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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3-11-26 주일예배


11월 26일 주일예배
본문: 빌립보서1:22-30
제목: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찬송: 272장(고통의 멍에를 벗으려고)

1. 끊임없는 실패와 실망_빌립보서1:22-24

• 저는 목사로 살아오면서 실망스러운 일들을 정말 많이 겪었습니다.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주도 빠지지 않고 믿음을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교회를 떠나가는 성도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픈 분을 위해 정말 정성껏 기도하고 위로했는데, 병이 오히려 악화되어 소천하신 분도 계십니다. 최선의 설교를 하기 위해 밤을 새워 연구하고 준비했지만, 신학적인 오류가 있다고 연락이 오기를 몇번이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제 설교를 듣고 시험에 들었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개척 초창기에는 예배를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매주 큰교회와 비교하시거나 또 아이들이 떠들어서 예배가 안된다고 떠나간 분들도 계십니다. 제일 힘든 것은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면 부담스럽다고 떠나가고, 좀 거리를 두면 이제 사랑이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사실 제일 힘든 것은 교회를 위해 늘 기도하지만 성장이 여전히 더딜 때이고, 교회안에 사랑이 없거나 세상에 복음의 영향력이 미비하게 느껴질 때입니다. 

• 저는 이런 저런 실망이 찾아올때 목사로서 무능이 느껴지고 또 너무 괴롭습니다. 교회 바닥에 엎드려 기도해도 하나님은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정말 없으십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이 너에게 족하다’ 라고 하시는 것 같아 슬플 때도 많습니다. 

• 그러나 저는 이런 실망을 느낄 때마다 복음서를 읽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밤잠도 못자고 제자들을 키우려고, 복음을 전하려고 자신의 전부를 쏟아 부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요? 겨우 12명의 제자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것도 제자 중에 가장 똑똑한 가룟유다는 돈 몇푼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3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고, 십자가를 질때 제자들 모두는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엄청난 기적이 있었음에도 그를 따르는 성도들은 겨우 120명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에도 몇번이나 실망스러움을 표현하셨습니다. 함께 기도하자고 할때에도 제자들은 잠자기 바빴고, 가난하고 병든자를 돌볼때에는 오히려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만유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말입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늘 감사할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째 예수님 믿고 신앙생활 바르게 잘해야지 하는데 더 큰 실망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야침차게 하던 일이 망하기도 하고, 칭찬보다 비판을 더 많이 받기도 합니다. 질병의 결과가 회복이 아니라 죽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삶이 아니라 처절한 현실에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실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_히브리서4:15’

• 예수님은 엄청한 실망을 하신 것 같았지만 결국 승리했습니다. 순간 순간 실망을 넘어섰던  이유는 ‘구원’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구원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최선을 다해 얻은 아주 작은 것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겨우 남은 11명의 제자나 120명의 연약한 성도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 오늘 사도바울은 본문 22절에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어 있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라고 합니다. 
• 그럴 만도 합니다. 그의 처지가 예수님 믿기 전에는 기세등등한 잘 나가는 리더였는데, 예수님 믿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다보니 감옥에 갇혀 사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매일 불신앙하는 성도들, 매일 신앙을 가르쳐도 이교도에 빠지는 성도들, 매일 싸우는 성도들, 매일 근심걱정하는 성도들로 골머리가 아픈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육신으로 사는 삶이 고달플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그리스도께 가는 것이 훨씬 좋은데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럼에도 육신으로 살아내는 이유를 오늘 본문에 이야기합니다.  

2. 내가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_빌립보서1:25-26,요한복음15:1-2

• 25절에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이전과 달라진 바울, 그러니까 그의 새로운 삶의 이유는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입니다. 이것 때문에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나로 말미암아 믿음의 진보가 일어나고, 기쁨이 넘치고, 자랑이 생겨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이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이유입니다. 

• 요한보음15:1,2절에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예수님은 온갖 실망을 다 겪으셨지만, 그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누구에게나 참 포도나무가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생명의 열매를 맺고 구원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얻게 되고 성령의 열매들을 얻게 됩니다. 

• “청교도들은 ‘기댐’이라는 말로 믿음을 설명하곤 했다. 어떤 것에 몸을 기댄다는 뜻이다. 당신의 온몸을 그리스도께 기대라. 만세 반석 위에 온몸을 쭉 뻗고 드러눕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예수님을 의지하라. 그 안에서 안식을 얻고 그분께 자신을 맡겨라. 그렇게 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행사하는 것이다.”_찰스 스펄전

• 그래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짜 믿음의 대상입니다. 바울의 고백은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 믿음이 곧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가져다 준다고 합니다.

3.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_빌립보서1:27-30,히브리서11:6-8,요한복음15:16,로마서5:3-4

•  27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은 몇가지 선한 싸움이 필요합니다. 
• 가장 먼저,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를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러니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마음으로 서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러니까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홀로앉음입니다. 교회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홀로앉음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불안전한 마음과 실망에서 오는 연약함을 조율해야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뜻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교회 밖, 일상에서, 세상에서, 이 도시에서 그네들과 ‘마주앉음’의 자리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선교적 일상을 살아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땅의 교회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가기를 넘어서 교회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정복과 개종의 십자군 선교가 아니라 사귐과 회심을 목표로 하는 십자가의 선교를 추구해야 합니다. 
•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사는 우리들은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둘러앉음’입니다. 마주앉음의 삶을 살아낸 성도들은 작은 소반을 가운데 두고 선교적 일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들을 형제자매와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분의 일하심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예배입니다. 또한 실망과 좌절을 맛보는, 육체의 한계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가득한 서로를 겪려하여 선교적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도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공동체의 모습니다. 
• 홀로앉음 마주앉음 둘러앉음의 선순환을 이루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이 땅의 교회를 향한 기뻐하시는 뜻인줄 믿습니다.

• 히브리서11:6-8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 ‘이상과 비전은 다릅니다. 이상은 영적인 감각이 없지만 비전에는 영감이 있습니다. 이상에 빠진 사람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전이 있는 곳에는 올바른 삶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비전은 순종하고자 하는 영적인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_오스왈드 챔버스

• 우리가 가진 믿음은 이상이 아니라 비전입니다. 말씀은 지금도 성취되고 있고 우리가 아무리 세상의 온갖 것들로 혼미하게 될지라도 구원은 사실입니다. 요한복음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택한 자들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그 비전은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 여러분, 사람이 꿈을 꾸는데 열매가 없으면 그 꿈은 망상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만 하다가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비전을 주셨는데 교회들이 그 비전을 보지 못하면 교회는 하나님께 버림 받아 가지처럼 말라버릴 것입니다. 

• 로마서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절에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할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있었지만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 즉, 구원을 위한 삶을 사는데 부끄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내내 실패와 실망을 겪었고 심지어 십자가라는 수치를 겪었지만 부끄럽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도리어 영광의 복음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영혼들을 살리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말입니다. 노아를 보십시요 산꼭대기에다가 120년을 배를 만들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 않겠습니까?

•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간다면 우리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구원을 위해 다시 뛰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 30절에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라고 합니다. 우리가 뭘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우리의 기도, 말씀사역, 뜨거운 예배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 넘치는 삶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그 일이 곧 영혼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삶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우리의 삶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힘은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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