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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4-10-06 주일예배

10월 6일 주일설교
본문: 창세기39:1-5
제목: [요셉3]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1.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우리가 원하는 길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의심과 틈이 생깁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막다른 길로, 내가 원치 않는 길로 인도하시는가 싶은 마음입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으로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고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_창세기39:1”

•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내려가고, 팔려가는 모습입니다. 마치 인생의 내리막길처럼 보입니다. 내려감은 고통이고, 좌절, 절망,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왜 내려가야 하나? 우리의 신앙은 그 수준에 맞춰져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이 있으면 올라가는 길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 내려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올라가는 것은 정말 힘든데 내려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정상보다 바닥을 경험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거절하고자 합니다. 요셉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내리막을 경험합니다. 엄청난 고통입니다. 이렇게 떨어질 바에야 죽는 것이 낫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을 거절하면 더 큰 고통이 찾아옵니다. 찾아온 고난을 부정하면 더 힘들어집니다. 왜 내가 노예로 살아야 하나? 왜 내가 하나님께 뭘 잘 못했다고 이런 상황을 주시나요? 그래서 거부하면 더 큰 고통이 찾아옵니다. 파스칼은 필요한 고통을 거부하면 더 큰 고통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 내려가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려갈 때 잘 내려가야 합니다. 내려가는 길에 끝이 반드시 있죠. 왜냐하면 내려가는 길과 올라가는 길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닥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닥을 맛본 사람은 늘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알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바닥을 경험하지 못하면 위험한 사람입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후반부에 내려감을 당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요셉이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성경은 그냥 보디발의 집에 와서 갑자기 요셉이 잘했다 이런 표현같지만, 요셉은 그 현실에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고 호사를 누린 요셉이 지금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바닥을 경험하는데, 요셉이 바닥을 떻게 경험하는 지 봐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끄럽지만 저희 집도 바닥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상하방에 살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대학교때는 친구들 자취방을 전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전거 한대도 사고 싶어도 사지 못했습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은 제 신앙에 제 목회에 엄청 유익합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고난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때 무엇을 배울까?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_시편119:71” 고난이 왜 유익이라고 하죠? 주의 율례를 배우고자 함이라 고난을 경험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그 시간이 나를 사명자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고난이라고 해서 잘못떨어지면 죽습니다. 어렵다고 이 사람 저사람 찾아다니고 인생을 의지하고 그럼 안됩니다. 떨어질때는 나보다 강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라_시편146:3-4”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_시편146:5”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내려갈때 바닥에 있을때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 삼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내 믿음입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_창세기39:2-3”

• 그런데 형통이라는 단어와 함께 라는 단어를 봐야 합니다. 형통은 곧 함께 입니다. 누가 함께 하느냐 이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성공과 정반대의 상황에 형통하다니? 우리가 이걸 경험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입니다. 형통은 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바로 생명력(바르크)인데, 바로 (참 생명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모든 존재는 소멸됩니다. 우리를 존재하게 하시는 힘입니다. 하나님이 떠나면 죄가 넘치고, 하나님이 함께 하면 생명이 넘치게 됩니다. 이걸 복이라고 합니다. 소유가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복입니다. 

• 왜 사람들이 불안하고, 다투고, 예민하죠? 내 안에 욕망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여 우리를 지배하는 존재가 마귀잖아요. 마귀는 예수님보고 돌이 떡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런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배고프니까 힘드니까 먹을 거에 예민한데 마귀는 그걸 너무 잘 알고 유혹하는 거예요. 마귀는 하나님의 원숭이입니다. 하나님처럼 흉내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유사복음이고 유사종교겠죠.  지금도 그렇죠. 성공,돈 이런 걸 축복이라고 설교하고 말해야 성도들이 모이고 그렇잖아요. 아마 예수님이 지금 우리 예배에 오신다면 우린 예수님을 거부할 수 도 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욕망을 채우는 종교 말고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생명을 얻으라고 합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노예도 형통할 수 있나요? 꿈이 산산조각 난 거 같은데 성경은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신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_창세기39:4”

•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의 눈에 띄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요. 우리는 은혜를 아 은혜받았다 하는 감정에서 머무르는 경향이 있는데, 은혜는 반드시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보디발이 오랜 시간 요셉을 지켜봤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저렇게 봤는데 이 노예는 그냥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데 그것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구나! 욕망이 아니라 은혜구나!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본 거죠. 그걸 요셉도 느꼈습니다. 요셉은 노예였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형통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내가 가는 길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종속되어야 사람을 바라보거나 의지하지 않습니다. 보디발이 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리셨구나 이걸 모르면 돈의 노예, 세상 문화의 노예, 끌려다닌 줄도 모르고 끌려답니다. 평생 사라질 것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_시편119:110-112”

3.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가는 삶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_창세기39:5”

• 이 복이 흘러갑니다. 이 복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팽창됩니다. 커진다는 것입니다. 넘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의 특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일하고 계시는데 보디발에게도 보이심으로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 이방사람 우상 섬기는 애굽의 부자집에서 무엇이 부족하다고 요셉을 의지하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에게 있는 생명력은 그들에게 없으니까, 그 신앙은 없으니까 보디발은 그걸 본 거예요. 내가 요셉에게 붙어야겠다! 복있는 사람에게 붙은 거예요.

• 요셉은 이 때 알았습니다. 보디발이 나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먹여살리는 것이구나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더이상 보디발이 두렵거나, 내려감이 바닥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이 고난을 통해, 이 내려감을 통해 하나님을 완전히 만나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 요셉이 어떻게 애굽에 왔고, 보디발의 집에 왔을까? 복의 시작은 하나님입니다. 이 복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복이 요셉에게 온 것입니다. 이 복은 지금 우리에게도 왔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신령한 복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복입니다. 

• 저는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 교회를 처음 다녔는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저에게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소망보다 절망스러운 일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점차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커져갔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눈물속에서 만나는 분들이 전부 저에게 그 복을 흘려 보내주셨습니다. 고난을 피하게 해주겠다, 어려움을 해결해주겠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_시편144:1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_시편146:5”

• 요셉은 보디발을 위해 복 있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 있는 사람으로 그 집에 있었을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미래를 우리는 잘 몰라요. 그러나 한가지 제 마음에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고 믿음으로 가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 좋은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이 우리가 중요한 선택을 할때에, 하나님을 선택해서 가는 선택을 했는데 그때 고백한 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개척때부터 기도하던 개척교회나 선교지의 선교사님들을 돕는 일을 이제 10년이 지나서 해보려고 합니다. 선교적 교회가 구호만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산은 어렵고, 상황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2개월 정도 이제 막 개척한 교회들을 선정하고 찾고 협력하려고 합니다. 같이 가서 예배드려주고 집회해주고 섬겨주고 그러고 싶습니다. 선교지도 이제 우리의 기도가 섬김이 흘러가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저는 복입니다.

• 이 복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 인생에 흘러 들어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_요한복음15:5”

• 우리 신앙은 이 복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복이 있어야 교회도 하나님께서 축복되게 하십니다. 바닥을 친거 같지만, 다시 형통하길 원합니다. 다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찬송하고 감사하길 기도합니다. 어려움은 금방 지나갑니다. 그러나 어려울때 우리가 정말 바라봐야 할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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