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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3-01-01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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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1월 0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하나님의 열심으로
본 문 : 고린도후서 11:1-15

 

 오승주 목사

 

1. 나를 용납하라_고린도후서11:1

 

고린도후서 11-12장 이 내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11-12장에 거짓 선지자들, 거짓 사도들에 대해 바울의 입장, 어떻게 보면 이 입장이 남들이 들을 때는 바울이 뭘 자랑하는구나,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이 11장 1절을 시작할 때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_고린도후서 11:1

 

나의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는 11-12장의 내용입니다. 11-12장 내용을 용납해라. 내가 앞으로 이렇게 말할 건데, 내가 너희에게 팔불출처럼 내 자랑을 할 건데, 그거 되게 어리석은 일이야. 나는 원래 자랑하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올바른 신앙을 가르치고 믿음으로 갈 수 있도록, 너희가 거짓 선지자와 그릇된 목회자들, 잘못된 신앙의 영향을 주는 사람에게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내가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 나의 신앙을 너희에게 자랑하고 싶어. 이 자랑이 어리석은 거라는 것을 알지만 나를 용납해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11장 시작할 때 용납하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 입장에서는 엄청 민망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하나님을 경험한 것들, 하나님 앞에서 환상을 보고 계시를 보고 내가 진짜로 너희들보다 못한 게 뭐가 있냐? 내가 저 거짓 선지자들보다 못하게 산 것이 뭐가 있냐? 이 자랑을 할 건데 그게 되게 부끄럽다. 부끄럽지만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 되는 이유가 있다라고 하면서 그거에 대해서 용납하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게 자칫 잘못하면 남들에게 교만 혹은 자랑으로 들릴까봐 바울이 약간 노심초사하는 그런 장면입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용납하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안 할 수는 없다. 내가 이 말을 꼭 해야 되겠다 하는 내용이 11-12장의 내용입니다. 앞으로 네 번의 설교를 통해 다룰 건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기능 중에 하나가 이성이라는 것이 있고 감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굉장히 냉철하고 차갑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올바른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또 감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감정도 그렇습니다. 감정은 엄청 좋은 거죠. 사실 감정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거 아닌가요? 기쁜 마음. 감사한 마음. 행복한 마음 다 감정인데. 여러분 세계에서 행복을 가장 많이 느끼는 나라가 제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처럼 경제대국이 되고 선진국이 되는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엄청 더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남들과 비교하고 TV에서 나오는 연예인들 보면 박탈감을 느끼고. 그러기 때문에 엄청 잘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진짜 가난한 나라들 있습니다. 모두가 가난한. 우리 어릴 때처럼 시골에서 나무 가지고 불 떼고 이러면. 그 때는 밥 한 끼 먹는 것도 행복하고 엄마랑 껴안고 자는 것도 행복하고. 그렇죠?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는 것도 행복하고. 또 이 감정을 이성과 반대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감정적인 사람은 이성적이지 않아. 수준이 조금 떨어져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수도 있습니다. 감정 혹은 정서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정서가 조금 더 포괄적이고 감정을 포용한 전문적인 단어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저 사람의 감정, 정서 이게 다 드러납니다. 감정, 정서가 굉장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감정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면 그 힘든 일을 뚫고 지나갑니다. 기쁨으로 합니다. 감사함으로 합니다. 여러분 그러잖아요. 똑같은 일을 해도 나에게 돈이 되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처럼. 원래 제가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는 것이 몇 개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를 보라고 추천해줬습니다. 1화를 딱 봤는데 2화도 보고 싶고 3화도 보고 싶고. 이 드라마 추천을 합니다. 여러분 삶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건전하고 내용도 좋고 괜찮다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 드라마가 되게 깁니다. 1시간 30분 이럽니다. 그런데 10분, 15분 같습니다. 이렇게 표현해서 진짜 죄송한데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본문을 가지고 진보적이고 보수적인 목사님들 설교를 다 들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확인을 하기 위해서. 설교 40-50분 듣는 게 얼마나 시간이 안 가는지.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가끔 1.5배속으로 듣기도 합니다. 저는 제 설교를 들을 때는 2배속으로 넘깁니다. 하기 싫은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해도 하고 싶지 않고 또 좋은 마음이 있으면. 감정이 그런 힘이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 자녀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감정은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는 엄청난 파워가 있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도 전부 감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감사해라, 찬송해라, 기뻐해라. 예수 믿으면 행복하다. 그런데 이 감정이 반대가 되면 엄청 무섭습니다. 감정이 우리의 사고영역 안에서 일정 부분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게 감정의 무서운 부분입니다. 감정이 겉잡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면 이성도 중요하지 않고 경험도 중요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중요하지 않고 감정에 완전히 휩싸여 버리는 건데 이 감정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는 괜찮지만 부정적인 역할을 할 때는 어떻게 되죠?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감정이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에이 몰라. 될 대로 되라 이런 말을 함부로 하는데 감정이 무너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아 몰라, 될 대로 되라. 아 몰라 나 이제 안 해. 아무것도 안 해, 하기 싫어. 다 감정이 무너진 사람들이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여러분 그런 분들 많이 봤죠. 조금 하다가 뭐가 잘 안되고 실패하고 이러다 보면 아 몰라, 하기 싫어, 될 대로 되라. 그 동안 해왔던 것을 포기해버리는. 감정이 완전히 무너져서 이성을 지배해버린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평소 감정적인 사람보다 이성적인 사람이 감정에 훨씬 더 약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심리학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원래 평소에 약간 감정적인 사람들보다 평소에 굉장히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감정이 더 약하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훨씬 더 무너질 확률이 많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은 되게 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하지만 소위 감정대로, 소위 기분대로 현실을 파악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이성적인 사람들에게 되게 많다고 합니다. 그러게 되면 객관적인 사실, 믿음과는 별개로 우울, 분노, 원망, 자기 연민의 자리로 삶이 내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의 문제는 믿음의 성숙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찾아와서 부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나 신앙생활 오래했어, 나 목사야, 장로야 이런 것과 상관없이, 어떤 믿음의 연륜, 경험 이런 것과 상관없이 언제든지 찾아와서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감정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생활을 하는 것, 신앙공동체를 하려고 하는 것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함입니다. C.S. 루이스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의 기분에게 비켜날 때를 가르치지 않는 한 당신은 절대 건전한 그리스도인이나 하다못해 건전한 무신론자도 될 수 없다’ 그러니까 내 감정에서 비껴날 떄를 배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배우지 않으면 건전한 그리스도인은 둘째 치고 건전한 무신론자도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되게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흔히 감정은 혼자 있을 때, 고독할 때, 부정적인 역할을 함으로 사람을 많이 무너뜨립니다. 영적인 침체가 오는 경우가 다 그럴 때입니다. 여러분 하와도 동산에 혼자 거닐 때 뱀의 간궤에 넘어갔습니다. 혼자 거닐 때. 성경 읽어보세요. 그런 표현들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혼자 거닐 때. 보통 남자들이 출장을 가서 호텔 방에서 아내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있을 때 어떻게 되죠? 성적인 타락을 많이 합니다. 그때는 진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데 나는 냉정하게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어. 합리적이야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그 다음 날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지 하는 것입니다. 감정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 목회의 서글픈 현실에 대해서 김관성 목사님 책에 보니까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목회의 본질을 가지고 신앙의 본질을 가지고 목회자들이 고민하고 목회하고 성도들을 신앙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손상을 입은 삐진 사람 달래는데 목회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게 목회자들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감정에 손상을 입어서. 흔히 말하는 삐졌다. 나 신앙생활 안 할래요. 저 집사 때문에. 저 장로 때문에. 목사님 때문에. 목사님 설교할 때 내 이야기 했죠. 제가 당신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당신 이야기로 듣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많기 때문에. 목회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목회 현실이라고 할 만큼 교회 안에서도 이 감정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감정에 대한 교육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이 뭐라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부분들을 잘 살펴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한다, 말씀을 읽고 묵상한다 여기서 끝나는 거지, 실제로 내 이성과 감정에서 감정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믿음의 신앙의 선배들은 감정을 다스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C.S 루이스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분명한 지시를 내려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내 감정에 분명한 테두리를 정해줘야 한다. 성경에서 다윗이 제일 잘 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해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바라봐라. 자기 영혼에게 자기 마음에 명령을 늘 내렸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마음, 감정, 영혼에 늘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니. 그러니까 여러분 자신의 감정을 향해서 분명한 지시를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객관적으로 내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고 감정에 지시를 내리며 갈 수 있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해야 되요?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이 지금 그걸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2-7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열심으로_고린도후서11:2-7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지금 바울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4절 보세요.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지금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시죠 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_고린도후서 11:2-7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말 잘 못하죠, 복음을 전하려고 고린도교회 가서 헌금 이야기도 안 하고. 오늘 내용이 그렇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서 고린도교회에서는 깨끗하게 복음을 전하려고 헌금, 비용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내용입니다. 그들을 섬기려고 자기의 사도됨과 자기의 배경,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하나도 드러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했어요? 흔히 말하면 깔봤습니다. 말 잘하는 거짓 선지자, 말 잘하는 거짓 사도 이런 사람들에게 완전히 현혹되어서 그들을 바라봤습니다. 오늘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자신의 감정, 어떤 고독 이런 거에 갇혀서 자신의 사상과 이념에 사로잡혀서 그리스도의 신실한 신부가 되지 못하면 진짜 안타깝고 억울하겠죠. 오늘 내용이 정말 어렵긴 합니다. 목회하고 있는 가스펠교회가 부정될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잘못하다가 우리는 이 시대의 사조. 저는 신학을 공부한 목사니까, 어떤 신학,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험들. 사건들, 상황들, 이런 모든 것들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향하는 우리의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서 부패할까 두려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내 사역과 내가 지금 어떻게 신앙생활 하고 있는지 자랑 좀 할게 라고 오늘 본문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고 그게 엄청 어리석은 거지만 내가 너희에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이렇게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언제쯤 우리 가정 형편이 나아질까요? 목사님 언제쯤 우리 집에 경제문제가 해결이 될까요? 그런데 이거는 목사들도 똑같습니다. 저도 개척하면서 늘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언제쯤 사례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언제쯤 교회가 100명 될 수 있을까? 100명만 되면 진짜 좋겠다. 사례만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진짜 좋겠다. 제가 지금 사례를 제대로 받고 100명이 넘어간지가 한참 됐잖아요. 개척 초기에 그런 소원, 소망들 100명만 되면 진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할 거 같은데 지금 너무 괴롭습니다. 개척 때보다 더 힘듭니다. 올해 소원은 주차장만 해결되면 너무 행복하겠다. 이것만 해결되면 올 한해 내가 주를 위해서 뭐든지 다 하겠다 이런 마음입니다. 진짜 그렇게 괴롭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300명만 되고 500명 성도가 되면. 어떤 목사님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가 300명만 되면 걱정 없어.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목사님의 삶을 보니까 인간다운 삶이 아닙니다. 얼마나 괴롭게 사는지. 근심, 걱정이 얼굴에 가득하고. 성도들 때문에 교회를 운영하려고 얼마나 힘든지. 지금은 계시지 않는 고 하용조 목사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전 성도들과 같이 산기도 다닐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간증하셨습니다. 수만명 되는 교회 목회하시고 목회자로 존경받고 성공하신 분입니다. 온누리교회를 개척하셔서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셨어요. 지금 우리가 생명의 삶 이런 것도  다 목사님의 작품인데. 그런데 노년에 설교하실 때 그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개척해서 성도들과 산기도 다닐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우리의 질문인 것입니다. 우리 가정은 언제 문제가 풀릴까? 그런데 사실 진짜 신앙인이라면 그리스도께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감정이 진실하고 깨끗하다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하죠? 목사님 저희 가정은 언제 다 예수를 믿을까요? 목사님, 우리 가정은 언제쯤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될까요? 그게 정상적인 질문 아닙니까? 목회자도 교회의 300명, 500명을 질문할 것이 아니고 저는 올 한 해 성도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잘 믿을까요. 어떻게 하면 방황하는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장로님, 권사님들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도록 섬길까요. 더 좋은 질문은 어떻게 하면 주의 종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질문해야 되는데 하나님, 언제 500명 될까요, 언제 1000명 될까요 지금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이런 거짓 사도들. 여러분 거짓 사도들이 사람 같지만 그렇게 우리를 유혹하는 사상들, 그릇된 선배 목회자들을 따라서 한국교회의 흐름으로 가려고 하는 것들.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해야 된다고 하는 것들.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거에 매여서 우리의 감정이 휩쓸려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왜 이거 안 해? 왜 이렇게 안 해? 다른 교회 보니까 하던데. 그러다보니까 정말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게 너무 걱정인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사람으로 너희가 순결한 신부로 그리스도와 결혼하기를 원하는데. 나는 너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데. 오늘 나오잖아요. 자기들이 크다고 하는 사도들, 거짓 선지자들. 그래서 그들이 다른 영을 받게 하고 다른 복음을 전하고 할 때 너희들이 잘 용납하더라? 오늘 본문 4절에 잘 용납하더라? 목회자들이 와서 축복 받아라, 응답 받아라, 헌금하면 너희가 복을 받을 거다. 목회자를 잘 섬겨라 그러면서 너희가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이렇게 하라는 수많은 거짓 신앙들을 이야기할 때는 너희가 잘도 용납하더라. 그런데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해서 낮아지고 복음을 값없이 전하기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너희에게 전한 복음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향해서 순결하고 깨끗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 이야기했던 것들에 대해서는 너희가 나에게 감정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수준과 비슷한 정도로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정말 신앙의 본질로 가기가 힘든 시대입니다. 가끔 저도 그런 기도를 합니다. 주님, 제가 얼마나 헌신하고 노력했는지 아시죠? 그 말은 하나님께 보상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죠? 주님 제가 얼마나 기도하고 헌신했는지 아시죠. 그 말은 하나님 보상해달라는 거잖아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만족하고 주님 진짜 감사해요 이게 아니라. 따져 묻듯이 주님, 내가 얼마나 힘들게 개척하고 사역하고 했는지 아시죠. 이 말은 보상해달라는 것입니다. 고 박윤선 박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유익이란 평생 기도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무언가를 보상받고 응답 받으려고 박윤선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유익이란 평생 기도하는 복을 받는 것이다. 여러분 이게 신앙 아닌가요?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더 잘 섬기기 위해서 신앙생활하는게 우리 신앙의 본질 아닌가요? 그런데 이 신앙의 본질을 이야기해주는 것을 이제는 성도들이 싫어합니다. 지겨워하고 기도하는 것도 지겨워하고 예배 드리는 것도 지겨워하고. 아 목사님 이제 그만 좀 이야기하세요. 알았으니까. 다 아는 거 아니에요. 조금 세련되고. 조금 경제적으로 잘 풀리고. 조금 응답 받을 그런 거 없어요? 그런 비결 없냐구요. 그래서 사람들이 비결 같이 이야기해주는 목회자들, 유튜브 스타들을 쫓아갑니다. 그런 책 보고 그런 목회자들 설교 들으면 마치 그런 것처럼 되니까. 실상은 아무 것도 없는데. 바울은 그러면서 8절부터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 다른 교회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_고린도후서11:8-15, 야고보서1:16-27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왜 탈취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죠? 나는 고린도교회 너희를 섬겼는데 왜 내가 너희를 섬기면서 사용했던 비용은 다른 교회에서 후원 받아야 돼? 비용 탈취한 거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반어법입니다. 나 너희를 사역하면서 고린도교회 너희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않았어 이 말입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믿음이 있으면 바울은 그들에게 요구를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교회들, 마게도냐나 믿음의 교회들에게는 바울이 더 넘치게 헌금 거둬서 줘, 예루살렘 교회도 도와야 되고 다른 교회도 도와야 되니까 주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9절에 

 

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엄청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내 안에 있으니, 내 마음에 있으니. 자 보세요.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비용을 받지 않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기의 모든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복음을 전하고 이제야 간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린도교회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니까. 내 안에 진리가 있는데, 그리스도의 진리가 있는데 이게 아가야 지역, 고린도 지역에서는 막히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막히지 않도록, 생명의 복음이 십자가의 복음이 막히지 않도록.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이 막히지 않도록. 그동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원망했습니다. 저 바울 대머리지, 말도 못하지, 도대체 바울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이러면서. 고린도전서를 보면 얼마나 원망했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 때 말 한 마디를 안 했습니다. 왜요? 내 안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막히지 않아야 하니까. 이 자랑이.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랑하는 것이 막히지 않아야 되니까. 이제서야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부끄럽고 하지만 너희가 회개했다고 하니까 나 좀 용납해, 용서해. 이제야 그때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1.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무서운 말입니다. 사도 바울을 따라했던 거짓 선지자들. 여러분 거짓 선지자들이 바울과 똑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여러분 마귀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뭘 설명하는 거예요?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가 주어가 아닙니다. 이 성경 본문의 포인트가 아닙니다. 가장하나니 하면서 뭘 이야기를 하는 거죠? 15절이 포인트입니다.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러면서 뭐라고 하나요? 또한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 열매로. 그래서 바울은 뭐에요?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랑하는 것을 지금도 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할 거야. 변치 않을 거야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쟤네들은 변할 거야. 변질 될 거야. 그거는 진짜가 아니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지 않고 저들은 그냥 말로 언변으로 너희들에게 가까이 가서 다가가서 꼬시고 친해지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해 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이 복음을 들어야 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 같지만 그것은 진짜가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묘하게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했고. 오늘 이야기하잖아요.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게 만들었고. 여러분 혹시 저희 교역자들이 그럴 수 있죠. 저도 그럴 수 있죠. 목회자들이 여러분에게 가서 입 발린 소리로. 조심하셔야 합니다. 진짜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여러분의 신앙이 그런 것들을 분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힘 있는 것은 한결 같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거짓 선지자들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엄청 많이 유혹했습니다. 그들이 다 떠났습니다. 다 떠나고 배신하고 변질되고, 부패하고 타락하고. 그런데 끝까지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사역을 다른 교회에 도움 받으면서까지. 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리라고 했던 그 하나님의 열심.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열심 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자기 열심 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고 하나님의 열심 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남포교회 원로목사님이신 박영선 목사님의 책, 하나님의 열심. 예술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어떤 의미인지 가장 잘 설명한 책은 그 책이라고 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읽어보시기를 추천을 드립니다. 야고보서 1장 16절에서 27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 모든 온전한 선물 다 어디서 온다고요? 위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우리 삶에 은사, 그래서 우리를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구원의 열매, 은혜의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하는 모든 것들이 다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을. 그러면서 19절부터 보세요.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감정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그러니까 이 감정이 뭐에 영향을 받으면?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에 영향을 받으면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절대 받을 수 없고 분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야기합니다. 21절에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우리 마음에, 감정에 심겨진 말씀으로 온유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22절에 보세요.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 듣기만 하고 그래서 생각만 많이 하고. 자기 생각에 빠져서 이게 신앙생활이야, 이게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계획이야. 어제 이야기했습니다. 얼마나 많은지요. 교회가 조금 부흥하고 나면 이건 하나님이 역사하셨어 이렇게 자기의 업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잖아요. 사업이 잘 되거나 일이 좀 잘 되면 하나님이 역사하셨어 이러다가 갑자기 일이 안 되면 하나님이 어디 가셨나  이러면서. 이게 우리 신앙인 것입니다. 그게 맞아요? 완전 틀린 신앙입니다. 아 우리가 일이 안 풀리면 하나님이 역사 안 하시고 하나님이 죽으시고 하나님이 일 안하시는 거구나. 그런가요? 우리 감정으로 신앙생활을 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분 내키는 대로.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신앙입니다.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은 일하시고. 우리가 연약할 때도 일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뭘 위해서요? 구원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열심을 내고 계십니다.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이 때는 거울이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선명한 거울이 아니었습니다. 부자들만 거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반 평민들은 자기 얼굴을 물이나 반짝거리는 것에 겨우 봤다고 합니다. 참 그 시절이 좋습니다. 지금 자기 얼굴을 보고 사는 게 그닥 좋은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반어법입니다. 실제 자기 얼굴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우리 감정을 거울에 비춰보면 부끄럽겠죠. 우리의 마음을 보이지 않는 내 영혼을 거울에 비춰보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실력 있는 목회자들, 혹은 진짜 실력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생활하느냐, 혼자 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가 이게 진짜 중요합니다. 홀로 있을 때. 내가 혼자 있을 때. 미국에서 제 친구 목사하고 둘이 운전하면서 가는데 친구 목사가 진짜 착합니다. 좋아한다는 표현을 넘어서 존경하는 친구입니다. 아주 성품이 좋고. 그런데 운전할 때 이 썩을 놈이 이러면서. 갑자기. 야, 너는 아직도 성화가 덜 됐구나 이러면서. 운전할 때 갑자기 누가 튀어나오니까 이 썩을 놈이, 죽일 망할 놈이. 그러더라고요. 그거는 제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저는 운전할 때 그렇게 화를 내거나 성질내지는 않습니다. 주로 다른 사람이 제 차를 볼 때 그렇게 할지 모르겠지만. 저도 뭐 할 때 나오냐면 운동할 때 나옵니다. 운동을 너무 좋아하고 승부욕이 너무 강하니까 농구 같은 것을 할 때 아우 씨, 내기 같은 거 할 때는 제 성격, 본 감정이 나옵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24절 보세요.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잊어버리잖아요. 어떤 목회자가 호텔에서 성적인 범죄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날 설교하는데 그 일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합리화 하고. 아주 이성적인 판단으로 그 일을 했다고. 자기는 성적인 범죄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착각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감정이라는 게 무서운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때 어땠는지 알아? 너희가 얼마나 감정적이었는지 알아? 너희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현혹되어서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의 영향을 받아서 너희가 나한테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알아?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합니다.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우리를 감정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은 온전한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영혼에 심겨진 하나님의 말씀.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자기 마음을 속이면 혼자 있을 때 경건하지 않으면. 남들에게는 경건한 척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잖아요. 우리가 전도할 때 내 삶을 압니까? 제일 전도하기 어려운 사람이 내 가족이고 자녀입니다. 아무리 전도해보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중직자를 세우고, 목회자를 세울 때 성경에서는 가족들을 보고 세우라고 합니다. 결혼한 사람들을 세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얼마나 이 사람을 인정하고 사랑하는지. 완벽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빠가 조금 부족하지만 실수할 수 있지만 주님을 사랑하고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연민하며 사랑하며 용서할 수 있는 그런 게 중요한 것입니다. 율법적으로 집에 가서 거룩한 척. 그러면 더 예수 믿지 않습니다. 그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그리스도께 그리스도를 향해 진실함과 깨끗함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너희 마음이 부패해버렸다는 말은 우리 감정이 거기에 휘말려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과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을 동의어처럼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고아와 과부를 돌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돈을 흥청망청 쓰지 않아야 고아와 과부를 도울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경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속에 물 들어서 타락하는 일에 이상한 유흥에 돈을 쓰지 않아야 우리가 고아와 과부를 돌볼 수 있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헌금하는 거 아깝다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바울은 그런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야고보 사도의 내용을 추가해서 본문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 하나님의 열심.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하려고 하시는지를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에서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심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그게 경건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 마음에 오면 진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진실하고 깨끗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런데 요즘 신앙은 어떻죠? 그리스도께 진실하고 깨끗한 신앙이 아니라 뭐라고 이야기하죠? 오직 예수,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잘 믿는데. 오직 복음 이러면서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아니죠. 진짜 예수님 잘 믿는 사람은 늘 겸손합니다. 늘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주님 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많이 연약하지만 그래도 주님 사랑하는 일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게 맞죠? 지금 굉장히 어려운 내용입니다. 감정을 악에 거짓 선지자들에게 내어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의 진리에 우리의 감정을 내어놓아야 이 감정이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고 평안이 되고 안식이 되어야 우리 삶이 그리스도를 향해서 깨끗하고 진실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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