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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찬양예배

2017-05-05 금요찬양예배

2017-05-05 금요찬양예배 from gospelchurch2014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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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5일 가스펠교회 금요찬양예배

제 목 :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습니다

본 문 :

시편119:49-56

오승주 목사

. 하나님을 알아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_로마서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_로마서3:20’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 영화롭고 존귀한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 남편, 심지어 자녀도 내 삶을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 내 삶을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염려, 낙망, 근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의 영역입니다. 지나가 버릴 환경에 낙망하고 있다면 염려와 근심하고 있다면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 회개가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과 경배입니다. 경배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예배 대상이 누구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그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나요? 없습니다. 율법은 오로지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할 뿐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임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무엇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말씀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습니다.

 

1. 고난 중의 위로라_시편119: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_시편119:50’

 

우리는 자꾸 이 고난만 지나가면이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고난의 이유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난은 은혜 받을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위로받을 기회입니다. 고난 속에서 말씀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거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아니 들리지 않습니다. 증거가 무엇인가요? 말씀을 생명처럼 붙잡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를 살리셨다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그 체험을 하는 것이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뜻이지요.

 

2. 말씀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_시편119:51,55-56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_시편119:5’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_시편119:55-56’

 

예수님을 믿으면 병도 낫고 복도 받고 대학에도 척척 붙는다는 거라 생각합니다. 술 담배 끊고 사람이 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시지요? 그런 정도는 예수 안 믿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다는 뜻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일입니다.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전의 나는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주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사는 인생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전에 좋아하던 세상적인 것들, 육신적인 것들을 끊어야 하는 것부터가 고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고난이 아닐까요? 그러니 처음 믿다가 대부분 중도에 포기합니다. 내 인생도 벅찬데 가정문제, 부모문제, 자녀문제에 첩첩산중 같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그때 말씀이 들립니다.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것이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인생도, 가정도 살리는 길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을 떠나지 않고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어두운 밤이라도 주님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보물은 내게 들리는 말씀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3. 고통 받는 한 사람 때문에 부흥한다._느헤미야1:1,사무엘상1:2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_느헤미야1:1’

 

느헤미야의 아버지의 이름이 하가랴인데 하가랴의 뜻이 어두워지다, 방행하다와 여호와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여호와께서 어둡게 하시고, 방해하셨다는 뜻이지요. 성경의 모든 이름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에 느헤미야의 인생을 어둡게 하고 방해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어둠과 방해가 많았던 아버지 때문에 여호와께서 위로하셨다는 뜻의 느헤미야가 있지 않았을 까요? 우리에게도 나를 어둡게 하고 방해하며 고통을 주는 하가랴가 있습니다. 사실 없으면 너무 편할 것 같고, 행복할 것 같은데 신기하게 하가랴같은 부모, 배우자, 자녀가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닐 때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뻔 했습니다. 공부안하고 교회 간다고 말이지요. 아무것도 모르시는 아버지는 신학교에 간다고 할 때 학교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지나고 보니 하가랴 같은 아버지가 없었으면 그렇게 새벽마다, 금요일 밤마다 하나님을 찾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더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_사무엘상1:2’

 

한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분통이 나서 기도했는데 전혀 응답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기도하다가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이걸 원하시는 것이 아니구나! 정말 내 눈을 열어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는 것이구나! 그걸 깨닫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믿었습니다. 사실 원통함으로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 원통함을 통해 구원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보통 불신자와 같다면 응답이 무슨 소용입니까?

 

 

. 말씀으로 기도하고 계신가요?_시편119: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_시편119:49’

 

말씀이 들린다는 의미가 이해가 되면 좋겠는데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 몇 사람 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몇 사람 마저도 엄청난 소망입니다. 시대마다 몇 사람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오죽 답답하시면 느헤미야, 한나 같은 인물을 고통으로 몰고 가셔서 깨닫게 하셨을까요?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없는 이 시대라 생각합니다. 무엇으로 그것을 기준 삼을 수 있습니까? 말씀으로 기도하고 있는 가 입니다. 말씀은 구원의 말씀 곧 구속사를 위한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내가 죄인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날마다 내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앞에 가야 합니다. 그때 들립니다. 내 부모를 살리는 말씀, 내 자녀를 살리는 말씀이 들립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 아닐까요? 그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 우리는 날마다 다른 사람들의 흠만 보고 정죄하며 사는 바리새인 같은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위선으로 포장하고 살면서 내 교회, 내 가족들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제라도 제 안에 선한 것이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함을 깨닫길 원합니다. 주님께로 갑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길 원합니다. 나를 살리고, 내 교회와 가정을 살리는 말씀을 듣길 원합니다. 그 소망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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