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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10-1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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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3부예배)
제 목 너희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본 문 이사야 49:14-26

 

 오승주 목사

 

Ⅰ. 소경 바디매오_누가복음18:35-43

 

역사나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고 발전하기 전, 후 이런 것을 살펴보면 우리가 많은 지혜들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학벌이 좋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중졸,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퇴하고 이럴 때가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분들이 대학 근처도 못가보고 이럴 때가 있었습니다. 먹고 사는 것 때문에. 그럴 때는 이런 말들이 유행하고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지식을 가져야 된다, 지식이 힘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런 게 있었고 그리고 우리가 지식이 있는 것을 교양 있는 것으로 여기고 많이 아는 것을 굉장히 수준 높은 것처럼 많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에 동기부여가 돼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는데 지금 미국에서 나오는 책이나 자기개발서나 이런 책들을 보면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떤 자기개발서를 읽었는데 거기에 완전 반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기에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생각 없이 사는 것도 문제지만, 생각이 너무 복잡해서 한 걸음도 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그럴 만 한 게 지금은 정보가 홍수입니다. 네이버니 다음이니 유튜브니 수많은 SNS니, 신문, 언론. 옛날에 저희 어렸을 때는 방송이 MBC, KBS 이런 거 밖에 없었습니다. SBS도 제가 좀 컸을 때 생겼습니다. 그 전에는 TV채널 자체가 두 개, 세 개 밖에 없었습니다. 시골에서는 그것마저도 잘 나오지 않아서 KBS 하나만 보고 이랬었는데 요즘은 채널이 200-300개 정도로 정말 많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아는 게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뭘 못하냐?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생각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 한 걸음도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자기 인생을 못 산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니까 내게 축복된 내 인생을 살지 못하고 남들과 비교하느라고 남들 눈치 보느라고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살아야 되니까 자녀 교육하는 것도 그렇잖아요. 얼마나 많은 정보들을 가지고 이렇게 해야 될지, 저렇게 해야 될지. 그러다가 정작 해야 될 일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자기개발서의 한 가지 키워드 단어가 뭔지 아세요? 심플 입니다. 심플해야 된다고 합니다. 너무 생각이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신앙생활에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 너무 생각이 많습니다. 아는 게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내가 행함이 없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지식이 많은데 신앙에 대한 지식도 많고 전략도 많고 어떻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았는지 많은데 행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다 아는데.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될 줄도 알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도 알고 내가 어떤 존재인줄도 알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알지만 예배를 드리지 않는, 내가 어떻게 해야 세계복음화를 해야 되는지 다 알지만 기도하지 않는. 아주 중요한 행함이 빠져버린. 저는 심플하고 좀 반대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되게 복잡하고 생각이 너무 많고 책도 많이 보고. 그래서 제가 조금 후회스러운 것은 20-30대 때 심플하게 살지 못했던 것, 그리고 제 인생을 못 살았던 것들. 그게 후회된다 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거지만 그래도 제 입장에서는 조금 후회스럽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 인생을 살면서 제일 잘 한 일은 개척한 일인데 여러분 이 개척이 쉬운 게 아니잖아요. 개척이 얼마나 복잡해요. 요즘 시대 같은 때는 개척 안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에게 개척을 했으면 하는 사인들을 몇 개 주셨거든요? 그런데 사인들이 왔을 때는 별 반응을 안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하나님이 개척해야 되라는 마음을 주셨는데 머리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개척을 하라고? 어디로 가? 어떻게? 교회가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안이 기독교 집안도 아니고 부모님이 신실한 기도의 사람도 아니고. 내가 개척해서 될까? 어디다가 어떻게? 누구하고? 이런 복잡한 생각 속에 있는데 더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것은 저보다 더 복잡한 제 주변 사람들. 다 뜯어 말리더라고요. 제가 개척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주변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많이 했는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런 말들을 하도 많이 들어가지고. 그런데 제 마음에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때 기도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인생 어차피 한 번 사는 것. 이유가 있었겠지만 하나님이 나를 콜링하셨고 그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많았으면 놓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뒤좌우 생각하지 않고 개척을 했습니다. 맨 땅에 헤딩을 했습니다. 강남 한복판에 개척을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얼마나 잘 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때 이것 때문에 개척은 안 돼, 이것 때문에 뭐는 안 돼 계속 그러고 있었다면 저는 뭐 여전히 여러분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겠죠. 누가복음18장 35-43절에 보면 여리고에 가까이 갈 때 만났던 맹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_누가복음18:35-43

 

길가에 있는 맹인. 다른 성경에는 소경 바디매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누가복음에는 맹인이라고 나옵니다. 이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소경, 맹인입니다. 그래서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일을 할 수도 없잖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하는지.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구걸이었습니다. 길가에 나와서 사람들한테 저 좀 도와주세요, 한 푼만 주십시오. 적선을 바라는. 그게 맹인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맹인들은 눈이 안 보이지만 귀가 발달하고 목소리가 발달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많은 무리들이 갑자기 자기 앞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평상시와 다릅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지금 누가 지나가? 지금 나사렛에서 온 예수라는 사람이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때 맹인이 소경 바디매오가 뭘 생각했냐? 어? 예수님이 지나가고 있어? 그러면 내가 지금 기도하면 예수님한테 눈을 뜰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소리 지르고 예수님을 만나자하면 예수님이 나를 만나주실까? 이런 생각을 한 흔적이 성경에 없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외쳤습니다. 뭐라고 외쳤냐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 말은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에 대해서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소문을 통해서 야, 나사렛에서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 분이 선지자인 것 같아, 그 분이 메시야인 것 같아, 그런데 그 분이 죽은 나사로도 살리고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있대. 우리같이 가난한고 병든 자들을 구원하고 계신데 이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곧바로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지체 없이, 생각 없이, 계산 없이 바로 외친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하던 무리들이 얼마나 목소리가 컸는지 시끄럽다, 조용해라, 잠잠해라 이렇게 책망을 했습니다. 어디서 길에서 구걸하는 사람이 지금 예수님께 소리를 지르냐 했는데 그때 소경 바디매오가 뭐했죠? 한 번 더 외쳤습니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 때 무슨 일이 벌어졌죠? 예수님이 그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듣자마자 예수님이 멈추셨습니다. 예수님이 발걸음을 그대로 stop하셨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이야기하시나요? 방금 소리 질렀던 사람을 내 앞에 데리고 와라. 그리고 뭐라고 하시죠? 내가 너에게 뭘 해주기를 원하느냐? 예 주님, 보기를 원하느냐? 그런데 예수님이 보기를 원해서 네 눈이 뜰 거야, 네 눈이 고침 받을 거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저는 이런 성경들을 읽으면서 옛날에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가 이런 고백을 해야 되구나. 요즘은 그런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 소경 바디매오가 곧바로 생각 없이 지체 없이 외치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지나가버렸겠구나. 그렇잖아요? 여러분 그 당시에 핸드폰이 있어요? 언론이 있어요? 유튜브가 있어요? 지금 아니면 예수님을 언제 만날지 모릅니다. 그 넓은 땅을 걸어 다니는 예수님을. 소경 바디매오는 그때가 유일한 기회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계산 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여러분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복잡한 생각들, 계산들. 그래서 뭘 하죠? 신앙생활하면서 평생 계산하고 걱정하다가 한 걸음도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교회 안에 많습니까. 그래서 장례식 때 다 후회하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 그러고.

 

Ⅱ.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_이사야49:14-21, 50:1, 신명기28:20-57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19.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21.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_이사야49:14-21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_이사야49:14

 

14절. 지금 이스라엘이 시온이잖아요. 이스라엘이 뭐라고 하나님 앞에 따지고 되묻냐면 아니,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거 아니냐? 우리가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을 때 어디 계셨고 바벨론 포로 70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거 아니냐? 우리를 버리신 게 분명하다. 하나님 어디 계시냐? 자기들이 죄 지은 것은 생각 하지 않고. 여러분 이번 주 사사기 읽어보셨죠? 끔찍하죠? 사사기 읽으면서 깝깝하고 끔찍하고. 어떻게 이런 죄를? 그런데 사사기가 지금 우리의 마음과 똑같습니다. 이 시대 우리의 마음에서 짓는 죄와 똑같습니다. 사사기가 어떻게 끝나죠? 마지막에 레위가 나옵니다. 레위인 아닙니까? 목회자 아닙니까? 부인도 아닌 첩, 창녀. 그 부인하고 잠자리를 갔는데 더 악한 것은 그 마을 사람들이 첩을 데려다가 강간하고 그 첩이 죽게 됩니다. 죽은 것을 12 토막 내어서 12 지파에게 보내서 우리가 이 일을 어찌할꼬 하고 사사기가 끝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지금 바벨론에 포로가 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신 것이 아니고 뭐죠?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_이사야50:1

 

나는 너희를 떠난 적이 없다, 너희를 떠난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 죄가 얼마나 관영했는지. 그 죄의 결과로 바벨론 포로라는 것이 온 거 거든요? 그런 시온이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왜 우리를 버리셨습니까? 이렇게 원망할 때 이렇게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_이사야49:15-16

 

15-16절. 무슨 말이에요? 여러분 자기 자식을 잊을 수 있어요? 못 잊습니다. 특히 어린 자식일수록. 여러분 자기 태에서, 내 뱃속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어요? 그런데 혹시 그들은 잊을 지라도. 어떤 부모들은 패륜부모들 있죠? 자식을 버리는 부모들 있죠? 요즘은 그런 부모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자기 뱃속에서 난 애를 그냥 죽이고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리고. 어제도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애를 낳았는데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그들은 혹시 잊을 지라도 나는 너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버린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죄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무슨 계획을 가지고 계셨냐면.

 

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_이사야49:17-18

 

17-18절. 하나님은 이렇게 맹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의 삶을 걸고 맹세하십니다. 

 

19.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21.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_이사야49:19-21

 

19-21절. 무슨 말이냐면 너무 쉽게 역사적으로 갑자기 우리는 포로하고 하나님 우리를 떠나셨네요, 하나님 우리를 버리셨네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데 갑자기 느헤미야, 에스라가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외로워서 자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이들을 양육했고, 누가 이들을 낳았고, 이게 어디서 생겼나? 심지어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하냐면 여기서 사는 게 너무 좁으니까 넓혀서 거주하리라. 느헤미야 이야기 아닙니까?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이런 후대들이 포로 생활 끝날 때쯤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너희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들이 어디서 생겼는고. 우리는 방황하고 우리는 원망하고 우리는 하나님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 포로 생활 하는 동안에 너희의 죄악으로 했던 포로 생활 중에 하나님이 새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절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오늘 예배 시작 할 때 신명기 28:1-6을 읽었습니다.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_신명기28:1-6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면 복 주신다고. 심지어 떡 반죽 그릇에도 복주시고 네가 나가고 들어오는 거 다 복 주신다고. 그런데 15절부터는 반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_신명기28:15

15절.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_신명기28:16

 

반대 이야기입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아까는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반대입니다. 

 

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_ 신명기28:17-19

 

47.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_신명기28:47

 

47절. 그러니까 우리의 복은 재산이나 이런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재산이 있어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이 재산은 저주인 것입니다. 신앙에 본질은 세상적인 소유 개념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믿느냐 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후대들 가운데 나타난 것입니다. 느헤미야 같은 사람들이. 어디서 생겼는고 너희가 그렇게 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실제가 되지 않고 행함이 되지 않으면 야고보 사도가 이야기했던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행함이라는 것이 없으면 우리 삶은 그 믿음의 행함이라는 것이 없으면 그 공백은 세상 것들로 채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상이나 죄가 채워지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영적인 세계는 중립지대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는 중립지대, 나는 죄도 안 짓고, 나는 믿음을 많이 가지지도 않고 나는 그냥 적당히 살 거야. 그런 게 없습니다. 적당히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때, 날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믿음이 아닌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 중 하나인 것입니다. 흑백논리입니까? 네, 흑백논리입니다. 맞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이라는 것을 행함으로 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저주라고 합니다.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하나님을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라고 했습니다.

 

20.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21.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22.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25.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 26.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줄 자가 없을 것이며 27.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피부병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유 받지 못할 것이며 28.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병으로 치시리니 29. 맹인이 어두운 데에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 네 길이 형통하지 못하여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할 뿐이리니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 30.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같이 동침할 것이요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에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열매를 따지 못할 것이며 31. 네 소를 네 목전에서 잡았으나 네가 먹지 못할 것이며 네 나귀를 네 목전에서 빼앗겨도 도로 찾지 못할 것이며 네 양을 원수에게 빼앗길 것이나 너를 도와 줄 자가 없을 것이며 32.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찾음으로 눈이 피곤하여지나 네 손에 힘이 없을 것이며 33.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34. 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말미암아 네가 미치리라 35. 여호와께서 네 무릎과 다리를 쳐서 고치지 못할 심한 종기를 생기게 하여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이르게 하시리라 36.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37.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38.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39. 네가 포도원을 심고 가꿀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40. 네 모든 경내에 감람나무가 있을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41. 네가 자녀를 낳을지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너와 함께 있지 못할 것이며 42. 네 모든 나무와 토지 소산은 메뚜기가 먹을 것이며 43. 너의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점점 높아져서 네 위에 뛰어나고 너는 점점 낮아질 것이며 44. 그는 네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그에게 꾸어주지 못하리니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 4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고 네게 명령하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와서 너를 따르고 네게 이르러 마침내 너를 멸하리니 46.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징과 훈계가 되리라 47.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48.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49. 곧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가 날아오는 것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50.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보살피지 아니하며 유아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51.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먹어 마침내 너를 멸망시키며 또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소의 새끼나 양의 새끼를 너를 위하여 남기지 아니하고 마침내 너를 멸절시키리라 52. 그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 높고 견고한 성벽을 다 헐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53.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 54. 너희 중에 온유하고 연약한 남자까지도 그의 형제와 그의 품의 아내와 그의 남은 자녀를 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55. 자기가 먹는 그 자녀의 살을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까닭일 것이며 56. 또 너희 중에 온유하고 연약한 부녀 곧 온유하고 연약하여 자기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자기 품의 남편과 자기 자녀를 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57. 자기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가 낳은 어린 자식을 남몰래 먹으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_신명기28:20-57

 

그렇게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세워가지고 뭐하시냐? 

 

-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_이사야49:22-23

 

22. 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23.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_이사야49:22-23

 

22절.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23절. 중요한 말입니다.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주의 복음을 전하는데 국가와 나라들이 그 일에 같이 쓰임 받는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그랬고 종교개혁 때 독일이 그랬고. 그런 기술들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가 여호와를 바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기치, 깃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높이 들 때 하나님이 그런 일들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서 바벨론에 포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기하셨다면 바벨론에 포로가 되게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두셨겠죠. 앗수르처럼, 바벨론처럼 그냥 번성해, 잘 먹고 잘 살아, 계속 죄 지어, 괜찮아. 무관심하셨겠죠. 그러나 그들이 죄가 관영했을 때 얼마나 죄가 심했어요? 그것을 그냥 보고 두지 않으셨습니다. 눈 질끈 감고 포로로 가는 것을 하나님이 그냥 두셨습니다. 우리 자녀들 키워보면 금방 이해합니다. 아이들이 계속 거짓말하고 나쁜 짓하고 엄마, 아빠 숨어서 딴 짓하면 어떻게 해요? 내버려 둡니까? 성경은 내버려 두면 진짜 부모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생아라고 그랬습니다. 진짜 부모는 내 자녀들이 나쁜 길 가면 그냥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국회의원 자녀들 마약하고 난리던데. 그거는 부모들이 자식들을 경찰에 고발을 해야지. 그래야 자녀들이 정신을 차리고 바르게 살지. 감싸고 돈으로 해결해주고, 권력으로 해결해주면 영원히 자식은 실패하는 것입니다.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민족을 향하여서 기치를 세우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뭐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뭐냐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우신 목적이 메시야, 우리를 구원하실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이게 구원이 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복은 바라크입니다. 바라크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하나님이 쓰시는 단어, 바라크라는 단어는 다 생명,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너희를 복 되게 하겠다, 모든 민족 가운데 복이 되게 하겠다, 나가도 복, 들어와도 복. 이 복은 바라크입니다. 생명입니다. 물질이 아닙니다. 복 받는 것, 물질처럼 생각되잖아요?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처럼 생각되잖아요? 아닙니다. 여러분 이것을 빨리 개념 정리해야 합니다. 창세기 강해할 때 복에 대해서 설명 많이 했죠. 바라크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겠다는 복은 생명의 복입니다.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귀한 복은 없으니까. 그런데 그 생명은 누가 그 기치를 세우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높이 들려야, 예수님이 온 세계 위에 깃발로 들려야. 그래서 우리를 이방의 빛 삼으시고 우리를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뛰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든 민족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뛰어나라니까 갑자기 엘리트가 되어야 되고, 수준 높은 삶을 살아야 되고? 그 말이 아닙니다. 자꾸 우리는 그 부분에서 속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 끝내 믿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까. 끝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왜 그랬냐? 이스라엘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았냐?

 

-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_이사야49:24-26

 

24.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25.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 26. 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_이사야49:24-26

 

24절. 이게 무슨 말이냐면 시온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하나님이 내가 너희 다시 회복시킬 거야, 나는 너희를 버린 적이 없어, 너희 이름을 다 손바닥에 새겨놨어, 너희가 죄 지어서 너희가 지금 바벨론 포로 된 것인데 내가 너희 다시 다 회복시킬 거야 하니 이스라엘이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다시 빼앗느냐 합니다. 여기서 용사는 뭐에요? 바벨론입니다.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것을 어떻게 건져낼 수 있냐? 지금 뭐를 승리자로 보는 거예요? 바벨론을 승리자로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전능자, 능력의 하나님, 승리의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로 보는 게 아니라 바벨론을 승리자, 용사로 본 것입니다.  

25-26절. 하나님이 지금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따지니까 내가 할 거야, 내가 너를 구원할 거야, 내가 너를 그 용사들에게서 건져낼 거야, 내가 한다니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십자가 사건을 일으킬 거야. 내가 독생자 내 아들을 너희에게 보내서 너희를 다 구원할 거야. 내가 할 거야, 너희들이 하는 일 아니야. 내가 할 거야. 그래놓고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전능자인 줄 알리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능자인줄 알리라. 여러분 육체는 성경에서 죄를 상징합니다. 그렇죠?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육체를 따르는 자는 육체의 일을. 그래서 육체는 죄를 상징하는데 육체가 하나님이 전능자이고 구속자이고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다는 말은 그래서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냐면 말세 때 네 모든 남종과 여종들과 네 자녀들과 늙은이들과 젊은이들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죄인 육체에 성령이 오시면 죄는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은 새롭게 됩니다. 그 말은 육체가 뭘 보게 되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전능자이시고 구속자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이시고 승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성령이 임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바벨론을 승리자라고 용사라고 말 못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에게는 바벨론이 훨씬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니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묶고 있는 것, 그 대적자, 억압하는 것이 모두 죄라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하시면 죄가 보입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 죄 때문에 육체가 여호와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육체가. 왜? 죄 속에 있으니까. 심지어는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건져낼 수 있느냐? 어떻게 사로잡힌 우리를 건져낼 수 있느냐? 여러분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죄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십자가를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우리는 죄에서 건짐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략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정이 아닙니다. 자꾸 교회가 전략 이야기하고 행정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진짜 교회가 퇴보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회사가 아니고 기업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가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 시대의 것들을 사용하기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그런데 교회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게 성령입니다. 교회는 리더십이 아닙니다. 교회는 펠로우십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제가 부산에서 고신대를 다닐 때 저희 학교가 고갈산에 있었습니다. 학교갔다 오면 다 고갈된다 이런 장난치고 그랬습니다. 진짜 힘들었습니다. 산이 엄청 가파르고 학교 자체가 엄청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저의 선배나 친구들이 항상 금요일에 수업이 끝나면 산을 갑니다. 고갈산에. 거기에 바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금요일 밤에 기숙사 살 때 누워 있으면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신학생들이 전부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아버지. 잠을 못 잡니다. 금요일 밤새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 받겠다고 그런데 저는 그 때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그때 한창 저희 교단에서 은혜 받고 있을 때였으니까 그런 것이 다 신비주의라고 치부해버렸습니다. 그런 거 다 이상한 거야, 나무뿌리 뽑는 거, 돌 앞에 기도하고 이런 거 능력 없는, 복음도 모르는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그때 선배들하고 친구들하고 고갈산에 가서 기도했어야 하는데. 제가 요즘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가 코로나가 끝나면 우리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들하고 그런 기도 모임 할 것입니다. 진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성령 받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 자녀들 포로 생활 70년 끝나고 느헤미야 같은 자녀들이 일어나서 누가 이 아이들을 양육했고 누가 이 아이들을 키웠냐? 이런 축복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 임직훈련을 하는데 장로님, 권사님들, 안수집사님 되시는 분들이 내가 장로가 되어서 뭐해야 되지? 아니요, 뭐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하셔야 될 것이 있습니다. 성령은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토요일에 우리 선배 장로님, 권사님들도 오라고 하신 것이 같이 기도하려고. 그 동안은 훈련 받았지만 이번 주 토요일 날에 우리가 모여서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육체가 하나님이 구원자, 구속자인 걸 알려면 성령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오늘 1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Ⅲ.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_이사야49:16, 잠언30:12, 누가복음18:1-30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_이사야49:16

 

이게 쉬운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내 성벽을 내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의 성벽. 이렇게 표현해볼까요? 이스라엘의 성벽을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오승주 목사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었어, 네 성벽이 항상 내 마음에 있었어. 네가 성벽에 안 나타난 거잖아. 네가 죄 짓고 죄를 따라가고 우상을 따라간다고 이 성벽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잖아. 성벽은 항상 내 앞에 있었어. 그런데 네가 없더라? 성벽은 뭘 상징하죠?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이 기도할 때, 부르짖을 때, 회개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기도하던 곳이 성벽입니다. 왜냐하면 유월절 예배를 성전 안에서 드렸는데 그 외에는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에서.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면 통곡의 벽, 기도의 벽이 있습니다. 성벽이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느꼈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고, 성령의 역사하심들을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성벽이, 나의 성벽이 여호와 앞에 하나님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 이스라엘 백성이 없었습니다. 그 벽은 회개하는 벽이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벽이었는데 그 성벽이 사라진 것입니다.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_잠언30:12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죄를 짓고도 자기들은 죄인인 줄 모릅니다. 사사기 읽어보면 느낍니다.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기면서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않는 겁니다. 회개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회개 없는 신앙생활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누가복음 18:10-14절 예수님이 이야기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_누가복음18:1-3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세리는 죄인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따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같이 줄도 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뒤에서는 간음하고 토색하고 다 하면서도 기도할 때는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여러분 그것은 하나님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나요?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유대인들은 큰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이 듣도록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는 금식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죄를 짓지 않고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렇게 저잣거리에서 길거리에서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왜요? 유대인들이 못 오게 하니까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뭐라고 이야기하시나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우리에게 진짜 우리 마음이 회개하고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임하는 진정한 회개, 진정한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는 그런 기도가 우리에게 사라졌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아시죠? 얼마 전에 소천하셨습니다. 뭐 나이가 들어서 이런 문제, 저런 문제를 많이 일으켰지만 저는 그 분의 설교를 들을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신교단에서 신학공부해서 순복음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교단이거든요. 그런데 이제 워낙 교회가 크니깐 그 분이 여기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이 목회를 하실 때 강단교류를 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획기적이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옥한흠 목사님에 사랑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옥한흠 목사님이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설교하고 이건 뭐 획기적입니다. 둘이 완전 상극인데요. 그때 신학생들, 저희 때에 센세이션했습니다. 제가 그때 거의 라이브로 그 설교를 다 들었습니다. 그때 처음 조용기 목사님 설교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했던 재미있는 간증이 있습니다. 사실, 실화입니다. 진짜 간증 잘하시거든요. 조용기 목사님이 자기 교회에 세계적인 생물학자, 의료 쪽 학자인데 그 부부가 교회에 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교회를 다니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이 남자가 병이 있는데 의처증입니다. 이 사람이 우리나라 대표되는 박사니까 학술대회를 가면 아내가 집에 혼자 있으면 하루에 전화를 수십 통씩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자 분이 순복음교회 성도가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가게 된 것입니다. 이 아내를 교회에 혼자 보내면 다른 남자를 만날까봐, 바람 날까봐 그래서 따라왔다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2주정도 교회를 다니다가 담임목사님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그 박사가 입도 직설적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한 사람이니까. 이 사람이 만나서 조용기 목사님 보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얼굴 보니까 안심되네. 머리도 벗겨지고.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참, 당신 좀 배운 거 같고 영어도 잘 하고 교회도 제법 크고 그런데 진짜 바보 같은 소리한다. 어떻게 처녀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을 수 있냐? 그리고 죽어서 삼일 만에 시체가 다 썩었는데 어떻게 부활할 수 있냐? 그게 생물학적, 과학적으로 가능하냐? 이러면서 엄청 조크를 주고 나갔다고 합니다. 목사님하고 첫인사를 하는데. 조용기 목사님이 저 사람은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이해를 못하겠구나, 힘들겠구나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인이 은혜를 받으니까 교회를 계속 나오니깐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한 1년쯤 교회를 나오고 크리스마스 예배인지 송구영신 예배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예배 때 갑자기 박사님이 예배드리는데 눈물을 수건으로 닦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용기 목사님이 저 사람이 은혜 받을 일은 없고 맨날 설교를 비평하고 까 내리고 비 과학적이다 라고 욕하는 분이니까. 눈물을 닦고 있길래 저 사람이 무슨 슬픈 일이 있나? 그래서 예배 끝나고 부른 것입니다. 박사님, 집에 슬픈 일 있습니까? 울고 있으십니까? 은혜 받았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러니깐 그 박사가 하는 말이 내가 지금 내 이성, 내가 배운 지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내 마음이 자꾸 믿어지려고 그래. 이랬다고 합니다. 이거 정신분열증인 거 아니야. 눈물이 왜 나지? 나 지금 정신분열증인 것 같다. 당신 나 세뇌하고 있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깐 조용기 목사님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정신분열증에 걸려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정신분열증 치료하는 약이 있다고. 그래서 박사가 눈을 번쩍 뜨고 그 약 좀 달라고. 나 지금 상태가 이상한 것 같다고. 그게 신구약이라고, 이것 좀 읽어보라고 그럼 정신분열증이 치료될 거라고. 여러분 아시다시피 엘리트, 똑똑한 사람들은 순종을 잘 하잖아요. 그 박사가 그때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박사가 어떻게 변화되었냐면 하나님이 아직 과학이 발달되지 않아서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도 과학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아직 인간의 과학이 발달되지 않아서 우리가 모를 뿐이다. 그분이 양서류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박사입니다. 원래 그 양서류가 임신하는 것이 알을 배는 게 우리 일반 동물처럼 성관계를 해서 알을 낳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슨 접촉만으로도 알이 생긴다고 합니다. 분명히 성령께서 오셔서 접촉으로 스파크를 일으켜서 임신한 건데 우리가 그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그 전에는 말도 안 되고 비과학적인데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일이야 이러면서 간증하고 다니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간증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강퍅한 마음, 죄의 쇠사슬 끊어내지 못합니다. 육체가 하나님이 전능하시다, 하나님 나의 구원자이시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식한 소리 같잖아요. 어떻게 처녀에게서 잉태를 하고 또 인간이 죽음, 무덤에서 부활을 할 수 있겠어요. 구약 4000년은 성부 하나님이 앞서서 역사하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성삼위 하나님 중에서 성부 하나님이 메시야를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고 그걸 가르치고 했던 것이 구약 4000년이고 그 약속대로 예수님이 독생자, 성자 예수님이 오셔서 3년 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시고 친히 그 말씀을 성취하셨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고 나서 지금은 말세시대입니다. 혹은 성령시대라고 합니다. 구원의 시대라고 합니다. 추수의 때라고 합니다. 이 때는 누가 일하고 계시냐면 성령 하나님의 때입니다. 모든 일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도,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일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처음 교회가 세워진 초기기독교, 초대교회에 성령이 불같이 바람같이 임하면서 교회시대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교회 안에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이게 뭔 일이야? 우리 세상에서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어? 나 같은 게 어떻게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어? 자네가 지금 무슨 능력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어? 우리 계속 이스라엘처럼 말한단 말입니다. 아무리 바벨론을 따라하고 앗수르를 따라하고 애굽을 따라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왜? 성령이 임하셔야 되는 그렇게 하나님이 약속을 해놓으셨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오셔야 우리 죄가 보입니다. 성령이 임하니까 저는 죄가 없는 줄 알았는데 죄가 얼마나 많은지. 제가 고등학교 때 저희 교회 수련회를 갔는데 은혜를 받았습니다. 첫날에는 은혜를 못 받았지만 둘째 시간에 은혜를 진짜 많이 받았습니다. 진짜 성령이 임하셨죠. 첫째 날에는 제가 기도하자고 해도 기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어야지, 나는 착하게 잘 살았는데. 뭐 고등학생이 죄를 지었으면 얼마나 지었겠어요. 그런데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제가 어렸을 때 옆집 수박 훔쳐 먹은 것, 아빠 돈 훔친 것, 욕한 것, 이상한 음욕을 품는 거 이런 거를 얼마나 회개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 회개가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그런 죄까지 다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회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게 뭐 율법적인 삶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성령이 임하니까 죄가 없는 줄 알았는데 죄가 얼마나 많은지. 그러면서 회개하고 나면 뭐가 있죠? 하나님이 기쁨을 주십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시고 자유함을 주세요. 왜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기쁨이 없냐? 왜 즐거움이 없냐? 회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다른 것으로 그 기쁨을, 은혜를 채울 수 없습니다. 죄가 사해지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기쁨보다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어요. 여러분 그래서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우리 공동체에, 가정, 자녀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야 해요. 그래서 성령님과 교제하고 기도하고 성령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삶이 성령과 하나 되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그 신앙생활을 우리가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힘이 아니고 성령의 힘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육신, 육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사는 것. 그것만큼 영광스러운 삶이 어디에 있겠어요. 여러분 진짜 기도하기 원합니다. 정말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 하고 같이 부를 찬양은 송정미 사모님이 작사한 찬양입니다. 서빙고에서 하스데반 목사님이 경배와 찬양 집회를 계속 했습니다. 제가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진짜 은혜 됐습니다. 저는 지금도 한빈이, 윤빈이 재울 때 불러주는 찬양입니다. 주님의 성령 지금 이곳에. 가사가 그게 전부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뭐하냐면 할렐루야라고 고백할 수 있대요.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십니다. 여러분 이렇게 찬양 가사 하나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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