 그들은 그릇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실이 없었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없었고 마음이 떠났다고 이사야 1장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공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도 주님 안에서 행복이 없는 분들은 묵상하고 점검을 해봐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어떤 방탕함이 있는지.

 

- 우상이 했다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_이사야48:4-11

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 5.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예로부터 네게 알게 하였고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네게 듣게 하였느니라 그것을 네가 듣게 하여 네가 이것을 내 신이 행한 바요 내가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명령한 바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6.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7.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8.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9.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11.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_이사야48:4-11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_이사야48:4

 

4절. 너는 완고하며. 어느 정도 완고하냐? 목의 힘줄이 쇠라고 합니다. 네 이마는 놋이라. 얼마나 뻔뻔하면 놋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완고는 교만이라는 단어와 똑같습니다. 교만하다. 완고라는 정확한 뜻은 고집이라는 단어입니다. 쉬운 성경에는 고집이 세다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왜 완고하고 왜 목이 뻣뻣하고 교만하고 오만하고 완고하냐면, 마음이 굳어 있냐면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 진실하지 못하고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못하고 교만한 것입니다. 그 믿는 구석이 뭐에요? 그들이 따로 챙기고 있는 우상입니다. 그들이 따로 섬기고 있는, 의지하고 있는 우상입니다. 우리가 왜 크리스천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냐? 뭔가 믿는 구석이 있잖아요. 뭔가 중독되어 있는 게 있잖아요. 우리 마음속에 뭔가 의지하고 있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하잖아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예로부터 네게 알게 하였고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네게 듣게 하였느니라_이사야48:5

 

5절. 지금 바벨론의 포로가 되기 전부터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이유가 뭐냐? 

 

그것을 네가 듣게 하여 네가 이것을 내 신이 행한 바요 내가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명령한 바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_이사야48:5

 

이게 무슨 말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신상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고 있는데 그것들이 너희가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을 끝내게 했다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미리 설명을 다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바벨론 포로가 되었다가 내가 어느 날 너희를 풀어줄 거다. 어느 날 다시 회복시켜 줄 거다. 이것을 말씀하시는데 너희가 혹시 너희가 섬기고 만든 마음속에 있는 그 우상이 그렇게 했다고 할까봐 미리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런 거 있잖아요. 신앙생활 하는데 안 풀리던 일이 풀리고 나면 어? 내가 옛날에? 노력했던 것들? 내가 의지했던 것들? 그것 때문에 풀렸나? 하나님이 해주셨는데도.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8절 보세요.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_이사야48:8

 

8절. 귀가 이미 닫혀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방탕했냐면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주셔도 듣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제사도 드리고 예배도 드리고 겉으로는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지  이러면서 하나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집이 세다는 것입니다. 완고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포로가 되게 하신 이유. 너희들 속에 품고 있는 우상, 방탕함, 술 취함. 그것이 너희에게 행복이다, 너희에게 행복을 준다. 그게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고 가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자녀가 나쁜 짓을 하면서 돌아다녀요. 범죄자들과 같이 다니고 있어요. 그러면 부모가 우리 아들 잘한다. 부모가 아닙니다. 그런 것도 경험해봐야지. 아니요. 단 하루도 경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머리 크기 전에 먼지 나도록 때려야 합니다. 다시는 못하도록. 제가 초등학교 때 너무 소시지 핫도그가 먹고 싶었습니다. 용돈을 안 주니깐 돈이 없잖아요. 아버지 호주머니 보니깐 갑자기 만 원짜리가 있더라고요. 그때 천 원만 해도 큰돈인데 만 원짜리가 엄청 있더라고요. 만 원짜리 한 장을 뽑았습니다. 진짜 처음으로 심장이 터질 줄 알았습니다. 그때 설탕 발린 핫도그가 50원 할 때입니다. 도시락 컵라면이 150원 할 때입니다. 얼마나 옛날인가요. 혼자 다 사 먹고 친구들 사주고 다 썼는데 7천 얼마가 남았습니다. 멍청하게 그걸 아버지 호주머니에 다시 넣어놨습니다. 아마 안 넣으면 안 들켰을 텐데. 그 잔돈을 다시 아버지 호주머니에 다 넣었습니다. 그때 저는 저희 아빠가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요? 아버지가 부엌에서 칼을 들고 오셨습니다. 도둑질 했다고. 그 추운 겨울에 아직도 기억나요. 눈보라가 치는데 저의 옷을 다 벗겼습니다. 팬티까지. 밖에 쫓아내셨습니다. 얼마나 혼났는지 모릅니다. 엄마가 말리지 않았으면 죽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뒤로 놀라운 것은 다시는 물건을 훔치지 않습니다.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쳐다도 보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빠 물건 훔쳐서 남의 물건 훔쳐가서 뭔가를 사먹는 것은 잠깐의 기쁨은 주지만 그건 우리를 멸망, 파멸시키는 지름길입니다. 그것을 잘했다고 해주는 신은 가짜 신이 아닙니까? 우리가 술 취해있고 방탕해 있는데 하나님이 그걸 내버려 두시면 그 술 취하고 방탕한 것이 우리를 잘 되게 하는 거다 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일이 잘 풀려요 그래서 구원을 모른다? 그래서 지옥에 가고 천국을 못 간다? 그거 완전히 파멸된 인생 아닙니까? 그런데 고집이 있습니다. 왜요? 그 우상은 고집을 만들어냅니다. 교만함과 오만함. 그것은 뭐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붙잡고 있는 우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12절부터 22절이 그런 내용입니다.

 

-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_이사야48:12-22

 

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13.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14.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가 사랑하는 자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 15.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16.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 17.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18.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19.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20.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알게 하여 들려 주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 21.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이 목마르지 아니하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이 솟아나게 하셨느니라 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_이사야48:12-22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가 사랑하는 자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_이사야48:14

 

14절. 하나님이 바벨론을 포로 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새로운 나라를 만드셔서 바벨론을 박살내십니다. 

 

15.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16.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 17.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_이사야48:15-17

 

15-17절. 이제는 내가 바벨론을 멸망시켜서 너희를 다시 회복시킬 건데 이유가 있습니다. 70년 포로생활을 끝내는 이유는 뭐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기미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느헤미야나 에스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 70년 동안 포로생활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 포로에서 끄집어내시는 이유는 물론 메시아가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예표하고 징표하기 위해서도 하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그 구원이 기쁜 사람, 구원이 즐거운 사람, 아버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 다시 말해서 탕자의 형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살아가는 바리새인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그 포로생활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마음이 무엇입니까? 무엇인가요?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_이사야48:19

 

19절.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네 자손이 무수히 많겠다. 이게 육신적인 자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방인을 향해 있었습니다. 우상 섬기고 죄악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이방민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돌아오는 일에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가 마을 어귀에서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형은 그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 마음을 잃어버려서 바벨론에 포로가 된 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그 마음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부어주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서에 보면 바벨론이 멸망하고 하나님이 너희를 다 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으로 느헤미야, 에스라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가서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 나라를 다시 회복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뭐라고 그러나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니, 우리가 70년이나 포로생활을 했는데 우리가 배경, 재산, 가진 것이 있어. 우리가 어떻게 성전을 다시 재건해? 그리고 성전 재건하려고 가서 봤더니 이미 거기는 도비야 같은 이방의 불량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그 성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저들을 어떻게 쫓아내냐, 우리는 능력도 없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한 말이 그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하나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무슨 일을 벌이죠? 성회를 개최합니다. 여러분 성회가 뭐냐면 우리로 말하면 예배, 집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한 곳에 모읍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모세오경, 하나님 말씀을 낭독합니다. 설교도 아닙니다. 그냥 읽습니다. 낭독하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영, 성령이 임합니다. 회개가 일어납니다. 무슨 회개에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던 회개, 하나님 마음 없이 살았던 인생에 대한 회개입니다. 얼마나 회개했는지 그 성회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니까 하나님의 일, 저 성전을 재건하고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게 아버지의 일이라는 것이 깨달아진 것입니다. 성전을 재건하고 다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삶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무슨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희 교회가 그렇게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회복되어서 교회를 세워가기를 원해요. 그런 게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복권 이런 거 하면서 목사님 이번에 이것만 해결되면 교회에 헌금을 절반하고, 목사님이 기도도 좀 해주시고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불법적인 것을 하시는 분들이 주로 이런 것을 하시잖아요. 목사님 제가 이것만 해결하면 몇 억을 교회에 헌금으로 목사님이 또 거기에 현혹됩니다. 그래서 정경유착 이런 단어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헌금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성실하게 살아서 내는 십일조, 성실하게 일해서 내는 헌금들로 교회가 성장하기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우리의 기도제목이 하나님의 나라인가? 하나님이 품으시는 탕자인가? 하나님의 마음이 있나? 우리가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그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행복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우리를 고치셔서 죄악 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길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Ⅲ.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_이사야48:10-11, 16, 17, 에베소서5:18, 4:17-21, 5:1-2

 

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11.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_이사야48:10-11

 

10절. 이 풀무라는 단어는 용광로라는 단어입니다. 이런 것은 번역 좀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누가 풀무라는 단어를 쓰나요. 내가 너를 연단. 연단도 사실 더 정확히 해석하면 단련입니다. 내가 너를 단련하였으나 왜 은처럼 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셨는지 아시나요. 그 당시 은은 불순물이 가득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은으로 다 완성되어서 하나님이 택한 것이 아니라 용광로 속에 있을 때 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포로 중에 있을 때 택하시겠다는 것, 고난 중에 있을 때 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너의 능력으로 네가 완전히 완성이 되었을 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을 다 꺾겠다는 것입니다. 네가 풀무불 속에 그게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_이사야48:11

 

11절. 나는 나를 위하여.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겠다. 우리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청년들한테 제가 이야기하거든요. 우리 교회 일 좀 같이 하자. 주의 나라를 위해서 은혜 받고 여유가 되면 복음 운동 같이 하자 이야기를 하면 청년들이 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제가 직장만 가면. 어, 그래 기다려줄게. 목사님, 제가 결혼만 하면. 그래. 기다려줄게. 목사님, 제가 애만 낳고 나면. 기다려줄게. 목사님, 애가 좀 크고 나면. 장례식입니다. 사람 쓸려 하면 다 늙어서 장례식입니다. 하나님은 풀무불 속에 있을 때 쓰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헛된 신, 우상, 죄악에게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절대 빼앗기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의지해서 그것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못되었다는 걸 하나님은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거기는 가짜 행복이다 진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하냐? 방법을 제시하고 계시는데 16절입니다.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_이사야48:16

 

비밀하게 말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공개적으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성령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17.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18.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19.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_이사야48:17–19

 

하나님은 우리가 마땅히 행할 길로 가도록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심지어 그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영, 성령을 보내주시고 말씀을 은밀히 말씀하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공개적으로 주셨습니다. 공개적으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성령 안에서 열리고 그 말씀이 열리면 구원이 끊어지지 않는 축복.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게 될 축복. 그때 평강이 강과 같겠고 공의가 바다 물결 같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거 있잖아요. 내가 남의 물건 훔쳐서 잘 살면 불안합니다. 그것은 평강이 아닙니다. 내가 정직하게 능력을 개발해서 수익이 많으면 그 돈을 쓰는 데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내가 벌어서 쓰는 거니까요. 그걸 평강이라고 합니다. 공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위해서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_에베소서5:18

 

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방탕한 것이라고 술 취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뭔가에 취하도록 창조되어 있습니다. 뭔가에 중독되도록 창조되어 있습니다. 술은 취하면 안 돼. 그럼 무엇으로 취해야 되냐? 성령으로 취하라고 합니다. 충만이라는 단어와 취함, 중독이라는 단어는 다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취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충만을 달라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에 대한 오해가 한국 기독교에 너무 많습니다. 무슨 오해인가요? 어떤 청년이 아버지가 장관입니다. 우리나라 장관이면 끗발 아시죠? 최고입니다. 한 기관의 장관이다? 공무원으로는 최고입니다. 2,3급 이렇게 되겠죠. 저는 군대 있을 때 참모총장의 힘을 느꼈습니다. 제가 저희 교회 육군 본부 신우회 회장으로 있을 때 참모총장님이 장로님이셨습니다. 장로님이 갑자기 교회 사무실을 방문하신 것입니다. 4스타가 저 상병 때. 우리는 난리 났습니다. 참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저희하고 같이 예배드리시고 가면서 오상병 필요한 거 없나?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그 예배드리고 나서 병사들이 빵, 우유 먹는데 너무 햇빛이 쬐가지고 그 다음날 월요일에 포크레인이 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주일날 이야기를 했는데 월요일에 포크레인이 왔습니다. 마당에 포크레인으로 벤치 만들고 천막치고. 이 장관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서 공무원을 하려고 공무원 시험을 본 것입니다. 시험을 봤는데 3,4점 아까운 점수로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아버지가 손 하나 까닥하면 합격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가능하죠? 장관인데 자기 아들 공무원 하나 못 시키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합격시키면 뭐가 돼요? 이 아들도 평생 자유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 아빠도 더 이상 국가에 고위 공무원을 못합니다.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치 교회가, 신자들이 하나님을 불법을 저지르는 고위 공무원을 만들어 놨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뭐에요? 저는 수능 기도회라고 생각합니다. 수능을 위한 100일 기도회. 저는 깜짝 깜짝 놀랍니다. 그 100일 기도회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어떤 뉘앙스가 있어요? 공부 안했는데 수능 100일 기도 참석하면 우리 아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한다. 우리가 절이에요? 엿 붙여놓고 기도하게? 우리가 점쟁이에요?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시키셔야 합니다. 그게 좋은 부모입니다. 그 아버지가 좋은 장관이라면 아들에게 힘을 줄 거예요. 다음에는 시험 더 잘 봐. 아빠도 좋은 공무원이 되도록 열심히 살게. 그런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존경, 동경하니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패스하겠죠. 신앙은, 기도제목은 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이상한 것을 만들었습니다. 믿습니다 하면 주시는 줄 압니다. 막 갑자기 하늘에서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하나님. 아닙니다. 그건 가짜 신입니다. 좋은 신, 좋은 아버지가 아닙니다. 좋은 아버지는 자녀에게 절대 그렇게 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을 받아서 이기고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_에베소서4:17-21

 

17-18절.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니까 당연히 총명이 어두워집니다. 생명에서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이게 죄입니다. 

19절. 영적이 감각 없는 자. 이렇게 사는 이유가 뭐에요?

20절. 역으로 이야기하면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우지 않아서. 교회를 다니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지 않아서.

 

에베소서5장 1-2절에 그렇게 가르침을 받으면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_에베소서5:1-2

 

1절.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어감이 좀 멀죠? 쉬운 성경에는 하나님을 닮는 자가 되고, 닮으라는 것입니다.

2절. 공의의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공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행복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예수 안에서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니깐 우리도 사랑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구교회도 그렇고 한국교회도 그렇고 교회 안에 너무 많은 차별이 생겼습니다. 제가 동성애는 죄라고 선포했잖아요? 동성애는 죄지만 동성애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믿도록 길은 교회가 열어야 합니다. 저는 저희 교회가 아직 작은 교회라서 그런 센터를 만들지 못하지만 저희 교회가 혹시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조금 성장하고 재정이 있고 전문가들이 교회 안에 오신다면 앞으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많은 센터들을 설립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을 하고 계시는 이찬수 목사님을 그래서 제가 존경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곳에는 강도도 예수 믿고 와야 되고 장애인도 와야 되는 곳입니다. 교회 안에 유일한 차별이 있는데 그건 차별이라고 할 수 없고 구별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냐? 그렇지 않느냐의 구별만 있을 뿐입니다. 교회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를 보면 너무 많은 차별을 이야기합니다. 뭐는 이래서는 안 된다, 뭐는 저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언제 그랬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뭐는 이래서 안 된다, 뭐는 저래서 안 된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이 자리에서 구원 받을 사람이 누가 있어요? 오목사 저부터 구원을 못 받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예수님 믿고 목사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죄를 품고 있기 때문에 방탕함고 술 취하고 근심하고 염려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고 차별을 만들어 내고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 안에 행복하다면 내가 예수님을 만나서 기쁘다면 더 이상 큰 아들처럼 살지 않고 동생이 돌아왔으면 아버지처럼 기뻐하고 아버지처럼 같이 잔치를 열고 해야 정상 아니에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우리는 이미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혹시 탕자의 형처럼 살고 있지 않나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 속에 방탕, 더러운 욕심, 그리고 예수님에게 관심 없는 종교인으로 살고 있지 않나. 저는 정말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번 명절 때 진짜 기도제목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잖아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우리에게 진짜 자유를 준단 말이에요.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 첫사랑 받았을 때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해 이러면서 우리가 얼마나 영적인 자유함이 있었어요. 그거 우리 교회 안에 다시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내 자손이 진짜 무수히 많겠다 이 말은 교회 안에 부흥이 끊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다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믿어요. 다시 우리 아들, 딸들이 성령을 받고 바다 물결처럼 평강이 강처럼 흐른다는 것입니다. 왜? 강이고 바다 물결이에요? 흐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런 예수 안에 있는 행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행복이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주어지는 거잖아요. 아버지 하나님 마음을 우리가 성도님들이 회복해서 우리 교회 자체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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