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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3-03-05 주일예배

3월 5일 주일예배(1,2부)
본문: 갈라디아서2:11-21
제목: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찬송: 315장(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1. 어리석은 논리에 갇힌 유대주의자들_갈라디아서2:11-15

-베드로가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참석했다가 따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만 식사를 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비난한 것입니다. 그렇게 지도자가 해버리면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의식법을 따르지 않으면 교회에서 2등 시민이 된거 같은 느낌이 들게 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러니까 이방인을 의식해서 함께 하는 척을 했다가 유대인들과 따로 모여서 식사하는 것이 올바른가? 그것이 바로 외식의 죄가 아닌가 하고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사실 베드로는 자기 스스로는 아무 문제없이 즉, 유대의 음식법을 지키지 않고 이방인처럼 살고 있었으면서도 이제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자신과 함께 식사하기를 원한다면 유대인의 음식 규정을 지키기를 요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죄인가요? 율법은 우리의 죄를 드러나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 복음을 주신 이유 모두가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고 그와 교제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유대주의자들과 함께 하면서 이방인들이 죄인이라고 멀리합니다. 얼마나 이것이 위선인가요. 이방죄인이요? 그럼 유대인들은 죄인이 아닌가요?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죄인이 아닌가요? 
-제가 '영적 문제'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도 없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는 정말 몸에 문제가 있거나, 정말 가난하거나,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만 하나님 떠난 문제를 가지고 있나요? 우리가 흔히 그런 분들을 손가락질 하면서 영적문제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인가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정말 영적으로 싸워야 할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런 어리석은 논리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원론과 같은 신앙이죠. 나는 선하고 너는 악하다. 우리는 복음이고 너희는 복음이 아니고. 아니죠. 정확하게 말하면 주님은 선하시고 우리 모두는 악하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복음이고 우리 모두는 그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렇죠?
-바울은 복음을 오해하게 만들고 복음을 가르치는 것을 방해하는 거짓 선지자들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 싸움이 어떤 싸움이었습니까? 자기 자신이 그 복음으로 사는 싸움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입장, 체면, 이런 것들을 고려하여 정직하지 못하고 위선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신 그 이유대로 사역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이방인을 맡기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2.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_갈라디아서2:16-18

•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하나님께 의롭다고 간주 되거나 의롭다고 선언되는 것을 뜻합니다. 만일 사람들이 죄가 없고 하나님의 완벽한 도덕적 기준에 완벽하게 순종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공로를 기초로 의롭다 함을 얻거나 의롭다고 선언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어떤 이방인도 심지어 그 어떤 유대인이라도 완벽하게 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의 신앙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 17절에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러니까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유대인들 문화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법(음식법, 할례, 안식일등)으로 그걸 지키지 않아서 죄인이 된다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바울은 일축합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완전히 용서해주시고 의롭다고 선포해주셨는데, 그걸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선포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 만일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는 완벽한 행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만 보더라도 아니 그 완벽했던 바울 스스로도 결코 그럴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나니 그의 남은 삶은 그 이전과 전혀 다른 행함이 생겨난 것입니다. 
• 저는 그것이 신앙생활의 힘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 사울왕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시기질투하여 죽이려고 할때, 그리고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수많은 전투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돕습니다. 그리고 그와 언약을 맺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중에 사울도 죽고, 요나단도 죽습니다. 유모가 5살 어린 왕자 므비보셋을 데리고 도망을 가는데 도망가는 길에 떨어뜨려서 두 다리를 절뚝거리게 됩니다. 므비보셋은 황무지같은 땅에서 그것도 남의 집에 숨어 삽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지만 그의 인생은 왕의 손자, 후손에서 숨어사는 절뚝거리는 비참한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윗은 왕위를 물려 받았지만 정신이 없었습니다. 다 무너진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계속 전쟁을 치렀고 드디어 나라가 안정이 됩니다. 강력한 왕권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첫번째로 한 일이 신하를 시켜서 므비보셋을 찾습니다. 므비보셋 입장에서 다윗이 자기를 찾는다는 것은 혹시 사울왕의 모든 가문을 멸절 하려는 것 아닌가 두려웠을 지도 모르지만, 다윗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나단에게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와 맺은 언약을 이루기 위해 므비보셋을 왕궁안에 살게 합니다. 땅도 주고 무엇보다 늘 항상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어쩌면 절뚝거리는 두 다리 때문에 은혜를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 훗날 다윗은 밧세바를 범한 죄값으로 압살롬의 반역이라는 위기를 당합니다. 그때 왕궁에서 쫓겨나는데 므비보셋의 신하(이름 시바)가 다윗왕에게 음식과 동물을 제공하면서 므비보셋을 모함합니다. 므비보셋이 그의 왕위를 되찾으려 한다고 모함했습니다. 다윗이 오해했습니다. 그 순간 다윗은 므비보셋의 재산을 그 신하에게 다 주겠다고 합니다. 다행히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이 되고 다윗이 다시 왕궁에 들어가는데 므비보셋이 수염도 깍지 않고 씻지도 않는 모습으로 다윗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왜 나를 따라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왕이여 제가 다리를 절어 말을 타고 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하에게 준 재산을 다시 므비보셋에게 절반을 주겠다고 하니 그가 상관없습니다. 저는 다시 왕이 돌아와서 왕위에 앉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시바에게 자신이 받은 모든 재산을 주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시바도 완전히 살려버린 것입니다. 
• 여러분 우리가 므비보셋이 아닌가요. 므비보셋은 완전히 버림받고 멸망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다윗과 맺은 언약으로 다윗을 도와서 얻었던 그 약속으로 평생 왕궁에서 먹고 자게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가문은 멸망하지 않고 왕 앞에서 세워지게 되는데, 물질이나 명예, 그 어떤 것도 그가 원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 저는 므비보셋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보면서 우리의 신앙이 믿음인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그것이 진실하고 정직하고 또 분명해야 합니다. 

3.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_갈라디아서 2:19-21 

• 그래서 바울은 19절에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내가 죽었나니' 라고 말합니다. 더이상 내 노력으로, 내 힘으로, 내가 가진 그 무엇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내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 그분이 베푸신 은혜, 우리를 향한 약속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입니다. 율법도 복음도 모두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신앙의 이유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사는 것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애쓰는 모든 신앙의 이유들이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한결 같이 변함없이 그것이 기도이고 그것이 성경입니다.
• 제가 이 강단에서 여러분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또 교회의 리더쉽을 가지고 있으니 기도하면서 여러분의 신앙을 돕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강단에서 내려가면 여러분과 똑같이 이 말씀을 살아내야 합니다. 저는 설교하지만,이 말씀을 살아내는 것은 우리 모두 각자의 몫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은 그래서 모범이 되려고 애써야 하겠지요.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하면 이 말씀을 살아내야 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 목사인 저도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제가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대단한 사역을 해도 하나님께 대하여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제 사역은 하나님의 구속사와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교회를 어느 정도 성장 시킬 수 있겠지요?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과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주시는 부흥은 결이 다르고 열매도 다릅니다. 그러니 제가 여러분앞에 위선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고 한다면 저도 여러분과 신앙에 있어서만큼은 정직해야 합니다. 목사라고 하는 척 하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해야 하고 못할때는 성도들에게 기도 부탁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걸 못한 것입니다. 체면때문에 유대인들 눈치를 보면서 자기가 받은 은혜를 망령되이 여긴 것입니다. 
• 저는 여러분이 극장에, 콘서트에서 구경하는 관망자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하고, 서로 도와가면서 경주할 수 있도록 섬기고 사역해야 합니다. 
• 그래서 바울은 21절에 '내가 은혜를 폐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은혜가 무엇인가요? 20절 십자가입니다. 내가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 하나님께 대하여 살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은혜를 사모하고 흠모하며 받아야 합니다. 은혜는 설교시간에 설교한편 듣고 아니 유명한 목사님 설교한편듣고 일상에서는 그냥 저냥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날마다 그리스도안에서 죽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기 때문에 우리는 공부하고 믿기 때문에 운동하고 믿기 때문에 밥도 먹습니다. 믿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냅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그 믿음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며, 그 믿음으로 우리 삶을 올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깨지면 포기하고 낙심하고 무너집니다.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제가 믿음의 길을 가려고 무척이나 많이 공부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분별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길을 찾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신 몇가지 분명한 기준은 첫째, 성경입니다. 과연 성경인가? 과연 성경이면 충분한가? 모든 것인가? 그래서 여러분도 죽도록 성경이셔야 합니다. 정말 성경 읽다가 천국가시길 축복합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영광인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온전히 유일하신 한분 하나님이신가? 저는 이 부분에서 너무 확신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끝이 하나님의 영광인가? 저도 목회의 끝이 하나님의 영광인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 므비보셋처럼 엎드릴 수 있는가? 다 포기할 수 있는가? 하나님 한분만으로 충분한가 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녀들 그러니까 다음세대였습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우리 자녀들에게 분명하게 물려줄 신앙을 원하신다면 우리는 교회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성경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로 가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 신앙이라야 교회를 바르게 세울 수 있습니다. 
• 네 압니다. 여러분 제가 교단을 옮기려고 하는 것 때문에 심란하신 분들이 많다는 것 압니다. 하필 이럴때 교회 예배당으로 인해서 우리는 작정 헌금을 해야하기도 합니다. 복잡하고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당연하고 또 반드시 해야 할 것은 교회가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모습인가? 우리 모두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부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기 위한다면 교회도 살게 됩니다. 교회가 산다는 것은 우리가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여러분의 인생이 되길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교회와 함께 성장하고 또 함께 걸어가길 축복합니다. 
•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도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무엇이 변화될까, 무엇이 생겨날까, 무엇이 더 나아질까, 그럴수도 있지만 저는 그것이 축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축복은 성경을 읽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이 행복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요. 세계적인 선수들과 그저 그런 선수들의 차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일생을 다 드리고 있냐, 아니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것을 이길 수 없잖아요. 너무 행복하고 좋은 거예요. 힘든 훈련도 모든 엄격한 질서도. 그러니까 율법도 괜찮은 거죠.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도 행복해요. 왜요?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그런데 그저 그런 선수는 훈련이 힘들거나 혹은 어떤 보상이 자기가 원하는 수준이 아니면 관두죠. 이 힘든 것을 왜 하냐고 해요. 
• 하나님을 사랑하시나요? 그럼 말씀을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바울이 줄곧 이야기하는 거예요. 
• 여러분이 이 작은 교회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이곳을 주님이 세우시고, 주님의 교회라고 믿고 계시나요? 그렇다면 정말 기도하셔야 합니다. 관망자가 아니라 저와 함께 우리 자녀들에게 정말 교회다운 교회를 물려주기 위해 함께 기도하셔야 합니다. 당장 열매가 없다고, 당장 변화가 없다고 사랑을 포기한다면 교회는 둘째 치고서라도 여러분의 삶에 신앙이 세워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많은 분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올바른지 신앙의 기준조차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을 읽지 않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 이유뿐입니다. 그러니 죄가 무엇인지, 죄를 죄라고 지적하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축복을 축복이라고 이해조차 못하고 살아갑니다. 
• 하나님앞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기도하는 여러분은 이미 축복이 아닌가요? 뭘 더 받아야 축복인가요? 바울은 이미 자신은 감옥이 있고 아니 어쩌면 유대교에서 나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그 삶이 훨씬 고단한데도 하나님앞에서 받은 그 은혜를 폐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살수 있도록 하나님이 복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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