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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4-05-26 주일예배

5월 26일 주일예배
본문: 창세기19:1-11
제목: [아브라함5] 롯이 구원받은 이유                        
찬송: 503장(세상 모두 사랑 없어)

1. 저녁때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소돔을 멸망시키기 전에 소돔에 답사나온 주의 사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그냥 되어지는 우연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믿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롯도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_창세기19:2-3’

· 아브라함의 환대와 같은 롯의 환대를 볼 수 있습니다. 롯이 비록 소돔을 선택해서 또 그곳에 살고 있지만 그곳이 너무 악하고 타락해서 롯이 성문에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이 땅에서 그분이 주신 자리를 취하고 그분이 정하신 특권을 사용하는 일이다. 그 자리, 그 특권은 바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_데이비드 플랫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 중 하나는 기도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주기를 원하시는 것들에 대해 간구하는 자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하나님이 주시기 원하시는 것: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이 땅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_에베소서1:4’

2. 소돔이 멸망한 구체적인 이유

· 바로 그 주요 이유가 ( 음란  )입니다.
· 오늘 본문에 롯이 있었던 자리가 바로 ( 성문 )입니다. 
*그 당시 성문은 재판장, 여론을 수집하는 장소입니다.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_아모스5:10’

· 사회의 불합리한 일을 바로잡을 때, 성문에서 일어나는 일을 싫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_아모스5:15’

·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고 정의가 세워지는 것, 하나님의 세우고자 하는 공의가 성문에서 이뤄져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돔의 성문은 완전하게 그 역할을 잃어버렸습니다. 

· 그 당시 문헌들을 보면, 그 지역을 찾은 낯선 이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 집단 성폭행을 가하는 이런 고약한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4-5절에도 보면 집단적으로 성폭행을 하고, 집단적인 동성애를 하고 완전하게 성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심지어 4절에 보면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이 말씀은 노소를 막론하고 남녀 나이 불문하고 골고루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_창세기19:4’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_베드로후서2:6-8’

베드로후서에 왜 소돔이 타락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이 시대가 그렇지 않습니까?

· 롯이 구원받는 특성 가운데 하나가 ( 음란 )으로부터 건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또 음란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우리가 우상숭배와 영적간음이 동일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결혼해서 바람피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영적으로도 음란한 사람은 육신으로도 음란하고, 육체가 음란한 사람은 영적으로도 음란하게 됩니다. 즉, 육신이 음란하다는 것은 마음과 정신이 피폐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미 음란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영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이렇게 소돔은 육신도 음란하게 된 것입니다.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_창세기19:8-9’

· 당시의 문화가 좋은 문화였나요? 요즘도 성적인 문화가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정상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집단 군중심리입니다.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본문도 정말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중들의 분노와 미친 음란함을 막고자 롯은 자기 딸들을 내어주고자 했습니다. 주의 사자들을 보호하고자 말입니다. 그럼에도 소돔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롯이 피스메이커가 되려고 했지만 소돔의 죄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멸망시키시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3.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2가지 사실

첫 번째는 롯이 문을 닫았지만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_창세기19:10’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문을 닫았지만, 지킬 능력이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저는 우리가 완전한 낙심가운데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하게 낙심할때 우리가 주님을 찾을 수 있는 기도가 예배가 회복되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정말 전심으로 주님을 찾아봤습니까? 우리의 교만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_이사야22:23’

· 신앙생활이란 (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을 )을 믿는 삶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_요한계시록3:7’

· 우리는 내가 죽을 만큼 노력해서 길이 열린 것 같지만, 내가 연 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 게 됩니다. 또, 내 노력이 부족해서 안 열린 것 같지만, 하나님이 닫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으라고 열어달라고 떼를 쓰면 ‘죽을까봐’ 잠깐 열어주시겠지만, 크게 고생하고 다시 돌이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문을 열고 닫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눈을 어둡게 하시는 것입니다.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_창세기19:11’

문 밖에 군중들의 눈을 어둡게 해서 문을 찾지 못하게 합니다. 눈먼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육신도 음란에 빠져서 하나님의 사자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하나님은 이들의 눈도 어둡게 하셨습니다. 멸망을 앞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올바른 목적도 다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뜻도 잃어버리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아람군대의 눈을 멀게 한 엘리사, 전부 진멸됩니다. 반대로 엘리사의 사환의 눈을 뜨게 하신 하나님이시잖습니까? 눈을 떠서 봐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게 (눈)을 바로 뜨는 것입니다. 

“안 봐야 할 것 안 보고 해 주시고, 봐야 할 것 놓치지 않게 하는 지혜로운 영적 분별력과 눈을 뜨게 해 주시옵소서”_데이비드 플랫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단지 교회를 다니자 그런 믿음이 아니라, 어두운 이시대가 길을 잃어버렸는데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보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올바른 것을 보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가 가는 곳은 너희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는 곳이다. 내가 너희에게 다시 오면 너희도 그곳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천국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봐좌를 봤습니다. 거기서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땅을 살아갈 때 어떻게 살아갑니까? 바로 중보자로 살아갑니다. 이 땅을 위해 기도하고 저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합니다. 음란한 세대라는 것을 알고, 눈이 어두워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저들에게 은혜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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