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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12-11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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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본 문 : 고린도후서 9:1-15

 

 오승주 목사

 

-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_고린도후서9:1-5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연보. 우리는 연보라는 단어가 아닌 헌금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영어성경을 보니 헌금은 cash이고 연보는  cash 헌금+헌물이 포함된 단어가 연보입니다. 옛날에는 쌀을 드리기도 했고 돈이 없는 시절에는 십의 일조를 농산물로 드리기도 했고 이런 시절이 있어서 성경 안에는 연보라고 표현되기도 하고 헌금이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연보는 조금 넓은 의미의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말하고 요즘에는 쌀 같은 거 내는 것이 없기 때문에 헌금이라고 쓰는 단어가 맞고 종종 어떤 교회들은 연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들을 알고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9장은 헌금에 대해서 정확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헌금이 왜 필요한가. 헌금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제가 지난 봄 바이블스쿨에서 다룬 요단 출판사에서 아논 김현철 목사님께서 쓰신 신앙생활 인문 이라는 책을 보면 성경적인 헌금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 가족훈련에서도 이 내용을 참고해서 가르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헌금을 왜 해야 하는지. 헌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헌금이 오늘날 교회에서는 왜 필요한지를 요단 출판사에서 나오는 신앙생활 인문이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만 살펴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죄와 어둠과 연합하고 있을 때에는 헌금에 대해서 권면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가 변화될 여지가 있을 때 헌금에 대한 강조를 권면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믿지 않는 자에게 새 가족에게 헌금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데 헌금을 해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데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없고 믿음이 없는데 하나님 앞에 왜 헌금을 드려야 하는지 아깝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헌금은 믿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맞고 믿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자기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국민이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한데 세금 낼 때마다 아깝습니다. 세금혜택 다 받았으면서 세금 낼 때에는 아깝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돈이 내 품에 있기만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 중에서도 헌금에 대해서 불편하게 느끼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헌금 때문에 교회에 안 간다. 십일조 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는다는 분들을 많이 만나봤습니다. 사실 십일조나 헌금 때문에 안 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핑계거리를 찾다보니 저는 그런 성도도 만났습니다. 목사님이 유학을 다녀오지 않아서 이 교회에 나갈 수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온갖 핑계가 있는데 대표적인 핑계가 십일조 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는다.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 말씀은 헌금에 많이 초점에 맞춰져 있는 본문입니다. 제가 지난주처럼 아무리 다르게 설명하려고 해도 오늘 본문은 헌금을 벗어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본문도 자세히 살펴보면 초점은 헌금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재물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재물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온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고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재물의 소유권도 하나님께 있다. 그것을 믿는다면 감사함으로 기쁜 마음으로 헌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물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으니까. 우리의 모든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일생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거둬들이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느 헌금에 대해서 성경을 찾아보고 자료를 찾아보고 내린 결론이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선한사업.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첫 번째 사역이 선한 사업입니다. 즉,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변호하는 것, 아픈 사람들을 치료를 하는 것, 소외당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하는 것,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제공하고 재난 당한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불의를 강요당하는 곳에서는 정의의 소리를 제공하는 것이 교회의 존립 이유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가 복음만 전하면 되지 왜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려고 하냐고 말하시면 우리는 이 나라나 저와 여러분의 삶은 굉장히 이상해 질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때 교회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나라가 어려울 때 교회가 나라를 위해서 헌금을 하고 수많은 인재들을 키우고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을 짓고 전부 다 교회가 하고 선교사님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존립 이유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는 종교 행사비보다 그런 일들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키우는 사례비, 선교비, 교육비, 구제비가 훨씬 많아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회가 선한 사업을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런데 대부분 많은 분들이 이 헌금을 잘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서 헌금 봉투에 담아서 헌금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다행히 저희 교회는 헌금함을 돌리지 않습니다. 저는 헌금함 돌리는 것이 성경적인 것인가 개척 초기에 많이 고민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고 진실하게 정직하게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예배시간에 헌금 돌리는 것을 하지 않았고. 제가 헌금함을 돌리는 교회를 다닌 적이 있는데 엄청 불편합니다. 물론 준비를 하고 있으면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으면 당황하고 괜히 부끄럽고. 사실 준비하지 않아서 헌금을 드리지 않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자기 믿음의 수준이기 때문에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닌데 헌금함이 돌 때는 불편합니다. 그런데 그런 헌금함이 도느냐 안 도느냐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제가 어렵다 집안 사정이 어렵다 하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또 반대로 넉넉하게 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계층이 모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형편이 다 똑같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연 소득 얼마 이상. 얼마 이하만 다니세요. 이런 게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대학교 졸업한 사람만 다니세요. 이런 게 아닙니다. 교회는 그럴 수 없습니다. 교회에는 가난한 분들도 계시고 부유한 분들도 계시고 많이 배운 분도 계시고 못 배운 분도 계시고 나이가 많은 분도 계시고 그렇지 않는 분도 계시고 몸이 건강한 분도 계시고 그렇지 않는 분도 계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과 상관없이 헌금을 가르쳐주시는데 첫 번째는 준비하는 헌금입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가 헌금을 준비했느냐 라는 것입니다. 헌금을 준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 준비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준비라는 자체에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제가 결혼식을 주례하거나 심방하거나 중요한 분들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으면 저는 항상 성경책이나 감명 깊게 읽은 책을 항상 준비합니다. 제 서재에 가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서너 권씩 사 놓은 것도 있고 그러면 주례를 했을 때에는 성경에 부부가 될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메모를 해서, 심방에 갈 때 그 가정에 필요한 책들을 사서 메모를 해서 항상 들고 갑니다. 교역자들은 늘 봅니다. 그것이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저희 교회에 설교하려 오신 이상규 교수님이 저희 교회에 올 때 책을 3권이나 들고 오셨습니다. 저는 교수님이 신학교수 이시다 보니 신학 책을 들고 오실 줄 알았는데 주기철 목사님의 책, 조지뮬러 책에 기도 엄청 많이 해야 한다는 책을 저에게 들고 오셨습니다. 저한테 필요한 책인 것입니다. 신학 교수 이시다보니 자기 책 들고 오실 줄 알았는데 목회에 필요한 책들을 메모해서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말은 우리 교회에 오시기 전부터 우리 교회를 생각하고 준비하셨다는 말입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제 친구 중에서도 목회를 정말 반듯하고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잘하는 친구들은 제 생일이나 연말에 저한테 꼭 편지를 씁니다. 좋은 책이 있으면 메모해서 보내줍니다. 목회를 아름답게 하는 목사들은 그렇게 준비를 합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제 삶을 돌아봤을 때에도 그런 작은 습관들이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줬고 좋은 인간관계가 반드시 열매로, 보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진심, 진실, 정성. 이런 것들이 다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이것과 헌금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하는 헌금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하실 일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 질문하고 계십니다. 그런 삶은 늘 항상 정돈해서 살아가게 하는 삶을 만듭니다. 여러분, 무언가 준비한다는 것은 제가 다음 주 목요일에도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는데 그 분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지난주에 책을 샀고 또 어제 밤에 메모를 했고. 그러면 제 삶이 정돈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젯밤에 헛짓거리 짓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설교 준비하느라 바쁜데 이것도 해야 하니 제 삶은 늘 스케줄을 짜서 이 때는 이런 일들을 해야 하고 이런 준비들을 해야 하고. 우리의 삶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충대충 그 때 그 때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과정, 내용들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게으름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제가 편지만 쓰겠습니까.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말씀을 준비하고. 저는 자녀들에게 그런 삶을 가르쳐주는 곳이 교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수학, 영어,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지만 우리가 사람을 섬기는 것, 준비하는 삶,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는 그런 것들은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그래서 인내하고 그런 것들이 삶에 체득되어서 삶이 기본기가 탄탄한 경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교회밖에 가르쳐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의식 속에서 그냥 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 꺼내서 헌금하는 것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준비 안 된 헌금은 안하는 것이 좋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재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헌금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 헌금을 준비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꽤나 성경적인 경제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부자로 사느냐. 가난한 자로 사느냐. 우리가 부끄럽기도 하고 어깨가 으쓱 거리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굴의 잠언을 아시나요? 아굴이 잠언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너무 부자가 되지 않도록 해 주세요. 교만해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까봐 두렵습니다. 하나님, 저 너무 가난하지 않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일을 못한다고 할까봐 두렵습니다. 그 말은 부자가 되기 싫고 가난한 자가 되기 싫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싶지 않는 아굴의 마음이 담긴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살아가는 삶은 굉장히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헌금 하나를 이야기하는데도 우리가 헌금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데 하나님이 가까이 있어 준비된 헌금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왜냐하면 고린도교회를 살펴보면 고린도 교회가 제일 먼저 타락한 것이 성적인 타락이었습니다. 성적인 타락은 제가 룸싸롱을 안 가봐서 모르지만 기사를 찾아보면 룸싸롱을 가면 수백 만 원, 수천 만 원씩 깨진다고 합니다. 요즘 회사를 다니면서 사업을 하면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자들을 만나고 불법적으로 성적으로 타락에 빠지면 얼마나 많은 돈을 거기에 쏟아 붓습니까. 지금 사도바울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런 삶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는 삶으로, 헌금 드리는 삶으로. 그 헌금이 가난한 자를 돕고 병든 자를 돕고 이 교회가 선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그러면 우리의 삶도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얼마나 많은 이방신들을 섬겼습니까. 얼마나 많은 불법적인 제사를 드렸습니까. 이방 신들에게 갖다 바치는 것은 자기의 욕망을 위한 재물들이었습니다. 그런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헛된 일에, 헛된 우상, 귀신들에게 재물을 바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재물이 어떻게 쓰이는지 여러분 아시잖아요? 그 것뿐입니까. 서로 분쟁하고 싸우고 모함하고 우리의 말이 거칠고 우리의 마음이 병들고 서로 상처주고 이간질하고 그런 삶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준비하는 예배, 헌금을 준비하는 삶이 될 수 있겠습니까. 감정이 상해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늘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삶을 살라고 성경은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못해서 우리의 삶이 교회가 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요? 거기에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 의식을 드릴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한 연보, 준비된 연보를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가 회개했다. 그래, 너희 회개 했어? 그럼 연보를 준비해. 바울이 이야기했습니다. 너희가 정말 회개했다면 그 부자 동네에서, 고린도 도시에서 너희가 사는 삶에서 정말 회개했다면 성적인 타락에서 회개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것에 정말 회개했다면 가난한 지역, 마게도냐 교회들처럼 정말 어려운 지역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연보를 준비해. 이런 이야기를 8,9장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된 삶에서 증명해야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인 경제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제가 몇 달 전에 추천한 리퀴드 처치. 그 리퀴드 처치 사역 중에 성도들이 엄청 부흥했습니다. 목회를 잘하고 성령이 임하셔서 교회성도 수가 천 명, 이 천 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목사님이 성도가 천 명, 이 천 명인데 십일조하는 성도가 15%. 천 명 중에 백 명 정도밖에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목사님이 이상한 것입니다. 천 명이 교회에 와서 두 손 들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온 인생을 드리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헌금은 10-15% 밖에 안 나오니까. 사실 교회는 전 성도가 십일조만 걷어도 다른 헌금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성도들이 왜 십일조를 하지 않는가 심방을 하고 그들의 삶을 살펴보니 과소비, 레저, 취미생활, 음란, 도박, 불륜. 거기에 돈을 다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드 빚. 카드를 수 십장 가지고 있는 가정들도 있고. 그래서 리퀴드 교회 책을 읽어보면 매년 성도들과 함께 경제교육을 받습니다. 저는 참 특이한 교회다. 교회에서 경제교육을 하면 성도들이 올까 싶은데 그 많은 성도들이 불법적인 일을 회개하고 성경적인 경제관을 배우고 카드를 자르고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결단을 하고 십일조가 90%라고 합니다. 90%의 십일조로 아프리카에 수 천 개의 우물을 파고 학교를 지어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신학생들을 키우고 목회자를 키워서 곳곳에서 사역하게 만들고 그래서 이것이 신앙생활인가. 주일에 뜨겁게 찬양하고 나서 돌아서서는 음란, 도박에 돈 쓰고 그런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인가.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인가.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고 가정을 이루고 있으며 자녀를 키우고 있는가. 그러니 헌금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에도 투자 할 수 없고. 리퀴드 교회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교회가 심각한 것은 자녀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으면서 사실 삶을 살펴보니 자녀들은 방치하고. 자녀들에게 투자하지 않고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없을 만큼 삶은 믿음과 별개로 살아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매년 경제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저축하는지. 어떻게 지출하는지. 그런 삶을 살기위해서 어떤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당연히 십일조를 내면서도 부부관계가 회복이 되고 가정은 믿음으로 화목해지고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게 되고 신앙생활은 뜨거워지고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하나하나에 모든 것이 회복되는.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 하셨습니다.

 

-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_고린도후서9:6-11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_고린도후서9:10’

 

이 구절이 헌금의 키 포인트입니다. 한 구절 가지고 헌금의 의미를 찾아봐야 하는데 심는 자는 농부입니다. 농부가 가을에 결실을 맺습니다. 농사를 안 지어보신 분은 오늘 설교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 하셔야 합니다. 씨앗을 심어서 가을에 결실을 맺는데 이것을 다 먹어버리면 내년에 모종할 씨앗을 남겨놓지 않고 다 먹어버리면 내년에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당장 배부르지만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준다고 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고 풍성하게 가을에 추수를 합니다. 그러면 충분히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농부는 그 중에 가장 좋은 열매를 추려냅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십일조라고 가르칩니다. 가장 좋은 것을 추려내어서 그것을 보관합니다. 그리고 봄에 심습니다. 더 좋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 씨앗을 따로 빼놓습니다. 그래서 너희 심을 것을 주사 10절 하반 절에 보니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신다고 말씀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하다는 말은 플러스입니다. 풍성하다. 원래 있는데 더한 것입니다. 쌓이는 것입니다. 좋은 씨앗을 남겨놓고 내년에 심으면 또 그 해 좋은 열매들이 나옵니다. 좋은 열매 중에서도 제일 좋은 씨앗을 남겨서 그 다음에 심으면 또 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농부들은 아실 것입니다. 농부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시골에서 씨앗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좋은 품종을 얻으려고 값비싼 돈을 주고 품종을 사려고 노력을 합니다. 왜? 열매가 다르니까. 쌀도 아무거나 먹지 않습니다. 비싼 쌀이 있고 싼 쌀이 있습니다. 품종이 다른 것입니다. 씨앗에 따라서 열매가 다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농부는 자기가 추수한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따로 떼어 놓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겨울에 먹을 것이 떨어져도 그 씨앗을 먹는 법은 없습니다. 바보입니다. 그 씨앗을 먹으면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당장 이 씨앗을 먹어서 배부를 수 있지만 미래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굶어죽어야 합니다. 지금 성경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이 말을 정말 믿었습니다. 이것이 헌금뿐입니까. 저는 목회를 시작하면서 하나님 앞에 제 경제뿐 만 아니라 제 기도시간, 설교준비시간, 말씀에 은혜 받는 시간 모두 질과 양으로 하나님 앞에 결단했습니다. 이 설교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 삶을 공개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제가 설교를 잘 못합니다. 제 설교가 인기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제 설교를 들으면 답답하고 지루하고. 제가 설교를 얼마나 못하면 토시 한자 안 틀리고 녹취해서 달달 외웁니다. 100% 원고 준비한 설교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를 잘 할 수 있을까. 교회를 개척해서 성도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제가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기도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에 와서 두 시간씩 기도하고 있으면 바쁠 때에는. 내가 뭐하고 있지? 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바보 같냐면 교회에서 두 시간동안 기도하고 있으면 물론 은혜를 받을 때는 괜찮지만 바쁘고 마음이 심란할 때는 허무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그렇습니다. 허무합니다. 그런데 제가 확신을 얻는 것은 성경 속 인물 뿐 아니라 믿음의 선배들이 이 기도의 질적인 시간 없이 목회에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 없이 목회에 성공한 사람은 다 끝이 좋지가 않습니다. 기도의 시간은 헛되지 않습니다. 공부도 그와 같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좋은 성적을 얻습니다. 그러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운동하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겨울에 기술과 체력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돈을 투자하지 않으면 롱런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은 받은 연봉에 몇 프로를 떼어서 기술투자에 개인 코치들을 영입해서 반드시 기술을 계속 연마를 합니다. 체력 훈련하는 코치를 사서 겨울 내내 체력훈련을 합니다. 그래야 운동으로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기본 아닙니까. 씨앗과 먹을 양식을 구별하는 것. 우리의 삶도 똑같습니다. 이것이 헌금이야기입니까. 그런데 얼마나 어리석냐면 크리스찬들이 하나님 복 주셨다고 다 먹어버립니다. 자녀들에게 남겨놓지도 않고 후대를 위해서 남겨두지 않고 하나님이 축복해주셨다고 막 사는 것입니다. 기도 시간도 다 빼앗아 버리고. 말씀 읽는 시간도 다 빼앗아 버리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으니 막 즐기고 사는 것입니다. 지금이 놀 때지 하고 놀며 사는 것입니다. 제가 놀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씨앗은 구분해 놓고 살아야 합니다. 씨앗은 하나님 앞에 드려 놓고 살아야합니다. 씨앗은 저장해놓고 살아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시간의 십일조라고 생각하고 우리 노력의 십일조라고 생각하고 우리 재물의 십일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농구선수 중에 스테판 커리 라는 농구선수가 있습니다. 연봉이 한 해에 천 억 가까이 됩니다. 슛으로는 세게 넘버 원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MVP도 여러 번 받고 우승도 여러 번 했고 성공은 다했습니다. 그런 최고의 역대 선수가 얼마 전에 농구 후배들에게 쓴 소리를 했습니다. 아직 농구로 성공하지 않은 너희들이 나보다 연습시간이 더 없다는 것이 이해 할 수 없다. 골프 선수중에 지금 세계 랭킹 1위인가요? 로리 맥길로이 선수에게 얼마 전에 한국 선수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세상 정상 자리에서 오래 있을 수 있었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로리 맥길로이가 그 선수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 보니 이미 옷에 스폰서가 많네. 이미 스타가 되었구나. 스타가 되고 나면 방송에 불러 다니고 행사해야 하고. 그것 해야 해. 우리의 프로야. 그러나 네가 성공의 자리에 갈 때까지 매일 뼈를 깎는 연습시간은 빼앗기면 안 돼. 그것을 세계랭킹 1위인 본인도 매일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적이 나든 안 나든 성공을 했든 하지 않았든 늘 그 시간을 지켜서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도 조금 영역이 다르지만 원리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왜 제가 밤새서 성경을 연구하고 신학 책들을 뒤지고 기도하고 저도 놀 줄 압니다. 저도 이번에 월드컵 경기를 제대로 한편도 보지 못했습니다. 잠깐 잠깐. 월드컵을 다 볼 시간이 없습니다. 학교를 다니다보니 레포트도 쌓여있고 설교준비도 해야 하고 성구영신 예배 준비해야 하고 크리스마스 준비해야 하고, 오죽하면 이번 한 달 금요 설교를 교역자들에게 부탁했겠습니까. 제가 성도들을 지키는 목회 방법입니다. 기본을 지키는 것. 씨앗을 지키는 것. 성경은 헌금을 그와 같은 원리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너희에게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제가 부산에서 신학교에 다닐 때 핫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호산나 교회라고. 제가 청소년에 관심이 많다보니 그 교회에 청소년이 미친 듯이 부흥한다고 합니다. 90년대 중고등부가 부흥한다는 것은 흔치 않는 사례입니다. 200,300명 아이들이 천 명 이렇게 모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갔습니다. 별 거 없습니다. 중고등부 목사님 설교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예배 끝나면 공과공부하고 성가대도 하고 찬양팀도 하고. 소문 중 하나가 그 교회에 고등부에 21개정도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다니는 것입니다. 21개의 학교에 아이들이 흩어져 있는 거죠. 21개 정도에서 전교 1등 9명이 그 교회에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면 전교 1등이 9명이 있어서 그 교회를 갈까요? 애초에는 없었겠죠. 그런데 지금은 전교1등 9명이 다니는데 금요예배 가고 성경공부가고 찬양 인도하고. 고등학교 전교1등이 주말 내내 교회에서 내내 산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제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알고보니 그 교회에 비전헌금이 있는 것입니다. 그 비전헌금 봉투에 쓴 글귀를 보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비전헌금은 우리가 지금 하는 비전헌금과 다릅니다. 그 비전헌금은 100% 목적성 있는 헌금이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께서 아이들은 선교지를 가봐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 200만원 300만원을 내고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펀딩을 만든 것입니다. 이 돈은 이 교회에 등록된 아이들이면 누구든지 중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1학교 때에 선교지를 무료로 보내주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죠?그 교회에 등록된 아이들은 이 비전헌금으로 중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 때 지원해주는 것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혜택을 다 받는 것입니다. 이 헌금이 그 당시에 수억 모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중학교 1학년 때에, 고등학교 1학년 때에 교회 목사님, 전도사님하고 선교지를 가서 비전트립을 하고 미국도 가고 일본도 가고. 그래서 눈이 확 열려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다 공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별 거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아이들은 장학혜택을 받던 아이들이 지금 한국교회를 다 이끄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기도해라. 예배드려라. 잔소리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믿음이라는 것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저희 교회가 많은 도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커져서 그런 사역들이 이루어지고 전도사님이 아이들 데리고 선교지에도 가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믿음의 삶인지 같이 공부도 하고 그것을 봐야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책을 같이 읽고 공유하고. 서울에는 좋은 대학들이 많으니 그런 곳도 가보고. 순교지도 가보고.

 

- 회개의 열매가 헛되지 않게 하라_고린도후서9:12-15,역대상3:5,4:10,야고보서2:13-26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_고린도후서9:12’

 

이 봉사의 직무가. 헌금을 봉사의 직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어에 보면 이 헌금을 우리가 내는 연보를 하나님 앞에 직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로 드리는 이 봉사의 직무가 넘치게 채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권사님, 장로님들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꼭 가져주시고 기도의 십일조를 드려주시고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의 십일조를 드려주시고 요즘은 기도할 때 내 기도밖에 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십일조가 없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십일조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드려라. 그것이 감사로 드릴 때 하나님이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고 넘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분당 우리 교회에 가면 특별한 펀딩을 하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이 얼마든지 빌려갈 수 있는 구호헌금입니다. 그것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카운팅을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교회 뿐 아니라 누구든지 이것 때문에 자살하고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와서 급하게 빌려갈 수 있도록 펀딩을 해 놓았습니다. 물론 대형교회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도 그런 마음이 듭니다. 교회가 어떻게 여유가 있어서 세상에 빛과 소금된 사역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성경에서 발견해서 끊임없이 교육하고 도전하고 그런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해내려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많은 성도들이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 그것을 해낸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_역대상3:5’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라 암미엘의 딸 밧수아 라고 나옵니다. 열왕기상,하는 경고의 메시지라면 역대상,하는 자녀들에게 우리 조상들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하셨다는 소망의 책입니다. 그래서 이런 조금만 변화로 인해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라고 하면은 다윗이 회개하고 난 전 과정을 들쳐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회개하고 나서 그런 죄를 짓기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감싸주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너희 엄마는 암미엘의 딸, 밧수아야. 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대서를 자녀들에게 소망의 글로 적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새 삶을 살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목적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_역대상4:10’

 

야베스가 갑자기 나와서 야베스의 기도문이 올라갑니다. 갑툭튀 같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계신 것은 이런 야베스와 같은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그것을 하나님이 소망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 별거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이름 없는 야베스가 누군지도 모르는 야베스가. 저와 여러분이 자녀들을 위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하기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엄청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로부터 은혜를 놓치지 않도록 기도하는 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고 야베스가 그랬고.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소멸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헌신. 그것이 회개이고 기도라고 믿습니다. 그것에 대한 증명을 재물로도 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의 삶이 죄에서 벗어나 반듯하게 산다면 하나님께 당연히 드려야 할 십일조 할 수 있지 않느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_야고보서2:14’

 

엄청 합리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말로 믿음, 믿음해도 실제로는 성경도 안 읽고 기도도 안하고 행함이 없으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유익이 없구나. 야고보서에 같은 말을 합니다. 긍휼이 있는데 긍휼을 행하지 않으면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사랑이 있는데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 사도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배하지 않고 그의 말씀을 귀에 듣지 않고 그와 교제가 없다면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을 계속 섬기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계속 의도적으로 짓고 하는 것이 옮은 일인가. 어떻게 그 질문을 이 시대에 하지 않을 수 있나요.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능력조차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이야기합니다. 은혜입니다. 믿음의 부모들이 기도로 은혜를 구하고 복을 구해서 또 우리 자녀들이 은혜의 자리에 나오는 것입니다. 될 만해서 이 길을 갑니까? 믿음의 길이라는 것은 할 만 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소망이 있습니까? 저는 이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데도 미래가 암담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 있다면 은혜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기도를 하고 나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나면 내 안에 그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가 생기고 확신이 생기고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죄와 타협하지 않고 갈 수 있어. 나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갈 수 있어. 이런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 교회사를 공부하다보니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는지. 그 시절 배우지 못한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새벽이면 금요일이면 그 힘든 일 다 마치고 교회에 모여 나라를 위해서 후손들을 위해서 얼마나 부르짖고 기도했는지.  그 분들이 똑똑 했을까요? 한글도 모르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한들 얼마나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 기도 때문에 우리나라가 산 것입니다. 그 헌금 때문에 우리나라가 산 것입니다. 농사지어서 품팔이한 돈을 십의일조를 드리고 우리가 나라가 네비우스 정책 중에 가장 완성적인 나라라고 합니다. 외국 선교사들이 후원해서 지은 병원 학교. 빚도 갚았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감사해서. 고마워서. 그 때는 당신들을 우리를 도와지만 우리가 이제는 갚아주겠다. 우리가 복음을 받고 당신들이 말씀을 주셔서 이제는 살만 하니 이제는 갚아주겠다고 해서 갚아준 사례도 있습니다. 주님께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수준 낮은 기도인가요? 내 부모, 형제를 구원해 달라고 내 자녀들을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내 은밀한 죄들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과연 수준 낮은 신앙인가요? 여러분, 무엇이 수준 낮은 신앙입니까. 행함이 없는 신앙이 기도하지 않는 신앙이 수준 낮은 신앙인 것입니다. 긍휼이 있는데 긍휼을 베풀지 않는 것이 수준 낮은 신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연보를 헌금을 감사로 믿음대로 드리라고 합니다. 기쁨으로 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나요? 그런데 하나님이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이야기합니다. 헌금을 즐겨낼 수 있나요? 도대체 어떤 믿음의 삶이어야 헌금을 즐겨낼 수 있을까요? 여러분, 제가 헌금을 많이 걷기 위해서 설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제가 헌금 설교를 이렇게 한 적이 있나요? 그러나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기도 시간을, 우리의 달란트를 하나님께 즐겨내는 삶이 어떤 삶이기에 하나님은 그 삶을 사랑하시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럴만한 삶이 되려면 우리의 삶은 진짜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일어서는 삶이어야 합니다. 늘 죄에 치이고 늘 쾌락에 빠져 살고 늘 세상과 타협해서 사는 삶은 하나님께 즐겨 낼 수 없겠죠. 우리의 삶이 완전히 일어 서있어야. 그래서 지난주에 8장에 무엇이라고 이야기합니까. 하나님에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일어서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에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그러진 다리를 일으켜 세워라. 저는 다리로 일어나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백성들에게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일어서라는 의미가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이 아닙니다. 죄악에서 일어나라. 은밀한 죄에서 벗어나라. 너의 삶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면 너희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만큼 반듯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설교가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은 세속적이라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런 우리의 삶에도 복을 주실 것입니다. 분명히 시편에도 잠언에도 전도서에도 구약 곳곳에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경외한 자에게 하나님이 재물과 부를 맡기시고 그 재물과 부로 가난한 자를 섬기게 만드시고 이 땅에서 자녀들은 강성하게 만드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께 즐겨 내는 것을 헛되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저는 그러고 싶습니다. 제 삶에 하나님의 의의 열매를 더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늘 묵상하고 꿈꾸고 준비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져서 감사와 기쁨이 있어서 우리 안에 있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 보듬고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그의 열매가 더해야겠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씨앗을 겨울 내내 보관하고 내년 봄에 심기 위해서. 그런 농부의 마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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