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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4-10-13 주일예배

10월 13일 1,2부예배
본문: 창세기39:6-23
제목: [요셉4] 은혜가 이끄는 삶

1. 타협인가 거절인가

• 어려움 속에서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왜 내려왔나, 왜 바닥인가 하나님앞에서 고민하고 기도하고 애썼더니 다시 오르막이 나오죠. 6절에 보면 애굽의 고위관료인 보디발이 어린 노예 요셉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요셉의 용모가 빼어났다고 기록합니다. 

• 요셉의 어머니 라헬이 곱고 아리따우니 라고 기록합니다. 야곱이 7년을 7일처럼 일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요셉의 외모는 가문의 내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꾸미려고 또 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관료의 집에 노예로 발탁되었을 때는 용모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차은우같은 연예인들 보면 그렇죠. 이런 용모는 유혹도 많이 받습니다. 우리는 유혹에 넘어간 적이 없다고 하시는데 유혹을 받아본 적이 없지 않을까요?^^ 내 외모가 아주 평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생기고 예쁜 분들은 더 기도하고 그러셔야 합니다. 

• 요셉에게도 유혹이 왔는데 보통 유혹이 아닙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은 단순한 유혹이 아닙니다.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힘까지 있으니까 위력을 가지고 권력을 가지고 성추행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_창세기39:7-8a’

• 눈짓으로 유혹합니다. 모든 죄는 눈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 아시죠? 안목의 정욕입니다. 보면 대부분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런데 요셉은 거절합니다. 고난을 넘어서 이제 살만한데, 유혹이 찾아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집요합니다. 날마다 접근합니다. 이것은 이제 유혹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내 말 안들으면 넌 끝이야 이런 식입니다.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이것은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 이럴때 선택을 해야 하는데 요셉은 이제 좀 살만하니까 보디발의 신임을 얻었는데 이제 그의 아내에게 약간의 도덕적 양심만 팔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힘들게 얻은 이 자리를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 우리가 보통 죄로 넘어갈때 이런 식입니다. 힘 없는 노예 주제에 어떻게 거절을 할 수 있겠어. 

• 그러나 요셉은 거절합니다. 하나님앞에서 이것은 악이야. 이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이 펼쳐집니다. 고난보다 유혹을 다루기가 힘듭니다. 다윗보십시요? 엄청난 골리앗을 무너뜨렸는데, 작은 유혹 밧세바 앞에서 한없이 무너졌습니다. 주로 외로울 때 이런 유혹을 이기지 못합니다. 요셉은 정말 외로웠을 것입니다. 요셉의 나이가 20대 중반인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불을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_잠언6:27-28’

• 작은 죄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작은 불씨가 산불을 냅니다. 작은 불씨가 한 지역을 다 태워버리게 합니다. 유혹에는 묘책이 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타협과 거절이라는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은 바로 도망갑니다. 요셉이 이때 말로 설득하거나 혹은 전도하거나 그래서는 안됩니다. 유혹앞에서는 도망가야 합니다. 빨리 피해야 합니다. 피하지 않고 기도하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죄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입니다. 공백기만 보이면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유혹 앞에 영웅은 없습니다. 죄앞에 넘어지는 사람보면 대부분 교만합니다. 자신은 안 그럴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2. Coram Deo(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 요셉이 유혹을 이길 수 있고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이 알려주죠?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은 집에서 직장에서 어디서든 그랬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다는 증거는 하나님 앞에 사는 코람데오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조금 불쾌할지도 모릅니다. 꽉 막힌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는 삶을 선택하고 살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_창세기39:9b’

• 마귀는 틈을 노리기 때문에 (영적 공백기)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유혹은 끊임없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 됩니다. 예배드리고 금요기도회 하고 새벽집회 하고 성경 읽고 훈련 받고 그러면 유혹이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백기가 있을 때 파고드는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큰 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다 죄를 작은 것이라고 만들어버립니다. 경미한 실수 정도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아셔야 합니다. 죄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리라_창세기39:10’

• 유혹은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 다윗의 밧세바 사건으로 다윗의 왕가가 기울어졌습니다. 다윗이 지었던 죄를 보십시요. 별거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하지만, 왕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철저한 회개를 요구하셨고 심지어 용서받았지만 그 죄의 결과가 다윗의 가문을 무너뜨리지 않았습니까? 죄는 작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해결해야 할 정도로 작지 않습니다. 
• 국가와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지은 죄는 반드시 죄값을 치르게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죄를 쉽게 생각합니다.
• 죄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해야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무서운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면 그 순간부터 죄는 멋있어 보이기 까지 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_창세기3:6a’

• 요셉은 죽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요셉은 누명을 뒤집어씁니다. 보디발의 아내를 겁탈한 성추행범이 된 것입니다. 요셉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노예입니다. 어쩜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면 이런 상황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 치졸한 사람, 차별주의자라고 여김 받을 지도 모릅니다. 
•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요셉은 감옥으로 갑니다. 신기하죠? 죽어야 하는데 감옥으로 보냈다는 것은 보디발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고 요셉을 선처해준 것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_다니엘1:8-9’

• 다니엘을 보십시요. 다니엘은 처음부터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뜻을 정했습니다. 어릴때부터 말입니다. 그러면 손해가 많겠죠. 다들 고기 먹고 왕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데 다니엘은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럼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셔야 합니다. 말씀대로 산다고 좋은 일만 일어나면 좋은데 대부분 죄의 유혹을 거절하면 어려움을 겪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 거절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보상하십니다.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부 알고 계십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렇게 예배하고 기도하고 교회가 되어 산다는 것은 엄청 손해같은 데 그렇지 않습니다. 

3. 은혜가 이끄는 삶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_야고보서1:13-14’

• 시험은 자기 욕심으로 미혹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유혹 앞에 (자신감)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신앙의 경력, 체험, 지식, 직분이 자신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사모하며 은혜의 자리로 가야 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힘들게 일하고 기도하고 그럴때는 죄지을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살만하니까, 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죠. 간절히 기도하지 않아도 되죠. 기도해도 대충하죠. 금요기도회 안가도 됩니다. 하나님 뭐 좀 도와줄까요? 여러분 고난으로 우리가 망하는 것이 아니예요. 오히려 고난은 우리 영혼을 깨우고 단단하게 하지만, 유혹은 영혼의 깊은 잠에 빠지게 합니다. 누가 유혹을 당하죠? 돈이 많거나 시간이 많거나 하는 분들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갈수록 커집니다. 그러다가 무너집니다. 그 무너짐은 하나님을 섬기기 못하게 합니다. 고난속에 있는 분들은 집 교회 집 교회 이렇잖아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_창세기39:21-23’

• 환경과 상관없이 (말씀대로 사는 삶)이 곧 은혜의 삶입니다. 은혜가 이끄는 삶은 어떤 삶인가요? 말씀을 먹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하는 내내 제자들에게 가장 많이 가르치신 것이 먹으라였습니다. 자기 살을 먹고 자기 피를 먹으라였습니다. 말씀을 먹고, 은혜를 먹어야 합니다.

• 그런데 우리는 거의 매일 미디어를 통해 뭘 먹습니까? 계속 우리 영혼이 그들의 언어 유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조차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신자의 힘을 빼버립니다. 힘을 빼버리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 아는데 그냥 넘어집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셔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사로잡혀서 살아야 합니다. 온전히 사로잡혀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평해야 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세상의 즐거움이 크다보니 하나님에게 멀어지는 것입니다. 은혜가 이끄는 삶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삶이고, 그 삶은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러분 예배합시다. 기도합시다. 그것 자체가 내 영혼을 지키는 복입니다. 겨우 예배 한번 드리고 신자라 말하지 마시고 은혜가 이끄는 삶이 되고록 엎드려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 내가 깨어 있을 때 하나님앞에서 살아갈 때 마귀는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셔야 합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시고 나눔터 모임을 통해 같이 기도하고 서로 깨어있도록 섬겨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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