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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3-03-12 주일예배

 

3월 12일 주일예배(1,2부)
본문: 갈라디아서3:1-14
제목: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성령의 약속
찬송: 413장(내 평생에 가는 길)

1.너희가 이렇게 어리석으냐_갈라디아서3:1-7

• 바울은 1-5절까지 짧은 구절 안에 5가지나 되는 질문으로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묻습니다. 누가 너희를 꾀더냐,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겠느냐, 과연 헛되냐,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 모든 질문에 대해 온전히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올바르게 신앙생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신앙에 대한 고민은 우리를 더욱 올바른 길로 가게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 많은 성도들은 신앙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릇된 율법의 행위를 우리가 해야 하는지,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 조차 우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하시면서 괴롭죠? 무슨 목사님이 편하게 말씀주시고 그것대로 살면 되지 성경 읽으라, 책 읽으라, 기도하라 우리에게 짐을 나누어주는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떠나는 분들도 얼마나 많으신지 모릅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 그냥 축복 받고 싶은데, 응답 받고 싶은데, 좀 잘되고 그러고 싶은데 그런 설교가 얼마나 요즘 많고 또 그렇게 마음 편하게 해주는 교회도 얼마나 많은 지 모르는데.
• 아이들 신앙도 교회에 맡기기만 하면 다 좋아지게 만들어주고, 우리 남편도 교회 데리고 오기만 하면 집사 장로 만들어서 뭐 사명자다 중직자다 해서 그래도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게 하지,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아이들 신앙을 위해 고민하고 울면서 기도해보지 못하고 우리 남편이 직접 신앙을 마주하여 수많은 혼란과 갈등 속에서 주님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지 않게 만들고, 우리 삶도 도대체 신앙이 무엇인가 도대체 하나님앞에서 살아가는 믿음이란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는 세대입니다. 
• 우리가 정말 축복된 시대에 사는 것 같습니다. 마치 구약에 이스라엘이 풍요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하나님이 축복해주신 것들을 누리고 그럴때, 과연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얼마나 진노하시고 참으시고 그들의 예배를 기분 나빠하셨나요? 결국 진노하셨습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들이 사는 축복시대와 상관없이 우리의 신앙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 지금 우리가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내 주변 상황, 내 감정, 혹은 어떤 무리들의 분위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앙, 신앙의 대상이 하나님이시니, 그분에 대한 올바른 신앙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것을 위해 고민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 내 중심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 되도록 신앙생활하는 것이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누가 너희를 꾀더냐?로 질문하면서 너희가 이렇게 어리석으냐? 대답해봐라, 너희가 성령을 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나 믿음으로냐? 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 그 말인즉슨, 그냥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들이 하는 말을 여과 없이 그러니까 아무런 고민과 기도 없이 내가 편리한 대로, 내게 이익이 되는대로 받아드려버린 다는 것입니다. 
• 신앙은 겸손해야지, 무지하면 안됩니다. 신앙은 아름다워야지, 겉치장이 심하면 안됩니다. 신앙은 올바른 내용을 갖추어야지, 아무것이나 받아드리면 안됩니다. 신앙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 그래서 6-7절에 아브라함에 대하여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이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창세기 잃어보셨죠. 아브라함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나요? 아니죠? 우리가 읽으면서 아브라함 좀 보라면서, 왜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맨날 실수하고, 맨날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가는 거 같고 그런 모습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이라는 인생 전체를 몇장의 성경으로 보니까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지만, 아브라함이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믿음이 성장하고 그의 믿음이 삶이 되고 그의 믿음이 아름답고 또 수준 높은 인격이 되었는지 성경을 보여주잖아요. 결국 그의 믿음은 아들 이삭을 번제단에 묶고 하나님께 태워 제사드리려고 할때,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테스트였습니다. 그의 믿음이 정말인지 그가 정말 순종하는지.
• 전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통틀어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이 테스트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시고 믿음을 성장시키시려고 일하고 계십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 아름답게 쓰임받기 때문입니다. 


2.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_갈라디아서3:8-12,창세기17:1-8,22:1-19

• 바울은 분명하게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율법 율법 하는데, 그러니까 혈통을 따지는 데. 그럼 아브라함은 원래 이방인 아니었냐? 아브라함을 처음 부름 받을때, 그가 누구였냐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집에 살았던 사람 아니냐. 그가 무슨 믿음이 있었고 무슨 의로운 일을 했을 거 같냐?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모든 이방인으로 말미암아 너로 복을 얻게 하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냐.
• 그런데 지금 유대인들이 이방인에게 율법의 행위를 강요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하나님이 이방인도 부르시는 것 아니냐?
• 창세기17:1-8에 보면 아브람 그러니까 이름도 바뀌지 않았던 시절에 하나님이 그와 언약을 맺습니다. 1절에 보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너와 나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되 보내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8절 하반절에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그리고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1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이렇게 시작합니다. 왜 아브라함을 시험하실까요? 이렇게 나이가 들고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던 아브라함인데요. 인간은 그만큼 연약합니다. 인간은 그만큼 환경과 상황에 연약합니다. 인간은 그만큼 축복에 연약합니다. 반대로 저주에도 연약합니다. 
• 아브라함을 세운다는 것은 지금 우리, 그러니까 오승주 저 한사람, 여러분 한명 한명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복을 받았으면 저나 여러분 한사람도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생각합니다. 우와 아브라함처럼 엄청난 복을 받겠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은 자기 사랑하는 자녀 100세에 낳은 자녀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아시겠나요? 하나님이 그걸 테스트하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이유가 없다 생각하시겠죠? 이딴 종교 믿지 않을래! 아니 목사님 저 교회 가면 얼마나 목사님들이 잘해주고, 또 저 교회 가면 얼마나 편리한데 마음이 편한데, 이놈의 가스펠 교회는 마음이 불편해 맨날 신앙의 고민을 하라고 하지, 예배하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하지,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 자체가 복중에 복이라고 하지, 아니 이상해 너무 이상해.
• 제가 정명석인가 하는 그거 좀 봤거든요. 알고 있었지만 영상으로 보니까 토할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아시나요? 그런 막장 사이비 같아도 시작할때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따랐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24:24절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왜 따르죠?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니까요. 사람들이 그것에 현혹되어 택한 자들까지도요. 병고침이나 가난에서 벗어난 거 라든지 교회는 교회가 크게 부흥한다든지, 이런 표적과 기사때문에 유혹에 넘어가죠. 그런데 예수님이 그러셨어요. 그뒤로 드신 비유가 무화과 나무 비유, 열처녀 비유, 달란트비유 무엇입니까? 깨어 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 정명석교회가 기독교복음선교회인데 기독교에서 가장 좋은 단어 다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그들 교회는 우리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아마 지금도 그들은 마귀가 자기들 공격한다고, 다 헛소문이다고 그러면서 기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끔찍하죠. 그들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요? 인생이 끝날때 말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과연 신랑이 그들을 데리고 갈까요? 과연 그들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일까요?
• 우리가 받을 복은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가 어디있느냐? 내 주님 종이 여기 있습니다. 내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제사를 드리거라. 아무말 없이 순종했던 아브라함, 그의 대답이 하나님 제가 할만큼 했지 않습니까? 이게 아니고 여전히 그를 테스트하시는데 네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이삭은 그의 아버지의 신앙의 복으로 얼마나 많은 증거있는 삶을 살았나요.


3. 믿음으로 받는 성령의 약속_갈라디아서3:13-14,창세기25:11

• 13절,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멘.
•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 우리도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이 성령의 약속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아서 우리에게 모든 죄에서, 그러니까 바울이 말한 율법의 저주죠. 그것까지 전부 다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 자유, 그 은혜, 그 감사, 그 기쁨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성령의 약속'은 무엇일까요? 창세기25:11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 제가 창세기 강해할때 이름의 뜻과 장소의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드렸습니다. 창세기 16장 13절, 14절에 나오는데요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 라 불렀으며 그것이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살아계셔서 나를 감찰하시는 분의 우물’ 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본 부인 사라의 학대로 집을 나온 하갈. 이스마엘을 임신한 상태에서 집을 나온 하갈을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 만나주시고 위로하고 축복하여 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한 것까지 하나님은 전부 감찰하시고 위로하시는 장면인데요. 여기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삭이 한동안 거주하고 또 신부 리브가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요?
• 저는 우리 부모 세대가 다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보면서 그가 처음에 실수도 많이 하고 그래요 불신앙도 했지만, 점차 하나님에 대해 알고 순종하면서 믿음이 자라서 결과적으로 예배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복을 물려받은 이삭이 부모의 실수로 인한 그러니까 부모의 연약함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덮고 거기에서 언약을 상징하는 신부를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믿음으로 받는 성령의 약속은 어떤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같은 병고침이나 물론 그것도 중요하죠. 어떤 이 시대에 대단한 자리에 살아가는 것이나 물론 그것도 필요하죠. 그러나 그런 것들 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약속, 바로 구원이 아닌가요. 믿음으로 받는 성령의 약속은 구원입니다. 이삭이 기쁨이라는 뜻의 이름인데, 샘의 근원이 되어 살았잖아요. 구원입니다. 우리는 구원이 기뻐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고 있잖아요. 우리는 구원이 너무 중요하고 행복해서 거룩하게 살려고 하잖아요. 우리는 구원을 위해 이 주일에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또 건강한 교회를 세우려고 하잖아요. 네 그 구원이 우리 자녀에게도 임해야 하고 또 자녀들이 그 구원을 위해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아버지 아브라함의 연약하여 놓친 구원까지도 감당할 수 있도록 그것이 우리 인생에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가요. 하갈이 하나님을 만났던 그 땅에서 이삭이 신부를 맞이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위해 포기할 곳은 없습니다. 어른들의 상처로 버려진 땅도 우리 자녀들로 인해 다시 구원의 꽃이 피어야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 아닐까요. 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못해 다투지만 우리 자녀들은 구원의 은혜로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 사랑하는 가스펠 성도여러분, 과연 우리가 구원을 위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나요? 상황과 환경 그렇니까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구원을 위해 세워진 이 약속의 말씀 진리를 지킬 수 있나요? 네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그렇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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