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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3-08-13 주일예배

8월 13일 주일예배(말씀사경회 4강)
본문: 에베소서5:1-7
제목: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하라
찬송: 270장(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1. 당신은 정말 거듭났습니까? 
• 여러분, 구원의 증거는 삶의 변화입니다. 삶이 변화되지 않은 구원은 없습니다.
•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 자식은 부모님을 닮습니다. 저의 두 아들도 분명 저희 부부를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닮아가야 합니다. 
• 여러분 어린 아이가 왜 키우기 힘드신줄 아시나요? 깨끗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원초적인 죄인이죠. 그래서 교육을 받아 선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변화되어야 하는데 그건 거듭나야 합니다. 
• 그런데 보통 우리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다 라고 말합니다. 그냥 믿어라! 쉽게 이야기합니다. 사실 맞습니다. 그 믿음이 있냐 없냐의 차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을 빼먹어서는 안되는데 행함은 없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인으로 왕으로 오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2절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걸 아니까 ‘같이’ 너희도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 2절 뭘 본받는 가?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어떤 사랑이죠? 그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고도 삶의 변화가 없다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의지가 없다면 진정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5절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 이 말쓺은 교회 다닌 것이 구원의 보증은 아닙니다. 저는 정말 많이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목사도 구분할 수 없구나! 왜냐하면 끝까지 사모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 6절에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하였는데 삶이 변화되지 않아도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을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도 불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도 변화된 삶을 보고 그가 구원받았는지 아닌지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 마태복음7:18-20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이 말씀을 들으면 다 마음이 무거우실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진정 거듭났나? 나 지옥가는 것 아닌가?’
• 그러나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신앙생활 그런 식으로 하면 지옥간다고 협박하고 좌절시키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 오히려 진정한 복음을 알려 드리려는 것입니다.
• 많은 교인들이 분명한 복음을 알려하기 보다 적당하게 믿고 살기를 원합니다.
• 세례받았으니까, 교회다니니까, 예수믿으면 죄사함받는다고 하니까 구원받겠지, 믿으면 된다고 했잖아! 그러나 그런 어설픈 복음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더 힘들고 더 위험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예수님께서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큰 권능을 행하던 사람들입니다.
• 요한계시록 3:1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진정한 복음은 예수님을 믿으면 삶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왜 음란함과 죄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용서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살다가 죽는 줄로 여기니까 그런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갈등하며 사는 것인가 보다! 예배드릴 때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사는 것인가 보다!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거룩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구원받지 못한다’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심각하게 생각할 것 아닙니까? 교회 안에서 싸움이 생기는 이유는 싸움과 비판을 당연하듯이 받으니 그런 것입니다.
• 성경에 분명히 예수 믿으면 거듭난다고 했는데도 교회 다니는 것을 거듭난 것으로 여기고 사는 것입니다. 가족들도 인정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시대에 교회의 구원론이 잠식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들이 하나도 온전히 제대로 믿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 우리는 삶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으니 거룩하게 살도록 사랑하며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었으니 거룩한 자가 되고 사랑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된다는 것입니다.
• 1절에서 어느 자녀나 부모를 닮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고 했는데, 자녀가 부모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 보셨습니까? 저절로 닮아지는 것입니다. 다른 집 아이가 나를 닮도록 노력하면 우리가 낳은 아이가 됩니까?
• 많은 교인들이 거룩한 삶을 살고 사랑하며 살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우리 입장에서는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이 부모를 닮아가는데 특별한 노력을 하나요? 그 이유는 거룩하게 살고 사랑하며 살기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상 부모와 함께 사는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어렵다 쉽다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안에 거룩이 포함된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고치셨습니다. 죄문제만 해결하신 것이 아니고 인격도 성품도 변화시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변화되고 싶습니다. 저는 인격이 훌륭하지 못했고 특히 환경적으로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책도 보고 공부도 하고 무엇보다 매번 기도하고 노력했습니다. 사람이 잘 안 변합니다. 그런데 틀린 말입니다. 
• 예수님께서 거룩하지 못한 우리 옛 사람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성령님으로 우리 마음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 거룩함과 사랑의 삶의 변화는 나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15장에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열매는 우리 노력으로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는 예수님께서 친히 맺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사실을 오직 믿는 것 뿐입니다.

3. 사랑받는 자녀 같이 하라: 예수님만 바라보라!
• 20세기 최고의 지성인이자 철학자이자 뭐 대단한 사람이죠. 영국의 버트란트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의 도덕률은 너무 높아서 나는 도저히 감당 못하겠다. 그래서 나는 아예 처음부터 예수쟁이가 되지 않겠다.’ 고 비꼬았습니다. 예수의 도덕률이 높다는 것은 그가 구원에 대해 자기 지식으로 판단하고 또 그 기준으로 교회다니는 사람들을 비판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지 않으면서 무슨 신앙생활이냐? 그런데 당시 영국교회는 또 그만큼 타락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 술과 담배, 여자 문제를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했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자녀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모함도 사라지고, 간절함도 사라졌습니다.  
• 사람들이 거듭나지 않으면 자기 의로 억누르고 삽니다. 그래서 고급 병실에 가면 높으신 분들이 정말 신사인데 아프니까 욕하고 때리고 난리도 아니라고 합니다. 평생 욕한번 안했던 분들이 자기 아프니까 그런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 모세도 지면의 모든 사람 중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지만, 백성들이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고 원망할 때 혈기를 참지 못하여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치는 성질을 드러냄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성품은 노력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과 교양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십자가 때문이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 요한일서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가진 재산을 다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하셨을 때, 그는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탄식을 했습니다.
• 삶이 변화되어야 천국에 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절망합니다.
•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말씀은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구원의 조건이 얼마나 힘든가를 제시하시려는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7절에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면 우리는 도무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제 진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제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까? 우리 옛 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죽게 하고 우리 마음에 성령님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 되도록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도 우리도 함께 죽고 부활하실 때도 우리도 함께 부활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요한복음11:43)라고 소리치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때 예수님 곁에 있었다면 ‘주님, 왜 죽은 자에게 말씀하십니까? 생명이 없는 시체가 어떻게 명령에 순종합니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고 소리치실 때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바울은 에베소서 2장 5절에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했습니다. 이 기적이 오늘 우리의 심령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 지금도 십자가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 저는 ‘나의 60대 70대는 어떨까?’ 생각하면서 두렵습니다. 말이 많은 고집쟁이가 되지는 않을까? 권위주의자가 되지는 않을까? 노욕이 심하고 노여움이 심한 자가 되지는 않을까?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빠져서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심약해지지는 않을까? 일반적으로 보는 일입니다. 바쁘게 살다가 예수님과 관계가 소홀하게 되어 하나님이 모른다 하지는 않을까? 뭔가에 빠져 살아 상처, 정치, 어떤 그 무엇에 말입니다.
• 신명기34: 7에서 120세 된 모세는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14:11-12에 보면 85세 된 갈렙은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고백하였는데, 나이 들어 오히려 영혼이 더 맑고 예수님과 한 몸된 모습이 될 수는 없을까?
• 성령님께서는 답을 주셨습니다. 계속하여 예수님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 시119:35-37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기쁨을 누릴 길은 이 길뿐입니다.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 눈이 헛된 것을 보지 않게 해주시고, 주님의 길을 활기차게 걷게 해주십시오. 
• 예수님만 바라보며 사는 것이 좀 답답해 보여도 예수님의 생각을 알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빛을 드러내는 길이 또 있을까요? 이 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함께 이 길을 가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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