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1,2부예배
본문: 창세기40:1-23
제목: [요셉5] 신앙은 기다림
1. 요셉의 억울함
• 꿈과 현실이 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무런 잘못도 없고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을 더 잘했는데 결과는 안좋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때 드는 감정이 억울하다는 감정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이 때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왜냐하면 이 때가 아니면 부활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죄가 없으신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가장 억울한 모습으로 처형당하셨습니다.
• 인간은 억울할 때 분노의 감정, 증오심, 화병이 생깁니다. 이럴 때 상처가 쌓입니다. 그래서 우울을 경험하고 또 약을 먹기도 하고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내 인생이 잘 안풀리면 화병이 생깁니다. 여러분, 그런 나쁜 감정에 인생을 맡기면 안됩니다. 보통 이럴 때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억울할 때 어떻게 넘길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 놀랍게도 요셉은 감옥에서도 신임을 얻습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 수 있나요? 환경이 억울한데 상황이 쉽지 않는데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 고 기록합니다.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과 거리가 멀죠?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은 감옥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바뀌지 않는 억울한 환경 속에서 요셉은 어떻게 넘겼을까요?
2. 하나님은 요셉이 깨닫길 원하셨습니다.
• 이렇게 까지 하나님께서 하신 이유는 요셉이 무엇인가를 깨닫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_창세기39:20’
• 왜 하필 감옥인가? 억울할 법도 하죠. 정말 받아 드리기 힘든 현실입니다. 이해도 잘 안됩니다. 올바른 길을 선택했는데 당장 어려움을 겪으면 더욱 힘이 들기도 합니다. 요셉은 악한 여자로 인해 최악을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것을 어떻게 넘겼는지 봐야 합니다.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_창세기40:2-3’
• 힌트는 왕의 측근이 범죄하여 요셉이 있는 감옥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반드시 믿음을 선택해서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일하고 계십니다. 바로왕의 최측근 신하 두 사람이 감옥에 오자마자 동시에 꿈을 꿉니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_창세기40:8’
• 요셉은 꿈과 관련이 많습니다. 형들에게 어려움을 당할 때도 그 원인이 꿈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지금 두 신하들의 꿈을 해석하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해석해주신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벌어진 일입니다.
•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이유는 그러니까 (요셉의 실력) 때문입니다. 평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았던 요셉은 그들의 꿈을 정확하게 해석해줍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감옥이지만 요셉에게 그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한번도 멀어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믿음의 능력이 아닌가요.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_창세기40:14’
• 그들의 꿈을 해석해주었고 그들에게 훗날을 부탁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인간적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꿈도 해석해주고 또 꿈대로 이루어졌으니까 술맡은 관원장이 살아났으니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꿈을 꾸게 하셨고 해석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신데 왜 응답이 오지 않을까? 요셉은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_창세기40:23’
• 세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습니다. 급할 때는 요셉에게 그렇게 매달렸는데 다시 권력의 자리에 가니 잊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간절했는데 상대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쉽게 변화되는 인간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요셉이 하나님이 아닌 술맡은 관원장을 기대하면 그 순간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 됩니다.
3. 신앙은 기다림
• 기다림은 희망고문입니다. 너무나도 큰 고통입니다. 고통의 용광입니다. 사람에게 의지했던 요셉은 버림받은 느낌을 가졌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바로 기다림 아닌가요? 뜨겁게 기도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데 전혀 변화도 없는 것 같고, 또 내가 어떤 문제를 두고 기도하면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서 괴롭지 않습니까? 우리교회가 금요철야기도회를 시작했는데 저는 여러분과 같이 기도하고 싶습니다. 기도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금요일 밤에 우리 교회 본당에 우리 성도들로 가득하길 원합니다. 그냥 기다림은 괴롭지만, 기도하는 기다림은 전혀 다른 기다림이 됩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_시편105:17-19’
• 하나님은 요셉의 신앙이 ‘단련’되길 원하셨습니다. 단련은 시련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 시련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이끕니다. 예배의 자리로 이끕니다. 저도 어제 결혼식에 간다고 양평?에 가는데 오랫만에 자연을 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 자연을 보면 쉼이 되죠. 그렇다고 해서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잠시 자연을 보면서 힐링은 되겠지만, 눈앞에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그대로 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다시 기도했습니다. 엎드려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뜨거운 용광로를 통과해야만 단련이 이루어집니다. 내 영혼이 단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_욥기23:10’
•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교만)을 깨뜨리셔서 (단련된 영혼)을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왕앞에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그 거대한 세상에 변질되지 않고 유혹받지 않고 권력에 흔들리지 않을 단련된 믿음을 만드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이유는 우리를 통해 복음을 세상에 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외면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뜻, 섭리, 경륜과 상관없는 종교인으로 끝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빛나는 영혼을 만드셔서 왕 앞에 서도 믿음의 고백을 하는 요셉이 되는 것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이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_이사야49:15’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_로마서5:3-5’
• 하나님은 (단련된 만큼) 사용하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어떻게 기다려야 합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이 응할때까지라고 하셨는데 그냥 기다리는 것인가요?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예배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결코, 우리가 단련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단련되길 원하십니다. 우리교회가 단련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 같이 기도합시다. 기도하지 않고 막연하게 기다리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은 단련되지 않고 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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