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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3-04-02 주일예배

4월 2일 주일예배(*고난주일)
본문: 갈라디아서4:12-20
제목: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찬송: 144장(예수 나를 위하여)

1.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_갈라디아서4:12-14,빌립보서1:3-11

•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의 이 고백은 참 대단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 청년부 엠티에 가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과연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저는 교회의 모습이 목회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대단한 오해가 많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맞는 말인데 과연 목회자의 모습이 교회의 모습인가? 구약도 신약도 그걸 말하고 있는가?
• 한국교회만큼 목회자가 우상시되고 어쩌면 그래서 더욱 신비주의와 같이 겉으로는 대단한 메신저이지만 뒤에서는 원래 아빠 남편 또 동네 아저씨의 모습을 볼때는 실망하고 그러지 않나?
• 오히려 목회자도 성경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데 성도들과 함께 애쓰고 노력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설교하는 그러니까 성도들을 올바른 길로 믿음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강하게 설득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설득을 위해 오히려 진실하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 빌립보서1:3-11에 보면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고 기도했다고 기록합니다. 감옥에서 말이죠. 그런데 무엇을 기도했는가 보니,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 바울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기도하고 그것을 위하여 최고의 헌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존 오트버그 목사님은 그가 목회할 때 성도들을 끊임없이 훈련 시켰다고 하는데, 그 훈련은 대부분 그들이 지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지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교회안에서 성경공부라든지,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훈련들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책이 ‘관계 훈련(사진)‘과 같은 책인데요. 제가 존 오트버그 목사님 책을 다 읽고 느낀 것은 우리는 멀었다 아니 우리교회는 시작도 안했다 입니다. 그는 예배하면서 단순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그의 생각을 바꾸어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합니다. 
• 그렇게 할 수있는 이유는 존 오트버그목사님의 신앙생활입니다. 성도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기 때문에 늘 성도들과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했다고 하죠. 함께 신앙생활하려고 애쓴 것입니다. 
• 우리는 그와 반대로 목회자들과 가까이 지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멀리 두고 목회자의 삶에는 관심조차 없고 그저 대단한 사역을 하기를 바랄 뿐이죠. 그러니까 대리 만족, 극장식교회, 이런 단어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 물론 존 오트버그 목사님 교회와 같을 순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하사 세상에서 의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일에 정진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 신앙생활은 흔들릴 수 있고 또 정체 될 수 있지만, 그걸 그대로 두지 않고 설득하고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지적인 공동체가 되어 세상을 분별하고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도록 말입니다. 
• 저는 장로님들에게 많은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장로님들이 성경을 읽지 않으시면, 그러니까 그 역할을 하지 않으시면 그 어떤 삶이나 사역에서도 존경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번은 뚫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자기가 맡은 직분에 대해 한번은 익숙해져야 하는데 장로나 권사나 안수집사 정도가 되면 성경은 한번 정도 뚫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해가 되고 깨달음이 되고 그 과정속에서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 그래서 궁금하고 궁금하면 목회자들을 찾게 되고, 그게 심방이고 사역이고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2.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_갈라디아서4:15-16,디모데전서4:5-16

• 15절에 너희의 지금 복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할수만 있다면 너희 눈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그런데 원수가 되어버렸다 이 말은 바울이 성도들을 위해 헌신하고 열심을 내었는데 오히려 멀어졌다는 의미겠죠. 그럴 수 있습니다. 좋은 말, 축복된 말, 잘되라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아니 성경과 상관없이 일주일동안 고생하고 예배왔으니까 좋은 말 듣기 좋은 말 해줘야 하는데 그거 하니까 듣기 거북하고 불편하고 목사님 회개좀 그만 시키세요!! 화내는 분들도 계셨으니까요. 그래서 떠나가기도 합니다. 
• 디모데전서4:6-15절에 보면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니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10절에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리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전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고 너희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 너희의 복이 어디 있느냐? 여러분이 생각하는 신앙생활하면서 교회 다니면서 받을 복은 무엇인가요? 그저 주일 예배 잘 드리고 그저 헌금 좀 적당히 하고 네 그렇게 그냥 세상에서 잘먹고 잘사는 목적 가지고 사는 것인가요? 
• 저는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 하나님이 부르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경건은 하나님께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전념하라!(영상_공동체 성경읽기) 네 속에 있는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고 합니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직업을 논할때, 전문성을 이야기하잖아요. 한 분야를 뚫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충 하면 될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신앙 믿음에서도 그걸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복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허망한 것들 속에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복이 아닌가요? 돈과 물질 명예 이런 것들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상에 너희 성숙함을 나타내는 그런 삶이 아닌가요?

3. 좋은 일에 열심으로 사모하라_갈라디아서4:18-20,디모데전서1:5-7

• 주님은 우리에게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그릇된 것에 열심을 내었다면 이제 그것을 바꾸어 좋은 일에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좋은 일에 열심을 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좋은 일과 그릇된 일을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선한것을 분별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 디모데전서1:5-7절에 보면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도록, 의의 열매가 되도록, 사랑으로 성숙하도록 늘 가르치고 권면했습니다. 
• 신앙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단순한 법이 될 수 없습니다. 회개는 어느 정도 해야 하나요?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 그렇게 살면 되는 건가요?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하십니다. 그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십니다. 우리 부부사이처럼요. 부모 자식관계처럼요. 부모가 어린 자녀들이 바른 길 가지 않으면 혼내죠? 혼내는 것? 그것을 보고 와 우리 부모 나를 혼내 진짜 열받아 싫어 나 부모 바꿀래 하나요? 그렇게 하면 그런 폐륜아죠.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혼낼때 사랑없이 그러니까 내 기분따라 맨날 감정따라 하면 그건 좋은 부모 아니죠? 기본적으로 부모 자녀 사이도 관계가 형성되어 갑니다. 어릴때는 혼도 많이 납니다. 스스로 잘 못하니까요. 또 바르게 못하니까요. 그러나 자녀가 성숙하면 부모와도 좋은 관계를 맺습니다. 또 부모도 그만큼 좋아야 하고요.
•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인 부모자식관계와 다른 것은 하나님이시잖아요. 우리는 죄인이었고. 그러니까 율법도 필요했고, 또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도록 많은 과정들을 우리에게 복음으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 우리가 평생을 살았는데 자기 삶에 대해 자기가 말하는 것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삶이 있을까요? 하나님앞에서.
• 우리 스스로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하나님앞에서 우리 믿음을 확증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아쉽고 속상할까요.
• 존 오트버그 목사님이 관계 훈련에서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차원을 넘어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삶을 선하게 다스리시도록 맡기지 않는 것이다. 내 삶에서 하나님을 내보내고 내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 ‘관계가 틀어질때마다 두 사람은 떠나가거나 부딪히거나 다가가거나 이 세 가지 선택 앞에 놓인다. 다가가는 것은 막대한 대가가 따르더라도 화해와 회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우리와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쪽으로 다가와 화해와 회복을 추구하셨다. 이렇게 다가오신 행위를 성육신이라고 한다.’ 
•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갈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데, 그래서 온갖 바쁨의 핑계를 가지고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네 신앙생활에 대해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정말 하나님이 찾아와서 손 내미시는 것 그 사랑에 대한 열심이 우리에게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분명 우리는 더 아름답게 신앙생활 수 있고, 분명 더 하나님과 함께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고, 분명 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목적과 분명 다릅니다. 더 깊게 사랑하고 더 아름답게 교제하는 삶이라야 우리네 삶이 믿음으로 성숙할 수 있고 우리의 상처나 한계, 죄악들에서 벗어나 분명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열심이라는 단어가 요즘 시대에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자기들에게 열심을 내게 만들어서 신앙생활만큼은 쉬고 싶고 누리고 싶고 그냥 그저 그렇게 하고 싶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열심을 내어 섬기라고 하면 원수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요. 오늘 본문처럼요. 그런데 우리가 열심을 내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았다면 그러니까 사랑하고 섬기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면 그것은 분명 우리 삶을 바꾸어 줄 것입니다. 
• 서로 사랑하는 것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 과정을 겪어서 주의 사랑이 더 풍성해질 수 있다면요. 우리는 분명 그 일에 열심으로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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