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주일예배
본문: 창세기22:1-19
제목: [아브라함8] 하나님의 시험
찬송: 406장(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지난 설교 생각하고 질문하기]
내 신앙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이 디딤돌이 될까요?
:
아브라함을 통해 배우는 기도를 적어보세요.
1. 오랜 세월 기도할 자세를 갖추라.
2. 죄의 습성으로 실수 했을 때에도 기도를 하라.
3.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이다.
1. 신앙생활은 왜 이렇게 시험이 많나요?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성공이나 번영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_창세기22:1’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시는 큰 구원사적 흐름에 우리를 밀어 넣으시고 거기서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게 할 것인가? 가 주된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믿음이란 것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즉,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서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_야고보서1:13’
사실, 앞장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화친조약을 맺습니다. 이게 엄청나게 대단한 것인데, 한 나라의 왕이 동등하게 조약을 맺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을 한 나라나 큰 민족으로 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정말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입장에서 보면 아브라함을 구원사적 흐름에 즉,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밀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찾아온 시험이 바로 오늘 본문의 ‘귀하게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하나님은 믿음이 사람을 시험(test)하시지 유혹(temtation)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기 위함이지 넘어지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유혹합니다.
그래서 시험은 (통과)해야 하고 유혹은 (거부)해야 합니다.
2.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나요?
아무리 우리를 세우시기 위해 주신 시험이라고 해도 오늘 시험의 내용은 참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렵습니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일찍이 일어나_창세기22:2-3’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_창세기22:6’
우리는 하나님이 내려놓으라는 것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기도를 더 많이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은 대단합니다. 아무 말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사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데,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준비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고 기록하였지만 어쩌면 밤새 하나님의 말씀에 한숨도 못 자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낳은 아들인데, 번제물로 드리라니? 내 아들 초등학교 입학식만 해도 눈물 나고, 군대만 보내도 눈물 나는데 번제물이라니.
이렇게 믿음은 눈에 보이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미래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있습니다.
그것을 연결 시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어야 밖에 있는 불가능한 사건이 내 안에 들어와서 가능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믿음을 가졌더니, 예수님의 손이 그의 몸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그의 마음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건)이 내 삶에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한 목사님을 만나러 갔는데 식사 대접해주신다고 그 교회 집사님이 나오셔서 저에게 질문을 하는 거예요. 자기는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자기 마음이 변화가 없는 것 같다고 다른 사람처럼 감격스러운 어떤 감동도 없다고 구원받은 것 맞냐고 질문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항상 예배를 성실하게 드리고 교회가 어려우면 늘 먼저 나와서 교회를 섬긴다고 그 교회 목사님이 증언하셨는데, 그분에게 왜 그러냐고 했더니 정말 잘 하나님을 섬기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믿음이 어떤 감정이라고만 생각했지 삶의 순종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뜨겁게 신앙생활 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내 뜻을 위해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는 순종으로 시험을 이겨내는 것이고, 사탄에게는 유혹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_히브리서11:19’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_창세기22:8’
아브라함은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이삭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이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준비하시리라’ 이삭이 물어보잖아요. 번제할 준비물은 다 있는데 번제물은 어디 있습니까? 종들이나 이삭은 안보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보이실 것이다. 안보이는 현실 가운데 믿음이 보이는 사건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이야말로 대단한 능력이 아닌가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길 원하십니다.
3. 인간의 최고의 삶은 [경외하는 삶]
‘네가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_창세기22:12-13’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게 진짜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네 독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합니다. 사실, 우리는 가짜를 가지고 종교노름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것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쉽게 놓을 수 없습니다. 쉽게 포기도 안됩니다. 저도 그래서 작년 한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를 위한 종교노름이었습니다. 그걸 포기하니 순종이 생겨나고 순종은 믿음과 동전 양면과 같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건)이 삶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보려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보입니다. 하나님이 그 싸인을 주시면 순종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레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리라_창세기22:16-18’
경외하는 삶은 신앙의 최고봉입니다. 경외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하시려는 일은 무엇일까요?
1. 경외하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삶을 만들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사에 들어가 사는 것입니다.
2. 신앙의 승리를 얻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결과가 매우 중요한데 신앙은 끝이 좋아야 합니다. 경외는 인내를 말하는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 신앙이 온전히 쓰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3. 하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축복은 하늘상급입니다. 즉,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일은 경외하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적용: 경외하는 삶을 위해 하나님의 시험을 온전한 순종으로 이겨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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