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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10-24 주일예배

 

2021-10-24 주일예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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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4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3부예배)
제 목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본 문 이사야 51:1-23

 

 오승주 목사

 

Ⅰ. 한 가지 실험_이사야51:1-3

 

이사야 하반절 말씀은 전부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해방 되어야 할지 해방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그대로 느헤미야를 통해서 학사 에스라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해방되는 그런 장면들을 우리가 성경에서 많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 됐고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상세히 알 수 있는 성경입니다. 제가 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실험을 한 영상입니다. 실제 유치원에서 벌어진 일을 각색한 영상이었습니다. 어떤 영상이냐면 유치원이 있습니다. 유치원이 끝나고 나면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픽업하러 옵니다. 유치원 차도 타고 가지만 저도 첫째 아이가 유치원 다니고 있어서 3시 30분이 되면 픽업하러 갑니다. 제가 갈 때도 있고 저희 와이프가 갈 때도 있습니다. 가끔 제가 가면 좀 멀리서 용인, 수원에서 사역을 하다가 유치원까지 가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 시간 맞춰서 가다가 길이 막히면 마음이 엄청 졸입니다. 왜냐하면 3시 30분 전에는 가야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태워서 집에 데려다줄 수 있는데 제가 늦게 가면 아이들 다 가고 선생님과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차에서 발 동동 구르는 것입니다. 전화 드려서 죄송하다고 하고 뭐라도 사다드려야 될 거 같고. 왜냐하면 아이 좀 봐줄 수 있지 이렇게 생각이 되지만 여러분 유치원이 아이들 보내놓고 나서 얼마나 바쁘겠어요. 교재도 준비해야 되고 내일 수업 준비도 해야 되고 청소도 해야 되고. 또 이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선생님은 그런 것들이 밀리니까 퇴근도 늦게 하겠죠. 그러니까 당연히 3시 30분 전에 부모님들이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부모님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영상에 나오는 것입니다. 한 유치원에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너무 늦게 오고 이런 일이 발생하니까 벌금을 문 것입니다. 아이들을 데리러 늦게 오는 부모님들에게 벌금을 무는데 벌금을 물면 그런 일이 없어져야 하는데 너무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벌금을 무니까 벌금을 내게 하니까 1단계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되냐면 부모님들이 더 늦게 오는 것입니다. 왜? 벌금 내면 되니까. 벌금 내면 되지. 벌금 낸다고 아예 늦게 오는 것입니다. 더 많은 부모님들이 늦게 오고 벌금 내면 되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유치원에서 안 되겠다 하고 벌금제도가 안 좋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실 유치원은 벌금이 목적이 아닙니다. 빨리 오게 하려고 하는 벌금 제도인데 더 많은 분들이 늦게 오니까 우리가 잘못 한 것 같다고 하고 벌금 제도를 없애자 하면서 벌금 제도를 없앴습니다. 그러면 다시 1단계로 돌아가야 되는데 놀라운 사실은 새로운 3단계가 생겼습니다. 벌금도 안 내고 더 늦게 오는 것입니다. 엄마들이 늦게 오는데 이제는 뭐까지 있냐면 뻔뻔함까지 있는 것입니다. 미안함이 사라진 것입니다. 1단계 때는 늦게 가면 미안하기라도 했는데. 아니 그러면 벌금 낼게 이런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짧은 영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신기하죠? 그냥 몇 단계 과정을 거쳤는데 사람의 마음이 완전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러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 받은 게 엊그제 같지 않으세요? 저 예수님 처음 만나서 진짜 예배드리는 거 일주일 내내 기다리고 그 은혜 받아서 평생 하나님 앞에 헌신하겠다고 고백하고 그런 때가 엊그제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잘 것 없는 나를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기 때문에.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들이 뭐가 되었냐면 다 옛 추억이 되었고 또 어떤 예배라든지 기도라든지 이런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된 것 같습니다. 그냥 당연한 것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는 것도 당연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도 당연한 게 된 것입니다. 어떨 때는 큰 소리도 칩니다. 벌금 내면 되잖아.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유치원의 목적이 벌금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목적이 아니시거든요. 우리는 막 따집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냐고.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구원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갑자기 아브라함 이야기를 하십니다.

 

1.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_이사야51:1-3

 

2-3절. 너무 신나고 행복한 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들을 언제 시작하셨냐면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브라함 이야기가 갑자기 이사야에 나와서 이번 주에 창세기에 아브라함 이야기를 읽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아브라함 이야기가 사실 너무 심플합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 우상의 땅에서 건져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 땅으로 가서 민족을 이루는 게 아브라함 스토리의 핵심이잖아요? 그러면 그것을 간단하게 쓰면 되잖아요? 내가 너를 건졌어, 콜링해서. 그래서 네가 순종해가지고 가나안 땅에 가서 너희 이스라엘 민족을 이룰 거야. 너희는 내가 창세기 12장에 말씀한 것처럼 큰 민족을 이룰 네가 아비가 될 거야. 그냥 요약해서 한 장이나 두 장에 넣어도 충분할 것 같아요. 제 생각에. 그러면 성경이 이렇게 두꺼울 일도 없잖아요. 우리가 그러면 하루에 3장이 아니라 하루에 3절만 읽어도 될 거 같은데. 그런데 이것을 장황하게 아브라함의 감정까지, 아브라함이 누구를 만났다, 누구를 만났는데 자기의 아내를 아내라고 하지 않았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롯과의 갈등, 롯을 떠나보내고 다시 롯을 구원하러 가고. 아브라함의 모든 여정을 장황하게 복잡한 스토리를 성경에 다 기록해 놓은 것이 이게 왜 이렇게 기록해 놓았을까? 왜 시시콜콜 모든 것을 다 이렇게 기록해 놨을까? 그냥 갈대아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가는 건데. 우리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이 결국에 승리하게 하셨다? 이거잖아요? 아브라함을 결국에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그렇게 승리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과정들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경험하고 죄를 회개하고 자기 삶을 조정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러면서 점차 하나님이 자기 삶의 중심의 주인으로 고백되어지는 과정들을 창세기에 다 기록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이런 과정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여러분 교회에는 공사 중인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고, 우리 다 공사 중인 사람들이잖아요.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 불러서 나중에 어떻게 되었죠? 아브라함이 가병 318명이 있고 가나안 땅에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이 되었고 나중에는 한 나라의 시작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축복을 주셨는데 이런 과정을 왜 이야기해놓으셨는지.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실 때 지향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어떤 목적을 두고 지향하는 것. 우리가 미래지향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어떤 목적을 두고 지향적인 존재로 모든 인류를 다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게 사라지면 인간은 어떻게 되죠? 스탑 해 버리는 것입니다. 인생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는데 그 분이 제 설교를 들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그러셨습니다. 목사님 설교 들으니까 제가 해줄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자기 직장에서 작년에 신입사원을 뽑았다고 합니다. 서류도 보고 면접도 보는 과정이 있었는데 면접자 중에 정말 완벽한, 이 사람은 우리 회사에 오면 딱 맞아, 완벽하게 준비됐어, 스펙도 완벽하고 자기 회사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 당장 뽑읍시다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 말 할 것 없이 그 사람을 뽑았죠. 그런데 이제 한 자리가 남았는데 약간 찝찝한 사람, 얼굴이 선해서 뽑으셨다 하더라고요. 조금 찝찝합니다. 스펙도 좀 부족하고 이 사람을 뽑아놓고 우리 회사와 안 맞으면 어떻게 하지? 나가라고 하기도 힘든데 이런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뽑았는데 그게 작년 12월에 뽑았으니까 벌써 10개월이 되었는데 그 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이렇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완벽했던 사람들보다 우리가 불안하게 뽑았던 그 사람이 날마다 노력하고 애쓰고 얼마나 신실하게 성장해 가는지. 완벽했던 사람들을 다 추월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장하는 것입니다.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회사에 훨씬 더 유익하잖아요. 완벽하다고 뽑았는데 발전이 없어. 그런데 이 사람은 지향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발전해 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은 날마다 나아가고 있는가 그게 엄청 중요합니다. 여러분 성숙이라는 것은 현재가 아니고 미래지향적입니다. 우리가 성숙해져 간다, 성장해 간다 이 말은 미래지향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놓친 신앙은 바로 그것을 놓친 것입니다. 어렵지만 오늘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정말 많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놓친 신앙의 능력이 뭐냐? 

 

Ⅱ. 이스라엘이 놓친 신앙의 능력

 

- 나의 공의는 폐하지 아니하리라_이사야51:4-6

 

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_이사야51:4-6

 

4절.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이스라엘이여 내게 주의하라, 나를 바라봐라 이 말이죠, 내게 귀를 기울여라 이 말이죠. 이유는 뭐냐면 율법이. 율법은 뭐에요? 율법은 죄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 삶을 세워주는 말씀이잖아요. 말씀이 내게서 나가고 내게서 나간 공의가 너희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민의 빛이 되고 인간이 세상에서 교회가 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것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것을 놓쳤습니다. 왜 놓쳤냐?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 부름 받아서 어떤 과정으로 열국의 아비가 되었는지, 어떤 과정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었는지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해를 못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을 지금 이스라엘 후대들이 믿어야 되는데 아브라함이 이루어 놓은 나라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요즘 훌륭한 재벌 2-3세들도 있지만 언론에 보면 가끔 망나니 같은 재벌 2-3세들이 나오잖아요. 제가 그것을 보면서 되게 많이 느낍니다. 아버지가 이 기업을 일궜을 때 얼마나 피, 땀을 흘려서 일궜겠어요? 그렇죠? 한 기업, 사업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식은 자녀는 그 아버지가 얼마나 노력하고 성실하고 또 얼마나 애써서 그 기업을 이룬 것인지 생각 안하고 그 기업을 그냥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노력한 삶을 물려받아야 되는데 그 아버지가 애쓰고 노력한 비전을 물려받아야 되는데 그 재산만 물려받는 것입니다. 그 권력만 물려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망나니처럼 사는 것입니다. 함부로 하고. 마치 그런 것처럼 지금 이스라엘이 무엇을 놓쳤냐? 그 신앙의 능력을 놓친 것입니다. 신앙은 그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지향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재에 머물러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목적이 사라지면 타락한다고 하죠? 그래서 부모가 돈이 많아서 자식이 타락하기도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차라리 없었으면 후회하는 부모들도 더러 있더라고요.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런데 그게 조금 이해가 되는 게 저도 엄청 열심히 해서 저희 아들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고 조금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고 아이들은 내가 당한 고난을 안 당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모든 부모가 살지만 이 아이는 그게 편하고 쉽다는 것을 모릅니다. 왜? 아빠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 다릅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이 아이 자체로 인생 자체가 힘든 것입니다. 마치 군대와 같습니다. 남자들은 군대 진짜 이야기 많이 합니다. 요즘 군대가 군대냐면서. 그런데 요즘 군인들이 옛날 80년대, 90년대 군대를 가봤어야 말이죠. 아마 어른들도 80년대 진짜 힘든 군 생활을 하셨지만 90년대 군 생활을 했지만 그때를 우리가 경험을 안 해보고 지금 군대 가면 지금 군대가 제일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것을 물려줘도 물려받은 사람은 그게 처음 인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이 어떤 신앙의 과정을 거치고 어떤 헌신을 했는지,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이스라엘은 거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바라본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루어 놓은 나라에 관심이 있었지.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주의하라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 나갈 것이다 공의가 내게서 나가야 너희가 만민의 빛이 될 거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너희가 가지고 있는 나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중요하지 않아. 왜? 아브라함도 혼자 있을 때 내가 불러서 그런 축복을 준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포로로 만들어버리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게 사라지니까 완전 낙심해버렸습니다. 그 말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안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생활을 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우상에 쾌락에 물질에 관심이 있었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바라본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은 것입니다.

- 의를 아는 자들아_이사야51:7-11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_이사야51:7-11

 

7절. 진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 애굽, 바벨론 이런 주변 강대국들에게 왜 두려움을 가지고 왜 그들과 비교하고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는지 성경은 뭐라고 이야기해요? 마음에 내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내 의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반대로 이야기하면 의를 알고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이 있는 자들은 그들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8절. 여러분 양털 안에 벌레가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영원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께서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뭐라고요? 너희가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다시 의를 알고 율법을 너희 마음속에 회복하면 옛적 옛 시대에 내가 용을 찌르고 라합을 저미고. 다시 말해서 애굽을 물리치고 어둠의 세력들을 물리치고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너게 한 홍해사건이죠. 홍해사건을 허락하신 것처럼 지금 너희들에게도 이 역사가 일어날 수 있어.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부모세대, 우리 세대, 우리 다음 세대 각자의 세대에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신앙생활 안 하잖아요. 옛날에 신앙생활 했던 것들, 부모님들이 했던 것들은 옛날이야기이고 우리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처럼.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개척을 아예 더 젊었을 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제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후원이 있는 상태에서 개척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애매한 시기 때 개척을 했습니다. 이제 막 아이를 낳고 40대에 접어들 때 개척을 시작했으니까. 개척을 해 놓고 설교는 성경대로 했으니까. 그런데 저 개인은 엄청 불안했습니다. 그때는 살도 떨렸습니다. 저희 와이프만 압니다. 왜냐하면 맨날 교회를 갔습니다. 또 교회 가냐면서. 일주일에 3일, 4일을 교회 와서 자고. 왜냐하면 두려웠습니다. 이제 애도 태어나야 하지, 나이가 40대에 접어드는데 가족도 부양해야 되지, 제 입장이 그런 것입니다. 되게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이 상태가 계속 되면 어떻게 하지? 교회가 성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인간적인 두려움입니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도 들고. 하필 그럴 때 신문을 보면 서울에 목회자들이 5만 명이나 택시기사 한다더라 이런 기사도 보고 나도 택시기사 해야 될 수도 있나 이런 생각도 들고. 그 때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와가지고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두려운 마음에 기도하면 조금 나아지고. 또 기도하고 멍하니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오고. 진짜 두려웠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생활로 인해서 올바른 목회자가 못 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내가 건강한 교회를 세우지 못할까 그게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길로, 좁은 길로 갈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벌써 8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믿음이 많이 생기고 자란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에게 그러잖아요. 성경 안 읽으면 가스펠교회 성도 아닙니다. 가세요 이러면서. 용기 있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리고 또 앞으로 주일학교라든지 우리가 해야 될 많은 사역들에 믿음의 도전을 할 정도로 마음에 담대함이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우리 교회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원합니다. 이대로 그냥, 그대로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계속 범죄하고 나태하고 율법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타락하고 쾌락에 빠져 있는 상태로 계속 두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속 선지자를 보내셨고 그리고 70년이라고 기한을 정해서 포로생활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말은 사랑한 것입니다. 영원히 포로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그래서 그런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분명히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 돌아서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시 엎드리고 기도하면, 회개하면 분명히 살 길이 열리고 다시 회복된다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새가족들이 교회 오시면 제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고. 얼마 전에 유퀴즈라는 프로그램 있죠? 유재석씨와 조세호가 나와서 시민들하고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저는 TV를 잘 안 보지만 뭘 검색하다가 그게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왔냐면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금융경제교육을 하는 선생님이 나온 것입니다. 초등학교아이들에게 금융경제교육을 합니다. 여러분 무슨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금융을 가르치고 경제를 가르쳐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게 없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나왔는데 그 분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저한테 많이 도전이 되었습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하시냐면 어려서부터 경제를 배운 아이들과 그렇게 않은 아이들의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부모님들은 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야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돼. 다 뻥이잖아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회사 가서 월급을 많이 받으려고 경제를 얻으려고 좋은 대학을 가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금융, 경제를 가르치는 것이 유교문화에 터부시 하는 것이 조금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시는데 그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되는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는 아이들과 막연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회사 가고 똑같은 것 같지만 그 차이가 많다는 것을 본인이 여러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가정과 주위 환경에서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들이 누적 돼요, 성인 이후의 삶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친다. 저는 되게 가슴이 뛰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가정과 주위 환경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누적되어 성인이후의 삶에 너무 큰 미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안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 어렸을 적에 규모라는 것이 어디 있어요? 제가 아침 밥 차려 먹고 국민학교 가고 이랬는데. 왜냐하면 엄마는 새벽에 일하러 가지 아빠는 집에 안 계시고, 술 드시고 오셔서 주무시고 계시지. 저희 집에서 배울 게 뭐가 있어요? 규모가 어디 있어요? 여러분 경제교육이 어디 있어요? 저축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용돈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제가 성인이 돼서 그런 규모를 갖추고 그런 능력 있는 삶을 살려고 준비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부모님께 배운 그런 삶을 그대로 살 수는 없잖아요. 왜냐하면 은혜를 받고 나니까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 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헌신할 게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릴 게 없습니다. 이게 비단 경제입니까? 지금 경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어떤 직업, 어떤 윤리도덕, 올바른 삶, 심지어 우리 가정, 내 마음까지 다 포함된 내용 아닙니까? 드릴게 없습니다. 죄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고 또 그럴 여유도 없고. 아 이러다가 내 인생이 평생 원망하고 남 탓하고 불평하고 죄와 어울려 살다가 내 인생 끝나겠구나 이런 두려움이 20대 때 확 왔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나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은데 그러면 내가 뭘 준비해야 되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 질문으로 저는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회복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회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붙잡고 있던 모든 경제, 문화, 그들의 정치든 아니 포로로 끌려가고 이스라엘이 망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신기루, 다 사라지는. 좀 먹는 것들. 오늘 성경이 이야기합니다. 옷이 좀이 먹어서 옷장에 넣어두면 나프탈렌 모르시나, 물 먹는 하마라도 넣어놔야 오래 버티지만 결국은 옷이 다 해어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영원하지 않는 것들. 그런데 하나님이 회복 되잖아요? 그러면 어떤 거룩한 목적들이 생기죠? 나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은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될까?

 

- 여호와를 어찌 잊어버렸느냐_이사야51:12-16

 

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_이사야51:12-16

 

13절. 이스라엘이 지금 여호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여호와를 잃어버린 것 때문에 사실은 이스라엘의 모든 삶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_이사야51:16

 

16절. 하나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이 성경구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보고 이방인들보고 승주, 나를 경외하는 내 아들, 내 백성이야 이거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그렇게 전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욥기서에 보면 욥도 그러셨습니다. 사탄, 네가 아무리 해봐. 욥에 있는 거 다 뺐어봐. 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아. 하나님은 그게 너무 좋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하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입에 두고 그리고 하나님이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서 우리를 덮으신다는 것입니다. 전능자의 그늘입니다. 하나님 품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입 속에 있다고 합니다. 중얼거리고 묵상하고. 다 그 말입니다. 같은 뜻입니다. 제가 일 년에 두 번 새벽집회를 합니다. 4월, 11월에 합니다. 저는 제 개인적인 것입니다. 교회적인 기준이 아니고 전적으로 제가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새벽집회를 일 년에 두 번 합니다. 특별새벽집회 겨우 5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 새벽집회 참여율을 보고 제 목회의 성공을 가늠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새벽집회 참여율을 보고 우리 교회가 이 정도 성장했고 성숙했다라고 제가 어느 정도 가늠을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와서 은혜 받지 않으면 새벽 집회를 나올 수가 없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려고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나오는 행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새벽집회 나오는 숫자, 어느 정도 분위기를 보고 우리 교회가 이 정도구나 가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목회, 교회 농사의 열매를 새벽집회로 보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그 새벽집회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이 험한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려면 정말 깨어 기도해야 되고 깨어 기도하는 자리에 성도들이 있는 것 그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그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더라고요. 결국은 예수님을 전하며 살더라고요. 그런데 여러분 신약성경에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임마누엘이라고 하시잖아요. 그런데 그런 느낌. 여러분 솔직히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걸 느끼고 사세요? 하루에 몇 번이나 느끼세요?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는 것을 느끼는 것. 첫째는 무엇이죠?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그들 중에 함께하시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에요? 제가 성경구절을 다 인용할 수 없지만 우리가 모여서 예배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시간에 앉아있으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말씀을 들으면서 찬양하면서 느낄 수 있어요. 또 하나는 뭐냐면 우리가 예수님을 강력하게 느끼고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때, 복음을 전파할 때. 여러분 복음 전파 해보셨죠? 전도하려고 누군가에게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거 이거 쉽지 않습니다. 이거 하려면 떨리고 막 기도 나오고 안 찾던 성령님 찾고. 하나님 마음의 문을 열게 해주세요. 여러분 복음 전파하는 순간에 강력히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주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것이 지금은 다 이론, 지식이지 실제로는 없어지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그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다 겪었습니다. 뜨겁게 기도하는 것, 예수님을 전하는 것.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우리 입에 두시고 그 손으로 우리를 덮었다고 하셨습니다. 내 백성으로 말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라고 자랑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뭐라고 이야기하십니까.

 

Ⅲ.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_이사야51:17-23, 다니엘9:1-19

 

17.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네가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닥쳤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누가 너를 위로하랴 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도다 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22. 네 주 여호와, 그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네가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에게 네가 네 허리를 땅과 같게, 길거리와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_이사야51:17-23

 

17절. 분노의 잔을 마신 것은 이미 포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분노의 잔을 마셔서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런 비틀거리고 나라를 빼앗기고 완전히 망해버린 이스라엘에게 뭐라고 하시냐면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이스라엘 백성이 들을 때는 어이가 없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라가 든든할 때 우리보고 깨라고 하지, 일어나라고 하지. 이미 그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 때문에 깨지 못했고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 포로가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홀로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아브라함 이야기를 하나님이 꺼내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을 때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누구의 힘으로요? 여호와의 힘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이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그것을 경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다니엘과 같은 인물들이 포로가 되었는데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이 말씀들이 다니엘이 붙잡은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탓하고 남들은 포로 되었다고 원망하고 죽을 것 같다고 포기하고 낙심하고 그냥 정체된 삶을 살았지만 다니엘은 나는 더 이상 우상 섬기지 않을 거야,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을 거야. 내가 비록 포로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완전 목적 지향적인 삶을 산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암과 똑같습니다. 어떤 암 박사님께서 크리스천, 장로님인 것 같습니다. 암하고 죄하고 닮은 점 이렇게 해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암이 그렇습니다. 암이라는 세포는 다른 세포하고 같이 살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기만 살려고 하는 것이 암 세포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나만 살면 돼. 그래서 다 죽이는 것입니다. 멍청합니다. 암이 멍청한 세포라고 합니다. 다 죽여서 결국 암이 살아야 할 숙주를 죽입니다. 암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죽는데 암도 죽는 것입니다. 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죄는 자기만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람들이 죄에 빠지잖아요? 다른 것을 못 봅니다. 도박에 빠지거나, 음란에 빠지거나, 어떤 특별한 죄에 빠지면 다른 게 안 보입니다. 미친 사람 같습니다. 도박 빠진 사람들 미친 사람 같습니다. 집문서 팔고, 빚내고 손 잘렸는데 또 가서 도박하고 이럽니다.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죄 별거 아니야 이러시면 안 됩니다. 죄는 싸워야 됩니다. 왜? 죄를 별 거 아니야, 괜찮아 하고 별 일 없겠지 하고 놔두면 어느 날 망했어. 이렇게 죄는 끝나는 것입니다. 암하고 똑같습니다. 반대로 여러분 제가 성경 읽자, 공동체와 같이 성경 읽자, 기도하자, 신앙서적 읽자 이렇게 말씀 드리잖아요? 제 마음을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것으로 살았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제 인생을 바뀌었습니다. 성경, 기도는 여러분 잘 아시니까. 책 읽자. 제가 여러분 한 달에 한 번씩 책 읽는 거 권면해드리잖아요. 책이 주는 지혜, 책이 주는 능력 있는 삶, 책이 주는 바른 삶, 책이 주는 어떤 시야 이런 것들을 저는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 성도님들이 신앙서적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뭐라고 생각하시나면 한 달에 한 권 읽는 거 별거 아니지 하면서 안 읽으십니다. 여러분 한 달에 한권이 별거 아니지 10년이면 120권입니다. 한권도 안 읽는 사람과 120권 읽는 사람은 이렇게 격차가 벌어집니다. 여러분 세계적인 리더십들은 전부 독서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진짜 옛날에 30대 초반에 시애틀에 강의하러 갔습니다. 시애틀의 친구가 빌게이츠 섬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빌게이츠 대단했습니다. 빌게이츠 섬이 있다고 합니다. 빌게이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중에 책을 통해서 확인도 했습니다. 빌게이츠가 일 년에 꼭 휴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2-4주를 휴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빌게이츠가 무엇을 한 사람인가요? 빌게이츠가 컴퓨터 프로그램 만든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휴가 받을 때 그 섬에 핸드폰도 안 들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노트북도 안 들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뭐지? IT 전문가가? 뭐 들고 들어 가냐면 책을 한 트럭 싣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2-4주 동안은 책만 읽고 나온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휴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회사는 어떻게? 급한 연락이 오면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그 뿐이에요? 잭 웰치 책을 읽어보셨죠?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지. 그냥 많이 읽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대학생들이 얼마나 웃기냐면 여기 대학생이 있다면 제 이야기를 꼭 들어보세요. 우리나라는 대학교 좋은 곳에 가려고 유치원 때부터 준비합니다. 유치부 때부터 준비해서 죽도록. 여러분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 학생들을 불쌍해 죽겠습니다. 여행도 못 가. 요즘은 운동회도 다 없앴습니다. 애들이 낙이 없습니다. 공부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뭐라고 하냐? 너희가 좋은 대학만 가면 다 보상이 돼. 이런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애들이 정신 줄을 놓는 것입니다. 술 먹고 여자 쫓아다니고 동아리 같은 것 활동하고. 그래서 제가 대학사역 할 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후회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러면서 이야기해준 것입니다. 너희가 분명히 4학년 취업할 때 되면 후회할 거다. 지금 너희들의 그런 삶을 그러니까 놀 거 놀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봐. 너의 전공 분야의 책을 100권만 읽으면 너희 취업할 때 너희가 데리고 가려고 할 것이다. 왜 100권이냐? 우리가 논문을 한권을 쓸 때 최소 참고도서가 100권정도 되잖아요. 그 말은 한 100권정도 읽으면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학생들이 제 말을 듣나요? 자기들이 하고 있는 동아리 활동 이런 것이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은데 나중에 사회 생활하러 나가면 대학교에 했던 동아리 활동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잖아요.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죽도록 시험 봐서 A+냐 A. 막 인생이 끝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A냐 A+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독서를 통해서 시야가 열려서 나의 비전, 내가 뭘 해야 될지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것은 준비가 없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자격증 따려고 죽도록 하는데 여러분 미래는 자격증이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오는데. 남에 의해서 내 인생을 컨트롤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미래를 두고 뭘 공부해야 할지. 여러분 우리는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신앙과 내 삶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신앙이라는 것이 중심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과 내 인생은 하나여야 합니다. 맞죠?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저는 목회자 세계의 후배들, 친구들, 동료들 갑갑해 죽겠습니다. 얼마 전에도 전도사 후배가 저한테 전화가 왔는데 전화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 교회에서 너무 뭘 많이 시키고 장로님들이 자기를 불러서 페인트칠 시키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누구야, 페인트칠 시키면 해야지. 아니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고. 그러니깐 무슨 말이냐면 저는 저 같이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모교회에서 장로님이 전화가 오거든요. 왜냐하면 나밖에 전화할 사람이 없는 거지. 오전도사님 교회 지붕 수리하는데 도와줄 수 있겠냐고 말도 안하고 그냥 갑니다. 제가 지붕 수리를 배워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장로님들 하고 같이 일하면서 배우고 마음 얻고. 지금도 장로님들이 저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어요. 신앙이라는 게. 그래서 제가 전도사 후배에게 말했습니다. 야, 너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며? 그런데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한 과정은 왜 거부하는데? 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으려고 하는 그 모든 하나님이 주신 삶들은 싫다고 하는데? 우리가 그런 식인 것입니다. 이상합니다. 복음전파를 위해서 죽도록 기도하는데 전도하러 가는 것은 싫어합니다. 이런 식인 것입니다. 앞뒤가 안 맞습니다. 정말 웃깁니다.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5.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16. 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_다니엘9:1-19

 

1절. 지금 뭐냐면 원래 섬기던 아하수에로가 퇴진하고 그의 아들 다리오가 새로운 왕이 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다니엘은 그때도 총리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실력이 있었는지 여러분 대통령이 바뀌는데 총리를 계속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다니엘은 계속 했습니다. 얼마나 실력이 뛰어났는지 물론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입문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다니엘의 자기 관리. 조금만 부정부패에 빠졌으면 그렇게 못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깨끗하고 반듯하게 했는지. 다니엘의 중심을 보세요.

2절. 지금 뭘 알고 있죠? 우리가 왜 포로가 되었는지, 이 포로가 언제 끝나는지 그것을 예레미야 말씀으로 다시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이 바뀌고 나서. 그러면서 보세요. 무엇을 결단, 결심하는지 보세요.

3절.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쓴다는 것은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4절부터 다니엘이 기도하는 장면이 쭉 나옵니다. 그 기도의 끝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1.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하니라_다니엘9:21-22

 

21절. 천사장이죠. 가브리엘. 이 말은 다니엘이 저녁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2절. 천사가 와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누가요? 얼마나 기도를 뜨겁게 했는지 지혜와 총명을 줬고 다니엘이 환상을 봅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갔는데 가서 보니 현실은 비참합니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이 다 비참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비참한 게 뭐냐면 다니엘이 볼 때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다보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붙잡지 않는 것입니다. 다들 현실에 묶여 버렸습니다. 이스라엘로 있을 때와 포로로 있을 때와 똑같은 것입니다.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책을 통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알려주신 그 책을 통해. 무슨 말이냐면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나 다 망했는데 이런 수치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아. 나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어. 우리 민족 70년 포로 생활 끝나고 우리 후대들이 일어나서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도록 나 무엇이라고 쓰임 받고 싶어. 이게 다니엘입니다. 제가 새벽집회 하려고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 이 다니엘, 느헤미야 사이에 뭐가 있지 않을까요? 이 다니엘이 총리로 오랫동안 있으면서 이 말씀들이 계속 살아서 가다가 느헤미야 같은 인물들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요? 다니엘이 이 총리를 얼마나 오래했는지. 그러면서 그가 결단한 것입니다. 재를 덮어쓰고 회개하고 나 기도할거야.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두고 기도할거야. 다시는 이런 수치를 당하지 않고. 왕이 바뀌었지만. 여러분 왕이 바뀌면 이 왕은 다니엘이 다 알던 왕입니다. 왜? 그 시절에 다 알던 왕입니다. 왕의 자녀가 왕이 되었으니까. 어린 다리오가 왕이 되었으니까 내가 예전에 사자 굴에 나온 거 알지? 말 한마디면 끝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또 그 왕을 그전 왕처럼 모시고 섬겼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은 이런 것입니다. 다시는 우리 민족이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정직하게 일했고 우상을 멀리했고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꿈을 해석할 능력을 주셨고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다 공사 중인 사람 맞잖아요? 그쵸? 우리 다 공사 중인 사람 맞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진짜 나쁜 것은 뭔지 아세요? 목표가 없이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외면하고 사는 것입니다. 교회도 나쁜 교회도 어떤 교회냐면 그런 거룩한 목적이 없는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 교회는 나쁜 교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니까. 미래지향적이지 않는 교회는 나쁜 교회라는 것입니다. 스텝 업을 하지 않고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 인생은 나쁜 인생이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너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하노라. 여러분에게 주의 천사가 지혜와 총명을 주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환상을 보기를 원합니다. 미래에 대한 환상을 보기를 원합니다. 내 남종과 여종에게, 가난한 자에게, 부자들에게, 젊은이들에게, 노인에게 요엘서에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하십니다. 그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우리 가스펠교회 성도님들이 멋진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 목적이 없으면 세상에, 죄에 함몰됩니다. 뭐가 죄냐? 뭐가 죄입니까?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죄인가요? 여호와를 찾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왜 여호와를 안 찾죠?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 위해서 발전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기도할 이유도 없는 것이고, 성경을 읽을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 받아야 될지 아무런 그림이 없기 때문에 신앙과 전혀 상관없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니엘, 이사야, 아브라함을. 주님, 나를 사용해주세요. 주님, 복음 전하는 일에 정말 예수님을 자랑하는 일에 우리 인생이 쓰임 받도록. 그러려면 하나님이 나의 생명의 하나님, 나의 반석,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완전하기 때문에. 그게 믿어져야 내 삶도 환경에 따라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어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포로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포로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시겠다는 거예요. 그게 오늘 아브라함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홀로 있을 때 내가 그에게 비전을 주고, 말씀을 주고. 다 절망하고 있는데 그 어린 다니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아,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돼. 내가 포로지만 배고프지만 저 우상 제물 먹지 않을거야.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정신을 차리고 살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총리도 오래 했던 것입니다. 내가 우상을 섬기지 않아야겠다. 내가 하나님을 섬길 거야.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 후대를 위해서 뭘 준비해야 되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가 하나님 앞에 더 귀하게 이방국가 바벨론에게서도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다니면 이런 것이 있잖아요. 세상과 구별시키려는 메시지가 많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세상 속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신앙은 우리를 세상에서도 성공하게 만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지금 오랫동안 설교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받아들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죠?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을 만큼. 황폐한 땅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만큼. 가난한 자, 병든 자들에게 여호와의 날 은혜의 때를 소개할 수 있을 만큼. 여러분 세상에서 그런 교회로 이방의 빛으로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정말 깨어 기도해야 될 거 같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때가 있었네.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때에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엎드릴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겠데요. 우리 가정에 어려우신 분들, 문제가 많으신 분들. 맞아요. 저희 집도 문제가 많고 가정이 어려워요. 그게 우리에게 그렇다고 그렇게 계속 살아야 됩니까?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겠데요. 환상을 보여주시겠데요. 그 말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사야 62장에 이사야에게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내가 하나님 나라의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게 하시겠다고 그런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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