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 18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 |
제 목 : |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결고리, 은혜를 나누다 |
본 문 : | 고린도전서 16:1-24 |
오승주 목사
-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_고린도전서16:1-4
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_고린도전서16:1-4
오늘은 고린도전서 마지막 설교입니다. 고린도전서, 후서가 시간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세히 마무리를 하고 고린도후서의 내용들을 잘 살펴봐야 될 거 같습니다. 오늘 1-2절에 보면 연보, 헌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 헌금을 성도를 위한 헌금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고 갈라디아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말했는데 갈라디아교회에 뭐라고 명했냐면 바울이 갈 때 특별헌금처럼 하지 말고 매달 첫째 주에 꾸준히 수입에 따라 조금씩 모아두어서 그것을 나중에 사용할 수 있도록. 다른 이방 교회라든지 또 복음사역 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저축해둬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울은 고린도교회 헌금, 연보를 특별한 곳에 쓰겠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어디냐면 예루살렘 교회에 쓰겠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을 보내서 예루살렘 교회에 편지와 함께 너희 헌금을 보내겠다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표현할 때 3절에 보니까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_고린도전서16:3
무슨 헌금을 은혜라고 표현을 했을까? 너희의 은혜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상황을 이해해야합니다. 당시 유대인의 수도였던 예루살렘. 예루살렘 안에 예루살렘 교회, 우리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는 교회가 있지만 전반적인 유대인들의 지역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 지역은 극심한 가뭄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말이 가뭄이지 그 당시의 가문은 역사자료를 찾아보니까 끔찍했던 것 같습니다. 진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거기에 전염병이라든지. 그런 시대이기도 하지만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고. 그러니까 당연히 예루살렘 교회도 그 지역에 사는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교회도 어렵겠죠. 교회도 굉장히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어려우니까 고린도교회가 헌금을 매달 모아서 사람을 보내어 혹시 내가 갈 때 가져다가 돕자, 무조건적으로 돕자 이런 의미는 아닙니다. 바울이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과의 관계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와만 관계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과 바울과의 관계는 완전 틀어졌습니다. 심지어 유대조직은 바울을 죽이기 위해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계속 쫓아다녔습니다. 음모, 권모술수 이런 것으로 바울에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고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를 하는 것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런 유대인들과는 완전 적대관계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사는 예루살렘 지역의 예루살렘 교회, 하나님께서 처음 시작한 교회입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이런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습니다. 왜 안 좋았죠? 바울이 이방인 사역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예루살렘 교회는 완전히 유대인들의 사상, 유대인 안에게 갇혀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정통성을 엄청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에는 누가 있죠? 열두 사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직속제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 권세 이런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엄청났습니다. 열두 사도가 그 교회에 있었으니까. 바울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다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그 보고가 너무 싫은 것입니다. 왜 싫냐? 이방인(헬라)의 교회를 자꾸 세워가고 이방인의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고 많은 제자들을 세우니까 이러니까 예루살렘 교회는 그게 탐탁치 않았습니다. 심지어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했던, 가장 예수님께 사랑받았던 베드로가 어땠죠? 고넬료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고넬료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환상을 직접 보여주시고 직접 명령하셔서 베드로가 마지못해서 두려운 마음에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집이 다 회개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것을 베드로가 기뻐했냐?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로 관습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총회에 가서 보고하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입니다. 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냐? 왜 이방인의 집에 가서 세례를 베풀었냐? 베드로가 내가 했냐? 하나님이 하라 그러셨다. 환상 중에 그렇게 하셨다. 너 같으면 그렇게 안 하겠냐? 이런 식인 것입니다. 베드로도 그것을 경험했지만 더 이상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거기서 역사 속에서 끝납니다. 그 정도로 예루살렘 교회 논쟁이 일어날 정도로 정통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선민사상, 그들의 폐쇄적인 문화로 인해서. 여러분 우리가 종종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런 식으로 놓칠 때가 많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신앙의 대상을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방법은 성경입니다. 그래서 교리가 중요한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소요리문답에서 그런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스펠교회가 30년 정도 뒤에 탄탄한 교회가 됐다고 생각해보세요. 제가 30년 목회를 하고 났더니 우리 교회가 제법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됐습니다. 그러면 이 교회에서 오목사가 법이고 그렇습니까? 그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 인도하심을 그런 식으로 놓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 실수, 그런 오류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경을 살피고 역사를 살펴서 올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항상. 여러분 성경만 살피면 됩니까? 역사도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될 사람들은 항상 역사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오늘 날의 우리를 돌아볼 수 없습니다. 객관화 할 수 없습니다. 전통, 관습, 말이 전통이고 관습이지 사실 고집이고 아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베드로에게 또 사도 바울까지 세워서 이방인들에게 문을 막 열어 가시는데 이방인에게 교회를 세워 가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데.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방 교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는데 그것을 보면서도 계속해서 그것을 반대하고 논쟁삼고 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다른 교단의 논쟁이 뭔지 아세요? 여자목사 안수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여성 사역자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반대를 주장하는 분들이 붙잡는 성경입니다. 고린도교회 설교했잖아요. 입도 벌리지 말고. 그것을 인용해서 여자들에게 목사를 안 준다는 것입니다. 판결이 어떻게 날지 모르지만 끝까지 고집 피우고 아집 피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옛날식으로 해야죠. 그것만 딱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여자들 시키면서. 물론 안수에 관한 것은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해석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문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섬기고 어떻게 교회들이 건강하게 주의 복음을 전하느냐가 중요한데 논점을 흐리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지금 이 상황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의 사역을 어렵게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의 사역을 알게 모르게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재정적으로 지원도 해주지 않았고. 그 당시에 재정적인 후원이 없으면 바울이 순회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몇 백키로씩 걸어가고 가는 데마다 숙박을 해야 되고 음식을 먹어야 되고 또 혼자 다닙니까? 그러니까 많은 경제적인 후원이 필요했는데 그게 끊겼습니다. 파송했으니까 서포트를 해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 그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는 교회마다, 갈라디아 교회든지, 에베소 교회든지, 안디옥 교회든지 그런 교회들에게 자기를 후원해달라고 늘 요청하는 문구가 서신서에 있습니다. 그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려고 하는데 후원을 먼저 해달라. 후원이 없으면 너희에게 갈 수가 없다. 오늘 고린도교회에도 똑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나 겨울에 너희에게 갈 건데 가서 3개월 정도 머물러 있을 건데 사람을 보내서 나에게 후원금을 좀 보내줘.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런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고 이러는 게 알게 모르게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작은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이기도 했지만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죠? 그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이방교회들에게 헌금을 모아달라고 요구한 것은 바울의 큰 뜻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너희의 은혜라고 표현을 합니다. 말 그대로 은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은혜라고 표현을 합니다. 왜 그렇죠? 고린도교회가 정통성을 부여받길 원했습니다.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안디옥교회. 바울은 수많은 이방지역에 세워진 교회가 정통성을 부여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 교회를 연결하려고 바울은 수도 없는 노력을 했습니다. 기회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그 지역이 어려워 진 것을 기회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갈라디아 교회라든지 오늘 고린도교회에 헌금을 매우 강조해서 이야기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야하는 헌금을 한꺼번에 모으면 힘드니까 매달 모아서 가지고 있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이게 중요하냐? 저희가 네팔과 인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려고 합니다. 지금 네팔에 교회는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이들 의식주만 조금 해결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센터 하나당 30-40만원 밖에 후원이 가지 않습니다. 학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면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겠죠. 그래도 건물을 짓는 것이니까. 그리고 학교를 세운다는 말은 학교 선생님도 세워야 되고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있겠죠.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거기에 우리의 경제도 들어가야 되고 우리의 재능, 어떤 우리의 시간, 우리의 정성 이런 것들이 다 들어가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보고 은혜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은혜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미국에 있는 성도들이 생전 들어보지도 못하고 가보지도 않았던 조선 땅을 위해서 후원금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이화학당을 세우고 제중원을 세우고 그런 병원들이 세브란스 병원이 되고 이화여대가 되고 연세대학교다 되고 우리나라 교육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세워질 때도 전부 그렇게 세워졌습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의 헌신과 수고가 그렇게 연결고리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라든지 선진국들의 교회가 다 무너지고 있는데 저는 역선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오늘 바울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야겠다 이 표현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말은 예루살렘 교회가 확실히 깨닫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게 뭐죠? 왜 성령의 역사하심과 구원의 역사하심이 예루살렘 교회에는 더 이상 없을까? 이방교회는 날로 성장하고 날로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돌아와 회개하고 섬기는데, 뜨겁게 예배하는데 왜 우리는 사라지고 있을까? 그래서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에. 또 하나 이야기하자면 이 은혜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오만했습니다. 사도들이 있었으니까. 초기기독교를 공부하다보면 사도성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권세입니다. 또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거기서 끝난 것입니다. 초대 교황이 베드로 아닙니까. 그 정도로 엄청난 권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은혜, 하나님의 은혜. 오늘 바울은 5절에서 12절에 보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 고린도교회를 위한 계획들_고린도전서16:5-12, 고린도후서2:12, 골로새서4:3
5.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_고린도전서16:5-12
내가 마게도냐를 거쳐서 너희에게 가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희에게 가면서 그냥 들렸다 가는 것이 아니라 좀 오래 머물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면. 그리고 겨울이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겨울에 여행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로 바울이 겨울에는 한 곳에서 3-4개월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생각대로 됐나요?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늦은 봄에 고린도교회에 방문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늘 고린도에 가고자 애썼습니다. 그렇게 애써야 문이 열리면 알 수 있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늘 고린도교회에 가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계획이 수정되어지고 보완되어지고 또 틀어지기도 했지만 늘 고린도교회를 갈 스케줄을 짜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냥 대충 준비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한 지역에서 한 지역으로 옮겨가려면 많은 예산이 필요했고 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어디에서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죠? 에베소 교회에서 쓰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3년이나 머물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교회에는 핍박이 많았습니다. 바울이 오늘 그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는 핍박이 많아서. 그래서 아직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3년이나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개척할 때도 1년 6개월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1년 6개월을 머물고 다시 고린도교회를 재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두 번 세 번 이렇게 잘 가지 않았습니다. 3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지역을 가서 3개월을 더 머물러 있게 됩니다. 이 에베소에 3년간 머물면서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왜 썼죠? 고린도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오늘 결론에 말하겠지만 스데바나라는 사람이 고린도교회의 문제점들 어려움들을 가지고 편지를 써서 찾아온 것입니다. 에베소 지역까지. 그래서 그것에 대한 답변으로 고린도전서를 쓴 것입니다. 헬라 지역의 수도였던 고린도라는 도시는 매우 중요한 도시입니다. 헬라문화가 완전히 꽃피던 도시이기도 하고 상징적으로 로마를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하는 도시입니다. 실제로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와서 뭘 썼죠? 로마서를 썼습니다. 로마 갈 준비를 여기서 다 한 것입니다. 바울은 항상 어디를 가기 전에 편지를 먼저 써서 보내고 내가 너희에게 갈 거다 라고 예고하고 그리고 모든 준비를 다 하고 갑니다.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와서 사역하면서 로마서를 쓰고 로마에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는 것이 학계 정설이고 그게 사실이죠. 그러니까 고린도라는 지역은 정치적으로 지리학적으로 문화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곳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그냥 대충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의 역할을 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 고린도교회가 상황이 좋지는 않죠? 분열되어 있고 상처 받아서 떠난 사람도 있고. 아시다시피 분위기는 좋지 않습니다. 그런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그냥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 보니까 누구를 보냈죠? 디모데를 보낸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당시 디모데는 바울의 수제자이고 나중에는 안디옥 교회의 큰 목사가 됩니다. 유명한 목사가 됩니다. 사도를 제외하고 아주 훌륭한 목회자는 디모데입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그런 사역을 하기 전에 어릴 때죠. 요즘으로 말하면 전도사? 이제 목사 안수를 받은 초년생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런 디모데를 보내면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잘 모셔야 된다, 너희가 업신여기지 말아라, 내 편지를 가지고 가니까 잘 모셔야 된다. 디모데가 고린도교회 가서 사역을 아주 잘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사역을 못하는 것이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사역을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튼 디모데는 사역을 잘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가면 될 텐데 가기 전에 디모데를 먼저 보냅니다. 그 말은 고린도교회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아볼로에게도 고린도교회에 가기를 권면을 했습니다. 12절에 이야기를 합니다.
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아볼로는 고린도에 가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권면했다고 합니다. 네가 가라, 왜요? 이유는 뭐죠? 고린도에 아볼로파가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에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가 있었기 때문에 그거 우리가 풀어주자, 교회는 하나인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한 교회인데 파가 형성되어 있으니까 아볼로 너도 좀 가서 해결 좀 해라. 지금 이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바울이 우리 신앙생활에 수많은 문제들, 분란이 일어났을 때 그냥 설교만 하고 편지만 전달한 것이 아니라 디모데를 보냈고 아볼로를 보내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보내고 또 해결책, 고린도전서를 써서 이렇게 보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교회는 그런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곳입니다. 아 목사님, 문제 싫으니까 나 교회 다니기 싫어요. 저는 유튜브로 좋은 목사님 설교만 듣고 살래요. 구원 못 받습니다. 천국 못 갑니다. 그건 신앙이 아닙니다. 그걸 예수 믿는다고 하고 많이 아는 것처럼 하는데 그것은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교회를 허락하셨고 공동체를 허락하셨는지 그것은 가정과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 나는 밥 하기 싫고 애 가르치기 싫고 망치질 하기 싫으니까 혼자 살아야지. 이거와 똑같은 거죠. 그러면 사람이 발전이 있나요? 거기에 깨달음이 있고 은혜가 있나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성숙하게 되고 우리가 회복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봉사하고 섬기면서. 그것을 복합적으로 사도 바울은 은혜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런 문제가 싫어서 나 신앙생활 안 할래, 나 인간관계 싫으니까 주일에 교회 안 갈래. 그러면 영원히 예수님 못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들을 사도 바울은 굉장한 노력을 했습니다. 여러분 공동체가 있어서 우리 연약함이 들어납니다. 연약함이 들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섬길 수 있고 양육할 수 있고 또 내가 섬김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영과 육을 성장시켜주는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또 이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의 연약한 곳을 돌보고 섬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즘은 신학이 다 사변화가 되었습니다. 제가 뭐 어제도 한 분이 교회 오셨는데 저보다 메시지를 더 잘 압니다. 얼마나 설교를 많이 들으셨는지. 그런데 시험이 드셨습니다. 왜냐? 교회를 경험해보지 않았습니다. 공동체를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목사님 설교만 듣고 사는 것입니다. 집에서. 그런데 왜 시험이 들까요? 우리가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국가대표가 되려면 태릉선수촌에 입촌해야 합니다. 같이 부대껴 안겨서 살도 빼고 거기에서 코치가 가르쳐준대로 운동 스케줄도 소화해야 되고 해야 국가대표가 되고 명예로운 대회에 출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싫은 사람은 절대 국가대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대표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은 그런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퇴촌시킵니다. 너는 자격 없어. 그 훈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뭐든지 똑같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살고 부부가 되겠다, 그러면 희생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번에 스토커 사건 끔찍하더라고요. 저는 그 사람 사형 내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그러니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시죠? 공무원이 됐는데 같은 직장 동료가 3년 동안 스토커 짓을 했습니다. 보낸 편지와 이메일이 수천 통입니다. 그게 괴로워서 신고를 했겠죠? 이제 법적으로 판결을 내리는 전날 죽였습니다. 그 여자가 무슨 잘못이 있나요? 어떤 언론은 그 여자도 잘못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나라가 그렇게 좌경화가 된 것입니다. 이념과 사상에 문제가 있습니다. 싫다고 말하는게 정상 아닌가요? 결국 죽었습니다. 부모를 생각해보세요. 그 여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직장에 갔는데 3년을 스토킹 당하고 끝내는 목숨을 잃었는데 몇 년 구형할지 모르겠지만. 10년? 저는 법이 다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거는 모범적으로 사형을 하든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짓을 할 생각을 안 하죠. 여러분 딸들 마음 놓고 직장 보내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문제들, 어려움들 이런 것들 해결하고 가야 합니다. 그냥 덮고, 쉬쉬하고 가면 안 돼요. 신앙도 똑같아요. 신앙도 그렇게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영과 육을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되고 변화되기를 원하시지. 그냥 숨어서 너 상처 받을까봐 내가 말도 못하고 이게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권면, 책망, 양육 이런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디모데는 사실 아볼로나 바울이나 베드로와 같은 위대한 사역자는 아닙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장로님 보내고 권사님 보내고 이런 느낌입니다. 그가 고린도교회에 바울의 서신서를 들고 가면서 말씀으로 교회를 섬길 것을 그리고 말씀으로 교회를 섬길 것이기 때문에 교회는 또 디모데를 잘 섬길 것을 부탁을 합니다. 그를 업신여기지 말라 합니다. 고린도교회 수준을 알겠죠? 그런 사람이 가면 업신여길 정도로 아볼로파, 바울파, 베드로파가 형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볼로 아니면 베드로 아니면 바울 아니면 말씀 듣지 않겠다 이런 수준인 것입니다. 수준이 굉장히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디모데가 갔는데 아시다시피 디모데는 진짜 좋은 목회자가 됩니다. 아마 목회자로는 바울을 넘어서고 아볼로를 넘어서고 베드로를 넘어서는. 저는 한 지역의 목회자로는 바울보다 디모데를 높게 평가합니다. 바울은 순회사역자였고 메신저였지 목회자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디모데는 정말 존경 받는 목회자가 됩니다. 훌륭한 목회자가 됩니다. 아마 이런 고린도교회를 섬기면서 그렇게 훈련을 다 받았겟죠? 그 어려운 고린도교회에 가서. 얼마나 어려웠겠었요? 바울도 잘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는데. 거기서 말씀으로 교회를 섬긴 것입니다. 성도들을 섬기고 그들을 치유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고린도후서 2장 12절에 보니까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_고린도후서2:12
문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골로새서 4장 3절에서 또 씁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_골로새서4:3
바울이 진짜 많이 쓴 단어 중 하나가 문입니다. 문을 계속 쓰고 있는데 하나님이 문 열어주실 것을 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이 열렸을 때 중요한 사역들을 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건데 우리가 이 말씀들을 두고 이런 기도를 진짜 많이 하죠? 한나님 전도할 문을 좀 열어주세요. 하나님 우리 교회가 가야될 문을 열어주세요. 이런 본문을 붙잡고 이렇게 기도를 많이 하죠. 그런데 실제 바울은 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만큼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뜻을 진짜 구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문이 열렸을 때 바울은 준비가 다 되어있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문이 열릴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에 가려고 하나님이 문 열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기도하고 바울이 고린도에 가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보내고 서신들을 보내고 고린도교회가 다시 회복되고 정상화가 되어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교회가 되도록 많은 사역들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성령도 충만하지만 똑똑하고 지혜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문을 열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말씀, 우리의 기도, 우리에게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가진 소망을 이루는 행함들로 그 문이 열렸을 때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논문을 쓰려고 교회역사를 공부하고 있는데 이게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부흥을 주옵소서, 그런데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부흥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부흥이 다 준비가 다 되었을 때 부흥을 주신 것입니다. 종교개혁? 그냥 일어난 거 아닙니다. 우리는 루터가 종교개혁 했다 쉽게 이야기하지만 칼빈이 종교개혁을 완성했다 쉽게 이야기하지만 루터 이전에 100년 동안 종교개햑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후스 같은 사람.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종교를 개혁하고 부패한 가톨릭을 개혁하려고 얼마나 싸우고 순교하고 준비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해서 탄생한 인물이 루터고 칼빈이고 쯔빙글리고 요한 낙스고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문을 열어서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마르틴 루터를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그 전에 많은 복음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던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눈물, 헌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고린도교회를 회복시키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회복되어서 고린도교회가 은혜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너희도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길 원해. 갈라디아교회처럼. 그 말은 그냥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에 소망을 준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어떤 사명을 준 것입니다. 너희가 회복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길 원해. 13절에서 보니까 그러면서 그러면 고린도교회 성도들 너희는 뭐할거야? 나는 너희를 위해서 디모데도 보내고 아볼로도 권면해서 보내려고 하고 내가 서신서도 보내고 내가 이런 기도를 하고 있고 이런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고린도교회 너희들은 어떻게 하고 있어야 돼?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힘써 해야 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힘써 해야 할 일_고린도전서16:13-24, 로마서16:5, 에베소서6:2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_고린도전서16:13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진짜 많이 썼던 표현이 여기 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깨어 있어라. 믿음에 굳게 서라. 강건하라. 바울이 엄청 당부를 합니다. 이건 바울이 늘 하던 이야기입니다. 자기의 신실한 제자들에게 교회에게 늘 하던 이야기가 경계하라, 깨어 있어라, 믿음에 굳게 서 있어라, 그리고 강건하라. 강건하라는 뭐죠? 경건하라. 핍박과 고난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라. 무슨 용기를 내냐? 그 고난을 이기는 방법이 경건이다. 너희는 경건하라, 그리고 모든 일에 사랑으로 해라 이렇게 촉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5절에 거론하는 인물이 누구냐면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_고린도전서16:15-16
이 스데바나가 누구입니까? 고린도지역에 첫 세례자입니다. 그래서 자기 집을 내어서 고린도교회가 시작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질서도 세워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분열을 그만하고 스데바나에게 순종해라. 그런데 이 스데바나가 왜 귀하냐면 17절에 보면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_고린도전서16:17
브드나도, 아가이고 세 사람이 에베소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죠? 아마 예수님 믿기 전 스데바나의 종이었을 것입니다. 노예. 그런데 이제 자유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같이 갈 정도로 종들이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 이름을 기록까지 해놓았습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항상 자기의 집을 내놓고 첫 열매인 사람을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지금 그게 로마서 16장 5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_로마서16:5
무슨 말이냐? 지금 자기 집을 내놓을 정도로 세례를 받고 헌신한 사람이 교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왜 이야기합니까? 이런 사람들은 주로 깨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로 경건합니다. 왜죠? 왜죠 여러분? 자기 집을 내어놓을 정도니까. 자기 집을 내어놓아서. 그리고 교회 문제가 있을 때 사도 바울에게 에베소까지 찾아갔던 인물입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은 그에게 순종하라고 온 교회 성도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시대가 인터넷 시대, 미디어 시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들도 난리입니다. 교회마다 방송국 설치하고 미디어 시대를 준비해야 된다, 무슨 처치? 온라인 상에 있는 처치를 만들어야 된다. 아이들이 거기 아니면 교회를 절대 안 온다. 이런 식으로 해서 인터넷 유튜브 이런 시대를 세상이 추구를 합니다. 교회들도 그게 편하거든요. 코로나가 끝나니까 어떤 분이 저한테 좋은 시절 다 갔다고 그러더라고요. 코로나 때 너무 편한거죠. 합법적으로 교회 안 오고 집에서 예배 드리는데 예배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 어떻게 알까요? 직장도 안 가도 되고 재택근무 하면 되니까 너무 편한 거죠. 지금 저희가 생방송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저는 이것도 고민입니다. 생방송 예배를 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 그냥 고민입니다. 계속 하겠지만 내적인 고민입니다. 과연 이게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나? 교회를 가려고 애써야 되는데. 노력해야 되는데. 교회 가면 북적이고 시끄럽고 힘들고 어렵지만 저는 그게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면 그게 믿음이 되게 좋다, 나는 유명한 교회 목사님 설교 말씀 들으니까 나는 뭔가 깨달은 거 같고. 뭔가 깨달은 거 같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해 보면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뭔가 깨달은 거 같은데 실제로 해 보진 않습니다. 이론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겨보지도 않고 네 연약한 이웃을 섬겨보지도 않고 어떻게 주님을 섬긴다고 이야기 하냐? 네 옆에 있는 가난한 자를 섬겨보지 않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 바울이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이야기하는 게 뭐에요? 너희가 너희를 서로 사랑하지 않고 깨어 기도하지 않고 경건하지 않고 서로 사랑으로 돌보지 않고 너희가 무슨 바울의 제자고 베드로의 제자고 아볼로의 제자고 너희가 무슨 시대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겠다고 말하냐?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은혜 안에 서로 돌보고 사랑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이뤄서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할 정도로 거기에 너희가 부흥한 이야기, 성장한 이야기를 전할 정도로 너희 교회가 단단하고 건강하게 세워지길 바란다. 나는 그것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할 거야. 지금 그 이야기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바울의 노력대로 고린도교회는 진짜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왜? 바울이 거기서 로마서를 썻습니다. 로마에 갈 모든 준비를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다 해줍니다. 나중에 나올 것입니다. 굉장히 좋은 제자들이 다 고린도교회에서 나왔습니다. 신실한 여제자도 고린도에서 나왔습니다. 이 고린도교회가 얼마만큼 변화되었는지 고린도후서를 설교하면서 여러분들과 나눌 건데. 그런 일들은 쉽게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쉽게 교회가 부흥하고 우리 가정이 회복되고 우리 인생이 변화되고 그렇게 생각하죠? 하나님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세요. 하나님 응답의 문을 열어주세요. 하나님 축복의 문을 열어주세요. 축복의 문을 하나님이 열어주시겠죠. 그러나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면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몇 가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교회가 감당해야 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스펠교회가. 뭔지는 모르겟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보다 더 작고 더 부족하고 연약한 교회이지만 분명히 고린도교회처럼 우리 교회도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준비는 우리가 온전히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 또 성실하게 우리 삶을 살아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반드시 나눌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주 저는 교회 강단을 지키지 않고 전주에 내려갑니다. 전주에 가서 설교하고 대접 받고 이런 게 아니라 저희 나눔 바자회 한 것처럼 전주 작은 교회에서 하는데 가서 물건 팔고 해야 될 거 같습니다. 교역자들은 갈 수 없으니까. 가서 플랑도 달고 전주 교회 성도들에게 비브릿지를 소개하고 심부름하려고 내려가려고 합니다. 되게 기분이 좋습니다. 뭐냐면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가 비브릿지와 함께하기로 협력하기로 협약식을 맺습니다. 그리고 네팔의 바르디야라는 지역을 온전히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감사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섬김이 있었습니다. 수도 없는 전화통화를 했고 간사님들이 지금도 섬기고 있고 저는 2주전에 전주에 내려가서 설명회를 하고 왔고. 여러분이 지난주에 바자회를 통해서 나눠주신 사랑으로 그 일을 또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바자회 때 나온 수익금으로 또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매달 후원해주시는 후원금들, 여전도회에서 음식 만들어 팔아주시고 또 손해를 보면서 기업들이 물건을 내어주시고 또 그것을 땀 흘려서 준비해주신 청년들, 스탭들. 그게 우리가 네팔과 인도에 문을 열게 되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뭐 이런 거 한다고 일이 벌어지겠나? 너네 바자회 이런 거 한다고 큰 역사가 일어나겠냐? 또 제 마음에 반대도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 단체. 제가 욕도 많이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고 있는 저희 단체. 제가 자랐던 제가 성장했던. 지금은 많이 부패해가고 있고 문제가 많은 우리 단체. 저는 저희 교회가 후배들에게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 올바른 교회가 되어서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작지만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에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가스펠교회가 목회자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또 선배들에게도. 정말 말도 안 되는 배경도 없이 특별한 뭔가 없이 그냥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서로 부족한 줄 알고 이해하고 말씀으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그랬는데 가스펠교회가 진짜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고 있구나.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구나. 저 작은 교회가 네팔에 교회를 세우고 인도에 교회를 세우는구나. 그리고 수많은 가정들이 회복되어지고 우리의 눈물의 기도가 우리 자녀들에게 열매가 되고 그런 소식들이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은혜가 전달되어지기를 원합니다. 물론 헌금도 모아서 같이 보내주면 좋겠지만 그건 잘 모르겠고. 여러분 그래서 우리 은혜 받으십시다. 별거 아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사역들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합시다. 우리의 은혜들이 작은 헌신들이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2절에 보니까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_고린도전서16:22
바울은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24절은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_에베소서6:24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자에게 뭐가 있을지어다? 은혜가 있을지어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변질되면 저주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신앙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수많은 문제들을 직면했는데 문제 속에 파묻혀 있지 않고 고개 들어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면교회는 회복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들을 겪을 때마다 우리가 고개를 들어서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가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 이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신앙의 핵심 교리를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다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다시 임하신다는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까지 장례식을 치르는 그 날까지 은혜를 구하는 삶,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삶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아닌가. 우리 교회가,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신앙도 그러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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