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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3-02-19 주일예배

2월 19일 주일예배(1,2부)
본문: 갈라디아서1:11-24
제목: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찬송: 90장(주 예수 내가 알기 전)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_예수님의 순종(우리의 불순종)_갈라디아서1:12,시편23:1-6

•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환경과 교육에 따라 변하는 듯하지만, 대개 사람들의 성격, 기질, 태도, 습관은 웬만해선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변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만나면 그 중심이 변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마주하게 되면 그 사랑이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킵니다. 
• 세상을 창조한 빛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어두컴컴한 우리의 죄성이 드러나고 우리의 고질적인 악습은 변화됩니다. 영혼의 생기를 가져다주는 생명수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낯빛과 성품은 온유하게 변화됩니다. 우리 행위와 노력으로는 결코 변하지 않던 우리 속사람은 진짜 복음을 만나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 갈라디아서1: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신앙의 원천이 어디인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즉, 예수 그리스도에게서가 아닌가요.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이 부분이 너무 많이 중요합니다. 
• 13절, 14절 보면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때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유대교였습니다. 그리고 똑똑하고 지혜로워서 하나님을 잘 섬겼고 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하고 그 당시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별볼일 없는 것들이 우리가 세운 전통을 깨고 유대교를 부끄럽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박해하고 박멸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죠. 
• 하나님이 왜 구약을 주셨는지, 하나님이 왜 신앙생활을 하게 하셨는지 그것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보다 사람의 뜻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입니다. 만난 거죠. 
• 시편23편에 보면 다윗의 유명한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요 라는 장면입니다. 다윗이 어릴때부터 그러니까 목동일 때 부터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겼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찬양도 잘했고 그 찬양에 영적인 능력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골리앗도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욕하는 사람들을 가만 두고 볼 수 없는 정의감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전히 주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가장 어려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고백한 광야에서 만나주셨습니다. 광야는 의지할 사람이 전혀 없는 곳, 배경도 사라진 곳입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하루하루 도망친 곳에서 다윗은 드디어 주님을 만났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전혀 없으리로다. 그리고 그가 시편 23편 5-6절에 고백합니다. 원수가 보는 앞에서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그러니까 천국에서 주님이 베푸신 만찬에 참석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승리라고 그래서 사는 날 동안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리니 라고 고백합니다. 시편121편에도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마주합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래서 내 불순종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예수님의 순종을 받아드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순종하심(성육신 사건)으로 우리의 불순종이 해결된 것입니다. 그의 은혜라고 하면 주님의 은혜라고 하면 바로 주님의 순종을 의미합니다. 이땅에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으며 또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순종 말입니다. 

2.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아라비아광야로 간 바울)_갈라디아서1:13-17

• 그런 다윗이 오늘 본문에 보니까 아라비아 광야로 갔다고 기록합니다. 내가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사도를 만나러 예루살렘으로도 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고 기록합니다. 도대체 아라비야 광야로 왜 갔을까?
• 이 본문은 사도행전9:25절과 26절 사이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아나니아를 만나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며칠을 있으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신나고 즐거웠을까요?
• 그런데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이 다 당혹스러워합니다. 갑자기 예수쟁이들을 핍박하는 바울이 오히려 예수님을 전하니까 얼마나 황당할까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합니다. 바울은 그때 현타가 왔을 것입니다. 평생 내가 자란 곳,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던 유대인 동역자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니까요. 혼란스러워했을 것입니다. 신앙이 흔들릴 수 도 있었겠죠. 그러면서 성문을 그들이 지키고 있죠. 사울을 잡으려고 그래서 제자들이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 담아 내립니다. 그리고 곧장 간곳이 아라비아 광야입니다. 
• 놀랍게도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이나 머물러 있습니다. 아라비아 광야로 간 바울은 그곳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 고린도후서4:16-17이 그 곳에서의 변화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우리게 함이니'
• 예수님을 만나고 제자들과 전도했지만, 자기를 죽이려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전도하고 그랬지만 하나님은 그가 끝까지 당신의 신실한 제자로 쓰임받길 원하셨기 때문에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라비아 광야로 부르신 것입니다. 거기서 바울은 3년동안 구약의 말씀들을 다시 정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적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들을 정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계시, 내가 너를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불렀다고 말씀하신 그 뜻이 무엇인지 기도하고 또 기도했을 것입니다. 
• 마치 다윗이 광야에서 주님을 경험한 것처럼 말입니다. 
• 그는 인식이 변화되었습니다. 인식이 변화되었다는 말은 네이밍(이름을 짓는 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인식이 생긴다는 것이죠. 인식이 바뀌면 해석도 바뀝니다. 고린도후서에도 환난? 그것은 잠시 받는 가벼운 것이라고 인식이 바뀌었고, 거기에 이름을 붙입니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라고 합니다. 
• 내가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주님이 날 부르셨구나! 주님이 날 불러주셨구나! 주님이 나의 목자시구나 그의 음성을 따르면 되는 구나 쉴만한 물가로, 푸른 초장으로,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주님이 날 주의 만찬으로 인도하시는 구나!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날 인도하시는구나!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구나!
• 저는 요즘 제가 중고등학교 받은 은혜, 그때 정말 은혜를 제가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르실꺼예요. 그 어린 나이에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예수님 전해야 해, 친구들이 지옥에 가면 안되니까, 그래서 복음을 전했지요. 그렇게 친구들을 교회로 얼마나 많이 데리고 왔는지 몰라요. 그러면 전도사님이나 선생님들이나 목사님까지 승주가 진짜 전도 많이 했어, 그거 우쭐대기도 했어요. 물론 진심이었지만요. 
• 그런데 그때 받은 은혜가 오래가지 못했어요. 신학교에 가고 어른이 되어서 보니까 어려운 점이 많은 거예요. 가정은 더 그랬어요. 학교가서 전도하는 것이랑 차원이 다르잖아요. 그런데 전도사고 목사가 된 거예요. 잘 안되는데.... 그때부터 하는 척, 은혜 받는 척, 복음의 신실한 일꾼인 척 그렇게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라비아 광야가 필요했습니다. 정말 광야가 필요했습니다. 은밀한 죄도, 이중적인 삶도, 주님만 따르는 순종도. 
• 제가 우리교회를 개척하게 된 동기가 '제가 신앙생활 잘하고 싶어서' 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운영되고 뭐 그런 것은 일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가 정말 예수님만 바라보고 싶었으니까요. 제 인생의 아라비아를 지금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고등학교 시절 보다 훨씬 더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훨씬 더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합니다.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이 삶이, 이 믿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이 정말 하나님만 바라보길 그 신앙이길 기도합니다. 생각해보세요. 교회가 하나님만 도움이시라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고백이 없이 어찌 세상에서 올바르게 진리를 지키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겠습니까? 우리 역시 어찌 세상에서 유혹에 환난에 넘어지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 
3.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_갈라디아서1:18-24

• 아라비아 광야에서 돌아온 바울은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와 15일을 머무르죠. 그러면서 간증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했던 자가 이제는 그들의 믿음을 전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변화된 간증이다 라고 합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고백합니다. 
• 맞습니다. 유대교에 대한 미련, 태어날때부터 그곳에서 가장 신실했던 사울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아라비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 저는 새가족들이 오시면 장로님 권사님은 모르겠지만, 2-3년 예배만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자꾸 뭘 하려고 하시는데 대부분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주님을 모르는데 일하고, 주님의 은혜로 변화되지 않았는데 인간관계하고, 그러다가 자기들끼리 소원해지고 멀어지고 오해하고 상처받고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위해 예배드려야 합니다. 주일예배도 1,2부 다 드리고 금요예배도 오시고 그래야 합니다. 소그룹에 들어가셔서 같이 성경도 읽고 성경공부 모임에도 참석하셔서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고백이 될때 그때 복음을 전해도 늦지 않습니다. 
• 바울은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자기의 욕심, 과시, 전통, 사람들에게, 유대교를 위해 이런 것들이었지만,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모함, 핍박 모든 것이 다 그랬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변화된 내 자신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 우리는 헌금, 혹은 성공한 삶, 혹은 달란트, 혹은 그 무엇으로 영광돌린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것이 아닙니다. 내 삶, 내 마음, 내 모든 것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주체는 예수의 은혜로 부르심에 순종하는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 그러니 여러분, 속지 마십시요. 여러분 자신을 주께 드리십시요. 가정에서 아이들 키운다고 밥하고 빨래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꼭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가지고 내가 변화되어 내 가정에서 내 직장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 '저 사람 예수님 믿더니, 교회 다니더니 뭔가 달라졌어. 저사람이 우리에게 전해준 복음을 생각해봐야겠어'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요.
• 우리가 주저함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주님의 은혜이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은혜이길 소망합니다. 제가 바르디아에 가니까 정말 외롭더라고요. 그 누구도 없잖아요. 거기에 누구도 없는데 우리가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거예요. 예수님을 우리가 처음 전한거예요. 그래서 혼자 호텔 방에서 그 생각하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저 예전에는 사람들이 저 알아주는 곳, 강의하러 다니고 이랬거든요. 아시죠? 그런데 복음의 불모지에 실력은 없지만, 돈은 많이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이끄셔서 여기까지 와서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더라고요. 교회 이전문제라든지 교단 문제라든지 맞아요 그것도 중요한데, 진짜 중요한 것이 우리 성도님들과 복음 전하며 살아야겠다. 진짜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고백으로 내 삶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기도하며 섬겨야 겠다. 
• 제가 정말 너무 감사한 거예요. 내 모든 그릇된 것들, 죄악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들이 아라비아 광야에서 정리하고 두려움을 이기고 이제는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롭게 살아가는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를 지으신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길 다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된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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