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교회 금요예배 20150710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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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무엘상1-7장의 배경은 사사 시대 말기입니다. 사사시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입니다. 사사 시대 말에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우리가 잘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혼란 도덕적인 혼란을 사사기 뒷부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대를 갖고 다음 사무엘상을 볼 수 있습니다.
본론
Ⅰ. 괴로운 여인 한나가 하나님 앞에 서다.
그런데 사무엘상 1장에 한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사시대에 하나님이 세우신 삼손 같은 영웅이 아닌 한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한나는 어떤 여인입니까?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3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_사무엘상 1:2-8
1절을 보면 앞으로 태어날 사무엘의 아버지, 즉 엘가나의 가문은 유명한 가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이름도 없는 가문의 여자였으며 아기도 없었습니다. 민족적인 문제를 대답하는 것이 사무엘상 성경인데, 한 여인, 무명의 불쌍한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 당시 불임이란 여자에게 아주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이 시대에서는 여자의 사회적 가치는 항상 남자에게 달려있었습니다. 여자가 독립적으로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갖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또 한나에게 고통을 가하는 다른 원인이 있었습니다. 엘가나의 다른 와이프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혔습니다. 엘가나가 1년에 한 번씩 제사 드리러 가는데 엘가나는 한나를 더 사랑하고 4절-5절에 보면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 제물을 나누는데, 늘 한나에게 ‘갑절’을 준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브닌나가 한나를 시기했습니다. ‘갑절’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영적인 의미 말고도 현실적으로 ‘갑절’은 장자에게 주는 것으로 아들이 없는 한나에게 장자권을 준 것입니다. 율법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긴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래서 브닌나는 한나에게 분노하고 질투하고 시기했을 것입니다.
또다른 한나의 괴로움은 제사장들이었습다. 3절에 보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나옵니다. 이 두 사람은 제사장임에도 하나님의 제물에 손을 대고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르고 욕망과 탐욕이 가득한 자들이었습니다. 9절에 보면 엘리 제사장이 문설주에 앉아 있다고 나옵니다. 가정에서 갈등당하면 목사님이라도 알아줘야하는데 목사님도 몰라주는 것입니다. 심지어 한나가 기도하는데 13-14절에 보면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 술에 취했다고 하면서 술을 끊으라고 말을 합니다. 이는 그때 당시의 성도의 모습과 목회자의 모습이 어떤지 짐작이 가는 모습들입니다.
마지막 괴로움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라고 나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희망이 없다고 타락할 수도 있고 극단적인 선택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이 가운데서도 늘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에 가는 이유는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사람이 나에게 해석을 줄 수 없기에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날, 한나는 또 하나님 앞에 나왔고 이날 한나의 기도가 바뀌었고 한나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었습다. 사사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_사무엘상 1:11
한나의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평생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는 아들, 즉 아들이 생기면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말입니다.
11절은 아주 간단한 기도 같지만 아주 복잡한 기도입니다. 서원기도에는 형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a를 주시면 b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형식입니다. 그런데 한나의 기도는 달랐습니다. '만일 아들을 주시면' 하면 되는데, '여종이 고통을 살펴보시고, 기억하시며 잊지 않으셔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한나의 깊은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이때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_민수기 10:10
‘나를 기억하사’ 라고 한나가 기도하는데, 여기서 ‘기억’은 보통 우리가 말하는 기억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내 인생의 창조주 주인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과의 대면적인 체험이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데. 이런 기도를 엘리가 보고 술 취 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술에 취해서 성전 들어오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나오고 엘리가 축복을 하는데 사실 여인에 근심에 공감해서가 아닌 일반적이고 형식적인 축복을 해 줍니다. 그런데 한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_사무엘상 1:18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한나는 남편과 동침하여 아이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서언대로 젖을 뗀 후 아이를 성전으로 보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관습상 아이가 젖을 떼는 시기는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1년, 2년, 5년, 혹은 더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엄마의 권한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나의 믿음이 보입니다. 그 귀한 아들을 성전에 보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성전으로 갈 때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가 1년에 아들을 한 두 번 보는데, 올라갈 때 마다 작은 겉옷을 만들었습니다. 이 당시의 옷은 집에서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습니다. 즉, 1년 내내 아들을 생각하며 옷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해마다 몸이 자라나는데 이것에 맞게 만드는데 아주 관심이 많았고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옷을 만들면서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상을 보면 사무엘은 늘 겉옷과 함께 등장합니다. 사무엘의 사역의 핵심이 바로 사무엘의 겉옷인 것입니다. 나중에 사울과의 사건에서도 계속 겉옷이 나옵니다. 즉, 한나의 영향이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나의 믿음, 한나의 신앙이 아들 사무엘에게까지 전달되었다는 것입니다.
Ⅱ. 한나의 아들 사무엘이 인생의 위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다.
다시 돌아가서 왜 사무엘상이 한나의 이야기로 시작할까요? 한나의 기도가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기도이기에, 한나의 기도를 통하여 얻은 아들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나중에 왕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즉 한나 이야기의 연결점이 사무엘에게 있습니다. 사무엘의 이름의 뜻은 20절에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여 얻었다'로 나옵니다. 한나는 아들을 구하여 얻었고 그렇게 얻은 아들에게 사무엘이라고 붙입니다. 구하다 라는 말이 앞으로도 계속 사용되다가 끊기다가 8장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은 구하여 얻은 자라는 말입니다. 한 여인이 아들을 얻는 이야기 안에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복선으로 깔려있는 것입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_사무엘상3:1
사무엘이 젖을 떼고부터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제사장에게는 희귀했지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는 “사무엘아”라고 직접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_사무엘상3:21
그래서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고, 사무엘은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빼앗긴 언약궤도 돌아오고, 사무엘의 말씀운동으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미스바 운동까지 일으켰습니다. 미스바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말씀 운동을 하고, 심지어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5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_사무엘상7:12-17
이 말씀이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사무엘, 어머니의 기도로 양육된 사무엘, 말씀으로 다스렸던 사무엘과 이스라엘에게 증거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하게도 시간이 흐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도 없고 잘 살고 배부르기 시작하면서 여호와를 잊기 시작합니다. 사무엘도 늙었고, 사무엘 아들들이 또 사사가 되었는데, 아버지의 행실을 따르지 않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장로들이 왕을 요구하게 됩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않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왕정을 하고 있었고, 하나님이 백성 이스라엘은 신정이었습니다. 왕정은 사람이 왕이되어 다스리는 것을 말하고, 신정은 하나님이 왕이 되어 하나님이 말씀으로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자꾸 왕을 요구했을까요? 찬란한 문명을 이룬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는 왕정을 했습니다. 나라를 아주 효과적으로 다스렸습니다. 화려한 건축과 시설이 있었습니다. 치안 덕분에 부도 축척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을 보니 더 나은 삶으로 가는 지름길이 보인 것입니다. 또한 국가 위기 왔을 때 왕은 큰 군대를 모집할 수 있었고 상비군도 평시에 계속 유지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즉 열방과 같은 왕정을 갈망했습니다. 고대의 왕은 신이었습니다. 절대적인 신권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돈과 명예를 위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기로 결정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언약적인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에서 왕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왕이 되어야 하는 교회와 같은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하나님의 왕이 되지 못하는 교회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모든 업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늘 사람들은 카리스마적인 영웅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 영웅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변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절대 권력은 반드시 우상화가 되어집니다. 즉 그 교회의 하나님의 통치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즉 그들이 원하는 왕은 열방과 같은 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고 예배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 하지만 우리는 영웅을 원합니다, 그런 목사, 그런 신학박사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있는 지도자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것이 우상입니다. 그 이후의 역사를 보면 다윗 왕 이후로 제대로 된 왕이 없었습니다.
이때 우리가 사무엘을 보면서 우리가 신앙의 모델을 한 번 찾아볼 수 있습니다. 6-8절을 보면 사무엘이 왕정을 요구하는 백성들을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사무엘의 사사적 통치할 것을 대치하는 왕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라고 나옵니다. 당연히 기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무엘에게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냥 속된 말로, 어려서부터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모든 일에 올인하고 힘썼는데, 이제 와서 이 아버지 같은 사무엘, 목회자 같은 사무엘, 선생님 같은 사무엘, 인생을 다 바쳐서 사역한 사무엘이 이젠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을 달랐습니다. 6절 끝까지 보면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라고 나온다. 사무엘은 무너진 마음으로 하나님에게로 갑니다. 사무엘은 어머니의 기도로 태어나고 양육된 사람입니다. 인생에 가장 어려운 순간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위로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사무엘을 위로합니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_사무엘상8:7-8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너를 버린 것이 아니고 사실은 저들이 나를 버린다고 말씀하십다. 즉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왕 되심에 이스라엘이 도전했다는 것입니다.
결론: 사무엘상2장 13-14절은 그 당시의 습관이다.
'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4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_사무엘상2:13-14
냄비, 솥, 큰솥, 가마가 나옵니다. 이는 신학적으로 탐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15-17절, 그리고 22절에 엘리 아들들의 죄악이 나옵니다. 22절에서 회막 입구라고 했는데, 회막 입구가 성소라는 말입니다. 사실 율법에 의하면 여인들이 이곳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여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이 자리에서 하지 말아야할 짓을 한 것입니다. 도덕적인 범죄가 아닌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즉, 그 시대가 그렇게 악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시대에 숨겨놓은 보석같은 신앙인 한나가 있었습니다. 인생에 빛이 보이지 않을 때, 앞뒤좌우가 캄캄할 때, 아무 힘없는 여인이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괴로워 죽을 것 같은데, 답답하고 원통하고 갈등되는 상황에서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 하나님 앞에 서는 자리로 갔습니다. 사무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엄마가 붙잡은 언약, 엄마의 기도로 큰 사무엘도 인생에 억울함과 좌절감이 온 순간에, 인생이 무너지고 다 잃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직접 위로 하셨습니다.
많은 선택이 있고, 많은 갈등이 있고, 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도 한나처럼, 사무엘처럼 마음이 괴로워 누구에게 도움청할 수도 없는 상황에 마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보다 더 막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바랍니다. 복음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막막한 우리 인생에 하나님은 유일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럴 때 복음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선택하라는 것이 참 추상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참 쉽습니다. 사람을 선택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돈을 선택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죄가 나를 괴롭게 할 때, 내 영적문제가 나를 힘들게 할 때, 내 가정의 문제, 내가 놓인 상황, 나의 질병이 나를 무능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할 때 감정대로, 분위기대로 가지 말고, 사람따라 돈 따라 권력따라 가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며 적당히 불법을 저지르지 말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하나님 앞에 서는 자리에 나오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보고 믿음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아주 작은 것입니다. 하지만 또 나의 그 작은 믿음의 선택을 통해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내 후대가 살게 될 것입니다. 나라도 살게 될 것입니다. 증인이 있습니다. 사무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버려진 사무엘은 사람들이 영웅 같은 사울을 왕으로 세울 때, 다윗 같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왕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장차 이스라엘 나라를 구하고 최고로 다스리는 왕을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세우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다는 것만큼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오시길 바랍니다. 다른 것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_갈라디아서1:10
가스펠 성도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선지자 되시고, 제사장 되시고,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영접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내 삶에 주인이 되어주시고, 내 가정과 가문의 주인이 되어 주세요. 하나님, 괴로워 죽을 것 같은 내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이제부터 나의 인생이 하나님을 믿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세요. 이제부터 나의 인생이 말씀 따라가는 인생이 되게 하여주세요. 이제부터 내 인생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인생이 되게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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