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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3-01-22 주일예배

1월 21일 주일예배(1,2부 연합예배 am10:30)
본문: 고린도후서12:11-21
제목: 모든 일의 결정의 이유, 사랑
찬송:  89장(샤론의 꽃 예수)


-복음으로 낳은 '성도들'_고린도후서12:11-13, 사도행전9:10
• 헤르만 바빙크는 ' 그리스도의 사명은 자연 바깥이나 위나 옆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연 전체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라고 그리스도인의 복음적 삶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받고 우리는 죽어서 천국이나 가는 그런 정도의 종교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변화되어 세상도 변화시키는 사명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 얼마전에, 팀 켈러 목사님께서 한 인터뷰를 하셨는데 제가 감명깊게 본 내용입니다. 본인이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예수믿고 구원받고 혹은 축복 받고 그런 것이라면 자기의 사명은 실패한 것이다. 자기는 다음 세대를 내다보고 목회자와 교회가 할 일이 사회 모든 계층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인데, 자신의 제자들이 제법 그런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다. 
• 대표적인 목회자가 스캇 솔즈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의 교회는 주일에 뜨겁게 예배하지만, 그 뜨거운 예배 이후의 삶은 서로 연합하여 지역 사회를 섬기고, 직장과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품기며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변화를 얻는 것입니다. 
• 이런 사역은 한국교회에서 제법 이질감을 느끼는 사역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하나님께 복받아서 사업잘되고 자녀들 잘되고 이런 식의 기복신앙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그런 신앙생활에서 벗어서 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삶이 변화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 목회적으로도 말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분명한 목적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목적이 대부분 1차원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성도들도 그것이 좋아보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관련된 2차원적인 목적은 인기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 비브릿지가 2월에 봉사활동을 준비하고 있는데, 미혼모의 가정을 돌보는 사역입니다. 도배를 해준다든지, 집청소를 도와준다든지 그러면서 그들과 교감하고 그들이 사회에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대게 이런 사역은 복음의 1차원적 사역이 아니기 때문에 과연 이 사회가 변화될까 고민스럽습니다. 직접적인 복음전파가 아니라 답답함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교회는 이런 사역을 통해 세상에 복음이 더욱 전파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저는 이번주에 부산에 기독교 역사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가서 직접 보고 느낀점이 많습니다.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복음을 전하는 방식입니다. 첫째는 직접적인 복음 전파였습니다. 성경을 번역해서 사게 만들고 찬송가를 만들어주고, 예배 드리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런 사역과 동시에 했던 사역은 이 민족을 깨우는 일이었습니다. 학교를 세워 가르치고, 병원을 세워 치료하고, 저는 부산은 기독교가 약한 지역이라 몰랐는데 지금 부산대학교도 기독교학교에서 출발했고, 부산은행 경남은행 이런 곳도 전부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신병원등 수많은 의료시절이 전부 선교사들이 세웠고 병원안에 그런 흔적들이 넘쳐남을 보고 왔습니다. 
• 저는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이 매우 쉬운 일인줄만 알았습니다. 내가 말로 상대방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이렇게 1차원적인 것만 물론 이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와 우리 자녀들을 볼때, 복음적인 삶이 훨씬 그들에게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팀켈러목사님은 그래서 믿음의 선배들인 어른들에게 헌금을 강조합니다. 일명 장학금이나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적응하고 성공하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게 하는 기금마련 같은 것입니다. 만일 어른들이 복음에 대한 이해가 짧았다면 그 헌금은 아까웠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어른들의 자녀들과 가정들도 전부 같은 혜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우리 세대가 이 부분을 매우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 사도행전9:10부터 보면 주님이 아나니아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택한 사울, 그가 내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 이렇게 주님께 택함 받은 바울은 사도의 표를(12절에 보면) '모든 참음, 표적, 기사, 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 합니다. 적어도 사도가 되려면 이정도는 해야 하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바울은 이 부분을 다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참고, 표적과 기사, 능력이 하기 어렵잖아요? 도대체 누가 이런 삶을 살려고 할까요? 그런데 바울은 사도 정도 되면 이렇게 해야 하는건데, 과연 이것을 하는 이유가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다. 순전히 너희가 그리스도안에서 성도가 되도록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죠. 복음으로 낳은 성도들이 바로 고린도교회입니다. 

-성도들의 덕을 세우려고_고린도후서12:14-19, 예레미야20:7-8

•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의 목적은 '성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목적,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목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목적 모두 성도에 있습니다. 그만큼 성도가 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성도가 무엇인가요?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나요? 세상과 구별된 자라는 말입니다. 세상과 구별되었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구별되어, 변화되어, 세상에 살라는 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 바울은 그런 삶을 누구보다 이해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삶이 구별된 삶인 줄만 알았는데, 그렇게 산다고 한들 세상에서 성도들을 세우지 못하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덕을 세워려고 이 말은, 성도들이 변화되어 덕이 될만한 삶이 살아야 하는데 
• 예레미야 20:7-8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 예레미야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들 계속 벌 받으라고 하신다. 포로기는 무슨 의미가 있을 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와서 세상의 모든 승리와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값 없는 것인가를 봅니다. 그리고 수치스럽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방인들이 믿는 신과 이방 세계 문화와 정신이 얼마나 저급하고 한심한가를 봅니다. 즉, 하나님이 일하시던 과거들을 기억하여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굉장한가 하는 것을 회복하게 됩니다. 70년이나 걸려서 말입니다. 
• 우리가 아기를 돌보는 거, 벌어 먹고 사는 거, 사람관계하는 거,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단 그 진정성을 가지고 나를 그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속에 갇혀 살게 됩니다. 
• 바울은 하나님께 말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일하심은 참으로 무겁고 위대합니다. 제가 압니다. 십자가는 그런 것입니다. 십자가는 단지 희생이나 각오 같은 단어들로 넘어가시면 안됩니다. 올 수 없는 자리까지 오신 하나님께서 진흙탕을 걸어오신 것, 온 몸에 땀과 피를 흘리고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거기서 원망하거나 분노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지금 성도들의 덕을 세우려고 바울은 주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 성도들의 덕을 세운다는 의미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무지하고 또 거짓선지자들에게 속아 불신앙에 빠져서 그걸로 인생이 끝나지 않도록, 그들의 삶을 다시 회복시킨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복음으로 낳은 성도들인데,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 세상에서도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합니까? 신앙인은 더욱 그래야 합니다. 성도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충분히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누군가에게 복음으로 낳은 성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사랑하는 지_고린도후서12:20-21, 마태복음11:20-30

• 그렇게 살려면 그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사랑' 입니다.  그 사랑은 바로 바울이 직접 경험한 십자가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난은 예레미야에도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사랑의 또다른 면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출애굽처럼 해방되는 복음도 있지만, 고난의 과정을 통해 우리를 당신의 수준까지 끌어올리시는 복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깨달은 하나님보다, 포로된 자리에서 하나님을 깨달은 이스라엘이 진짜 더 수준 높은 신앙이었지 않습니까. 
• 지금도 구원을 받아서 신앙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들의 신앙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바울이 지금 자기 속사정을 꺼내 놓은 것은 도움을 청하거나 납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길이 이렇다는 것을 설명함으로써 예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인생 그것이 우리의 각각의 몫이며 책임이며 명예이며 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마태복음11:20-30을 보시면 회개하지 아니하는 고을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주님께 나아갈 때 쉬게 된다는 말씀, 그런데 그것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음이라고 하십니다. 
• 이것은 고단 당하는 인생에게 해결책으로 주시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내가 걷는 인생이 이런 고단한 인생이다. 너희는 나한테 와서 배워라 혼란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는 이길이 하나님의 지혜이고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의 크기이기 때문에 지혜와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절대 듣지 않는 길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이란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여러분 쉬운 길을 걸으면 바보가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낭비가 되고 소모될 뿐입니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이런 고급한 가치를 가져야 하는데, 답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기 인생을 견디라고 말씀하시잖아요. 그걸 하시라는 거예요.
• 예수님을 믿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기적이고 기회이고 명예입니다. 믿는 자만이 재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고, 결국에 가서 만족과 자랑과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 십자가 사랑을 깨달아야만 우리는 세상에서 그렇게 빛나는 존재로 살기 위해 이 아름다운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말씀과 성례를 통해 교회를 세울 뿐만 아니라, 창조 세계를 회복하고 새롭게 하기 위해 일한다_게할더스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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