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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10-09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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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9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하나님의 약속에는 항상 ‘YES’
본 문 : 고린도후서 1:12-24

 

 오승주 목사

 

스탠리 존스라는 미국의 유명한 선교사가 있습니다. 평생을 인도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현지에서 은퇴하고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미국에 돌아와서 교회를 섬기고 후대를 양성하다가 뇌졸증에 걸려서 쓰러졌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뇌졸중에 걸려서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 그를 돕는 주치의와 간호사가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간호사가 아침에 성경을 보고 기도하면 스탠리 존스에게 가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이 말을 하라고 계속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꼭 그런 말씀들이 확인이 되고. 그 당시는 아주 옛날 아닌가요. 뇌졸중 걸려서 쓰러지면 거의 죽는다는 때입니다. 그 간호사는 일어나라, 일어나라 이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셔서 내가 하는 말이니 너는 전하기만 하라 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스탠리 존스를 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정말 기적적으로 스탠리 존스가 뇌졸중에서 일어나고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쓴 책이 하나님의 YES 라는 책입니다. 그 책을 한 번 읽어보시면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될 것입니다. 제가 제목을 하나님의 YES라고 정한 것은 퍼포먼스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에는 항상 예만 있느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에는 항상 예 라고 하기가 그래서 멋있어 보이려고 YES 라는 스탠리 존스의 책을 빗대어서 제목을 지었습니다. 

 

1. 약속을 어긴 바울과 바울의 해명_고린도후서1:15-17

 

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_고린도후서1:15-17

 

오늘 본문을 보니까 바울이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무슨 계획을 세웠냐면 너희를 지나서 마게도냐로 가려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게도냐에 가서 사역을 하고 다시 고린도에 가서 고린도교회의 도움을 받아 유대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계획을 세웠던 모양입니다. 그 약속을 앞에 편지로 써서 보낸 것입니다. 디모데, 실루아노에게 고린도에 이렇게 가겠다는 계획을 적어서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갔나요? 못 갔습니다. 사도행전을 봐도 그렇고. 하나님께서 못 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환상 중에, 기도하던 중에 거기에 가지 못하게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지 못하니까 아마 고린도에서 바울을 싫어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믿음이 없고 영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이 돌았던 모양입니다.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목회자가 목사냐? 이런 뒷말이 들렸던 것입니다. 그가 혹시 우리를 속이는 거 아니냐? 사도 바울이 신실한 사람이 맞냐? 사도냐? 사도 바울의 인격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것에 대한 변명, 해명으로 오늘 본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을 가지고 굉장히 중요한 그리스도의 인격을 다뤄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약속은 지켜야지. 이런 말을 합니다. 맞습니다.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나는 시간약속 한 번 어긴 적이 없다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죠. 지켜야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멋있어 보이고 신실해보일 수 있겠죠. 그러나 여러분 그런 사람의 인간의 약속보다 더 큰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오늘 17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_고린도후서1:17

 

사실 바울은 엄청 신실한 사람입니다. 천재도 이런 천재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경솔하게 고린도로 가려고 계획을 세웠겠냐? 그리고 그 계획을 세우고 예, 예 해놓고 뒤에 가서 아니오, 아니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겠느냐? 라고 스스로 변명을 합니다. 내가 육체를 따라 계획하고 그 육체를 따라 계획한 것도 함부로 변경하거나 바꾸거나 이런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은 뭐에요? 그 말은 절대 충동적으로 경솔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절대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 번복한 적이 없다. 내가 고린도에 가고자 계획 세운 것은 내가 예 하면서 쉽게 아니라 아니라, 가면 가고 말면 말지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12절에 가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YES_고린도후서1:12-14, 18-20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_고린도후서1:12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내 육체의 지혜로는 고린도에 가서 사역하고 마게도냐 가서 사역하고 다시 고린도에 와서 사역하고 고린도에서 걷은 헌금과 후원금을 가지고 다시 예루살렘에 가려고 하는 이 계획이 완벽한 계획인데 그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이번 일들을 결정해서 너희에게 가지 못한다. 이게 양심이다. 그리고 그 일에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너희에게 행하고 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의 지혜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이것은 세상의 통상적인 지혜입니다.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통상적인 지혜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게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지금 나는 이 일들을 결정하고 또 인도를 받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한다라고 바울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18절로 돌아가면.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미쁘시다 이 말은 정확히 원어에는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으시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 인간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약속을 지켜야지 해놓고도 약속을 어기잖아요. 실수가 있잖아요.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미쁘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미쁘시다의 어원입니다.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한 이유는 뭐에요? 하나님 때문에 나도 믿을만한 사람이 된 거 아니냐. 내가 하나님 때문에 구원 받아서 하나님으로 인해서 나도 신뢰하고 거룩하고 진실한 사람이 된 거 아니냐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성품이 인간적인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성품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 있는 성품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신실함에 있어야 합니다. 맞죠?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성품 이렇게 이야기하면 신실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큰 일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성품이 신실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예수님을 닮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을 주셔서 성령의 열매라 그렇게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 잘 하는 사람도 많고, 능력 있는 사람도 많죠.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미쁘시니까 우리도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예 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번복한 것은 자기의 계획을 번복한 것입니다. 고린도에 가서 목회를 조금 하고 고린도에서 재정적인 후원을 받아서 그때는 재정적인 후원이 없으면 사역을 할 수 없던 시절이니까. 재정적인 후원을 받아서 마게도냐에서 사역을 하고 다시 고린도에 가서 또 재정적인 후원을 받아서 예루살렘에 가야지 계획을 세웠지만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그 일에 자기는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 없는 고린도교회성도들이 볼 때는 바울이 약속도 지키지 않는다 그렇게 보겠지만 바울은 지금 그것에 대해서 다른 차원으로 답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켜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맺으신 언약은 불변한 언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도 신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신실함에 있어야 합니다. 19세기 미국에 대부흥, 영적대각성운동을 이끌었던 조나단 에드워즈를 평가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종교개혁자인 존 칼빈이 에베레스트 산이다 했을 때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보다 조금 더 높게 평가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합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면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인물 중 가장 훌륭한 인물이 바울인데 바울과 가장 비슷하고 근접한 사람이 조나단 에드워즈라고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그럴 만 한 게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들, 업적들, 사역들을 보면 대단합니다. 진짜 책 한 권만 읽어도. 기회가 되면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을 읽어보시면 유익함을 얻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대단한 삶만 살았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대는 질병이 많던 시대이고 그리고 가난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넘어서고 이겨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조나단 에드워즈가 목회를 실패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사도 바울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책을 보면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예일대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도 했고. 책들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당대 가장 훌륭한 책들을 많이 썼습니다. 에드워즈의 의지론, 자유론 이런 책들은 엄청납니다. 기독교 말고 그냥 보편문화계에서도 높게 평가할 정도입니다. 그런 사람이 목회를 실패했습니다.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제가 그 심정을 모를 거 같습니다. 아직 안 쫓겨나봐서. 만약 가스펠교회가 공동의회를 해서 오목사 쫓아내자 나가라, 우리는 다른 목회자를 모시고 할 거다 하면 되게 속상할 거 같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힘들고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에드워즈가 엄청 고통스러웠을 텐데 그의 책에 뭐라고 기록하고 있냐면 그때 하나님 말씀을 선명하게 순종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자기는 하나님과 정말 일대일로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은혜를 진짜 사모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쫓겨나고 목회를 실패할 때 그가 끝났다 했지만 그때부터 엄청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쫓겨난 교회에서 다시 모셔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칼빈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또 갑니다. 목회지가 많았을텐데 자기가 목회 실패한 곳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래서 훌륭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19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_고린도후서1:19

 

무슨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예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YES.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약속을 지키신 당신의 약속의 언약의 YES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YES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십자가, 성육신 사건부터 십자가 사건,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 고난과 고통을 순종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예수님이 실패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손가락질하고 모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실패하셨나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가 구원 받을 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YES다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약속하신 그 약속의 YES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구원 받았잖아요? 그 구원 받았다는 YES, 그 분 안에서 자유할 것이라는 YES, 그 분 안에서 순종하겠다는 YES. 그게 저와 여러분의 신실함입니다. 우리가 비록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가락질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사람도 그 상황, 그 환경도 YES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말 같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했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YES를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YES하고 살 수 있는 신실함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순종한다, 그러니 너희도 오해하지 말아라. 나는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을 따라 내 일정을 바꾼 것이다. 저도 목회하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웁니다. 갈수록 계획이 없어지기는 합니다. 개척 때는 얼마나 많았는지. 여러분 개척 때 설교한 내용들, 노트 보면 부끄러웠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이렇게 설교를 하고 5년 안에는 이런 사역들을 하고. 부끄러워서 차마 쳐다볼 수 없는, 그 때는 30대였으니까 그렇게 했지만. 1년 계획을 세워야죠. 교회는 계획을 세워야합니다. 그래야 예산도 편성하고 행사들도 때에 따라 준비를 해야 되고. 그게 맞습니다.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1년 스케줄을 가지고. 또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래야 교회 조직이나 모든 일정들을 수월하고 합리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어쩔 때는 기도하다보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마음들이 느껴지고 그런 계획을 바꿀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진짜 여러 번입니다. 특히 저는 진짜 여러 번 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목회자가 성도를 진짜 사랑하는 것은 뭘까요?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신실하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맞죠? 제가 이번 주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수도 없이 질문해봤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 그게 성도를 진짜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은 혼탁한 시대입니다. 요즘이 왜 어렵냐면 옛날처럼 흑백논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구분이 되었는데 요즘은 검은 것 안에 하얀 것이 있고 하얀 것 안에 검은 것이 있는 시대입니다. 다 섞여있습니다. 그러니까 헷갈리는 것입니다. 저 사람 좌파 같은데 이야기해보면 우파 같고. 이기심은 우파고. 저 사람 우파 같은데 가서 대화해보면 사상은 좌파이고. 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것을 혼탁하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너무 헷갈립니다. 혼탁한 시대가 끌어내고 우리에게 주는 세상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더 발전하라는 것입니다. 더 발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 발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자극적입니다. 여러분 자극적인 것, 그것을 보고 탐욕이라고 합니다.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계속 자극적인 것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제가 아이들이 있어서 이런 예시들을 잘 들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지난 5년간 사망률 1위 뭐죠? 절대적인 1위가 뭐죠? 암인가요? 교통사고인가요? 코로나인가요? 아닙니다. 자살입니다. 특히 20-30대에 가장 많은 사망원인이 자살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지 모릅니다. 하루에 40명씩 죽습니다. 한강에 하루에 뛰어내리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10명입니다. 매일. 그런데 어떤 언론에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너무 슬프니까, 우리 자화상이니까. 왜 그럴까요? 이렇게 사회가 발전하고 좋아지고 멋있어지고 문화적으로 뛰어나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극적이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보고 뭐라고 그러나요? 수준 높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콘서트도 더 자극적으로 하고. 그것을 보고 수준이 높다고 합니다. 구성이 완벽하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진짜 슬픈 게 뭐냐면 교회가 그것을 따라합니다. 우리도 수준 높아야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 쾌락의 끝은 뭐죠? 자극의 끝은 뭐죠? 허무함이고 더 쾌락적인 것을 찾다가 인생에 추억, 아름다움, 감사함, 서로 돕고 사는 거 다 사라지게 됩니다. 저는 정치인들이 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좋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정치인에 투표할 수 있는 실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갈수록 자극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 계속적으로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합니다. 이거 해서 사람들이 우와 하고 갔으니까 더 자극적인 것을 해야 따라오겠잖아요. 제 친구가 지방에서 목회를 하는데 참 좋은 교회입니다. 장로님들이 당회를 하는데 우리 같으면 교회 예산을 이야기하고 성도들 출석이 어떠냐 헌금이 어떠냐 이런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 교회 장로님들은 목사님 우리가 코로나가 끝나가고 또 태풍의 피해도 입었고 하는데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 뭘 할 수 있는 게 없을까요? 이미 많은 일을 했습니다. 봉사도 하고 헌금도 거둬서 지역 주민들을 돕고 했는데, 장로님 한 분이 음악회를 하면 어떨까요? 이야기를 해서 지난 여름부터 3개월을 준비해서 이번에 음악회를 했다고 합니다. 장로님들이 후원금을 내고 성도들, 청년들이 준비를 해서 음악회를 했습니다. 제가 음악회 한 것을 봤는데 이게 교회 이익되는 음악회가 아닙니다. 100% 지역 주민을 위해서 무신론자들을 위해서 그냥 음악회를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다, 주최한다 이런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은 진짜 수준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 백성의 성품인가? 삶인가? 어떤 분들은 이런 것을 견디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자기 성품 때문에. 세상 수준 이렇게 가는데 교회 수준 왜 이러냐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정말 세상이 대단한 수준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주보에 오타가 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노력을 합니다. 오타점검도 하고. 자막이 틀릴 수도 있죠. 자막이 틀리는 것은 백프로 저 때문입니다. 내용을 미리미리 줘야하는데. 그러면 안 돼 죠. 그런데 그거 때문에 시험 들었다, 자기 성품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교회는 수준이 떨어지냐는 것입니다. 신앙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아요.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뭐에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 대한 신실함입니다. 그 일에 YES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 YES가 되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뭐가 부족하다면 그 일을 메꾸고 섬기고 그게 공동체 아닌가요.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도와주고 배려해주고 기다려주고. 교회가 더럽네? 욕할 것이 아니라 내가 청소할까 이게 정상 아닌가요. 여러분이 지금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하는 것도 이 황금 연휴에 예배하는 것. 성령이 여러분을 이끌어서 이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백프로입니다. 은혜 받아야 산다, 은혜를 따라 살아야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아야지, 나는 예배 드리면서 살아야지 그게 하나님 약속에 우리가 항상 YES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세계를 믿기 때문에. 우리가 이 황금 같은 시간에 주일날 나와서 예배 드리는 거잖아요. 그게 YES입니다. 신실함입니다. 오늘 23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약속에는 항상 ‘YES’_고린도후서1:21-24, 골로새서3:12-17, 23-24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_고린도후서1:23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하는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아끼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고 고린도에 가서 계획대로 헌금도 걷고 사역도 좀 멋들어지게 하고 이거였겠지만 오늘 바울은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인으로 세우겠다. 여러분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면 우리는 죽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목숨 걸고 그 정도로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너희를 아낀다. 그러면서 하는 것을 보세요. 24절을 보세요. 24절은 진짜 감동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_고린도후서1:24

 

여러분 교회 안에 그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믿음을 주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사역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을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들도 성도들이 예수님 앞에 서서 하나님 앞에 서서 믿음이 세워지도록 사역해야 되지 믿음을 주관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 만약 고린도교회나 마게도냐 지역에 가서 자기의 사역들을 확증하고 주관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갔겠죠? 계획대로? 목회적으로 따졌을 때. 그런데 그게 바울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중심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믿음으로 서기를 원했습니다. 예수 믿기를 원했습니다. 구원 받기를 원했습니다.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쁨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의 믿음을 좌우지 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의존하게 만들어놓고 나중에는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역자를 거의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자기를 의지하게 만들어놓고 나중에는 귀찮다고 합니다. 사역해주기 귀찮고, 말씀주기 귀찮고. 정말 사악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분이 말씀 안에 주님 앞에 서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공동체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소그룹을 섬겨야 합니다. 오직 말씀이 성령이 이끄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내가 변화되어서 그 기쁨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섬기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17절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_골로새서3:12-14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뭐에요? 

 

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_골로새서3:15 

 

16절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_골로새서3:16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안에 있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서 모든 지혜로 피차 권면하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절대 내가 내 육체의 지혜로, 세상의 지혜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 수준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내 안에 있어서 은혜가 내 안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안에 있어서 그것으로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함부로 믿음을 주관해서는 안 돼요. 그건 뭐에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섰을 때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겠죠.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고 우리 안에 거하고 그래서 감사하고. 그 은혜 안에서 우리가 모든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육체의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로 살아야 하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 24절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_골로새서3:23

 

주께하듯 하라. 그러면서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4절에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_골로새서3:24

 

참 어렵습니다. 뭐가 어렵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때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때 하나님의 기업의 상이 거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 세상에서는 조금 어리숙하게 보이고 미련하게 보일 수도 있고. 우리가 육체의 지혜, 세상의 수준과 조금 다르게 갈 수도 있고. 그런데 거기에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자기 인생을 마감하면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의 설교 시간에. 저는 하나님께 상을 다 받았습니다. 무슨 상을 받았냐? 자기는 평생 성도를 섬기고 평생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일주일에 하루 평균 12시간씩 서재에서 책을 쓰고 설교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매일 12시간씩. 사람들은 그를 보고 바보다. 어떻게 하루에 12시간씩 책 쓰고 설교 준비하냐? 저는 하루에 평균 2-3시간씩 하는데 그것도 힘들거든요. 그런데 에드워즈 목사님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자기에게는 상급이었습니다. 우리는 상급 이러면 손에 쥐어지는 좋은 대학이라도 가야 될 거 같고, 취직도 잘 해야 될 거 같고,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뭔가 자극적이고 뭔가 자랑할 만한 것이 우리 손에 쥐어져야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바울의 상급의 개념은 뭐였죠? 은혜 받는 거였습니다. 은혜 받아서 그 은혜로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고 사는 거였습니다.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약속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실하게 믿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것이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행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결과와 열매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 YES, 그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게 진짜 상급이잖아요. 우리가 하나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진짜 상급이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주실 줄 믿습니다. 기업의 상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 은혜가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게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주님 때문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 그게 우리가 진짜 기도해야 될 제목이잖아요.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 안에. 여러분 그 은혜가 우리 안에 진짜 있어야 되는데 자꾸 자극적이고 퍼포먼스 같은 껍데기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고 우리 삶 주변에 있기 때문에 그 은혜가 하찮게 되고 있습니다. 감사함이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간증하지 못하고. 여러분 우리가 뭘 간증해야 하나요? 우리 이웃들과 우리 가족들에게. 요즘은 그래요. 제가 직장도 변변치 않고 하는 사업도 변변치 않아서 전도를 못하겠어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완전 틀린 것입니다. 회사 좀 성공 시켜놓고 회사 자랑하면서 전도해야 합니까? 그래야 하나요? 얼마나 기독교가 문제가 많이 생겼는지 아시겠죠? 우리의 축복은, 우리의 소망은 내가 예수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혹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예수님 믿으면서 가스펠교회 다니시면서 혹시 그 일이 소망이 아니고 다른 게 소망이 생긴다면 우리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님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그 일에는 YES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YES하지 않더라도. 육체의 계획에는 YES를 하지 않고 실수하고 번복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신 구원의 주님. 그 주님의 말씀에는 우리가 YES하고 살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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