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2021-12-19 주일예배

2021-12-19 주일예배.hwp
0.32MB

2021년 12월 1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2부예배)
제 목 승리해야만 하는 신앙생활
본 문 이사야 58:1-14

 

 오승주 목사

 

지금 이사야는 저와 여러분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주고 있습니다. 아마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해야 하는 회복의 메시지, 소망의 메시지를 주는 그런 배경을 가지고 설교를 들으시면 도움이 많이 되실 것 같습니다. 

 

Ⅰ. 만일 우리가 승리하지 못하면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인간은 생각한다, 그래서 존재한다. 이런 철학자들의 말도 있듯이 생각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인데 이 생각이 우리 인생을 되게 많이 좌우합니다. 그래서 이 생각을 따라서 살게 되고 이 생각을 따라서 행동하고 말하고 이렇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의 모양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 많은 리더들, 성공한 사람들, 존경 받는 사람들이 하는 공통적인 이야기가 자기 생각대로 살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자기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이 맞다 라고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당연히 맞죠, 그런데 리더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살면 반드시 실패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은 주로 뭐냐면 책을 본다던지, 내 생각을 잠깐 멈춰서 명상을 한다든지, 내 생각이 맞는지 그 똑똑한 사람이 멘토를 만나고, 우리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 레슨을 받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보통사람들은 그런 훌륭한 사람들도 자기 생각을 믿지 못해서 생각을 바르게 갈 수 있도록 공부라는 것을 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옳다 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맞아, 내 생각이 내 삶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어 라고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굉장히 냉정해야 합니다. 과연 내 생각이 옳은가? 과연 내 생각은 옳은가? 여러분 이것을 성경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인간은 모두가 다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걸 원죄라고 합니다.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과 용서 즉 복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우리가 구원받아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고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오류에 빠져있냐면 그 죄가 육신의 죄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죄가 육신만 오염시켰다라고 우리는 생각하는 경향이 되게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칼빈은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고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여기서 전적은 우리의 생각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육신만 죄인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도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우리 육신은 교회를 와서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심지어 목사가 되는데 생각은 변하지 않는. 생각은 회개되지 않은. 생각은 새로워지지 않는 상태로 신앙생활 하는 경우가 되게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라고, 우리가 육신의 축복을 이렇게 받고 우리가 창조의 섭리를 따라서 이렇게 회복하면 이런 삶을 살면 우리의 육신, 우리의 삶은 이렇게 될 거라고 말씀을 믿지만 그 말씀이 우리 생각도 새로운 삶, 새로운 생각을 하도록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셨던 것은 우리 육신을 변화시키는 것도 있지만 우리의 생각 속에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생각 속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야 되는데 그리고 우리 생각이 말씀에 순종해서 말씀대로 믿고 살아야 되는데 그게 어렵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생각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그냥 생각은 전혀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이 내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아무렇게 살면서 육신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다는 이런 오류를 우리가 범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각인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도 여전히 죄로 물든, 죄로 오염된 내 생각이 옳다 라고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들, 복들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정말 천국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면 우리가 정말 구원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삶과 업,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철저하게 내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당신의 모든 기업, 주시고자 하시는 모든 축복들, 복을 주시려고 다 준비하고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실패하고 우리 인생이 실패하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는 승리할 것이고 믿음으로 완전히 승리해서 하나님의 천국에 입성할 것이라고 믿는데 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복들,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냐? 그건 우리의 생각에 신학적인 오류들이 있지 않나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당신의 백성들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복에 이르는 길을 주셨는데 특히 오늘 본문에 그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에 이르는 길, 첫째는 무엇이냐? 첫 번째 조건은 거짓된 금식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Ⅱ. 승리 : 하나님의 복에 이르는 길

 

- 거짓된 금식에서 벗어나라_이사야58:2-9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_이사야58:2-9

 

3-4절. 여러분 금식해보셨습니까? 혹시 나는 정말 금식을 해봤다? 굶식 말고 다이어트 하려고 굶으면서 괜히 하나님 앞에서 금식인 척 그거 말고 진짜 내가 어떤 기도제목, 내가 어떤 질병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정말 간절히 금식해보신 분 계십니까? 없으세요? 저는 신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제 친구들이 금식을 1년에 1번씩 했습니다. 기도주간이 있었습니다. 참 좋은 제도가 다른 교단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들하고 1년에 한 주(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금식하면서 나라와 학교와 우리의 미래를 두고 기도하는 시간을 매년 가졌습니다. 저는 일주일 금식을 4년 한 것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무것도 안 먹은 것입니다. 이제 20살짜리가 하루, 이틀 굶는 것이 진짜 곤욕이었습니다. 라면도 생각나고 피자도 생각나고 누가 줘도 안 먹는 고구마, 옥수수도 다 생각나고. 금식하는 이유는 내 생각과 잡념, 내 육신의 그런 것들을 다 이겨내고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한 믿음을 , 깨끗하게 하나님과 관계만 가지기 위해서 금식이라는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금식을 하고 나면 되게 정신이 맑아지고 또 혼자 금식했으면 못했을 건데,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매일 밤마다 모여서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 보통 금식 이러면 누가 하는 거죠? 아무나 하나요? 믿음 좋은 사람이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금식할 수 있어요? 여러분 한 끼도 금식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내가 진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 앞에 내가 새로워지기 위해서 하나님께 어떤 응답,  축복을 받기 위해서 내가 금식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러니까 보통 금식하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밥을 굶으면서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이 금식을 받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열납 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너희 금식이 진짜 금식이냐? 진짜 금식 아니지 않냐? 거짓된 금식 아니냐? 라고 하나님께서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뭐라고 반문하시냐면 금식까지 하면 저 사람 신앙 좋아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저 사람이 금식한 이유가 하나님께 네 목소리를 상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금식까지 하는데 나를 알아봐주지 않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금식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금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을 받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내가 계획 다 세워놓고 목적 세워놓고 금식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이뤄달라고.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해요?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고 다투고 악한 주먹으로 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금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평생 신앙 생활했는데 그 신앙의 끝이 낙심이거나 교만이거나 그럼 그 사람의 평생 신앙은 사실 거짓이겠죠.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낙심이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신앙생활을 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헌신을 했는데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금식하면서도 논쟁하고 다투고. 악한 주먹을 쓴다는 것은 폭력을 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금식을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고 금식을 하는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논쟁하고 다투고 악한 주먹을 쓸 수 있을까요? 그런 금식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 그 말은 금식의 목적이 무엇이냐? 이것이겠죠. 반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있는데 그게 6절부터입니다.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_이사야58:6-7

 

6-7절. 잘 보세요.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입니다. 금식이 그냥 밥 굶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식의 목적이 뭐에요?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 주고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고.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눠주고. 빈민을 집에 들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이게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역 6-7절의 사역을 누가하셨어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사역을 하셨습니다. 주린 자들, 어둠에 갇힌 자들, 죄 속에 있는 자들을 끌러주고 풀어주고 압제당하는 자를 풀어주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금식은 예수님의 사역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금식입니다. 그걸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의 목적이 정말 영혼을 구원하는 것, 이 세상을 살리는 것, 사랑을 베풀고 용서하는 것이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왜 금식까지 하면서 사랑하고 용서하냐? 그냥 맨정신으로 그냥 우리의 힘으로 인간의 생각으로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으니까. 금식해서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심정으로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 금식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금식을 통과하면 8절에 보세요.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_이사야58:8-9

 

8-9절. 이런 목적을 가지고 금식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새벽 빛 같게 만드신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렇게 금식하는데 이렇게 간절히 주님의 사역이 우리 삶에 드러나는데 새벽빛이 될 수밖에 없겠죠. 더 놀라운 것은 너의 치유가 급속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거로부터 가지고 있는 상처들, 아픔들, 열등감들. 여러분 이렇게 금식해서 이렇게 주님이 내 삶에 동행하고 드러나는데 그리고 내가 가난한 자를 돌보고 섬기면서 사는데 당연히 모든 치유, 내 속에 억압되어 있는 모든 치유들이 되겠죠. 급속하게 치유가 된다고 합니다. 왜 교회 다니면서도 치유가 안 되냐면 이런 금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내 공의가 당연히 내 앞에 있고 하나님의 영광은 내 뒤에 호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때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가 여기 있다 라고 주님이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멘이죠? 저는 이 금식을 소망의 금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런 금식이 여러분 삶에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다시 일어나고 교회가 세워지고 주의 은혜가 이 땅에 강물처럼 흐르기 위해서 우리 삶이 금식하는 것. 여기서 금식은 단순히 밥을 굶으면서 기도해라가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금식은 우리의 신앙의 집중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에 이르는 두 번째 길은 황폐한 인격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 황폐한 인격에서 벗어나라_이사야58:10-12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여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_이사야58:10-12

 

9절 하반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멍에, 손가락질, 허망한 말 이게 굉장히 중요한데 왜 금식해도 안 되냐면 이 세 가지를 인간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구약 성경 내내 나옵니다. 멍에, 손가락질, 허망한 말. 멍에는 뭐에요? 멍에 아시죠? 소 쟁기질 할 때 소가 주인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ㅅ 자 모양의 나무를 목에 겁니다. 거기에 줄을 달고 조종을 합니다. 그러니까 뒤에서 주인이 소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서 목에 거는 것을 멍에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 그런 멍에가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셨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고 내가 십자가를 통해서 너의 죄를 다 짊어졌는데 우리가 우리의 멍에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인간의 교만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만함. 내가 할 게요, 하나님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게요. 나 계획 다 세웠어요, 하나님 응답하시든지, 말든지 저는 이 길을 갈게요. 이런 멍에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조종하는 것입니다. 손가락질. 우리가 계속해서 손가락질을 합니다. 사실 손가락질을 하면 그 손가락질 한 것이 우리에게 다 돌아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자꾸 우리의 과거나 상처, 사람들의 말에 사로잡혀서 살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노예가 돼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으로 인해서 자꾸 남 이야기를 쉽게 하고 남 판단을 너무 쉽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함부로 남 이야기를 하고 남 판단을 하면 그게 나한테 백 프로 돌아온다는 것을 아시죠? 그런 오류를 범하면 사실 안 됩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손가락질 하는 것을 보세요. 진짜 바보 같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대급이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손가락질 하는데 손가락질한 내용으로 이 사람이 걸립니다. 저 사람이 이 사람을 손가락질 하는데 손가락질한 내용으로 저 사람이 걸립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걱정이 너무 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창피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 나라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왜냐하면 보통 대통령은 품위가 있고 명예가 있고 삶이 반듯하고 조금 도덕적이고 멋지고 인격적이고 이래야 되는데 이거는 와..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더럽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죄인입니까? 주님 떠나서. 그런데 우리는 손가락질 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가 뭐가 있죠? 허망한 말입니다. 말이 너무 허망합니다. 허망한 말이 무엇인가요? 약간 염세주의자 같은 것입니다. 이런 말 있죠,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인 것입니다. 약간 포기하고 낙심하게 만드는 말인 것입니다. 허망한 말. 그냥 아무렇게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대충 살아, 해도 안 돼. 너 그거 하루에 성경 3장씩 읽는다고 네 인생이 바뀔 거 같아? 그렇게 하지 마 이런 거 있잖아요. 다 허망한 말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그럽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그렇게 열심히 안 살아도 돼.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고등학생 아이들이 불법 도박 같은 것을 하고 성매매를 하고. 아이들에게 뭐가 다 사라졌냐면 소망이 다 사라졌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이 다 사라졌습니다. 세상에 너무 허망한 말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심지어 교회 안에도 허망한 말이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말조심해야 합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런 식입니다. 내가 해봐서 안 되니까 너도 안 될 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악하죠? 말을 아무렇게 내뱉는 것입니다. 허망한 말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저에게 상담 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상담 받으러 오셨다가 가시는 분들 대부분이 고구마를 100개씩 먹고 가는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답을 이야기를 잘 안하니까. 듣기만 하고 아 네네, 기도할게요. 이렇게 말하고 보내거든요.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사실은 할 말이 없는 게 아니고 그분의 문제를 듣고 제가 해줄 이야기가 많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무렇게나 말을 내 뱉을 수 없잖아요. 주님의 뜻이 있을 텐데, 그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텐데. 그래서 상담을 듣고 네, 기도할게요. 저는 진짜 기도하거든요. 정말 기도하고 이 분이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동안 시간이 좀 걸리겠잖아요. 저하고 5분, 10분 대화해서 어떻게 답을 얻을 수 있겠어요? 제가 무당도 아니고. 거짓 확신,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허망한 말들을 우리가 주의해야 합니다. 왜 황폐한 인격들이 생겨나는 거냐? 왜 멍에를 계속 메고 있고 손가락질을 하며 허망한 말을 하고 있냐? 우리 영혼, 인격에 소망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단, 마귀가 우리에게서 뭘 빼앗아 가냐면 소망을 다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완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격은 어떻게 되죠? 황폐해집니다. 황폐라는 단어 자체가 뭐에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다 불타버리고 죽어버리고. 나무도 죽고 물도 흐르지 않는 메말라 버린 땅에 황폐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황폐한 마음, 인격.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 말은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하는 게 뭐냐면 크리스천들에게 소망을 빼앗아 갑니다. 무엇으로요? 세상 것으로. 세상 것으로 우리에게 하늘 소망을 빼앗아 가고 천국 소망을 빼앗아 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소망 삼아서 살아야 되는데 그것을 다 빼앗아갑니다. 소망을 다 빼앗기면 우리는 죽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소망 없는 인생이 인생입니까? 소망을 다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끝난 거 같잖아요, 여러분 코로나 때문에 어렵고 다 망한 거 같고 정치도 심지어 교회도 다 타락해서 답답하게 보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세상이 다 망한 거 같으니까 우리도 대충 살자, 세상이 다 타락하니까 우리도 그냥 타락하면서 같이 살자 이렇게 이야기해야 하나요? 그게 진짜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의 자세인가요? 내일 세상이 망해도 우리는 오늘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내일 세상 망해도 사과나무 하나 심자고 하는 이야기가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녀들이 있잖아요. 사람들은 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봅니다. 저희 교회도 아마 부모님들이 자녀문제로 고민 많으실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10대 때, 20대 때 신앙생활도 제대로 안 하는 것 같고, 공부도 좀 힘든 거 같고, 상황이 좀 어렵고 걱정되고 근심되고 이러면서 어떤 분들은 이야기합니다. 해도 안 돼. 거봐 이런 식인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허망한 말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아니요. 정말 금식하며 기도해보셨어요? 아이들 하나님이 터치 한 번만 하시면 바뀌는 거 모르세요? 우리 인생 한번만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 터치하시면 변화되는 거 모르세요? 제가 딱 그랬습니다. 저 실업계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요? 공부의 공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저희 집이요?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는 집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으니까 완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순간입니다. 은혜 받으니까 한 순간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게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사라지니까 황폐해지는 것입니다. 아무 말이나 내뱉고 아무렇게나 사는 것입니다. 자기 멍에를 지고. 이런 황폐한 인격은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염세주의자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소망을 다시 가져야 합니다. 마귀에게 다 빼앗겨도 좋은데 육신도 빼앗겨도 좋고 재산도 빼앗겨도 좋은데 소망은 빼앗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_이사야58:11-12

 

11-12절. 네게서 날 자들. 우리 자녀들입니다. 혹은 영적으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구원 받을 이방인들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투 트랙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때에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보고 가야하고, 또 하나는 우리 자녀들 때에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우리가 준비하며 사는 신앙생활이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소망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인도하여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겠다. 소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황폐한 인격은 하나님을 소망 삼을 수 없고 하나님을 소망 삼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들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교회 다녀도 소용없어, 헌신해도 소용없어, 성경 읽어도 소용없어. 다 쓸모없어 라고 염세주의자처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쓸모없나요? 우리가 예배드리고 매일 성경 읽는 것이 정말 쓸모가 없나요? 아니잖아요. 99%가 어둠이어도 1% 빛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소망 삼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서 아빠들이 열심히 일을 하잖아요. 그것은 자녀들에 대한 소망, 우리 가정을 지키고 우리 가정을 위해서 내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소망이 있어서 일하는 거잖아요. 그 소망이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세 번째 하나님의 복에 이르기 위해서 주신 것이 신앙의 실천입니다. 그런데 이 신앙의 실천을 지속해야 하는데 이 신앙의 실천이 뭐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 신앙의 실천을 지속하라_이사야58:13-14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_이사야58:13-14

 

신앙은 실천은 뭐냐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꼭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네 발을 금하라고 했습니다. 발, 걸어 다니는 발을 멈추라고 합니다. 금하다는 것은 Stop한다는 것입니다. 발을 멈추라고 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오락을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잘못해서 목사님들이 이런 것을 설명하면서 성도들에게 스포츠도 하지 말고 영화도 보지 말고 오락도 하지 말고 24시간 기도만 하라고 하는데 저는 그건 틀린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안식일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오락을 즐기셔도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에는 오락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이 있다면 신앙의 실천을 해야 되는데 그 신앙의 실천 중에 뭐를 이야기하시냐면 안식일을 이야기하십니다. 이 안식일은 두 가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발을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을 걸어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직장 생활도 하고 공부도 하고 우리 인생을 뭔가에 목적을 두고 걸어가는데 안식일은 발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신앙에서 멈춤이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보통의 실패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멈출 줄 모릅니다. 뭐 하나에 꽂히면 계속 갑니다. 그래서 실패합니다. 그러나 리더들, 성공한 사람들은 늘 생각을 멈춥니다. 책 앞에서 멈추고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 앞에서 멈추고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생각을 멈춥니다. 그래서 점검하고 바르게 가고 있는지 틀리게 가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래서 안식일은 어떤 의미냐면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인가?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 나의 주인이고 내가 종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도 심부름 시키신 것을 귀담아서 들어야 되고 또 심부름을 다 하고 나서도 이 심부름을 잘 했는지 못 했는지 주인에게 허락을 맡아야 합니다. 혹시 실수한 게 있으면 고쳐야 되잖아요. 주인이니까. 우리는 종이니까.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복에 이르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발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락을 멈추라고 하시면서 뭐라고 하시냐면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두 번째 의미는 여호와의 날, 안식일이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진짜 은혜를 받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즐거움은 세상의 오락으로 줄 수 없는 내 영혼의 평강, 평안, 기쁨, 감사 이것을 안식일 때 얻으라는 것입니다. 엄청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식일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이 예배 시간에 이 주일 날 여호와 안에서 기쁨들이 회복되어지고 감사함들이 회복되어지고 또 일주일을 살아가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 이런 신앙의 실천을 하는 사람이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14절 하반절.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_이사야58:14

 

14절.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기독교인,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땅 밑바닥에 사는 존재가 아니고 하늘 위에 동네 위에 빛으로 소금으로 세우시겠다 고도 마태복음에 말씀하고 계시죠.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합니다. 승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왜? 우리 인생 자체가 십자가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면서 또 무슨 이야기를 하세요?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너를 기르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기업이 뭐에요 여러분? 성경에 야곱의 기업이 진짜 많이 나옵니다. 이게 뭐에요? 야곱은 엄청 인본주의를 많이 쓴 야곱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벧엘에 가서 돌무더기에서 잠자면서 뭐했죠? 천사와 씨름해서 뭐라고 했냐?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응답해주시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 천사와 씨름해서 환도뼈가 부러질 때까지 싸웠습니다. 그게 안식일에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자세, 야곱의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신앙인들이 이런 야곱의 기업을 다 가지기를 원합니다. 허투루 주일을 아무렇게나 보내고 안식일을 아무렇게나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 은혜 안 주시면, 하나님 나에게 성령 안 부어주시면 내가 어떻게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로 살 수 있겠습니까? 야곱과 같이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얻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야곱의 기업이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렇게 신앙생활하고 있나요? 다들 그냥 생각이 흘러 가는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살고 있죠. 그러면서 이상하죠. 하나님 왜 응답 안 하실까? 역사 안 하실까? 세월이 10년, 20년 지나도 왜 나는 똑같을까? 하나님이 당신의 복에 이르는 길을 이렇게 세 가지를 주신 것입니다. 거짓된 금식에서 벗어나고, 소망이 없는 황폐한 인격에서 벗어나고 신앙의 실천, 안식일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Ⅲ.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_아모스5:1-6, 9:11-15

 

1.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3.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_아모스5:1-6

 

2절. 무서운 말입니다. 처녀 이스라엘은 교회를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이 엎드러졌는데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기 땅에 던져졌는데 일으킬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죄 짓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얼마나 심판하셨냐면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을 아모스 선지자가 상징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교회사를 공부하고 있는데 학교 다닐 때 엄청 열심히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목회를 하다보니까 궁금한 게 너무 많은 것입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제가 여러분과 말씀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데 너무 건강하고 올바르게 하고 싶으니까 궁금한 것이 많은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들을 때는 이런 거 있잖아요.  북한에 있는 평양에서 한국의 부흥 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회개 운동, 그때 막 사람들이 다 변화되고 성령 받아서 수백 명, 수천 명이 교회에 몰려 들어서 회개하고 새로운 삶이 은혜를 받았던 평양 대부흥운동. 평양 대부흥운동이 기독교역사에 얼마나 큰 사건이 되었냐면 미국, 네덜란드, 호주 같은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 평양에 일어난 대부흥운동을 뭐라고 그랬어요? 대서특필했습니다. 이런 일이 없다. 그러면서 뭐라고 평양을 평가했냐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엄청나죠. 엄청난 명예를 줬습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다. 그 정도로 평양에서 일어났던 부흥운동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퀘스천 인 것입니다. 메시지를 들을 때마다 평양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져서 진짜 감사하긴 한데 왜 공산주의가 평양에? 북한이 되어버렸을까요? 너무 궁금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공부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공부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 삼고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전국에 신사참배를 강요했는데 기독교만이 크리스천들은 목회자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받는 피해가 얼마나 많았냐면 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교회를 폐쇄 시켰습니다. 지금 코로나처럼. 그래서 목사님들이 교회에서 모이지 못하게 하니까 안 모이고 성도들 가정집에서 성도들 직장에서 예배드리고 흩어져서 예배하고 이랬습니다. 얼마나 불편해요. 신사참배를 거부하니까 불이익들을 너무 많이 받은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못판 위를 걸어가게 했고 얼마나 고문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신사참배를 교단이, 노회가 결의를 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그 신사참배를 결의한 첫 번째 노회가 평양노회입니다. 별로 안 놀라시네요. 그리고 두 번째 노회가 어디인줄 아세요? 전라도 노회입니다. 특이합니다. 하나님이 그 평양 땅에 부흥 운동으로 일어났던 사람들이 신사참배를 결의해버리니까 거기에 하나님이 공산주의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거의 일어서지를 못하게 하셨습니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그 신사참배를 결의한 노회 모임 했던 교회 있잖아요? 그 교회에 지금 김일성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터 위에. 끔찍하죠. 끔찍합니다. 소망을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교회가 소망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고 당장 불편하니까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순교를 당하지 않으려고 하나님이 아닌 신사참배를 결의해 버리니까 거기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도 똑같은 것입니다.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_아모스5:7

 

7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공의, 정의를 땅에 던져버렸습니다. 아, 신사참배 하면 어때? 지금 당장 불편한데 신사참배하고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신앙생활 잘하면 되지. 당장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니야 라고 정의를 하나님 앞에서의 말씀을  땅에 던져버렸습니다. 평양노회가. 그 부흥으로 황금기를 얻었던 평양노회가 교만해가지고. 그 위에 공산주의의 영이. 하나님이 그냥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_아모스9:11-15

 

자비로우신, 정의로우신, 의로우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길을 열어주신 줄 아시나요?

11-13절. 무슨 말이에요? 대를 이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산에서 녹을 정도로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14절. 바벨론 땅에서 해방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15절. 하나님이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처녀 이스라엘을 공의를 던지고 정의를 던져버린 이스라엘을 땅에 엎드려지게 하셨는데 일어서지 못하게 하셨는데 지금 일으켜 세우신다고 합니다.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딱 하나 해야 할 것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물어진 것을 다윗의 그 허물어진 옛적과 같이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여러분이 궁금한 것이 나와야 되죠? 도대체 다윗의 장막이 뭐야? 여러분 다윗의 장막을 아시는 분. 네이버에 다윗의 장막을 치시면 다윗의 장막이라는 찬양이 나올 것입니다. 찬양팀 이름이 나올 것입니다. 다윗의 장막이라는. 다윗의 장막을 설명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윗의 장막은 뭐죠?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이 다윗의 장막이 뭐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이 아모스 말씀과 너무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모세가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400년 동안 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백성을 출애굽 시켰습니다. 여러분 잘 알고 계시죠.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게 하셨는데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거했던 곳이 장막입니다. 장막이라고 하면 잘 모르겠죠? 이단들이 장막성전 이런 것을 합니다. 신천지 이런 데에서. 장막은 영어로 텐트입니다. 광야에서 집을 못 지으니까 텐트치고 사는 것입니다. 200만 명이나.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그때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세에게. 그게 언약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십계명과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한 가운데 모시는 텐트. 그것을 거룩할 성을 붙여서 성막이라고 해서 성막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장막, 텐트에 거하는데 거룩한 텐트를 성막을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성막 안에는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 지성소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는 어떤 곳이에요? 하나님과 대면하는 자리이고 죄를 용서 받는 현장입니다. 지성소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그런 언약궤를 둘 장소로 성막을 지었습니다. 그게 성막의 유래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놓는 곳, 말씀을 모셔놓는 곳. 그런데 언제 이 법궤를 다 잃어버렸어요? 이스라엘이 타락하면서 이 법궤를 다 빼앗겨 버렸어요. 사사시대에는 얼마나 타락했냐면 여러분 사사기 시대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사는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때마다 사사들을 보내셔서 그때그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완전 타락했습니다. 그때 이 시기에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 제사장의 이름이 엘리제사장입니다. 여러분 너무 잘 아시죠? 성경을 읽으시니까요. 이 엘리제사장이 영적으로 눈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두 아들도 영적으로 타락해서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냐면 하나님께 받쳐야 될 성물을 미리 가져다 먹어버리고 손을 댔습니다. 그래서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이 전쟁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고 그때 이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이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제사장이 놀라서 뒤로 넘어가다가 목이 꺾여서 죽게 됩니다. 이 엘리제사장의 며느리 이름 아세요? 퀴즈? 엘리제사장의 며느리의 이름을 아시는 분? 제가 이거 어디서 미용실 이름으로 한번 본 것 같은데? 이런 이름을 짓다니. 이가봇. 며느리의 이름이 이가봇입니다. 제가 왜 이가봇을 이야기 하냐면 히브리어로 이가봇의 뜻이 뭐냐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그래서 며느리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성경의 이름은 상징입니다. 그래서 사사시대는 하나님의 영이 떠난 시대입니다. 무섭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또 왕을 요구했습니다. 우리 이렇게 계속 저주 받고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사울이라는 왕입니다. 그런데 이 사울이 언약궤를 모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월권을 해서 자기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울 왕을 폐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우신 사람이 다윗입니다. 어린 다윗이 형과 마을 사람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사무엘 제사장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이 담긴 뿔을 가지고 와서 그 형제들 앞에 기름을 부었는데 이 기름의 능력을 보세요. 여호와의 영이 얼마나 감동했는지 다윗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고 악기연주만 해도 악이 떠날 정도로 다윗이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이 광야로 보내십니다. 골리앗을 물리치고. 여러분 보통 광야 생활 이러면 쉽게 생각하는데 정말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11년 넘게. 그런데 거기서 다윗이 뭘 배우냐면 원래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섬겼지만 자기의 삶으로 지도자로써, 리더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것을 다 준비한 곳이 다 광야입니다. 그 다윗이 드디어 왕이 됐습니다. 왕이 되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뭔 줄 아십니까? 시온 산을 되찾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왜? 시온 산을 되찾았는지 아시겠죠?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곳, 임재가 있는 곳을 되찾았다니까요. 그것 때문에 전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하나님의 법궤, 말씀이 담겨있는 법궤를 되찾아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나라가 부강해진 것입니다. 왜? 말씀을 되찾아오려고. 그래서 다윗이 이 말씀을 되찾아왔는데 모실 곳이 없잖아요. 그런데 다윗이 죄가 많으니까 이 말씀이 너무 두려워서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 동안 이 법궤를 놔두는데. 그때 오벧에돔의 집에 복이 복이 얼마나 복이 넘치게 축복을 받았는지. 하나님이 막 축복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다윗이 확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그래서 이 말씀을 모시고 오면서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 아시죠? 법궤가 돌아오는 날 기뻐 춤추다가 바지가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췄습니다. 그것을 보고 며느리, 딸, 자식들 아버지 경망스럽게 행동한다고 하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 법궤를 가지고 와서 다시 모신 곳이 다윗의 장막입니다. 다윗이 이 법궤를 텐트를 치고 모셔놨는데 늘 자기는 왕궁에 자면서 불편한 것입니다. 나는 왕궁에서 자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텐트에 있네? 그래서 다윗이 그런 것입니다. 나는 장막 앞에 문지기하고 싶은데. 하나님 말씀을 너무 사모하는데.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 하나님의 말씀을 모실 수 있는 성전을 짓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NO, 안 돼 하셨습니다. 왜? 너는 피를 많이 흘려서 안 돼. 그러면 다윗이 거기서 끝내야 되잖아요? 얼마나 이 법궤가 중요한지 안 다윗은 그때부터 자기 자녀가 왕이 되었을 때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준비를 다 합니다. 백향목을 수입해서 가져오고 도면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만 했나요? 이 성전에서 법궤를 모시고 예배드릴 수 있도록 성가대를 조직하고 예배할 수 있는 모든 시스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다 준비했습니다. 얼마나 사모했는지. 그게 다윗의 장막입니다. 무너진 다윗의 장막. 왜 무너졌죠?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다윗 아버지의 소원대로. 성전을 지었는데 이 성전을 짓고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 타락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사이에 이 성전이 다 이방인들에 의해서 훼파됩니다. 성문이 무너지고 너덜너덜 거리고 이방인들이 와서 거기서 물건 다 빼앗아가고 문고리 떼어가고 금도 다 떼어가고.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가 끝났을 때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통해서 성전을 재건하는 운동을 합니다. 그게 느헤미야, 에스라입니다. 그걸 재건해놓고 나중에 신약시대로 넘어올 때 암흑기에 헤롯이라는 분봉 왕이 나오는데 예수님 시대입니다. 이 헤롯이 분봉 왕입니다. 로마가 책봉한 왕입니다. 그래서 이 유대인들에게 마음에 환심을 사기 위해서 이 성전을 솔로몬이 세운 이 훼파된 성전을 다시 리모델링해서 짓습니다. 그걸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게 왜 중요한지 아세요? 스룹바벨 성전, 즉 말해서 예루살렘 성전인데 헤롯성전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 예루살렘 성전을 예수님이 가보고 뭐라고 하셨죠? 이거 다 허물어 질 것이다. 실제 로마 티토 장군에 의해서 다 허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_요한복음2:20-21

 

유대사람들이 성전이 허물어질 거라고 이야기하니까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46년이나 걸렸다. 스룹바벨 성전을 짓는데 46년이나 리모델링을 했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3일 동안 일으키겠느냐? 사람들이 못 알아먹은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2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_요한복음2:21

 

내가 말한 이 성전은 내 몸,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자, 이 성전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저와 여러분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에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느냐? 이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것이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내가 온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과 동행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산제사로 드려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살라는 거예요. 그게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장막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뭐에요? 예배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참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통해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의 뜻은 결국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정확히 더 이야기하자면 구원받은 사람들이 회복해야 될 하나님의 말씀. 말씀이 육신이 돼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그 언약궤가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더 이상 법궤가 필요 없고 더 이상 성막이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 말씀이 육신이 돼서 우리 가운데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려고 성령이 떠나지 않도록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냐? 그런데 그의 아들 솔로몬과 이스라엘 후손들은 건물로 성전을 이해해버렸습니다. 다윗은 건물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언약궤가 너무 귀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자기가 받았던 복을 알잖아요. 오벧에돔의 집에 복이 임했던 것을 봤고 실제 그 언약궤를 모신 순간부터 엄청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을 아는 다윗이 그 언약궤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얼마나 사모하고 흠모하고 예배하고 찬송을 지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그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솔로몬은 성전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건물을. 여러분 우리가 지금 우리 삶에 언약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 성령을 우리 안에 모시고 그렇게 살고 있나요? 지금 우리는 예배하기 좋은 시대가 아닙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예배가 다 무너졌습니다. 집에서 인터넷 예배드리잖아요. 그렇죠? 온라인 예배드리는데 온라인 예배가 됩니까? 여러분 온라인예배 드리면서 눈물 흘리고 예배 드려본 적 있으시나요? 그런 분들 계실 수 있지만 저는 안 되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요. 그래서 요즘 트렌드가 메타버스 시대잖아요? 이제는 가상공간에서 가상현실을 만들어 놓고. 그래서 어떤 교회들은 메타버스 성경학교 이런 것을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그게 먼 미래에 무조건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오겠죠 그런 때가. 그런데 저는 그 안에서 자기들이 나는 검은색 머리인데 노란 머리로, 나는 그런 삶을 안 사는데 그런 삶을 사는 가상 인물로 거기에 들여놓고 예배를 드리고 활동하고 교제하는 공간이잖아요. 말 그대로 가상공간이잖아요. 저는 성경을 믿기로 했습니다. 말세 때 모이기를 폐하는 자를 주의하라. 두, 세 사람이 네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그들 중에 함께 하겠다. 저는 성령의 역사와 교감은 우리의 만남과 우리가 같이 만나서 밥을 먹고 같이 손을 잡고 기도하는 교감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물론 저도 젊은 목사니까 유튜브를 사용하기도 하고 지금도 생방송으로 저희 설교를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지만 우리가 다윗의 장막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예배가 회복된다는 것은 오늘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복에 이르는 길에 간다는 것은 우리가 실제 허망한 말을 버리고 그릇된 삶을 버리고 소망 없는 황폐한 인격을 그대로 두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우리의 삶을 내어드릴 때. 저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고 믿어요.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으로 호위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린 승리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승리해야 합니다. 세상이 다 망한다고 암담하고 좋지 않은 현실만 있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소망 삼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조건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할 길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를 멈추지 마세요. 기도를 멈춘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 믿는다는 거잖아요. 우리 청소년들이 방황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 후대들이 세상에서 문제가 많다고 해서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염세주의자들처럼 거봐라, 해도 안 돼지. 이렇게 살 수 없잖아요. 우리가 무너지면 교회가 소망을 잊어버리면 우리가 다윗의 장막을 놔버리면 누가 이 세상에 누가 우리 자녀들에게 천국 복음을 말해줄 수 있고. 누가 부흥이라는 것을 꿈꾸며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요. 다윗은 주님을 사모했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혹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교회를 개척할 때, 가스펠교회를 개척할 때 제 주변에서 소망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느껴본 적도 없습니다. 얼마나 주변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는지. 저한테 왜 하필 강남에 개척해? 아파트 단지에 개척해야지. 그런 것부터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개척초기에는 사례비를 안 받고 교역자들을 많이 썼습니다. 야, 그러면 안 돼. 제가 뭐하는 것마다 전부 부정적으로. 제가 헌금 이야기를 안 하면 성도들한테 헌금 안 가르치면 성도들 헌금 안한다. 교회가 한 3~4년 지나서 안정이 되고 부흥이 되니까 그때는 뭐라고 그러냐면 다 서울 돌아다니는 성도들이라 다 나갈 거야. 좋은 소리를 끝까지 안 하시더라고요. 그게 뭐에요. 냉소를 느꼈습니다. 사람들이 진짜 냉소적이구나. 아무 말이나 내뱉는구나. 도대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도대체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이 없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이 이렇게 없을까. 우리 하나님 안 믿나요? 하나님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의 복에 주님의 복에 이르는 길을 정확히 이해하시고 다윗의 장막을 다시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예배를 회복해야 되는 것, 은혜를 회복해야 되는 거구나.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그 신앙을 다시 회복해야 되는 거구나. 우리 때에도 그렇지만 우리 자녀들 때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거예요. 완전히 처녀가 엎드러져 있는 걸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세우는 다윗의 장막. 옛적처럼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것입니다.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1-02 주일예배  (0) 2022.01.02
2021-12-26 주일예배  (0) 2021.12.26
2021-12-12 주일예배  (0) 2021.12.12
2021-12-05 주일예배  (0) 2021.12.05
2021-11-28 주일예배  (0) 2021.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