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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3-01-15 주일예배

1월 15일 주일예배(1부 am10:30/ 2부 pm1:30)
본문: 고린도후서12:1-10
제목: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찬송:  39장(주 은혜를 받으려)

-과연 복음은 무엇인가_고린도후서12:9

•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더 넓어지고 또 깊어지길 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앙공동체(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 개인이 성경과 기도, 신앙의 역사를 통해 복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지게 됩니다. 
• 빌립보서2:2-4에 보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에 대한 그릇된 오해를 많이 합니다. 흔히 요즘 세대에 많은 성도들이 심지어 저같은 목회자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교회, 아름다운 교회, 건강한 교회, 축복된 교회'를 바란다. 그걸 바라는 것은 선한 바램이잖아요. 그런데  그 선한 바램을 가지면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그러나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성도나 교회로 여김받는 일 뒤에는 피흘림 같은 희생과 자기를 내어주는 수준의 겁나는 자기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어라고 그 역할을 '내 가까운 누군가' 맡아주길, 이왕이면 우리 목사님 정도가 딱이다 생각하죠. 그래서 우리 목사님만 훌륭하면 된다. 그럼 나도 훌륭하다. 이런 논리로 신앙생활이란 것을 하려고 합니다. 
• 공부 잘하는 학생이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나 둘다 똑같이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차이는 나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알고 공부하는데 못하는 학생은 그걸 모르니까 공부할때마다 처음부터 공부를 합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려다 보니 지치고, 그래서 5분만 자가다 해야지 하고 라면 하나 먹고 해야지 하고 그러다가 아침이 됩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고 목사님이 그걸 어떻게 잘 아시지? 생각하시는 거 같습니다.) 
• 이걸 요즘은 메타인지능력이라고 합니다. 쉬운 우리 말로 자기 성찰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아는 것, 자기가 모르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죠. 영적인 메타인지 능력이 필요한 세대입니다. 
• 신앙생활에 있어서 분명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정확하게 내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 회개는 감정의 호소가 아닙니다. 진심을 표출하는 시간이라고 하지만 그것만 한다고 회개가 아닙니다. '하나님 저의 마음을 고쳐주셔서 다시는 그런 범죄를 하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은 회개할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불쌍한 사람보고 저 사람 도와줄 수있는 긍휼의 마음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은 주기 싫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냥 꺼내서 도와주면 되고, 내가 다시 그 범죄를 하지 않아야 그것이 회개입니다. 
•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저보다 더 시골에서 온 친구(백진국목사)가 있습니다. 경북의 한 깊은 시골인데 정말 차로 한참 가는 곳입니다. 저희가 그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로 전도할 겸 수련회를 간적이 있습니다. 정말 복음의 불모지여서 전도하러 갔는데 소금 뿌림 당하고 그랬던 곳입니다. 거기 교회가 하나 있는데 얼마나 작은지, 볼품 없는지 거기 교회에서 오랜 세월 기도한 권사님 아들입니다. 그 친구가 신학교에 왔는데 자기가 얼마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런데 그 부족한 친구가 새벽기도 한번 빼먹지 않고, 수업 시간 얼마나 열심히 듣고 공부하던지(그 작은 교회 성도들이 보내는 학비라고), 제가 같이 새벽기도 다니면서 우리 나중에 정말 좋은 목회자 되자 얼마나 다짐했는지 모릅니다. 지금 제 친구들 중에 제가 볼때 가장 좋은 목회자가 되어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 복음은 무엇인가요? 어떤 분들은 복음을 듣고 너무 뜨거워서 구원의 감사 감격에 대한 것으로 대단한 소리를 지르고 역사에 동참해서 헌신하는 거 같았지만, 무엇때문인지 어떤 상처 환경 인간관계 돈 이런 것들로 식어버리고 오히려 주님을 멀리하고 원망으로 살아가는 분들을 봅니다. 그러니까 정말 그분이 복음을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저는 궁금합니다. 
• 세월이 오래 흘러 나이가 들어 평생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교회를 섬기고 또 가정을 섬기고 살아가면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이 복음이 아닐까.

-환상과계시 그리고 교만의 무서움_고린도후서12:1-8

• 그런 면에서 바울은 모든 부분에 완벽한 사람같았지만, 유대종교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평생 그렇게 교육받고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사렛(촌구석, 가난한) 예수의 복음으로 유대인들이 떠나간다는 것이 화가 나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것이 자기의 종교심이었고 또 선한 일이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유대인들을 고발하고 잡아들이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 예수님은 그런 바울을 다메섹에서 만나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바울이 사역할 때마다 환상과 계시로 만나주시고 역사하셨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자기가 가진 지식, 배경, 종교적 열심을 약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알기 때문에 바울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 처럼 기도처를 찾았습니다. 너무나도 잘 아는 성경(당시 구약, 모세 5경)을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다시 보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 하나님은 바울의 약함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환상과 계시로 늘 그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천국을 경험한 간증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한사람'이라고 '그'라고 표현합니다. 천국을 경험한 것을 왜 다른 사람의 경험처럼 말할까요? 천국을 경험한 그것이 마치 자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그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2절에 14년 전이면 1차 선교여행이전 주후42-44년 사이 다소나 안디옥 부근이었을 것입니다.(ESV) 그러니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환상을 경험한 것입니다. 
• 이것이 부끄럽다고 하는 이유는 바울 스스로 히브리서의 말씀에 보고 믿는 믿음보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크다고 고백합니다. 
• 바울은 그 사실을 사역할때 간증하지 않습니다. 사역할 때는 철저하게 그의 삶으로 성도들과 함께 말씀을 가르치고 함께 살아내는 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 심지어 그는 7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육체의 가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세번이나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9절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 답하였습니다. 즉, 육체의 가시를 죽을때까지 해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육체의 가시를 핍박, 복음 전파하면서 당하는 고난, 이런 것으로 해석합니다.(초기에는 간질과 같은 병이라고 하기도 했지만)
• 맞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도를 많이 했다 합시다. 그런데 정말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주님의 사람이 되고,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교회에서 기도를 많이 했다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가 아니라 교만의 주인공이 되어버립니다. 회개는 의지적 결단과 행동입니다. 내가 정말 사랑한다면 사랑하면 됩니다. 내가 주일학교 아이들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면, 다음 세대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외치면 주일학교 교사하시면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면 교회를 사랑하시면 됩니다. 환상과 계시를 받으셨다면 우리는 환상과 계시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성도들과 할 것이 아니라, 너는 이런 거 받아봤냐 가 아니라 그 환상과 계시에 따라 살아가면 됩니다. 
• 신앙이 진짜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니 정말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만큼, 정말 엎드리는 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 제가 우리 교회에 대한 한가지 고민은 어떻게 우리가 기도할까, 기도할 수 있을까, 새벽기도를 시작할까, 금요철야를 해야 할까, 우리 아이들이 그 속에서 환상과 계시를 경험하고, 성령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커야 하지 않겠습니까?
• 네 그런 교회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권사님 장로님들이 교회에서 밤새 기도하고, 주일이면 새신자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런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환상과 계시가 바울이 교회를 사랑하게 된 이유잖아요. 
• 전 이번에 청소년 수련회 갈때 모든 부모님이 우리 자녀들 다 보내주시길 부탁드려요. 물론 학원이 학교다 일정들이 많으신 거 알아요. 알아요. 일년에 한두번 가는 겨우 2일, 물론 이번 수련회 한번으로 뭘 변화되겠습니까? 라고 하지 마시고 이번에 주께서 내 아이 만나주시길 기도하면서 보내주세요. 그럼 인생은 변화됩니다. 주님이 만나주시면요. 그런데 학원에서 만나주시겠습니까, 어디 지하철 역에서 만나주시겠습니까? 기도할때, 예배드릴때 만나주시잖아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_고린도후서12:9, 갈라디아서2:19-21, 빌립보서3:1-16

•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 됩니다. 그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작년부터 23년도가 우리교회에 위기기 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여러모로 목회자인 제가 판단하고 가는 길이 다 위기 같아보였고 외롭게 생각되고 내가 왜 이길을 가나 그런 자책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코 후회되거나 부끄럽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앞에 기도도 했고, 신학적으로 또 시대적으로도 확인하고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런 위기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감사한 것은 기도하게 하십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 되실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 교회의 능력이 되실 것입니다. 
• 장로님들 금식합시다. 권사님들 모여서 기도합시다. 청년들 금요예배 나오셔서 함께 기도합시다. 저는 우리교회 가정들을 살리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또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그리고 젊은이들을 살리는 일에 집중할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전하는 일에 온 힘을 쏟을 것입니다. 그 일을 함에 우리는 가장 약한 자리로 가야 합니다. 가장 약한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요? 그 고백은 곧 엎드림입니다.
• 갈라디아서2:19-21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니까 율법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예요. 바울은 율법에 도가 튼 사람인데 하나님의 은혜앞에 그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고 하는 거예요. 왜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고요. 우리가 정말 기도하면 내 경험 지식 돈 다 중요하죠? 그런데 그게 죽어요. 하나님의 은혜만 고백하게 되요. 하나님에 대해 내가 살아야 그런 것들도 하나님께 쓰임받죠.
• 빌립보서 3장에도 바울은 같은 고백을 해요. 8절부터 보면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나니' 그래서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렇게 고백합니다. 
• 내가 약한 그때가 강함입니다. 그런데 내가 약하다는 것이 공부 못하는 학생처럼 맨날 5분만 자야지, 맨날 라면 먹고 해야지, 그래서 성적 안나오는 것처럼 그런 약함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믿음으로 다 살아내고 그것으로도 안된다는 고백입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그 모든 것을 다 동원해도 안되는 일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일입니다. 기도할때 여러분의 모든 최선이 도구로 쓰일 뿐입니다.
•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구원받기 위함이고 부활에 참여하기 위함이고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앞에서는 주의 복음을 위해 쓰임받는 환상과 계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교만이 되지 않도록 항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의 고백을 하시길 축복합니다. 무엇보다 기도하시길 원합니다. 
• 23년도에 정말 신앙의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예배 결단, 말씀결단, 기도결단하셔야 합니다. 결단하고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단도 안하면 아무것도 못하게 됩니다. 바울은 늘 결단했습니다. 했던 결단 또하고 또하고 그렇게 하다보니 행동이 되고 열매가 됩니다. 

찬양: 내 영혼 지치고, 주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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