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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09-11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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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11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부활신앙
본 문 : 고린도전서 15:35-58

 

 오승주 목사

 

- 오직 사람에게만 주시는 영광_고린도전서15:35-44

 

오늘 고린도전서 하반절은 지난주 죽은 사람의 부활, 우리가 구원받고 지옥에 안가고 천국에 가는 것이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부활에 관한 말씀을 나눴는데 이 부활에 대해서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초대교회는 이단들이 많았습니다. 무엇을 부정하는 이단들이 많았냐면, 부활을 부정하는 이단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_고린도전서15:35 

 

이렇게 물어봤을 때 그것에 대한 답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냥 믿어라, 그냥 믿으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부활에 관해서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부활 이러면 성경도 찾아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 부활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 살펴보지도 않고. 정확히 우리가 어떻게 부활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교회를 30년 다녔는데도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부활하지? 우리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데. 흙에 있는 입체, DNA들이 다시 합쳐져서 부활하는 건가? 잘 모르겠죠. 그럼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이 예수님 재림을 목격한 사람은 이 더러운 육체를 가지고 천국에 그대로 가는 건가? 지금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는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부활에 대한 개념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바울이 자세하게 부활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뭐라고 설명을 하고 있냐면 부활을 생각해봐라. 천지 만물의 이치를 보듯이 생각해봐라.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에 이 지구에 곳곳에 부활의 모습을 숨겨두지 아니하였느냐. 왜냐하면 우리가 부활을 이해하도록 곳곳에 부활을 숨겨두셨는데 대표적으로 뭘 비유로 들고 있죠? 씨앗을 봐라. 여러분 종자회사 가보셨어요? 씨앗 종자회사. 시골에서 전문적으로 농사짓는 분들이나 이게 수박씨인지, 호박씨인지, 복숭아씨인지, 배추 씨인지 구분하시지 아마 여러분 중에 종자봉투 가져다주면 똑같은 씨앗일 것입니다. 수박은 드셔 보셔서 알겠구나. 여러분 배추씨, 무씨 구분하실 수 있겠어요? 구분 못해요. 씨가 다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씨앗이 땅에 뿌려져 죽고 나면 안에서 새싹이 돋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됩니다. 생김새가 다 다릅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데 열매가 다 다릅니다. 배추가 되기도 하고 무가 되기도 하고 포도가 되기도 하고 사과가 되기도 하고 배가 되기도 하고 완전 다 다릅니다. 큰 나무가 되기도 하고, 작은 나무가 되기도 하고 신기하죠.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씨앗이 땅에 뿌려서 죽는 것이냐? 죽음이냐. 정말 죽는 것이 아니다. 그게 죽어야 새싹이 돋고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는데. 씨앗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식물이 된다. 싹이 트고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그 씨앗 안에 창조주 하나님이 전혀 다른 모양, 전혀 다른 맛, 전혀 다른 역할까지 다 심어 놓으셨습니다. 조그만 씨앗 안에 수박도 심어놓으셨고 사과, 무, 배추도 심어놓으셨다 이 말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하나님이 그 씨앗 안에 다 심어 놓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이 그 설명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번데기 아시죠? 제가 신학교 다니면서 4년을 부산에 살았습니다. 그때 번데기를 처음 먹어 보았습니다. 부산역이나, 남포동에 가면 중앙공원이라고 있습니다. 거기에 신학생들끼리 기타 하나 메고 찬양전도를 하러 갔는데 가면 번데기를 꼭 파셨습니다. 그러면 종이컵에 번데기를 주면서 1000원 이렇게 팔았는데. 징그럽잖아요. 실제 번데기가 징그럽습니다. 번데기를 실제로 보셨어요? 더러워요. 그걸 왜 먹는지 모르는데 맛있습니다. 그래서 먹게 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번데기 진짜 못생겼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뭐가 나오죠? 나비가 나옵니다. 아름다운 나비가 나옵니다. 신기하죠. 번데기인데 그 안에 부화가 되면 예쁜 각양 색을 가진 나비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씨앗 안에 그런 것들을 다 넣어 놓으셨습니다. 38절에 보니까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라 우리 육체 안에 그런 형체, 그러니까 씨앗 안에 각양각색의 열매를 넣으신 거처럼 사람 육체에게도 각양각색의 열매들을 다 넣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똑같이 생겼지만. 우리를 지금 사도바울은 씨앗으로 비유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사르크스라고 합니다. 단순한 ‘육체’를 사르크스라고 하는데 사실 성경에는 사르크스라는 단어보다 소마라는 ‘몸’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씁니다. 인격을 담고 마음을 담고 영혼을 담는 그릇. 그릇과 비슷한 느낌의 소마라는 단어를 훨씬 많이 씁니다. 몸입니다. 몸과 육체는 조금 다릅니다. 똑같지만 다릅니다. 아무튼 하나님이 우리 몸을 다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몸이 어떻게 되죠? 죽게 됩니다. 인간은 다 죽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요? 죄 때문이에요. 죄는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를 이야기합니다. 원래 인간은 연속성이 있었어요. 영원한 삶. 그런데 이 죄로 인해서 불연속의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연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연속이 무엇이냐면 죽음. 그런데 여러분 사실 죽음이라는 것이 끝나는 것인가요? The end가 아닙니다. 죽음은 변화, 현상이라는 ‘Death’라는 단어를 씁니다. 변화, 현상. 그래서 C.S.루이스는 이 죽음을 Transposition이라고 했습니다. 위치가 바뀌는 거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믿는 자는 위치가 바뀌어서 천국으로 입성하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고 나면 반드시 내세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부활입니다. 모든 이 땅에 식물들에게 천지만물 이치 속에 부활의 모습을 숨겨두셨지만 그 모습을 우리에게 숨겨두시고 보게 하시면서 우리가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뭐냐면 우리도 우리 안에 씨앗이 들어오면 우리 안에 생명을 하나님이 주셔서 그 모습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그 모습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의 달란트를 사용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될 존재인데 죄로 인해서 상실되어 버린 것입니다. 죽은 씨앗인 것입니다. 여러분 씨앗이 죽었어요. 죽은 씨앗을 땅에 뿌리고 물을 아무리 주어도 새싹이 나요? 안 나요? 죽었는데 안 납니다. 생명이 없는 씨앗은 아무리 심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것 같이 보여도 겉은 번데기처럼 후줄근해도 그래도 살아있는 씨앗은 심어놓으면 물을 받고 흙 속에 있는 영양분을 먹어서 새싹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부활을 주셨는데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이 몸을 가지고 이 소마를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 이 몸은 잘 들으셔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 다시 말해서 장차 가야 될 천국.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요한계시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우리 몸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오늘 사도바울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썩은 몸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몸을 썩은 몸, 죽은 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죄를 물든 몸. 그래서 천국에 못 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부활이 뭐냐? 예수 믿었으니까 내 영혼만 천국에 가는 거냐? 그럼 내 육체는? 내 몸은? 그럼 여러분 요한계시록 우리 육체까지도 완전하게 부활한다는 지난주 설교가 틀린 설교잖아요. 오늘 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살 수 있는 또 다른 몸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걸 뭐라고 하나요? 그래서 부활은 그 몸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42절부터 볼까요.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_고린도전서15:35-44

 

지금 심고 살아나고 심고 살아나고를 계속 반복하고 있죠. 그러니까 여러분 부활은 어떤 거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육체가 부활한다고 했을 때 우리 육체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살 수 있는 새 육체를 말합니다. 그러면 죽은 사람은 그렇다 치고 살아서 재림주를 만난 사람은 어떻게 되죠? 순식간에 변화되어집니다. 그게 무엇으로 증명하고 있나요? 예수님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갇히셨지만 그가 부활하셨습니다.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그 육체, 시신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에게 보이시려고 나타나셨는데 그게 변화된 몸입니다. 그 몸이 시공간을 초월했습니다. 문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새로운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게 부활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그 몸을 기대하는 겁니다. 우리가 천상에서 하나님 보좌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몸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그게 부활입니다. 그러면서 45절부터 보면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첫 사람, 아담, 마지막 아담_고린도전서15:45-49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창세기 2장 7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그래요?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아담은 신령한 사람이 아니죠.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누가 신령한 사람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아담.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_고린도전서15:45-49

 

저와 여러분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흙에 속한 자, 육체, 육신을 가진 그래서 불연속한 죄의 몸을 가진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로 살고 있지만 하늘에 속한 자,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의 형상,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죽으면 우리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흙에 속한 자들, 흙에 속한 자의 형상 육신을 말합니다. 우리 육신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이 화장을 해서 뿌리든 다른 것을 해서 뿌리든 다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이 살아나야. 이 성령은 ‘프뉴마’라고 합니다. 생명의 영을 뜻합니다. 성령은 프뉴마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프뉴마 자체가 뜻이 무엇이냐면 생명을 살아나게 하는 영이라고 해서 프뉴마입니다. 그러니까 이 프뉴마로 새롭게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도 부활하게 된다고 합니다. 뭐하면요?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은 나중에 부활하는데 예수님 재림하실 때 새로운 몸으로 완전히 부활합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시간적으로 첫 사람 아담이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2000년 전에 오셔서 그 몸의 거룩한 씨앗을 심겨주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거룩한 씨앗이 무엇일까요? 생명입니다. 우리를 부활에 동참하게 하는 생명. 그 생명을 우리 안에 주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냐? 우리에게 부활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구원받으면 완전하게 부활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 이치 속에 씨앗이나 모든 동식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부활을 보여주시듯이 실제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죄를 이기시고.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우리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소망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 그래서 신학적으로 제 2의 창조 사건. 그런데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불편하죠? 왜 불편하죠? 우리 육신이 아직 흙에 속해있기 때문에. 우리 육신이 죄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불편합니다. 그래서 처음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면 불편해 죽겠어요. 그런데 점차 생명이 강해지고 생명이 싹을 트고 살아나면 어떻게 되죠? 땅에 살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함께하고자 예배를 드리고 소망을 가지고 믿음이 생겨나고 이제는 죄가 불편하고 세상이 불편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점차 자유의 몸이 됩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왜요?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으니까요. 여러분 이것을 진짜 믿는 다면 죽음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진짜 확인한다면 우리는 살면서 살면서 땅의 짐, 세상이 주는 짐을 더 벗어버리고 더 자유해져야 합니다. 천로역정에 나오는 그 주인공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삽니다. 이상하게 교회를 다니면 다닐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짐을 더 메고, 메고 무거워 죽겠는 겁니다. 죽지를 못합니다. 왜 그렇죠? 신앙생활이 잘못 되어 있으니까 그렇죠. 부활신앙이 잘못되어 있으니까요. 세상의 것, 육체가 바라보고 육체가 사모하는 것을 늘 사모하고 사니까.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씨앗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거룩한 씨앗’이라고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예수님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우린 점점 감사하고 기쁘고 즐겁고 자유하게 됩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50절에 보니까 뭐라고 기록되어 있나요?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_고린도전서15:50-58, 요한복음1:12-14, 3:3-21, 5:19-29, 6:63, 8:44,47,51, 12:33-50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거 기억하고 계셔야 합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육체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육체는. 그래서 보세요.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때는 우리 육체도 변화되고 새로운 육체로 천국에 살 수 있는 육체로 새로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51절 보세요.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사도 바울이 쓴 모든 성경이 우리에게는 어려워서 다 비밀 같은데. 그런데 사도바울이 지금 비밀을 말한다고 합니다. 시크릿.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지금 이게 부활신앙입니다. 마지막 나팔은 재림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를 뜻합니다. 나팔을 뿌우 불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듣는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나팔이 불리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여기서 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짜 여기는 잘 쓴 번역 같습니다. 이 ‘홀연히’가 어디 쓰이죠? 땅에 씨앗을 심어 놓고. 학생들은 컵에 씨앗심고 과학, 생물 시간에 많이 하잖아요. 시골에서 농사 지어놓은 분들은 압니다. 봄에 씨앗을 밭에 심어요. 그렇게 봄비가 내리고 그래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계속 흙입니다. 한 달이 지나도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가 내리고 아침에 가봤더니 새싹이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뭐라고 하나요? 홀연히. 갑자기. 비 오고 났더니 파란 게 새싹이 났네. 죽은 씨앗은 나지 않습니다. 동물들이 그 씨앗을 가져가면 거기는 안 나지만 살아있는 씨앗은. 농부들은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씨앗을 심어놓고 그 다음날 가서 왜 싹이 안 나냐고 파헤치고 확인하고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홀연히, 갑자기. 새싹이 확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집에 가셔서 씨앗 종자 사서 심고 물 한번 주어보세요. 나중에 화분에 새싹이 확 납니다. 그걸 홀연히. 그러니까 마지막 나팔 불 때 썩을 우리 몸이 죄와 저주로 물든 몸이 혈과 육이 어떻게 되냐? 순식간에 변화되어집니다. 그러면서 52절에.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죽은 자들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육체가 살아나고 우리도. 우리는 뭐에요? 죽지 아니하는 우리가 재림을 직접 보는 사람들은 변화되리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 때에 예수님이 오실 줄 알고 우리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53절.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이 말씀은 호세아 13장 14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왜 율법이라는 좋은 단어를 썼죠? 우리가 우리 육체를 거룩하게 하려고 우리 육체를 죄 안 짓게 하려고 얼마나 많이 율법으로 우리를 누릅니까?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거 잘 들어보셔야 합니다. 어떤 연세 드신 장로님 한 분을 뵈었는데 장로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내가 평생 죄 한 번 안 지었어. 나는 깨끗하고 반듯하게 살았어. 존경해 드릴만한 표현이죠. 그런데 뭐라고 표현하냐면 내가 죄 한 번 안 짓고 얼마나 반듯하게 살았는지 하나님은 아실 거야. 결국 자기 교만, 자랑입니다. 거기에 무엇이 없냐면 대화를 하는데 예수님 십자가가 없습니다. 예수님 사랑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삶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닮아가려고 추구하는 삶과 장로님의 고백이 결이 다릅니다. 그런 사람은 뭐라고 고백하죠? 예수님을 사랑하고 평생을 거룩하려고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셔서. 주님이 아니었으면 제가 이렇게 살 수 없었을 거예요. 고백의 결이 다릅니다. 똑같은 말 같지만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죄의 권능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예수님 없이 거룩한 씨앗이 우리에게 심겨지지 않고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고 우리가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엄청 무서운 것입니다. 종말론적 왕국이 천국인데 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는 것 여러분 우리의 혈과 육으로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육신을 신뢰한다는 것은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 나는 강해, 나는 힘이 세, 나는 대단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대다수가 세상에 얽매여서 삽니다. 왜냐하면 부활,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것에 집착하고 삽니다. 그래서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그거 말고는 두려움을 이길 길이 없으니까 세상의 것이 말고는 걱정, 근심을 떨쳐낼 것이 없으니까 거기에 집착하고 얽매여 삽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살면 살수록 어깨가 더 무거워집니다. 짐을 더 많이 집니다. 여러분 천로역정 읽어보셨죠? 등에 다 짐을 집니다. 나중에 어떻게 하죠? 짐을 다 벗어버립니다. 천국 문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우리 육체로는 천국 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육체, 새 피조물. 어느날 홀연히 변화되리니. 그런데 그 변화가 오늘 되면 좋겠는데 지금 되면 좋겠는데 언제요? 예수님 재림하실 때. 그럼 지금은요? 우리 안에 뭐가 있어요? 씨앗이 있는 것입니다. 이 씨앗이 땅에 심겨져서 비바람도 견디고 새들이 와서 쪼아가는 것도 견디고 어느날 새싹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것 같지만 똑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생명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되냐? 요한복음 1장 14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_요한복음1:14

 

성경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_요한복음3:5 

 

왜 물이 들어가죠? 교회의 권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라.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13절부터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5절에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5장 24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지금이라. 현재시제죠. 지금이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8절에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_요한복음5:19-29

 

여기서 선과 악은 뭐에요? 우리가 휴지 줍고 뭐 이런 게 선이고 나쁜 짓 하는 것이 악인가요? 아니죠. 성경에서 말하는 선과 악은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선과 악을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_요한복음6:63

 

요한복음 8장 44절에. 이걸 우리에게 속입니다. 누가 속이죠? 너희 육체가 어디서 왔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우리 육체가, 지금 죄 짓고 있는 우리 육체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우리 육신이 어디에서 왔느냐?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_요한복음8:44

 

그래서 우리 육체가 거짓말하고 살인하고 우리 육체가 그렇게 살잖아요.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계속 보세요.

요한복음 8장 47절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_요한복음8:47

 

우리 육체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 속에 우리 영혼과 우리 생각이 우리 마음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을 확인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51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_요한복음8:51

 

요한복음 12장 44절.

 

44.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_요한복음12:44-47 

 

말을 들었는데 지키지 아니한 것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하시냐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_요한복음12:47-48 

 

여러분 이것은 정말 잘 해석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냐?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우리의 몸이 변화되어서 천국에 입성할 수 있는 완전한 부활에 동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함께하고 그 분을 닮아야 합니다. 그 분의 씨앗이 우리 안에 심겨졌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지금 요한복음에 뭐라고 말씀하셨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고 너희가 나를 믿고 나를 따르고 나를 닮아서 이 천국에 심판을 받지 않고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입성하는 방법은 무엇이냐고 계속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뭐죠? “내 말을 듣고 내 음성을 듣는 자” 지금 계속 그 표현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진짜 잘 들으셔야 합니다.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무엇으로 오셨어요?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성경입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펴서 읽는다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여러분이 나 오늘 예수님 너무 의지하고 싶어, 나 예수님 진짜 바라보고 싶어 그러면 성경을 펴야 합니다. 왜냐? 예수님께서 분명히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지키는 자, 이 음성을 듣고자하는 자, 이 음성을 듣는 자. 심판을 받지 않고 죽음을 면하리라 이렇게 표현하고 계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는 거, 기도하는 거,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복음을 전하는 것 다 뭐에요? 예수님을 정확하게 올바르게 더욱 알기 위해서죠. 여러분 신앙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어떤 분이 상담한다고 저희 교회로 오셨습니다. 신앙생활을 27년 하셨다고 합니다. 신앙 생활한 횟수가 거의 저랑 비슷합니다. 저한테 주로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저희 교회 성가 아니니까. 굳이 개척교회 목사를 왜 상담하러 왔을까.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예수님 잘 믿었다고 합니다. 일단 예수님 잘 믿었다고 하는 분들은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제 앞에까지 와서. 왜냐하면 사람은 처음 만나면 늘 포장하면서 스타트를 대화를 합니다. 처음부터 목사님 저 문제가 있어서요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하시는 분 한 번도 없어요. 다 처음에 와서는 제가 27년 신앙생활 했습니다. 안 물어봤거든요? 신앙생활 몇 년 했냐고. 그럼 복음도 잘 아시고 신앙생활 잘 하셨겠네요. 그럼요. 제가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면 저한테 오신 이유가 뭐에요? 물어봤습니다. 시험 들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은 보통 사람에게 들잖아요. 가스펠교회 오면 시험들 일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곳곳에 지뢰밭처럼 넘쳐납니다. 사람이 모여 있기 때문에. 이 분도 시험을 엄청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진짜 교회 가기 싫다고 합니다. 신앙생활 그만 할까 보다. 저한테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제가 “그만하세요”라고 말이 뛰어 나오는 것을 참았습니다. 처음 보니까. 저한테 왔으니까 신앙생활을 그만하려는 마음은 아니시잖아요. 제가 물어봤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누구라고 어떻게 믿으셨어요? 예수님은 그리스도고 레파토리 뻔하잖아요. 예수님이 누군지 다 알죠. 그런데 왜 시험에서 못 벗어나세요? 제가 그랬습니다. 아, 사람이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면서. 저는 이런 이야기를 20-30분씩 들으면 힘들잖아요. 다 듣고. 제가 볼 때 집사님, 집사님은 예수님이 아직 모르시는 것 같아요.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고, 예수님과 동행해본 적도 없고 그리고 부활이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하고 계시는 거 같아요. 예수님을 진짜 만나면 시험들어도 금방 회복할 수 있어요, 예수님을 진짜 만나고 부활을 진짜 믿는다면 함부로 교회 가지 않고 나 신앙생활 그만 할까 이런 말 무서워서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늘 확인하는 거 있잖아요. 그런데 집사님 살면서 성경은 몇 독이나 하셨어요. 이렇게 물어보았죠. 집사님 하시는 말은 주일날 설교 열심히 듣고, 설교 본문 읽어봤지. 아, 예. 그럼 성경은 통으로 읽어보지는 않으셨네요? 그거 살면서 바쁜데. 뻔하죠. 27년을 교회를 다니셨는데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신 적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하려고 비유를 드나요? 제 설교 듣고 계실 거예요. 정신차리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누군지 모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듣지 않은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하는데 부활이 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사야서에 너희가 내 성전 뜰만 밟고 가는 구나. 그 사람들이 구원 받았어요? 성전 뜰만 밝고 가는 사람들이. 제사 지내는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고기 덩어리 얹어두고 가서 뒤에 가서는 바알, 아세라 목상을 섬기고, 뒤에 가서는 음란한 신을 섬기고 풍요의 신을 섬기고 재물의 신을 섬기는데 구원받았을까요? 구원 못 받았어요. 무슨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내가 진짜 제사를 원하는 거 같냐? 나를 인애, 사랑하는 것을 원한다. 나를 경외하는 것을 원한다. 그 말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진짜 만나는 신앙. 사도 바울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 부활신앙을 가지고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인생을 드리겠다. 이 고백이 어떻게 나오죠? 강요해서 나오나요? 야, 너 교회 헌금 다해. 너 남은 인생 가스펠교회를 위해서 살아. 그거는 사이비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진짜 만나고 나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경험하고 나면 내 인생을 다 드려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고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오늘날에 자화상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목사님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뭐예요? 다들 동행한다고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함께 하시겠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그런데 어떻게 죄를 반복적으로 계속 지을 수 있죠?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려고 마음  먹고 우리 안에 씨앗이 심겨졌다면 죄가 불편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연약하니까 죄를 짓고 넘어질 수 있지만 점차 갭이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죄가 불편한 것입니다. 이제는 육신의 생각이 불편한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의 것이 불편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시간이 좋은 것입니다. 예배드리고 찬송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신앙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성경말씀으로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신학자들이 목숨을 잃었고요. 수많은 교회 회의에서 이 말씀을 정경으로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왜? 엄청난 사이비, 이단 성경을 없애려는 악한 영들의 역사와 공격들이 역사 속에 계속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 때마다 믿음의 사람들과 교회들을 통해서 이 말씀을 지켰고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 손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냐? 성경 말씀으로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부활이 어디에 있죠? 우리가 나중에 어떻게 부활하죠? 이 음성을 듣는자, 지키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 그 사람이 나중에 홀연히 변화되는 부활에 동참할 수 있다고 분명히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시간에도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오승주 목사 설교다 이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 논리적이니까요. 그런데 진짜 말씀이 우리 안에 들려서 죄가 회개가 되고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야지. 이런 마음이 드는 성령의 음성을 여러분이 주일날 예배시간에 듣는다면 그 음성이 들린다면 여러분 안에 씨앗이 심겨진 것입니다. 그걸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게 없다면 여러분 진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내가 아직 천국 백성이 아니고 부활 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군요. 여러분 진짜 간절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지옥에 가고 천국에 가는 것으로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를 받았냐 안 받았냐로, 새가족 등록하고 그런 것으로 천국가고 지옥 가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우리가 격려하는 것이고 길을 만들어 놓은 거지.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씨앗이 심겨져 있어야 되는 건데. 오늘 예수님이  요한복음에 그것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나의 음성을 듣는 자”. 도둑질 하는 사람은 도둑의 음성, 강도의 음성을 듣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어린 양처럼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가까이 하셔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도 우리 교회는 세 장씩만 읽으라 했으니까 시간이 남아도는데 3장만 읽고 덮지 마시고, 또 반대로 시간이 없고 너무 분주한 삶을 사는데 3장을 꼭 읽어야 한다고 설거지도 안하고 일도 안하고 그러지 마시고. 한 절을 읽어도 내가 예수님을 만나는 마음으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죠? 하루 3장은 이 정도 읽으면 1-2년에 일독씩은 할 수 있으니까 우리가 기준을 정해놓은 거지. 그게 구원의 기준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저와 여러분이 진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바라고 기도해야 할까? 그건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정말 원하고 바라고 기도해야하는 것 부활하신 주님이 말씀으로 우리 앞에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냐? 많은 분들이 부활을 믿는다고, 천국도 믿는다고 하고, 지옥 안 갈 줄 확신한다고 하면서 말씀을 읽지 않고 말씀은 지키지 않고 말씀은 행하지 않습니다. 참 아이러니 합니다. 부활 신앙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이고, 그를 따르는 것이며 예수님을 따르다 보면 그와 닮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나중에 주님과 함께 부활에 동참하는 것인데 그 방법이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설교입니다. 말씀으로 우리가 거듭나고 변화되어 가는 것. 그래서 어느날 홀연히 주님이 나팔 불 때 우리의 육체까지도 완전히 부활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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