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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2-11-2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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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0일 가스펠교회 주일예배
제 목 :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본 문 : 고린도후서 6:1-18

 

 오승주 목사

 

1. 하나님의 은혜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 안에서_고린도후서6:1-2, 5:20

 

이번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 권의 책을 읽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셨는데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의 조그만 소책자인데 주님의 사람이라는 책입니다. 제 인생에 터닝포인트를 준 책 중에 한 권입니다. 이 책 읽어보시면 설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해서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6장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면서 바울이 뭘 이야기하냐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사야 성경구절을 인용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이야기를 인용해서 우리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난주 설교인 고린도후서 5:20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주 설교의 끝자락인 5장 20절부터 오늘 6장은 연결된 하나의 단락입니다.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러니까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라고 이야기를 해야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란 말이 어디에 붙어서 뭘 설명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 안에서 주어진다 이렇게 이해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데 왜 헛되이 받지 말라는건지, 은혜를 도대체 왜 받으라는 건지, 이 은혜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마냥 은혜 받으라고 하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화목하게 되는 말씀 안에서 받는 거다 라고 오늘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셨고 그 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우리에게 제공되었습니다. 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 우리에게 제공된 것은 아, 말씀을 들으면서 복음을 통해서 들었을 때 이 말씀을 우리가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구나,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구나, 혹은 구원 받을 수 있구나, 혹은 우리가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구나, 새 삶을 살 수 있구나 이렇게 제공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받아 들이는 것이 우리에게는 구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피상적으로 이해를 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너희가 화목하게 하는 말씀으로, 그리고 너희가 받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받은 이 복음이 굉장히 피상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것처럼 마치 씨앗이 돌밭에 떨어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씨앗이 돌밭에 떨어졌으면 어떻게 되죠? 새들이 다 쪼아 먹어버립니다. 돌밭이니까 씨앗이 땅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복음을 피상적으로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역사적인 배경은 뭐죠? 고린도교회에 살며시 숨어들어온 이단들,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영향을 쉽게 받고 있지 않는가. 그 개연성을 사도 바울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바울에게 들었잖아요? 신앙생활에 대해서 배웠지만 그게 피상적인 것은 지금 현재 이들의 신앙이 얼마나 돌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냐면 이단들이 와서 거짓 선지자, 거짓 목회자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에 이들이 흔들리고 영향을 쉽사리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너희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 안에서. 그것을 지금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연계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피상적으로 받거나 감정도 필요하지만 단순히 감정적으로 받거나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앎으로 깨닫고 그 말씀을 순종하고 그 말씀을 묵상을 통해서 말씀이 내 안에 실제로 거하는 것을 지금 사도 바울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옥토 밭에 씨앗이 뿌려져서 뿌리를 내려야 열매를 맺는 것처럼. 피상적으로 돌밭이나 가시덩쿨이나 이런 데에 씨앗이 뿌려져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3-4절에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2.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_고린도후서6:3-10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직분에 대해서 설교를 했으니까 아시겠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고 있는 직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모든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일꾼으로 스스로 여겨서 나는 하나님의 일꾼이야 라고 모든 일을 할 때 세상에서든지 가정에서든지. 왜요? 아무에게든지 누구에게든지 거리끼지 않으려고. 거리끼다는 것은 뭐죠?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려고. 그래서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스스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자천해서 뭘 하면요? 은혜를 받으면. 화목하게 하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스스로 자천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아무에게든지 거리끼지 않게 한다는 말은 굉장히 의미가 있습니다. 해석에 차이가 조금 있겟지만. 이게 잘못하면 굉장히 율법적이고 종교적으로 살 수 있거든요. 남들 볼 때 내가 저 사람에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예수님을 믿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가식적으로 내가 좋은 말을 하고 발을 말을 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고 이런 말도 사실 내포되어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고린도 전서, 후서 전반부를 살펴봤을 때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책 주님의 사람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교회 건물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그러나 이재철 목사님께서 하시는 이야기가 뭐에요? 교회 다니면서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기독교 신앙은 타락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시더고요. 뭐가 눈에 들어와야 되냐? 주님이 눈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눈에 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경건생활을 해야 된다라고 이재철 목사님께서 이야기하셨습니다. 정말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건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직장도 중요하고 가정도 중요하고 우리가 해야 될 많은 삶들이 다 중요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중요하고. 그러나 그게 눈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이중적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굉장히 이중적입니다. 이중적인 계약이 있고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이 신앙생활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버려두고 이것만 한다 이게 아닙니다. 이중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면 우리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삶으로 향하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사람들에 대해서 더 이상 거리낌이 없도록. 그러니까 이 말에 또 하나 내포된 의미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거리낌이 없게 하려고 이 말은. 굉장히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있지만 또 하나는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렇게 많이 분쟁하고 싸우고 가식적이냐? 그것은 사람들을 의식하고 자기들의 자존심을 내세우고 자기들이 신앙생활 몇 년 하지도 않았는데 신앙이 누가 더 낫냐 하면서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게바파다, 바울파다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게 정말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삼는 은혜가 있냐? 지금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정말 받으면 그 일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일에 거리낌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가 그런 일에 거리낌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내가 목산데 이런 게 서운해. 성도들의 대접이 없어서 서운하고. 그런 게 다 거리낌들입니다. 여러분 내가 주님의 종이고 이 교회를 개척할 때 성도들에게 대접받으려고 개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일에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대접해주시면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전혀. 그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나에게 상급을 주시려고 나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푯대 삼아서 바라보고 달려가기 때문에 전혀 그런 것이 없어야 되는데 타락한 목회자들은 그 일에 섭섭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지금 제 비유가 이해가 되시면 너무 좋겠습니다. 여러분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쓰레기를 줍는 직분을 감당하든, 설거지를 하는 직분을 감당을 하든, 성도들을 위로하는 직분을 감당하든 무슨 사역을 하든 우리에게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자천했기 때문에. 바울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게바파냐 아볼로파냐 바울파냐. 나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했고 너희를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했을 뿐이지. 나는 너희가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한다. 그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4-5절에 그렇게 되면 5절에 보니까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이게 무슨 말이에요? 견디게 된다. 어떤 환란과 궁핍과 어떤 고난, 매 맞음, 갇힘, 난동, 수고로움, 자지 못함 이 모든 것들 다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 중에 직접 경험한 것이면서 또 하나 내포된 것은 그 당시에 순전한 믿음의 사람들은, 거룩한 주의 백성들은 다 겪고 있는 것을 내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너희 성도들아, 여기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봐라. 여기 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봐라. 이들은 지금 이런 핍박과 환란 속에서도 견디고 있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데 너희들은 왜 세상 것으로 그렇게 싸우고 분쟁하고 이러냐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종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여러분 십자가에서 우리 죄 문제가 다 해결되었는데 십자가를 왜 우리가 또 져야 하나요? 여러분 그런 거 궁금하지 않으셨어요? 헷갈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구원이 흔들리는 거 같고. 그러면 내가 예수님 영접하고 하나님 자녀 된 것은 무용지물인가? 십자가를 왜 또 지라고 하시지? 이런 의미들이 있는 거 같잖아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는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었지만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또 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십자가로 인해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고 변화되고 새로워져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하십니다. 우리가 구원 받아서 천국에 입성할 때 우리에게 상급을 주시려고. 우리가 자녀가 태어나면 아무렇게나 살도록 내버려두고 방치하지 않듯이 구원 받았지만 당신의 성품을 배우고 당신의 거룩함에 참여해서 이 세상에서 휩쓸리지 않고 승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에 당연히 고난이 있죠. 우리가 세상을 따르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것 그 자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그 당시에는 실제적인 핍박이 있었습니다. 짐승의 밥이 되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그 당시 성도들을 향한 로마황제들의 핍박은 보고 있으면 눈 뜨고 있지 못할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 지고 올라가서 십자가에서 못을 박힌 것만큼이나 그 당시 순교자들도 그런 박해를 받았습니다. 목이 잘려 죽기도 하고. 두 눈을 빼기도 하고. 손발을 자르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을 다 견디었습니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견디었습니다. 6-7절을 보니까.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그냥 견디기만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먹지 못하고 수고롭게 살기만 했습니까? 매 맞고 갇힘만 당하고 난동 속에서 핍박과 환난과 궁핍만 당하고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 속에서 성도들은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삼아서 의의 무기를 가졌다고 합니다. 여러분 만약에 핍박만 당하고 끝났다면 기독교는 사라졌겠죠. 그러나 그 당시 수많은 크리스천들은 자녀를 믿음으로 교육했고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순종해서 새로운 공동체 삶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가졌고. 이제는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서 우리가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자 라는 비전을 가지고.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곳곳에서 일어나서 가정이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되고 나중에 로마가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을 핍박한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을 했으니까.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300년동안에. 기록에 보니까 지하 동굴 안에 학교도 있고 세례 주는 곳도 있고 성가대 연습실도 있고. 여러분 그 지하 동굴, 카타콤 안에 아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곳도 있고. 또 세상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고. 로마법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할 수있도록. 믿음으로 살도록. 크리스천의 삶을 가르치는 흔적들이 있는 거 아시잖아요. 로마서 13:1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_로마서 13:12

 

그 당시 크리스천들은 이 말씀이 너무 가슴을 후벼 팠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핍박을 당할 때, 고난을 당할 때 죽겠어 쉽게 이야기하지만 진짜 화목하게 하는 말씀 안에서 은혜를 받는 성도들은 이 핍박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를 핍박하는 저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오히려 완전히 다른 개념의 믿음을 가지고 일어섰던 것들을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게을리 살지 않았습니다. 핍박을 당한다 해서 마냥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그런 종교들, 신앙들이 있습니다. 뭐라고 그러죠? 어차피 하나님이 구원하실텐데, 어차피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텐데. 무기력에 빠져있고. 그런 사람들을 냉소주의자라고 합니다. 가스펠교회가 그렇게 해서 뭐하겠어. 오목사 너 같은 게 그렇게 열심히 해서 뭐하겠냐? 다 냉소주의자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경 좀 읽는다고 되겠어? 새벽에 나와서 기도한다고 되겠어? 그 당시는 냉소주의가 완전히 팽배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대니까. 기독교인들을 봤을 때 얼마나 비웃고 조롱하고. 그런데 로마가 부패하고 완전히 죄가 가득하고 우상숭배가 극심해서 완전히 로마가 무너질 때 그들에게 손 내민 종교가 기독교 아닙니까. 그들의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여러분 로마의 음란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 다 깨졌습니다. 아이들이 누가 엄마인지, 아빠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성적으로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가정을 향한 온전한 메시지. 여러분 그게 권면이고 그게 가르침입니다. 그게 어떻게 율법입니까? 그게 어떻게 복음이 아니고 율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교훈 삼아서 우리의 삶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아내든 남편이든 정말 진실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진실해야 되고 아내는 남편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거기에 어떤 권위나 가식 같은 것이 담겨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내 아내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 남편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어떤 한 가정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이 가정의 아버지가 잘 다니는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밀려난 것입니다. 너무 잘나가다가 잘렸으니까 새로운 직장을 가야지 이게 아니고 완전히 마음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술에 쩔어 산 것입니다. 매일 술 먹고. 안 그러던 사람이, 괜찮던 사람이 교회도 가지 않고 완전히 술에 쩔어서 자녀들에게 공부해도 소용없다. 냉소주의자로 바뀐 것입니다. 나도 너네들처럼 공부했는데 지금 이 지경이다 이렇게 하면서 애들 공부도 못하게 하고 자기 아내에게는 술 먹고 폭언하고 사람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돼요? 싫어하겠죠. 그런 아빠를 싫어하겠죠? 아빠를 저주하고. 그런데 그 가정에 정신 차리고 멀쩡한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기도를 하면서 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래서 목사님께 찾아갔더니 목사님이 권사님, 가정예배를 시작하세요. 아이들과 남편을 불러놓고 가정예배를 시작하세요. 아이들과 남편이 가정예배를 오나요? 밥 안 준다 하세요. 어떻게든지 하세요. 그래서 어머니가 용기를 가지고 집에 가서 선포한 것입니다. 오늘부터 매일 가정예배를 할 테니 참석 안하면 밥 없는 줄 알아 이렇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직장도 없고 아이들도 엄마가 단호하게 이야기하니까 가정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가정예배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앉아서 찬송 부르고 성경 읽고 또 교회 목사님이나 교역자를 가끔 불러서 예배를 부탁드리고. 그렇게 해서 매일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매일. 그렇게 예배 드린지 딱 3달 만에 아버지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내일부터 우리 아파트 경비 일을 하기로 했다고. 그 말은 뭐에요? 3달 동안 성령께서 그 아버지에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런 몹쓸 말을 한 것이 미안하다고. 그래서 아버지가 그 날 기도를 하고. 아이들도 그 말을 듣고 아빠 우리도 미안해, 아빠가 힘들었을텐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한 말을 했던 거 미안해. 그렇게 해서 3달 예배드리는 동안에 그들 마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변화가 일어났다는 간증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10절에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뭐가 모든 것일까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뭐가 모든 것이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신앙의 대상은 한 분 하나님, 성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 하나님, 그 분이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과 그 당시 믿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예배하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 예수 그리스도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화해하게 되어서 그 은혜를 힘입어서 하나님 한 분만, 주님만을 예배하겠습니다, 주님만을 경외하겠습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울이 이 고백을 하기에는 사실 조금 어패가 있습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없는 자라고 했는데 사실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엄청난 가문의 상속자였습니다. 여러분 그것을 다 포기하고 남에게 물려주고 온 것이 아니라고 학계에서는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 차원이 다른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현대가, 삼성가 이 정도가 아니고 그 당시에 바울이 속한 가문은 엄청났습니다. 그냥 초 엘리트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았고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이미 공부를 하고 이미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배경이 정말 빵빵했습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 부자야 이게 아니라 그냥 남들과 차원이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 바울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지식이 없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패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그 당시 가장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미국의 내로라하는 학교들의 학위를 다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들어간 학파에는 아무나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최고 수준의 가문, 실력, 인품, 신앙 다 갖춘 사람들만 받아서 들어갈 수 있는 학파였습니다. 그러니까 공부 좀 잘한다고, 돈 좀 있다고 들어가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나는 아무 지식도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뭘 얻었기 때문에 그렇죠? 그리스도를 얻었기 때문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얻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가지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이 모든 것을 가지나 안 가지나 나에게 소용이 없다, 배설물 같다. 나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는 그리스도 한 분이면 된다. 그리스도 한 분의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모든 서신서에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래서 그리스도의 종이 되겠다고 스스로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자천하겠다고. 고린도교회 성도들 너희들이 진짜 그리스도를 아느냐?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같으면 복음 전할 때 내가 과거에는 어떻고 이런 실력과 능력이 있는지 말하겠지만 바울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내 안에 계시는 주님만 설명했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내가 믿는 주님은 너희를 구원할 그리스도라고 그거면 된다고 어떤 논리를 펴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덴에서 논리적으로 논쟁을 하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논쟁을 한 거지. 그의 배경을 잘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민권자라는 것도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 그 능력으로만 충분하다고 바울은 완전히 신뢰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로다 고백할 수 있을까요? 그래야 합니다. 제가 가스펠교회를 개척할 때 상황이 심신이 굉장히 미약할 때였습니다. 목사님 가장 강력할 때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했을 때 개척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제가 몇 번 간증했지만 제 상태가 내가 이런 삶을 살면 안 돼 이렇게 회개할 때 이 교회를 개척했기 때문에. 거기다 개척할 때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셨지만 그래도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강남역에 커피숍 같은 걸 빌려서 예배를 시작했고. 그 어떤 교회의 지원도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모교회에서 1년 정도 제 사례비 100만원 정도를 보조를 해줬지만 그것도 다 교회에 헌금을 했으니까요. 왜냐하면 교회가 카페 같은 걸 빌리는데 돈이 필요하니까요. 제 퇴직금도 다 투자를 했습니다. 그때는 완전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교회를 개척했는데 아무도 안 오면 어떻게 하지. 아무도 내 설교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그런 두려움들이 매일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와이프에게 미안하지만 거의 매일 교회를 왔습니다.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교회 개척하고 할 일도 없었습니다. 부교역자로 있을 때는 교회에서 맡겨진 사명들을 심방도 해야 하고 저는 부교역자 때 진짜 미친 듯이 살았습니다. 제가 미친 듯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저는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개척하니까 만날 사람도 없고 할 게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제 진짜 두려움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회가 되냐 안 되냐에 그것이 제 두려움의 근원이 되어서는 안 되었어야 했는데 저는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 제가 정말 두려워할 것은 제가 확신이 생긴 것은 “맞지, 나는 하나님 한 분 뿐이지. 나는 하나님만 자랑하고 하나님 때문에 가장 낮은 곳으로도 가고. 하나님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없어도 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었지.” 엄청난 위로와 힘이 그때 하늘로부터 오는데 그때부터 사람을 의지하는 것도 사라지고 주님을 따르면 된다고 믿으니 그제서야 성경도 보이고, 제가 왜 이곳에 개척을 했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내가 힘들다, 어렵다가 아니라 지금이야 그렇게 말을 하지만. 복음을 전하고 위로해주고 말씀을 선포하고, 그렇게 개척시기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정말 하나님 한 분, 그 분이 내 인생의 전부야 라고 고백하는 순간 세상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뭐라고 권면합니까. 진짜 중요한 것이 11절부터 나와 있습니다. 

 

3.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_고린도후서6:11-18, 로마서12:3-21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마음을 넓히라. 

 

여기서 우리의 입이 열리고 마음이 넓어졌다는 것은 고린도교회 너희들이 나를 대적하고, 시험을 들게 했지만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내 마음을 넓혀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가르칠 것이다라는 게 의미적, 문맥적으로 내포되어 있지만 이 마음이 넓어졌다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서 14-18절부터 나와있는 것입니다.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면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바울은 이것을 마음이 넓어졌다는 의미로 보충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울이 너희도 마음을 넓혀라고 말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거룩한 삶에 대해서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매지 말라. 거룩한 삶입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고. 빛과 어둠이 어찌 같이 사귀냐. 어찌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조화를 이룰 수 있냐.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 일에 정체성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기를 원했습니다. 그게 마음이 넓어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고 그 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순간 완전히 넓어집니다. 핍박과 박해 속에서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마치 이재철 목사님이 주님의 사람들은 성전이 보이지 않고 예수님이 보이는 것이 신앙에 지경이 완전히 넓어진 것이라고 이 책에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한 분만이 전부라고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것이 보입니다. 개척했을 때 그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 가정의 문제들, 제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가 무엇이지? 오승주 너 하나님 손에 붙들려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어? 이게 이제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수많은 문제들, 가정, 자녀문제들, 우리 인생에 수많은 상황과 현장들 다 있으시잖아요. 우리 마음이 넓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세상에 마음이 넓어지고, 그 세상에 우리의 생각, 심정이 사로잡혀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심정, 마음이 좁아져버린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로마서 12장 21절에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_고린도후서 6:11-18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_로마서 12:3-21

 

21절. 악에게 지지 말라고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합니다. 로마서 12장이 어떤 본문인지 아시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라고 이야기하면서 거룩한 산제물이 되라고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거룩한 삶인지, 산제물인지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저희교회 성도들이 신앙은 방향이라고 배우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배우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 신앙에 헷갈림이 없어집니다. 방향이라는 말은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그리스도를 푯대 삼았습니다. 그것을 붙잡으려고 쫓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사도바울이 구원을 안 받았습니까? 구원 받았죠.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는데요.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쫓아간다고 합니다. 이건 신학적인 용어가 있습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용어가 있다. 그런 용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니까 우리가 그 방향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등지고. 그래서 방향이 수정된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방향을 가는데 길을 알아야 되니까 그 나침판이 뭐에요? 이 공예배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 성경입니다.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푯대삼아 천성을 향해 거룩한 목적을 향해서 가는 방향. 그래서 구원은 목적이 바뀐 것이고 그로 인해서 삶의 방향이 궤도가 수정된 것을 구원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목자삼아 주님을 따르다보니 제 삶은 분명히 변화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니 주님을 가까이하고 싶고, 주님을 가까이 하다보니까 주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성화라고 합니다. 여러분 마음을 넓히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담는 그릇을 말하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다 이 말은 믿음의 그릇을 말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이야기합니다. 제가 해외를 다녀본 나라가 10개국이 넘습니다. 미국, 캐나다, 인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중국, 네팔, 안 가본 나라가 없습니다. 유럽만 해도 5개국 정도를 갔으니까요. 제가 해외를 다 다녀보면서 내린 결론은 어디가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 그런데 제가 목사로서 해외를 다녀보며 내린 결론은 왜 선교를 해야 되는지 어떻게 선교를 해야 되는지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제가 수많은 교회사, 역사책을 읽고 공부하다 보니까 가스펠교회가 어떻게 가야할지 그림이 그려집니다. 어떻게 목회해야 될지 그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음이 넓어졌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모로는 사람은 두렵겠죠. 어떻게 될까? 이렇게 해도 되나? 그건 마음이 좁으니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은 마음이 넓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정말 저와 여러분이 구원 받았는데 이제 성경을 읽고 신앙에 대한 폭넓은 배움을 가진다면 우리의 믿음이 넓어지겠죠. 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고 마귀가 좁은 마음을 줍니다. 어떤 마음이죠? 주일에 교회 가는 거 힘들다. 시간 아깝다. 세상 사람들과 인간관계 단절되면 어떻게 하냐. 사람을 아예 동굴 속으로 집어 넣어버립니다. 우리가 코로나를 겪었습니다. 극심한 공포심으로 사람들이 집밖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초기니까 저도 그랬으니까요. 코로나 환자가 300명, 500명, 700명, 1000명이다. 큰일 날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여러분 어제 코로나 확진자가 몇 명인지 아십니까? 6만명. 우리는 신경도 안 쓰잖아요. 알고 나서는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문제 많던 고린도 교회가 나중에 기도하는 교회가 되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고, 로마교회를 서포트하는 교회가 됩니다. 그 문제 많고 탈 많던 고린도교회가. 많은 분들이 문제를 만나서 고민합니다. 신앙생활 잘하는 것 같아서 가까이 가보면 다 피상적입니다. 남편문제, 자녀문제 전부 자기 문제인데 그 수준으로 말씀도 이해하니까 말씀이 은혜 된다,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는데. 여러분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성경을 꾸준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 믿음이라는 것이 생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대로입니다. 돈을 벌어도 그대로, 집을 새로 사도 그래도, 아이들이 커서 여유가 생겨도 그대로입니다. 그런 분들이 대부분 성경을 읽지 않고 대부분 기도생활하지 않도 대부분 마음만 있다고 합니다. 어떤 마음이냐?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도망치고 싶어, 지금 나는 사는 삶이 괴로워. 하나님이 돈만주면 신앙생활 잘할 건데 이런 말만 합니다. 대부분 가까이 가보면 본색을 드러내면 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결국은 돈이고 성공이고. 결국은 이런 삶이 지겹고 싫고, 티비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은 것입니다. 피상적입니다. 제가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만나셨냐. 정말 하나님이 전부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읍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흔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 따라가자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두 눈 감고 가서는 안 됩니다. 확인하면서 가야 하는 길입니다. 무지해서도 안 됩니다. 무지해서 거짓 목자를 따랐다고 나중에 하나님 앞에 항변하면 들어주실 것 같습니까? 네가 무지해서 따라 가놓고, 너가 확인 안 해서 그 길을 가놓고. 이미 심판대 앞에 섰을 때는 분명히 그러실 것입니다. 이미 심판대 앞에 섰을 때는 늦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배움이 필요하고 폭 넓은 지식과 경험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 주의자들의 경건생활을 기울여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신앙서적을 봤을까요? 성경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만 읽어서는 어렵고, 이건 목회자들에게 배우지만 왜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우리가. 초등학생, 중학교 정도가 되면 신앙서적도 읽히셔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신앙서적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사는 거구나. 믿음은 이런 거구나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란노에서 신앙인물들 시리즈로 나온 것이 엄청 유익합니다. 제가 대학교 때 다 읽었거든요. 엄청 도움이 돼요. 거기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진 인생은 하나님의 성품이 내 능력이 됩니다. 오래 걸리겠지만 우리는 그 소망을 가지고 매일매일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니까 주님을 가까이하고 주님을 가까이 하면 주님을 닮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여러분 이번 한 주도 승리하는 한 주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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