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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1-10-31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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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3부예배)
제 목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본 문 이사야 52:1-12

 

 오승주 목사

 

Ⅰ. 신앙의 열매_영적인 노력

 

제가 왜 52장 끝까지 설교 하지 않았냐면 13절부터 53장은 하나의 본문입니다. 그래서 나눠지는 부분이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대다수의 많은 교회들이 오늘을 종교개혁주일로 지킵니다. 저희 교단에서는 종교개혁주일이 따로 있지 않아서 저도 저희 교회가 내년부터 지켜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말은 16세기 종교개혁이 이맘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념해서 종교개혁주일이라고 지키는 교회들이 제법 많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발단 그러니까 종교개혁이 계속 일어나다가 기름을 딱 부어서 불화산 처럼 확 번지게 된 사건이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조항을 걸어 붙인 것이었습니다. 95개나 되는 우리의 믿음은 이런 것이다 로마 가톨릭에서 잘못하고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을 붙였습니다. 그 내용을 천천히 살펴보니까 여러 가지를 내용들이 많은데 그 중에 첫 번째 내용이 뭐냐면 주님은 신자의 삶 전체의 회개를 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루터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신자의 삶 전체의 회개를 하나님이 원하신다. 그래서 루터는 그가 하는 메시지나 글이나 모든 전달 통로를 통해서 교회가 주님께서 가르치신 참된 회개의 삶으로 돌이킬 것을 계속해서 촉구했습니다. 그래서 핍박을 많이 받은 것입니다. 가톨릭이 회개하기를 원했습니다. 계속해서. 여러분 종교개혁을 완성했다고 하는 신학자 요한 칼빈도 신자의 삶을 한 마디로 회개의 삶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칼빈 이러면 칼빈의 5대 교리, 수많은 교리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칼빈이 신자의 삶을 정의한 게 있는데 칼빈의 책들을 읽어보면 한마디로 신자의 삶은 회개의 삶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종교개혁은 어떻게 보면 회개 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회개운동이었습니다. 종교개혁만 회개운동이었을까요? 미국에서 일어났던 영적각성운동이라든지, 영국에서 일어났던 큰 부흥운동이라든지 한국에서 처음 시작된 평양대부흥운동 전부 다 무슨 운동이었죠? 삶이 변화되는 회개운동이었습니다. 회개운동이 종교개혁이었습니다. 그 종교개혁 때문에 생긴 교회가 기독교, 개신교라고 합니다. 리폼드 처치라고 하는데 지금 우리교회가 종교개혁 때문에 생긴 유산입니다. 우리는 칼빈주의를 공부했기 때문에.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칼빈이 만든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 종교개혁의 유산으로 이 자리에 있는데 놀라운 것은 교회가 놓치고 있는 종교개혁의 진짜 유산인 회개. 진짜 종교개혁의 유산인 회개는 교회가 놓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칼빈하면 이런 것을 배웁니다. 종교개혁하면 이런 단어들을 배웁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성경, 이런 것을 배웠습니다. 저희도 학교 다닐 때 Sola Scriptura 이러면서 단어 외워가면서 칼빈의 5대 교리를 적고 설명하시오. 이런 것을 학교 다닐 때 시험보고 그랬습니다. 그런 것만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이 실제 회개 없는 구원, 회개 없는 삶으로 왜곡되어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칼빈의 저서로 유명한 기독교강요만 읽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강요의 핵심은 뭐냐면 회개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싹 빠져버리고 그냥 학교 다닐 때 암송해서 적는 5대 교리 이런 것들만 목회자들 머릿속에 있으니까 그냥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이야기를 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 나라에 큰 사건이었던 세월호 사건. 그 세월호와 연관이 있는 기업? 기업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게 이제 구원파입니다. 그 구원파가 우리나라에 진짜 영향을 많이 미쳤는데 정통교회에서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이야기한 것이 뭐냐면 주의 은혜로 모든 죄 용서함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데가 구원파입니다. 그래서 구원파에는 회개가 없습니다. 그리고 일회성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회개는 한 번 하면 끝나는 거야. 그래서 은혜로 모든 죄 용서함을 받았으니까 회개가 필요 없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구원파를 이단으로 정죄했던 전통교회에서 실제 회개의 삶이 사라지고 있는 이런 아이러니. 너무 아이러니 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위기는 교회의 위기에서 오고 교회의 위기는 회개가 없는 신자의 삶에서 온다고 합니다. 회개가 사라지고 그러니까 교회가 위기가 왔고. 교회가 위기가 왔기 때문에 세상에 위기가 왔다. 그래서 다시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회개의 삶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이 회개가 사람들은 필요하다고 조차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라는 것이 죄를 느끼고 인식하는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니까 죄가 자기들이 스스로 죄라고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그 능력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감각을 다 빼앗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무섭습니다. 그래서 죄의 치명적인 결과, 죄의 치명적인 열매가 뭐냐면 회개를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안 하면 구원 받을 수 없잖아요, 회개를 안 하면 천국에 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게도 하나님의 은혜는 십자가죠.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는 죄가 이렇게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회개를 가능케 하기 때문에 기적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마주하고 있으면 회개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막 목사 안수를 받고 30대 초중반 때 진짜 많이 강의를 하러 다녔습니다. 지금은 불러주는 데가 없는데. 그때는 얼마나 많이 불러주셨는지. 청소년 학부모 세미나라든지, 교회에서 특별한 예배를 드리면, 해외든 국내든 많이 불러주셨습니다. 그 때 제가 새 차를 샀는데 첫 해에 34,000km를 탔으니까. 택시죠. 제가 20만km가 넘어서 차를 처분을 했는데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강의를 많이 하러 가면 늘 제 설교의 어떤 특징, 제가 전달하는 것은 늘 한 가지였는데 그게 뭐냐면 하나님 앞에서의 중심을 강조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제가 되게 중심을 강조했습니다. 중심이 중요하다, 마음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목사님들과 아이들이 되게 좋아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중심이 중요하고 마음이 중요하다고 믿었고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강조하는 그 중심이 삶이 되지 않으니까 그 중심이 저한테는 위선이 되었습니다. 거짓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강조하면서 저는 위선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무섭죠. 많은 분들이 설교를 듣고 설교로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요즘 시대에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면 목사님 설교의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합니다. 요즘은 다 고등교육이기 때문입니다. 대학교까지 다 졸업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의 대지가 이거고 하시고자 하시는 포인트가 이거고 다 캐치해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설교의 내용을 가지고 은혜 못 받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은혜가 아니냐? 그 설교를 가지고 내 삶으로 가서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설교 전과 후의 삶이 똑같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거짓말, 나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이번 주 설교에 예를 들어서 진실하게 살아라, 정직하게 살아라 말씀이 나왔습니다. 그게 너무 찔려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면 거짓말을 해야 되는 상황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성령의 도우심도 구하고 눈물로 다시는 그런 삶, 죄를 짓지 않겠다고 기도도 하고 내가 다시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그게 은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은혜는 목사님 설교를 지식적으로 이해하는 걸 은혜라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막 포럼 잘 하고. 노트에 잘 정리하고. 이런 것을 은혜라고 하는데 그건 은혜가 아닙니다. 그 은혜는 승언이도 알 수 있는 은혜입니다. 말씀을 논리적으로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아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행함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회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행함이지. 물론 여러분 중심이 있기 때문에 행함이 나오는 것. 제가 얼마나 중심을 강조하고 평생을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산 목사인데 그것을 제가 배제하고 행함이나 우리의 삶이나 이런 율법적인 이야기를 왜 계속하는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진짜로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가 늘 위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Ⅱ.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_이사야52:1-2

 

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2.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_이사야52:1-2

 

1절.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네 힘을 낼지어다. 내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이 아닙니다. 네 힘을 낼지어다. 마치 6-7살 된 저희 아들 한빈이를 보고 옛날에는 갓난아기일 때는 옷을 다 입혀줬지만 이제는 옷을 꺼내놓고 한빈아 옷 입어 하는 것처럼, 밥 차려 놓고 옛날에는 다 떠 먹여줬지만 평생 떠 먹여주면 아이가 바보 되잖아요 세상에서. 그러니까 이제는 밥 차려 놓고 숟가락 들어, 밥 먹어, 엄마 목말라, 물 따라서 마셔 이렇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나요?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2절. 굉장히 강한 어조로 행함을 강조하십니다. 일어나서 앉을지어다. 더 심한 말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포로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실 계획을 다 하셨지만 이스라엘에게는 뭐라고 이야기 하셨냐면, 유다백성들에게는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포로에서 해방시켜주시지 않으시겠다고. 네 힘을 내라고 합니다. 잘못 들으면 그럼 우리가 왜 기도가 필요해? 우리가 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말씀이 필요해? 우리가 알아서 살면 되지? 이럴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부정한 자와 할례 받지 않은 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섞여서. 마치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들에게 사로잡혀서 산단 말이에요. 여러분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들에게 사로잡혀서 사냐, 아니면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냐, 영향을 받고 사냐, 영향을 주고 사냐는 굉장히 차이가 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목줄을 하고 있습니다. 왜 목줄이 나오냐면 그 당시 고대 근동지방의 노예들은 전부 목에 쇠줄로 끌고 다녔습니다. 노예시장에 가면 전부 목에 쇠줄 같은 것을 해가지고 줄로 짐승처럼. 그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지금 바벨론의 노예이지 않냐. 세상의 노예이지 않냐.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해방시켜 주실 건데 어떤 해방할 만한 힘을 기르라는 것입니다. 힘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능력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신다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응답이 어떤 응답이죠? 우리가 기도하면 그 기도대로 살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 기도대로 살면 당연히 자연스레 응답이 오겠죠.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하나님께 너무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하루에 기도를 3시간씩 했습니다. 새벽에 한 시간, 저녁에 한 시간, 그리고 낮에 수업 사이사이에 공간이 있으면 저희 모교에 개인기도실이 있었는데 거기서 잠자는 애들도 있고 쉬는 애들도 있는데. 거기 가서 또 기도하고.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하루에 2-3시간씩 기도하고 기도 끝나고 자취방에 가서 친구들하고 놀고 음담패설하고 내 삶은 그대로고. 그러면 그 2-3시간 기도가 헛된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하나님께 쓰임 받기로 기도했다면 기도하고 나서 성령 하나님께서 어떤 지혜를 주시죠? 저의 발걸음을 어디로 인도하시죠? 도서관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라고. 네가 정말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목회자가 되려면 공부해야 되고 너의 그릇된 삶들을 바꿔야 되고 그런 사건과 환경을 주셔서 저로 인해서 늘 발전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했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게 기도응답입니다.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무슨 확신을 할 수 있냐 여러분이 정말 간절히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목에 걸린 줄을 풀 수 있는 힘을 주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목에 줄이 걸려있다는 것은 세상에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해서 그들에게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_이사야52:3-6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4.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5.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_이사야52:3-6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냐면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되어서 갔는데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 갔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이냐면 번역이 조금 이상하긴 한데 정확하게 원어에서는 이런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는데 포로로 끌려가는 이유를 모르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게 제가 예배 시작할 때 읽었습니다(호세아). 자기들이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갈 줄 알았더니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래놓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결과로. 그런데 까닭 없이 잡혀 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가 어떻게 하란 말이냐? 너희가 내게 기도도하지 않았고 너희가 나를 알지도 않았는데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하랴? 지금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너희들이 일어서라, 여호와를 알아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그제서야 그들이 내가 이 말을 했던 것들이 진짜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제가 교회사를 공부하려고 부흥 자료를 모으고 있는데 제가 70-80년대 교회 부흥사를 공부하다보니까 그 시대가 궁금했습니다. 제가 7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제가 어릴 때여서 잘 기억은 안 나고 저희 교회 장로님, 권사님들은 70, 80년대가 청년 때였으니까 기억이 생생하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교회가 진짜 부흥 할 때가 어떤 때냐면 6.25 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가 제법 오랜 시간 비슷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새마을운동을 하고 고속도로고 깔리고 이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래서 실제로 70년대 하반기 80년대 초반에 한국교회가 막 부흥할 때 우리나라 상황을 보니까 진짜 가난한 것입니다. 이렇게 가난할 수 있을까? 그래서 생긴 말이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보릿고개가 무슨 말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모르는데. 보릿고개가 뭐에요? 쌀농사를 지었는데 쌀농사 지은 것을 다 자기가 먹으면 좋은데 땅 주인에게 줘서 농사를 지어도 쌀이 얼마 없는 것입니다. 이 쌀로 먹는데 겨울 내내 먹어야 되는데 다 못 먹습니다. 부족합니다. 애도 많이 낳아가지고. 2월 달쯤 되면 쌀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2월 달부터 봄에 농사지어서 음식이 나올 때까지는 버텨야 되잖아요? 그래서 보리를 먹는다는 것인데 사실 보리도 못 먹었다고 합니다. 산에 가서 칡넝쿨 이런 거 가져다 먹고 나물 같은 거 가져다 먹고. 그러니까 얼마나 가난했는지 아시겠죠? 얼마나 가난했는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도 학교를 못 보냈습니다. 대학이 뭐에요. 대학 가는 아이들은 진짜 잘 사는 아이들이고 고등학교, 중학교도 못 보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디 가서 일을 할 수 있는 공장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그런 공장도 없던 시대였습니다. 다 농사짓고. 잘 사는 집에 가서 식모살이 하고. 저희 누나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어려운 시절입니다. 그 시절에 우리나라가 농사가 주업이었는데 교회를 간다? 주일날. 얼마나 욕을 먹었겠어요? 다 농사짓고 있는데. 시골에 안 가보셔서 그렇습니다. 농사철에 주일에 모내기를 하는데 혼자 빠져서 교회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생겨난 것이 금요철야예배 같은 것입니다. 낮에는 일하니까 교회 가서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빨래하고 밭농사 짓고 논농사 짓고. 마음에 원통한 것을 풀 데가 없습니다. 기도하고 싶은데. 그래서 금요일 밤에 밤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에 10리길, 20리길을 걸어서 4km, 8km, 10km 이렇게 걸어서 새벽에 가서 예배드리고 은혜 받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농사철이 아닐 때는 부흥회를 만들어서 교회가 부흥회를 하고. 믿음으로 살겠다고 발버둥을 친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려고 말씀을 읽고 배우고. 그 당시에 교회 안에 일어났던 운동이 뭐에요? 성경공부입니다. 얼마나 많은 소그룹들이 성경공부를 했는지 모릅니다. 장로님들이 모여서 성경공부하고. 안수집사님들이 모여서 성경공부하고. 권사님들이 모여서 성경공부하고. 목회자가 몇 명 없으니까 장로님이 성경공부 리더가 돼서 성경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여러분 지금은 신학공부를 잘해서 교역자들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목사도 귀하던 때입니다. 성경공부가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그 때 생겨났던 것이 뭐에요? 기도원입니다. 기도원에는 농사 다 지어놓고 정말 기도를 하러 전국의 기도원에 가서 3박4일씩 부흥회 참석하고, 금식기도 하고. 그러면서 삶은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왜 최선을 다해서 살았냐? 이유는? 무엇 때문이에요? 내가 예수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누가 되지 않으려고. 예수님께 누가 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런 결과 한국 교회가 부흥했는데 한국 교회가 얼마나 부흥했냐면 동네마다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술 끊고 담배 끊고 잘못된 행실 끊고. 한국교회가 부흥함과 동시에 교회만 부흥했어요? 가난한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 지하자원도 없는 대한민국이 발전을 세계에서 유래 없는 경제, 문화, 정치 모든 교육, 모든 분야에 발전을 이뤘습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동시에 모든 분야가 발전한. 경제만 발전한 것이 아닙니다. 교육, 정치. 정치도 우리가 욕하지만 사실 민주주의가 엄청 발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 가운데 그 열매 그 결과 속에 지금 살아가는데. 지금은 우리 자녀들 교육하는 거 보세요. 아이들이 공부만 잘하고 하겠다고 하면 대학교, 대학원, 유학까지 다 보냅니다. 지난주에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TV를 보니까 초등학생이 학원을 17개를 다니더라고요. 계산이 안 됐습니다. 일주일이 6일인데 어떻게 학원이 17개가 가능하지? 하루에 3-4개씩 다니는 것입니다. 그 말은 좋은 말로 말하면 부모가 다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입니다. 정말 먹고 살기 편해졌고. 저희 교회 성도들도 목사님 너무 어려워요, 힘들어요, 코로나라서 경제가, 사업이 잘 안되고 하는데 얼마 전에 해외여행 다녀오시고 제주도 갔다 오시고 이러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려움이 예전과 다른 것입니다. 보릿고개 시절과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죠? 죄송하지만 자녀들이 다 믿음에서 떠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교회, 한국 교회 대학부 청년부 통계를 내지 않더라도. 여러분 70년, 80년, 90년대까지 한국의 대학교 안에 무슨 일들이 벌어졌냐면 정말 많은 기독교 동아리들이 생겼습니다. CCC를 비롯해서 네비게이토, SFC, IVF 수많은 성경, 믿음 동아리 활동이 생겨서 그 사람들이 그냥 내 동아리, 동아리 활동이 아닙니다. 대학복음화. 그래서 대학생들이 학교 정원에서 운동장에 모여서 같이 찬양하고, 손들고 찬양하고 그리고 복음이 담긴 그런 소책자들을 나눠주고 전도하고. 그런 대학생들이 모여서 수련회하고. CCC 같은 데는 거지 순례 전도라고 해서 수련회가 끝나면 아이들이 시골에 가서 농사 도와주고 복음 전하고 교회 가서 건축하고 교회 청소해주고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이 정말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기독교 학생들, 기독교 동아리가 거의 다 전멸입니다. 요즘 대학생들이 대학교에 모여서 기도하나요? 지난주에 할로윈 축제가 있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할로윈이라고 사 입고 가고 했는데. 할로윈 축제가 뭔지 아세요? 귀신이 찾아오는데 귀신에게 잡혀가지 않으려고 귀신 복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이는 것입니다. 그게 이제 무속 인들이 하는, 무당들이 하는 행사를 우리나라가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도 아닌데 유럽도 아닌데. 우리나라에서 상에 과일 깎고 명태를 놓고 지내는 제사를 미국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축제로. 얼마나 웃겨요. 지금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좋다, 나쁘다 할 수 없겠지만 복음 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대학교는 제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미전도 종족이다. 미안하지만 대학들에게. 한국에 미전도 종족은 저 멀리 네팔 이런데도 있지만 우리 한국 대학교다. 완전 전멸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 대학생들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죠? 저는 앞으로 저희 교회가 조금 여유가 생기면 제일 먼저 대학전문사역자도 세우고 대학관련 사역에 재정을 투자해서 진짜 우리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교회 미래를 위해서 대학사역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교회는요? 대학만 그런가요?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회의, 기획, 시스템, 세상적인 논리, 합리성, 세상적인 어떤 조직이나 틀을 교회가 다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교회가 굉장히 세상 같습니다. 어떨 때는 비즈니스 하는 회사 같습니다. 교회가 그런 곳인가요? 옛날에는 교회 오면 장로 기도회, 안수집사 기도회, 권사 기도회. 기도회가 중복되었습니다. 성가대도 기도회, 모이면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다 사라졌습니다. 그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여의도에서 진짜 해외에서 유명한 부흥강사가 온다고 하니까 이 나라와 민족 복음화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 자녀들이 믿음으로 살도록 기도하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이나 특별한 집회의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전국에서 김밥 싸들고 도시락 싸들고 여의도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은 KTX라도 있지 그때 기록에 보니까 부산에서 여의도 집회 참석하려고 2박 3일을 차타고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뭐했습니까? 모여서 뭐했을까요? 100만 명이 모였는데 모여서 회개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말씀 듣고 회개했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흰 소복, 한복 같은 거 입고 오셔서 거기서 회개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회개가 일어났는지. 그리고 하나님 찬양하고, 그 분들이 자기의 교회로 자기의 직장으로 자기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서 복음 전하려고 기도하고 교회 세우고 자녀들 신앙으로 교육하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그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분들이 했던 기도를 놓치고 그 분들이 붙잡았던 예수의 이름을 놓치고 있는 거 아닌가. 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오늘 이사야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확인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_이사야52:7-10

 

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_이사야52:7-10

 

7-9절. 여러분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면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포론데 좋은 소식을 어떻게 전해? 포로가 좋은 소식이 어디 있어요 여러분? 아니 포론데 복된 소식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어디서 가져와요? 포로가 복된 소식을 어디서 가져와요? 목줄이 걸려 있는데, 노예로 살고 있는데. 심지어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 산은 실제 그 산이 아니고 지형적인 산이 아니고 노예라는 산입니다. 내가 지금 포로가 되었다는 그 산입니다. 환경적인 상황적인 그 산입니다. 산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좀 억울했을 것 같습니다. 아니 하나님 지금 우리가 포로인데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라고 우리한테 이야기를 하냐? 심지어는 뭐라고 해요? 포론데 일제히 소리 높여 하나님을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더 황당한 것은 9절입니다. 황폐했는데 무슨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여러분 그럴 수 있겠어요? 그런데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진짜 제 마음에 전율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전율이냐면 그렇다, 우리가 이렇게 목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다 따져서 먹고 살기 위해 살아야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되는 거구나.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이 자리에 부르신 이유는 여호와는 나의 구원자라고 선포해야 되는 거구나. 산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어야 하는 거구나.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시온으로 돌아오신다고 하셨고 우리의 눈을 마주하신다고 하셨고 땅 끝까지 하나님이 거룩한 팔을 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그것을 보게 만드신 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맞구나. 우리가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슨 목적으로 공부하고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기업하며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잃어버리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신자가 아닙니다. 예수쟁이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이 황폐했다고 해서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가 포로라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 80년대 부흥 때는 사실 바벨론의 포로만큼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사 공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80년대 부흥운동 이러면 하나님이 기름 부으셔서 80년대 이런 부흥이 일어났어 이렇게만 알고 있지만 그 시대를 공부하다보면 가슴이 저립니다. 여의도 집회에 하루 참석하려고 2박 3일을 부산에서 온 스토리도 있고, 새벽기도를 12-13km 걸어서 매일 다니는 스토리도 있습니다. 별거 아닌 거 같잖아요? 그분들의 대충 살았을까요? 새벽기도 갔다 왔으니까 하루 종일 먹고 자고 놀래 쉴래 이랬을까요? 아니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포기하시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것도 정말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맞아요.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해야 되기 때문에 기도를 못한다? 성경을 못 읽는다, 아니 우리가 복음을 못 전한다? 그러면 그거야말로 황폐한 삶이죠.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에 대해 아멘 했으면 좋겠지만 아멘이 잘 안 나오면 정말 가슴 치면서 주님, 회개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이래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11-12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Ⅲ. 너희는 떠날지어다_이사야52:11-12, 사무엘하11:27-12:18, 시편51:1-13, 1:1-6, 호세아5:4-5, 5:15-6:1-3

 

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_이사야52:11-12

 

11절. 부정한 것을 만졌다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성가대일 수도 있겠고, 영적인 지도자들, 제사장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는데 부정한 것을 만지고 계속 죄 속에서 떠나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있다면 그러면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고 뒤에서 호위하시리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겠죠. 심지어는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스스로 정결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나요? 거기서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고 거기서 떠나는데 황급히 나오지 말고 도망치듯 나오지 말아라. 죄에서 떠나는데 우리 삶을 정결하게 하는데 대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기서 대충 도망쳐 나오면 다시 포로로 끌려가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죠? 황급하게 나오고 회개도 하지 않고 죄 사함도 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정결하지도 않고 그냥 내가 강제로 너희를 끌고 나오면 너희 나와서 또 우상 섬겨서 다시 포로로 갈 거야. 그래서 황급히도 나오지 말고 도망하듯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회개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똑바로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고 예배할 수 없었냐?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 속에 있었기 때문에. 죄가 우리 마음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죄 이러면 술, 담배 이런 거라고 생각하지만 술, 담배가 죄가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하도 술, 담배를 심하게 해서 술, 담배를 죄처럼 선교사님들이 이야기해서 그런 전통이 생긴 것이지. 진짜 죄는 마귀가 우리 마음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싫은 것입니다. 그게 죄입니다.

 

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_사무엘하11:27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_사무엘하12:1-18

 

사무엘하 11장, 12장에 다윗의 죄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냥 우리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했다, 성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성적인 범죄가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고대근동지방의 한 강력한 나라의 왕은 기본적으로 첩이 100명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너 내 부인해 이게 그 가문의 영광이었고 밥 먹고 살 수 있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100번째, 1000번째 이런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왕의 부인이 된다는 거 자체가 우리 가정을 다 먹여 살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밧세바를 범한 사건보다 그 뒤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성경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뭐였죠? 범한 여자가 우리야의 아내인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의 아내인 가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 우리야가 누구냐?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사울 왕이 악신이 들려서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광야로 쫓겨났습니다. 광야에서 11년-13년 정도 광야에서 보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섭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다윗이 왕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완전히 악해서 무너질 때까지, 다시 말해서 다윗이 왕으로 준비될 때까지 광야에서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광야에서 다윗이 혼자 괴롭고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고 찬양하고 하는데 아닙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 신앙도 회복했지만 뭘 회복했죠? 자기 팀 메이트들을 회복했습니다. 그 광야에서 만났던 사람들, 군사들만 300명이 넘습니다. 장수들만. 그리고 돈, 광야에서 어마어마한 재정적인 후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딱 적절하게 다윗이 왕권을 물려받을 수 있는 정치적인 세력 이런 것들이 다 준비되었을 때 사울을 폐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가 엄청나게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외롭게 하나님만 의지하게 했다고 알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다윗의 영적인 상태였고 실제로는 다윗이 정말 도망치고 도망자로 다닐 때 만났던 사람들이 그 당시의 장수들인데 이 사람들이 다윗이 왕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도왔을 까요? 아니죠.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통일해버렸습니다. 엄청나게 큰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를 다윗 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광야 때 만났던 사람들이 다 한 자리씩 한 것입니다. 그냥 관계이겠어요?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인데? 우리 개척했을 때 개척 멤버들이 전도사님들이 제가 지금은 교회가 작아서 못하지만 우리 교회가 커지고 사역이 많아지면 전도사님들을 잊을까요? 절대 안 잊겠죠. 성민 간사 같은 분들 제가 마음에 은혜를 잊지 않겠죠. 그런 것처럼 다윗은 우리야는 정말 사랑했을 것입니다. 아마 형님, 동생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야의 아내를 범했습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워요? 그래서 다윗이 그냥 일반 왕이었고 일반 장수였으면 네 부인 내 부인 할게 이랬을 건데 사실 이래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야를 부릅니다. 전쟁 중인 우리야가 왕이 부르니까 급하게 옵니다. 자기를 호위하는 군사들과 자기 참모들과 급하게 옵니다. 그리고 왕 앞에 나옵니다. 씻지도 않고 나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야기합니다. 우리야 네가 전쟁 중에 고생이 많구나. 네가 전쟁 중에 너무 고생이 많으니까 오늘 너희 집에 가서 하룻밤 자라. 수법이 뻔 하잖아요. 왜? 임신 했거든. 밧세바가 임신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룻밤 자라. 다윗이 우리야를 생각하고 사랑한 것입니다. 그나마. 그런데 우리야가 얼마나 충신이냐?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자기 군사들이 있는 막사에 가서 잠을 잔 것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가서 자줘야 스토리가 풀리는데 그 다음 날 또 불렀습니다. 네가 왜 집에를 안 가냐? 왕이시여 제가 전쟁을 어제까지 같이 치르고 온 군대가 지금 막사에 있는데 나 혼자 편히 잘 수 없습니다. 그랬더니 다윗이 또 머리를 썼습니다. 그럼 그 군사를 다 불러라. 내가 음식을 베풀겠다. 왕이 그렇게 한다니까 음식을 먹고 술을 먹었습니다. 네가 음식도 먹고 술도 먹었고 그랬으니 네 부인에게로 가라. 놀라운 것은 부인에게 가지 못했습니다. 왜? 술 취했는지 안 취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군인하고 잔 것입니다. 그 정도로 괜찮고 충신입니다. 끝내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군대 총 지휘관을 불러서 뭐라고 이야기를 합니까? 우리야를 최전방, 최전선으로 보내라. 지금은 최전방, 최전선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는 뭐로 싸우던 때에요? 칼, 활로 싸우던 때입니다. 최전방으로 간다는 것은 목숨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합법적인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냅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그때까지 자기가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그것을 엄청 책망합니다. 그때 기도했던 기도가 시편 51편입니다.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_시편51:1-13

 

다윗이 두려워했던 것이 11절에 나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그러니까 다윗이 죄를 지을 때는 그가 구원의 즐거움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다윗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회개했을 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너의 회개를 받겠다, 내가 너를 용서하겠다. 다윗 너를 용서하겠다. 그러나 네가 지은 죄에 대한 값은 받아야겠다. 그게 뭐야? 네 자녀들에게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무서운 벌을 내리셨습니다. 칼이 떠나지 않는. 실제로 다윗 자녀들은, 이복형제들은 다 칼부림 나서 서로 죽이고 압살롬은 아버지를 반역하고 솔로몬이 왕이 되었지만 결국 이스라엘 나라는 분열되었고 우상을 섬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다윗 자녀들이 전부 칼부림 나고 죽고 비참했습니다. 다윗의 자녀들은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것을 평생 후회하고 쓴 시가 시편 1편입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_시편1:1-6

 

이거는 그냥 이렇게 신앙생활 하세요 이렇게 쓴 것이 아니라 악인들의 길에 가지 말라, 자기 자녀들에게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라, 죄인들의 길에는 밧세바 사건이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는 것은 인구조사 사건입니다. 다윗이 그것을 염두 해두고 쓴 것입니다. 인구조사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전염병으로 초토화 되었습니다. 다윗은 평생 그 사실을 후회하거 회개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녀들, 후손들에게 그렇게 살지 않도록 이런 시편을 남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중심이 깨끗하면 되나요? 마음을 지키면 되나요? 다윗이 마음이 없었나요? 중심이 없었나요? 얼마나 중심이 깨끗한 사람이었나요. 그런데 은혜의 자리를 벗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몸뚱아리가 은혜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몸뚱아리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 중심을 지키는 방법이고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이 깨끗하면 돼, 중심이 바르면 돼 이렇게 말을 하는데 그게 행동으로 삶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위선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 주은 전도사님과 운동을 하는데 주은 전도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자세는 이래야 돼요. 이런 이야기를 진짜 자주 합니다. 운동에서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농구를 하든, 테니스를 하든, 수영을 하던 자세부터 배우잖아요. 자세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주은 전도사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니까 연륜도 많고 공부도 제가 조금 더 했을 것이고 책도 주은 전도사님보다 조금 더 읽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주은 전도사님이 하는 말을 알아 들을까요? 못 알아 들을까요? 다 알아먹습니다. 아 맞아, 자세 그렇게 하면 되지.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 듣고 자세가 그대로입니다. 첫 마디가 운동 안하셨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연습을 안 하고 그대로면 그것은 제가 그 말을 알아듣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 말을 제가 진짜 알아들었다면 고치려고 노력했겠죠. 왜 그대로 갔냐? 못 알아들은 것입니다. 국어는 알아 들었지만. 설교도 그렇습니다. 80년대는 카세트, 테이프도 없던 시절입니다. 목사님 설교를 교회 가서 직접 듣지 않으면 못 듣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는 왜 심방이 있었냐면 장로님, 권사님들이 왜 심방을 했냐면 목사님 설교를 듣는 사람이 농사 짓느라고 안 오고 못 오는 사람들에게 가서 목사님 이번 주 설교가 이거였어요 라고 전달해주는 것이 심방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 유튜브 보내주면 됩니다. 이해가 되시죠?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런 심방은 필요가 없습니다. 직접 듣는 것이 전달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편해졌고 말씀 듣기가 편해졌고 모든 것이 다 좋아졌는데 왜 사람이 변함이 없죠?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고 그런 삶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악인들은 뭐라고 이야기해요?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합니다. 가벼운 것입니다. 본인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죄는 우리 인생을 가볍게 만듭니다. 하찮게, 아무 생각 없이, 감정대로 살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망하는 길, 악인들의 길은 잘 사냐, 못 사냐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인정하지 않는 길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4.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5.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_호세아5:4-5

 

행위. 이스라엘의 행위가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지었던 그 삶이 행위가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게 했는데 그 행위를 만드는 유발하는 게 뒤에 있죠? 여기서 음란은 성적인 음란이 아니라 구약의 음란은 우상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남편이기 때문에 예수님 놔두고 우상 섬기는 것을 음란이라고 성경은 표현을 합니다. 지금도 남편 놔두고 다른 남자 만나면 바람  피는 거잖아요? 불륜이잖아요? 음란인 거죠? 그런 것처럼,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5.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_호세아5:15

 

하나님이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_호세아6:1-3

 

3절. 알았나요?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은 끝내 몰랐습니다. 만약 여호와를 알면, 여호와께 돌아가면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왜 새벽빛이냐면 밤새 어둡고 캄캄한 시절을 다 보내고 새벽에 빛이 오는 것처럼. 왜 늦은 비냐면 가뭄을 다 겪고 가뭄 끝에 오는 늦은 비처럼. 성경의 표현이 틀린 표현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회개해야 될까요? 회개가 뭔지 지금 이해가 되시죠? 마음속으로 회개해야지, 아니요. 하나님이 하시겠지, 아니요. 우리 기도도 그렇잖아요. 생각으로 기도하면 돼지, 아니요. 여러분 생각으로 기도가 됩디까? 밥 먹으면서, 화장실에서 기도가 됩니까? 솔직히? 군대나 가면 그렇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서 성경은 기도하는 자세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제사 드리는 방법 레위기에서 하나하나 다 가르칩니다.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열매는 행위, 행함으로 얻는 것입니다. 회개는 생각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회개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다시 우리 교회 안에 성경공부가 시작되기를 원하고 다시 철야기도가 시작되기를 원하고 다시 우리 자녀들이 결단하고 은혜 받는, 다시 우리 친구들, 가족들, 예수님 믿지 않는 우리 친척들 이름을 적어 두고 함께 기도하고. 우리 가정과 자녀들 이름을 내고 교회가 같이 기도하고. 그래야 되지 않을까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삶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삶, 은혜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 교회가 다시 교회다워지도록. 제가 2주 전에 목회자 모임이 있어서 1박2일 다녀왔습니다. 갔더니 교회 소식들 서로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가 12월에 임직식을 하는데 임직식이 소문이 났습니다. 저희 교회 임직식하면 임직자들이 자기 가족들 오면 기념품 주잖아요? 수건, 컵, 우산 같은 거. 우리는 그것도 교회 예산으로 다 삽니다. 떡 같은 것도. 임직자들이 단 만원도 걷지 않습니다. 개별적으로 헌금은 할 수 있지만 단 10원도 걷지 않고 예산을 다 편성해서 임직식 자체를 교회 예산으로 다 진행을 합니다. 임직자들이 헌금에 대한 부담이 없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평상시에 헌금을 하시니까. 친구들이 선배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승주야 너무 심하다 그러면서 그래도 네가 개척했기에 할 수 있는 거다, 대단하다 그러면서. 그리고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칭찬을 하는데 좀 부끄럽더라고요. 그게 정상인데.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디 교회는 빚 갚으려고 임직식 했다더라. 어디 교회는 뭐 할려고 임직식 했다더라. 그러니까 임직식 하는 것이 깨끗한 동기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목사들이 합니다. 압니다. 자기들도 그런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어쩔 수 없이 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교회가 세상에서 구원의 통로가 되려면 정말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이곳에 와서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서 천국 가는 여정을 걸어가는 그런 신앙생활이 우리 안에 회복이 되려면 그거는 어떤 프로그램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여야 되고 회개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으로 옷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네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이 옷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으로 옷 입으라고 합니다. 은혜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보혈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의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옷을 입으라는 말은, 네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는 말은 성도의 모습에서 뭐가 보여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보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산을 넘는 아름다운 발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으면 산을 넘을 수 있습니다. 환경도 뛰어넘을 수 있고 상황도 뛰어넘을 수 있고  그리고 내 이웃이 우리 가족들이 예수님이 우리의 모습 속에서 보이는 것입니다. 옷은 그 당시에는 신분을 상징하고 사람들의 위치를 하던 시절입니다. 지금과 다릅니다. 예수로 옷 입으라는 것입니다. 거룩으로 옷 입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도록.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도록. 교회가 무슨 사역을 하는지 교회가 어떤 사역을 하는지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도록.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삶이 죄로 말미암아 그 옷을 입기를 거부하고 여태 살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 취해 살면서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교회는 교회 모습을 잃어버렸고 그러는 동안 그리스도인은 거룩을 잃어버렸고 그러는 동안 복음 전하는 아름다운 발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자녀들, 청년들을 잃어버렸고. 우리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삶이 다시 회개하여 주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삶이기를 원하고. 우리 삶에 다시 거룩해져서 다시 주님께 쓰임 받는 정금과 같이 정결한 삶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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