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 주일예배
본문: 창세기20:1-18
제목: [아브라함7] 장애물과 디딤돌
찬송: 351장(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여러분 아브라함이 가졌던 장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브라함에게 주신 사명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셨어요.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또 하나님이 쓰시려고 준비하셨는데, 아브라함에게 장애물이 있었었어요. 힘들고 어려운 장애물인데 그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1. 장애물을 만났을 때 힘든 이유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주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_창세기20:1-2’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았나요?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받는 것도 조카 롯이 구원받는 것도 다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불현듯 네게브 지방의 그랄로 이동합니다. 그랄은 애굽으로 가는 길목이자, 블레셋의 광야인 비옥한 땅입니다.
나중에 이삭이 여기에서 백배의 추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랄은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지역이었는데 오늘 보면 아브라함이 참 이상합니다.
그랄로 가는 것도 이상한데 거기에서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입니다. 심지어 사라도 스스로 그렇게 속입니다.
그런데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리고 갑니다. 그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사라를 데리고 가는데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아브라함을 보면 그가 얼마나 두려움이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면서도 당장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아브라함의 연약한 모습을 보십시요. 갈대아 우르를 떠날때 부터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게 했는데 30년이나 신앙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옛 습성이 남아 있습니다.
신자안에 남아있는 죄가 영혼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간)이 아닌 내 시간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뿐만이 아닙니다.
베드로 역시 얼마나 대단한 예수님의 수제자입니까. 그런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때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합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장애를 넘어서고 초대교회에서 했던 베드로의 설교를 보십시요.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_사도행전2:14-42’
다윗은 엄청나게 훌륭한 왕이었지만, 요즘 시대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간음을 하기도 했고, 악의적으로 자기의 장수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을 수 있었을까?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_사무엘상16:13’
사실 모세는 더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출애굽할 지도자로 쓰신다고 하였지만, 성급한 나머지 직접 애굽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지만 항상 부정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못합니다. 저는 안됩니다.
그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한 장면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 아닌가요?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_출애굽기4:17’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정말 많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또 그랄로 내려갑니다. 어쩌면 소돔이 멸망하고 낙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롯이 구원받았지만, 소돔이 멸망한 것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두려움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쳐서, 혹은 내 시간표를 생각하고 인내하지 못해서 포기하고 그랄로 가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랄로 가면서 옛습성이 다시 튀어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하는 본성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이런 장애를 만났습니다. 뜨겁게 사역하다가도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고 어쩌면 사람을 바라보면서 자기 시간,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 장매물을 극복했을까요?
2. 아브라함을 대하는 하나님의 마음
사실 아브라함이 극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사라로 인해 너를 죽이겠다고 협박하십니다.
어떤 주석에 보니 아비멜렉에 불신자인데 신자보다 더 도덕적이다 그렇게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죽이겠다고 하는데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너무 두려워서 엄청난 재물을 아브라함에 주면서 선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벌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죠.
심지어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_창세기20:7’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사기꾼 정도로 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목숨을 위해 기도해주는 ( 선지자)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무슨 선지가인가? 지긍 아브라함의 상태를 봤을때는 그럴 수 없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그가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할 수있는 아비멜렉이 구원받게 할 수 있는 선지자로 여기신 것입니다.
다윗 역시 광야에서 미친놈처럼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일은 점차 얘배자 다윗이 없으면 안되는 이스라엘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가까지 피하리이다_시편57: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_시편57:7’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_시편142:2’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_시편145:18’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선지자 )가 되길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엄청난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고 이제 그 장애물을 넘어서길 원하셨습니다.
그의 장애로 그랄로 갔지만, 그는 거기에서 장애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또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장애가 많죠? 그것이 내 안에 상처이든, 아니면 주변에 어떤 사람이든, 물질이든, 가족이든, 교회적으로 봐도 그런 장애가 있거든요. 아니면 성품이든, 은밀한 죄이든 수많은 장애물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걸 극복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걸 극복하길 원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말씀입니다. 그 은혜와 말씀으로 장애물은 디딤돌이 됩니다. 반드시요.
3. 디딤돌
알고 봤더니 아비멜렉왕에게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집안의 모든 여자들이 출산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까지 하나님은 전부 일하고 계셨습니다.
보십시요. 아브라함과 입장이 너무 똑같은 같은 심정을 가진 아비멜렉이 아닌가요?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태의 문을 여시는 분이 하나님이란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즉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라_창세기20:17-18’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 아브라함의 기도 )입니다.
그가 기도의 사람으로 이제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옛성품이 남아있는 연약한 아브라함이지만, 무심코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도 그간 오랜 세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는 증거가 아닌가요?
유진 피터슨이 쓴 한길 가는 순례자의 영어 제목이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 같은 방향으로 오랜 순종’이거든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나서 아브라함은 바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할 때까지 계획하셨고,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 아비멜렉 가문의 모든 태의 문을 여셨습니다.
사라를 누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연약함에 흔들렸던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로 사용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가장 큰 연약함이라는 걸림돌을 만났지만, 하나님은 그 걸림돌을 디딤돌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브라함을 통해 몇가지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1. 오랜 세월 기도할 자세를 갖추라. 기도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
좋은 자세를 갖추면 기도는 저절로, 늘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기도를 자기 생각, 자기 감정으로 합니다.
그런 기도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자세여야 합니다. 한달에 한번 기도원을 간다든지, 매주 금요기도회를 온다든지, 중보기도팀과 함께 한다든지, 하루 중 반드시 기도시간을 가진다든지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2. 습성 즉, 죄의 습성으로 실수 했을 때에도 기도를 하라. 우리는 우리의 관점으로 기도를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이 태어나지 않을꺼야 그러니 이제 기도할 필요 없어.
하나님의 부흥은 다시 오지 않을꺼야 한국교회 상황이 이렇게 타락했는데 이런 식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관점 즉, 하나님의 시간을 두고 하는 것입니다.
내 개인에게도 좌절이 있을 수 있고 장애물로 낙심이 될 수 있지만 그때도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데 장애물에 막힐 때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심으로 믿음의 진보를 이루십니다.
3.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입니다. 아비멜렉의 가문을 구원하시고 치유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입니다.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청년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셔서 뜨겁게 기도하길 축복합니다. 사실 청년들은 금요기도회 끝나고 나눔터별로 모여서 더 기도하고 가셔야 합니다. 일주일에 하루 정말 뜨겁게 기도할 수 없다면 여러분 인생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돌아오는 금요일부터 예수님의 기적을 다루려고 합니다. 저는 우리 인생에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구원이고 섭리이고 은혜이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에 오면 기적입니다.
우리가 그런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장애물은 낙심하고 좌절하고 타락하고 멋대로 살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도하라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하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적용: 우리의 연약함마저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시작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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