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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10-3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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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3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본 문 : 고린도후서 4:1-18

 

 오승주 목사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_고린도후서4:1-6

 

지금 고린도전서, 후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라든지 그 당시 사도 바울을 통해서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들, 그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들을 잘 깨달아야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세워지는 것도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기본기를 탄탄하게 갖춘 인생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교회나 신앙도 영적인 것도 탄탄하게 기초를 다져서 성장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역사 중에 유래 없이 한국교회는 세계 속에서 급성장한 교회입니다. 급성장의 부작용들도 반드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를 시작하고 뭔가를 했을 때 그것에 대한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되고 그 목적에 따른 과정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한 걸음씩 준비해서 가야 하는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개인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빨리 응답받아야지, 빨리 축복받아야지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거기서 반드시 거쳐야 될 과정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하시면서 자기는 변화되기 싫고 자꾸 남한테 교회가 변화되고 목사님이 변화되고 이런 것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앞뒤가 안 맞는 말입니다. 신앙은 모두가 다 같이 내 모습부터 나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되고 거기서부터 모두가 어우러져서 우리 공동체, 우리 개인, 우리 가정이 변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변화가 미세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가 성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초가 튼튼하고 기본이 단단하고 사람됨됨이나 삶이 반듯하게 갖춰진 상태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공부도 그렇잖아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탄탄하게 공부한 친구들은 고3이 되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3 수능 직전까지 놀다가 갑자기 찍으려고 하니까 어려운 것처럼. 그때 100일 기도회 한다, 수능기도회 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왜 두렵냐면 준비하지 않아서 그렇고 준비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실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아서 두려운 것입니다. 서신서는 아주 리얼하게 초대교회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고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 앞에서 세워감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이건 우리하고 별로 상관이 없어 이렇게 말씀을 그냥 흘려 듣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주 고린도후서 3장 마지막에 새 언약의 일꾼을 이야기하면서 바울이 직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 직분에 굉장히 중요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4장은 어떻게 시작하고 있냐면 그러므로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보통 그러므로 라는 단어는 바울이 많이 쓰는 표현입니다. 에베소서 1장, 2장, 3장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고 우리가 진짜 은혜를 받았어. 그래서 4장에 어떻게 시작하냐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돼. 이렇게 직분을 감당해야 돼. 이렇게 거룩해야 돼. 로마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놀라운 은혜를 받았어.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헌신해야 돼. 이런 게 바울 서신들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직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1절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_고린도후서4:1

 

그러니까 이 직분을 받아야 낙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직분을 받아야 우리가 승리하면서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직분이 뭔지 궁금합니다. 이 직분이 권사냐 장로냐 목사냐 이런 직분인가? 그런 직분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3장은 은혜의 복음에 관한 설명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에베소서를 바울서신의 하이라이트, 정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바울서신의 정수하면 로마서, 히브리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많은 신학자들이 에베소서를 최고봉으로 뽑습니다. 그 정도로 에베소서의 말씀이 좋고 에베소서가 주는 간결한 메시지들이 아주 복음적인 내용들이 많습니다. 에베소서 1-3장이 은혜의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은혜의 복음이 뭐냐? 요즘 미국이나 한국에서 소셜 가스펠이라는 말이 많이 쓰여집니다. 사회적 복음. 한국 목사님들이 미국 목회자들이 쓴 책 같은 거 보고 소셜 가스펠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젊은 목사들이 우리가 사회를 구원할 복음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여러분 복음은 진짜 죄송한데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주신 복음이 아닙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소셜 가스펠이라는 단어를 무분별하게 쓰는데 제가 볼 때는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쓰는 거 같습니다. 제가 설교를 듣다 보니까 소셜 가스펠을 저렇게 쓴다고?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세상, 사회를 변화시키는 복음인가요? 그것은 우리가 변화되어서 사회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결과를 이야기하는 거지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게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그게 에베소서 1-3장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에도 기록되어 있고. 에베소서 2장 4-5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_에베소서2:4-5

 

우리는 허물로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살 수가 없습니다.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영원히 천국에 입성할 수 없고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 받을 수 없다 이 말입니다. 이 복음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그 복음이 아닙니다. 내 영혼이 구원 받고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회개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서 가정도 변화되고 또 그런 사람들이 직장에도 가고 정치권에도 가서 거기가 변화될 수 있는 결과를 이야기해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복음은 세상을 뒤바꾸는 복음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소셜 가스펠 이런 단어를 쓰는데. 로마서도 같은 구조를 가지고 썼죠. 이 은혜의 복음을 받은 사람들. 이 은혜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에베소서 4장에서도 그러므로 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해놓고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권고하고 명령합니다. 뭘 명령합니까? 진짜 허물로 죽은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면 복음을 정말 깨닫고 이해했다면 이렇게 살아라. 단지 이렇게 살아라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지게 된다.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삶들이 너희 앞에 펼쳐질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절을 볼까요.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고하고 있습니다.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_에베소서4:1

 

부르심을 받은 모두에게 지금 명령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을 누구라고 표현하고 있냐면 그 당시를 보니까 지도자, 교회 직분 받은 사람들, 교사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사와 그때 교사는 완전 다릅니다. 이 때의 교사는 주일학교 교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사는 신학자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이 교사입니다. 성경교사들. 그러니까 지금 에베소서에 나와 있는 직분 받은 사람들, 권사, 장로, 기름 부음 받은 자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냐면 너희가 진짜 은혜의 복음을 받았냐? 그럼 너희는 직분자의 삶을 살아야 된다라고 강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뭘 가르칩니까? 여러 가지 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하반절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된다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은 바울이 이야기합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에게 붙잡혀 있는 세상.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악한 영들, 귀신들에게 붙잡혀 있는 세상. 고린도후서 4장 4절에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세상의 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유혹하고 미혹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수록 지식이 발달하고 지성, 정보 이런 것이 발달하다보니까 이런 핸드폰들이 발달하다보니까 이런 것을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미혹. 우리는 미혹 받지 않지 않고 있어. 정보가 이렇게 많은데 이렇게 기술이 발달했는데 우리 마음을 누가 혼미하게 해?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거 아시죠? 스며든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모르게. 여러분 악한 영들이 알게 우리를 유혹하겠습니까? 여러분 사기꾼들이 여러분 저 사기꾼입니다 저 사기꾼입니다 하고 유혹하겠습니까? 사기 당하는 사람들 100% 모르고 당합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냐? 그런 믿지 않는 세상, 세상 신에게 붙잡혀 있는 그런 삶에서 돌이켜서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삶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된다. 목사님 새로운 공동체가 무엇입니까? 새로운 존재가 무엇입니까? 새로운 삶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나요? 그러면서 새 삶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_에베소서4:2

 

에베소서나 로마서를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나 이건 율법 아닌가 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바울이 딱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런 성품과 그런 삶을 그런 하나님의 속성들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과 연합할 때 우리는 그런 새로운 삶, 새로운 존재, 새로운 공동체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교회를 처음 가봤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가서 잘 몰랐습니다. 교회가 뭐하는 데인지도 모르고, 예배를 드린다는데 뭔지 몰랐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도 모르겠고. 완전 무신론자 상태에서 교회의 존재도 모르는 제가 교회를 처음 간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성경공부를 하다가 교회를 간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것이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간 것입니다. 그때 저희 집에 아버지의 술 문제라든지 또 가난이라든지 이런 상황 속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모양들,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저는 교회 가서 되게 많이 놀랐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많이 놀랬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모시고 나서 정말 많이 놀란 것이 있습니다. 다 우리 집 같지 않구나. 특히 제 친구가 목사님 아들이었으니까 목사님 집을 주일마다 갔습니다. 밥 먹으러. 저는 지금 청소년들이 어른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침에 중고등부 예배드리고 대예배 드리고 오후에 어른 성가대 하고 또 이렇게. 주일에 보통 예배를 4개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점심 때 밥 먹어야 하는데 이제 목사님 사택이 교회 옆에 있으니까 친구 따라서 갔습니다. 그 가정을 보면서 되게 많이 부러웠습니다. 우리 집하고 너무 다르네. 저희 집은 맨날 욕하고 아버지 술 먹고 엄마 패고 이러는데 그 집은 너무 화목해보이고. 그런 새 삶, 이게 가능할까? 저는 어렸을 때 내가 결혼하면 나중에 이런 가정을 해야지 그림들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봤잖아요. 그리고 성경을 공부하고 제가 믿음이 성장하면서 이런 삶이구나, 예수님 믿는 삶은 이런 삶이구나 깨닫고 그래서 제가 그게 너무 궁금하니까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책들을 공부하고 교회는 그럼 어떤 곳인가? 공부하고. 제 마음 속에 머리 속에 그런 그림들이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매일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게 천국은 어떤 곳일까? 너무 기대가 되잖아요. 여러분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뭐라고 하나요? 성령이 우리를 주님과 하나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 신앙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종교생활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연합한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에서 이 부분을 설명하려고 부부관계로 설명했죠, 부모 자식 관계로 설명했죠, 나무와 가지로도 설명하고 수많은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 그럼 죄와 가까워집니다. 죄와 가까워지면 죄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도 내가 누구와 어울리느냐에 따라서 내가 영향이라는 것을 받습니다. 좋은 분들과 어울리면 내 삶도 좋아집니다.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는데 내가 나쁜 짓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면 나도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런 사람들과 같이 지내다보면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영적인 것은 완전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누구와 함께 하느냐? 누구와 연합하느냐? 이것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5절을 보세요.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바울이 지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가 되셨다고 합니다.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_고린도후서4:5

 

완전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면 우리는 세상의 다른 영혼들에게 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섬길 수 있고. 여러분 이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게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많이 깨달았고 너는 아직 복음을 모르니까 너는 영적인 문제가 있고 이런 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복음을 절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섬김으로. 내가 먼저 믿었지만 내가 은혜를 받아서 너무 감사해서 너희에게 이 복음을 소개해주고 이 복된 소식을 전해주고. 너희의 종이 되어서까지. 여기서 종은 뭐에요? 바닥에 바짝 엎드리다는 뜻입니다. 바닥에 완전히 엎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자존심 없는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주인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과 일치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6절에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_고린도후서4:6

 

여러분 주님과 함께한다는 표현을 써놓는 것입니다. 진짜 밝은 빛. 어떤 빛이에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어디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예수님을 만나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우리가 보는 이런 형광등 빛과 다릅니다. 여러분이 지금 성경을 읽고 계시잖아요.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 가면 우리 마음에 빛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빛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신비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갑자기 빛이 비춰가지고 번쩍번쩍 했다는 그런 빛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하나님을 알면 빛이 생깁니다. 연애 해보신 분들은 알죠? 연애 안 해 보신 분들은 이해를 못할 거 같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고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데 저 사람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내가 신뢰가 생겨나는 그런 느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 마음에 빛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그럼 나는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 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빛이 우리 마음을 비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는 것을,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그 분과 연합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성경이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나요? 이것을 직분 가진 자들이 가져야 될 직분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교사, 목사, 지도자들이 이 은혜의 복음으로 우리 마음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해서 새 삶을 사는. 그것을 교사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목사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장로님, 권사님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꼬치꼬치 장로님, 권사님들의 삶을 캐 묻거나 일대일로 양육하고 사역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개인에게 미션을 주고 개인이 헌금을 얼마 하는지 물어보고 직장은 어떤지 물어보고 한다는데 저는 솔직히 제 성격 상 그렇게 못 하겠고 또 그게 올바른 목회인지 싶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장로님들이 일주일에 기도를 어떻게 하고 계시나? 교회를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권사님들은 과연? 권사의 직분 자체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과연 권사님들은 일주일동안 기도를 어떻게 하고 계시나 가끔 궁금합니다. 얼마나 기도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받는다. 그런데 거기에는 뭐가 전제되어 있죠? 기도하면. 하면은 행함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고린도후서도 똑같은 것입니다. 에베소서도 똑같습니다. 너희가 은혜를 받으면. 이 말입니다. 이것은 행함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진짜 운동하면 좋겠네. 하루에 30분씩만 아침에 일어나서 뒷산 걸으면 좋겠네. TV에도 유튜브에서 하루에 30분씩만 걸으면 만병이 통치된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렇죠? 여러분 그거 사람들 다 압니다. 다 미디어를 통해서 듣습니다. 그런데 행한 사람은 몇 명이나 돼요? 아무도 안 합니다. 내일 해야 지. 핸드폰 보다가 시간 다 가고. 운동을 안 하면 운동 한 사람에게 주는 건강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모르는 것입니다. 그 맛을. 기도를 안 하는데, 행함이 없는데 어떻게 내 삶에 변화가 있어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 진리의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만약 거기에 그냥 주신다면 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있을 수 없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질서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없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수영이 너무 좋아요. 저는 수영을 사랑해요. 그럼 수영 연습해야 되잖아요? 고달프거든요. 저희 아들이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이번에 블랙모자를. 자유형을 자유롭게 하면 블랙모자를 주는데 엄청 좋아했습니다. 얼마나 물을 많이 먹고 배울 때마다 힘들게 배웠는지. 이제 제법 수영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수영을 못하거든요. 저는 그 친구가 물 위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자유의 맛을 영원히 모릅니다. 저는 수영을 배운 적이 없어요. 아무리 수영을 사랑해도 수영이 주는 기쁨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도 똑같습니다. 우리 장로님, 권사님들이 정말 기도하고 계시는지.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7절에

 

 

2.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_고린도후서4:7-15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여기서 질그릇은 엽서, 미디어를 보면 질그릇을 예쁘게 만들어서 그런 거 보셨죠? 질그릇 예쁘게 만들어서 값비싼 그릇처럼 하는데 아닙니다. 그 당시 고대 근동지방이나 예수님 시대나 초기 기독교 때 집집마다 있는 것입니다. 돈으로 없어서 흙으로 만든 그릇입니다. 그 당시 값비싼 그릇은 동으로 만든 그릇입니다. 깨지지 않는 그릇입니다. 값비싼 그릇, 진짜 부자들은 은, 금으로 만든 그릇입니다. 깨지지 않으니까요. 그 당시 기술이 없어서 흙으로 만든 질그릇은 살짝만 부딪혀도 모서리가 깨지고 바닥에 떨어지면 산산조각이 나는 그릇인 것입니다. 그러니 한번 깨지면 회복이 안 되는 그릇인 것입니다. 이 질그릇은 완전히 산산조각 날 수 있는 연약함을 상징합니다. 이 질그릇에 담긴 보배. 이상하죠? 여러분 무슨 보배를 질그릇에 누가 담습니까. 귀한 손님이 오는데 질그릇에 절대 귀한 음식을 담아주지 않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면 동으로 만든 그릇, 철, 은으로 만든 그릇에 음식을 담아줍니다. 이 질그릇에는 절대 귀한 음식을 담아서 내놓지 않습니다. 왜? 깨지니까요. 별 볼일 없는 그릇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사도바울이 뭐라고 표현합니까?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 질그릇은 누구입니까? 우리입니다. 사도바울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상처받고 깨지고 회복이 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거기에 보배.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 그 보배를 하나님이 담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머물러 있고, 주의 성령이 우리 안에 함께 하신다는 것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 금, 은그릇이었다면 내 그릇이 좋으니까 내 그릇이 멋지고 아름다우니까 표현할 수 있겠지만 저와 여러분의 그릇은 육신, 인생은 질그릇 같은 존재 아닙니까. 깨지기 쉽고 회복이 힘든 존재들입니다. 거기에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배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배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천둥번개가 아닙니다. 엄청난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 능력 이러면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40일 기도 좀 하고, 성령충만하면 우리 인간이 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이 임한다고 이런 엄청난 능력으로 이해를 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능력은 뭐에요? 우리 죄를 위해 지옥 갈 우리 영혼을 위해 하나님이 있을 수 없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 지신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부활하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능력입니다. 그걸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사도바울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둥번개 치고, 없던 돈이 생기고,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암이 낫고 치유되는 이런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하찮은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능력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암이 걸려서 암이 회복되는 거 엄청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우리 영혼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별 볼일 없는 것입니다. 돈이 없다가 돈이 많아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복권 당첨되는 것이 우리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진짜 의미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이 낮고 천한 곳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 그 주님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로 예수님이 와 계시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런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얼마나 잘못된 신학, 잘못된 교회의 가르침들인지. 기도하면 응답받는다고 하는데 그 응답이 뭔지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응답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응답은 무엇인가요? 구약에서 이야기하는 복, 히브리어 바라크는 생명,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정말 긴장해야 되고 두려워해야 되는 것은 구원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구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여러분 남편과 아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그게 왜 긴장이 안 되죠? 지옥을 안 믿는 것입니다. 내세를 안 믿는 것입니다. 그게 타락한 시대입니다. 사사 시대입니다. 지금 사사기 읽고 계시잖아요. 그게 사사시대입니다. 그것을 굳이 외면합니다. 우상 섬기면서 세상에서 잘나가면서 굳이 그걸 듣지 않고 싶어 하고 외면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이 예수님을 정말 마음에 모시면 질그릇 같은 우리 인생에 보배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믿으면 8절부터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절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무슨 말이에요? 내가 죽으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납니다. 그러면 그 생명은 다른 사람에게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났을 때 그게 복음이 됩니다. 내 삶이든, 언어, 말이든 다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폭력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진짜 예수님을 내 옆에 있는 가족, 지체들에게 정말 순수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됩니다. 그런데 대다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전도해야하지. 이 사람을 전도해서 내가 어떤 유익, 이익이 있는지 계산을 해서 복음을 전해야지. 정말 예수님 믿어서 감사, 기쁨으로 복음을 전해주고 아무 이유 없이 동기 없이 깨끗하게, 내가 거져 받은 은혜를 나누어주는 복음전도. 사도바울은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초창기 한국에 선교사들이 제법 많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으로 오신 선교사가 언더우드 아펜젤러 그 뒤로 미국의 학생자원운동이 일어나서 수많은 대학생들이 한국 땅에 왔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왔습니다. 2-3달씩 증기선 타고 왔습니다. 모두 대학 막 졸업해서 22살, 23살이었습니다. 와서 질병에 걸려서 2달 만에 죽기도 했습니다. 광주에 가면 기독교병원, 수피아 여중을 설립하신 유진 벨 선교사님은 로티부인과 같이 한국에 와서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럼 선교를 포기하고 싶죠. 그런데 그 사람이 재혼을 한 이유는 선교를 하기 위해서 믿음의 사람과 다시 재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또 죽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가문을 선교의 로열 패밀리라고 합니다. 지금도 유진 벨 재단은 북한 선교를 한국에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런 역사들을 보면서 한 가문이 미국의 교회들이 예수를 진짜 얼마나 은혜를 받았으면 자기들이 죽었구나. 자기들이 죽으니까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직분자들이 감당해야 될 직분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직분은 이런 거야라는 것이 아니라. 질그릇 같은 내 인생에 예수가 내 안에 보배가 되어서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깨달아지면 우리는 그게 직분자의 삶인 것입니다. 제가 목회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어제 할로윈 사건, 이태원 사건도 보면서 목사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지 않으면. 왜 전하지 않냐면 입장이라는 것을 이해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모습이 저에게 있으니까요. 우리 부교역자, 교역자들, 전도사님들이 제가 봤을 때 전도사 때는 저런 걸 해야 돼.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전도사 때는 기도생활, 성경공부, 책도 많이 읽어야 되고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역도 다양하게 경험해봐야 하는데 입장을 알아버리는 것입니다. 저 전도사님은 지금은 바빠, 저 전도사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어. 이런 것이 있으면 목사 입장에서 배려한다는 거? 미안한 마음으로 그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지나서 저를 원망할 거 같은 거 같습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기도하라고 말씀을 드려야겠구나. 세월이 많이 지나서 저를 원망할 것 같은 겁니다. 왜? 그때 나에게 이야기 해주지 않았어요. 제가 우리 교회 장로님, 권사님에게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아, 권사님, 장로님에게 기도하라고 말씀을 드려야 되겠구나. 왜냐하면 세월이 많이 지나서 저를 원망하시면 어떻게 해요. 오목사님이 그때 우리를 너무 자유롭게. 왜? 그때 기도하라고 안 가르쳐주지 않으셔서. 우리가 나라, 민족,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 못하게 하셨나요. 이러면 제 탓이잖아요. 이 할로윈 같은 것도 목사님들이 할로윈 분장해서 인스타에 사진 찍어서 올리신 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정신인가. 할로윈 아시죠? 귀신과 친해지려고 귀신 분장을 해서 교제하는 것입니다. 귀신과 친해지려고. 그게 할로윈입니다. 한국 사회에 급격하게 퍼졌습니다. 지금 크리스마스보다 훨씬 더 할로윈이 강력합니다. 그것은 돈이 되니까 수많은 기업들이 쏟아 붓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귀신분장해서 여러분 그게 말이나 됩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귀신분장을 합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놀고 싶은데 쾌락을 탐하고 싶은데 그게 우리에게 도구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할로윈을 만든 이 세상 신은 할로윈을 만든 공중권세 잡은 자는 목적을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미혹하기 위해서. 예배 안 드립니다. 토요일 밤새 새벽까지 노는데 주일날 누가 아침에 일어나서 예배준비해서 예배를 오겠습니까. 보세요. 오늘 얼마나 청년들의 예배율이 떨어지는지. 토요일 밤새 놀아서 그렇습니다. 주일날 일어나지 못합니다. 도대체 토요일 밤에 뭘 하길래. 아침에 목사님 못 일어났어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게 무엇인가요? 사사시대입니다. 사사기 읽고 있잖아요. 제가 금요일 밤에 고민이 많습니다. 도대체 금요일 밤에. 제 맘은 교통이 불편해. 금요일은 많이 막혀. 그 막히고 교통이 불편한 것 때문에 우리가 모여서 기도하는 것을 포기해야 되나? 이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정말 그 정도로 기도가 값어치 없나? 우리 청년들이 이 시간에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놀고 싶잖아요. 일주일 내내 회사 생활하다가 금요일 날 회사 끝나고 얼마나 놀고 싶겠어요. 영화도 보고 싶고, 데이트도 하고 싶고. 그럼 토요일 기도회를 만들까? 그럼 토요일은 단풍 구경도 하러 가고, 스포츠도 보러가야 되고. 그럼 언제 기도하지? 저한테는 목회자의 마음에 그런 양심의 찔림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데. 그게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직분을 받았으니 새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새 공동체, 새 존재. 그래서 뭐하라는 것인가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는 것입니다. 13절 보세요.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믿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하노라. 뭘 말합니까?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아멘. 심판이 반드시 있고 내세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지금 사도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쾌락, 죄악들, 미혹케 하는 것들 이겨내고 견뎌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는 술 먹고 싶지 않아서 누구는 흥청망청 놀고 싶지 않아서. 목사도 똑같은 감정이 있습니다. 저도 쾌락을 즐기고 싶지. 그런데 그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 안에 예수님이 계시니까요. 제 안에 은혜가 있으니까요. 그게 즐겁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무엇이 즐겁나요? 15절.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_고린도후서4:15

 

이게 새 삶입니다. 새 존재입니다. 새 공동체가 가지고 가야될 공동체 비전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 그러므로 16절 보세요. 

 

3.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_고린도후서4:16-18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여기서 속사람은 영어로 Heart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영혼인 줄 알았는데 마음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회개하는 삶을 살면서 우리의 마음은 늘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목사, 아빠, 엄마, 자녀, 성도가 되어야 하지.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서 내가 주님의 종이 되어야 되겠다.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겉사람은 낡아집니다. 늙어가니까요. 누구든지 겉사람은 낡아집니다. 그런데 세상은 겉사람 낡아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계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속사람을 가꿔야 합니다. 17절 보세요.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_고린도후서4:17-18

 

16절에 또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왜요? 우리 마음이 무엇을 보냐면 이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천국을 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보이는 것들을 컨트롤 하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우리가 성경도 읽고 기도생활도 하고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우리가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게 지혜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잠언서에 그것을 보고 우리에게 지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에 그것을 보고 우리에게 지혜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우리보고 믿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보이는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 세상 신에게 미혹 당하는 자들은 눈에 보이는 겉사람을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물론 학교도 다니고 돈도 벌어야 합니다. 왜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우리는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삶 같지만 새로운 존재,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역마다 교회를 세우려고 늘 자기의 삶을 도전했습니다. 그 직분을 감당해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늘 권면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직분자라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직분.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 그 하나님의 능력되시고 보배가 되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다면 우리는 진짜 세상에 직분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직분자입니다. 거기에 교사가 될 수 있고 우리의 달란트를 따라서 목사가 될 수 있고, 장로, 권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뭘 못하겠습니까. 우린 기도할 수 있잖아요. 그것을 위한 삶이 어찌 건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찌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아닐 수 있습니까. 우리의 직분은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은혜의 삶입니다. 우리가 그 직분을 회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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