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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3-10-01 주일예배

10월 1일 주일예배(에베소서 시리즈20)
본문: 에베소서6:14-17
제목: 반드시 지켜야 할 것.
찬송: 91장(슬픈 마음 있는 사람) 

1.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믿음을 지키기 위한 것_로마서10:9-10
• 로마서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에 보면 구원은 마음으로 믿어야 가능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우리가 천국에 가고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마음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 마음은 사실 영적 전쟁터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우리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환경이나 그 시대의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 지 알아야 합니다.
• 명절때 아이들이 장난감 사달라고 막 조르고 떼쓰고 그러죠? 그래서 장난감 사주면 한...3분 정도 놀고 버립니다. 집도 그렇고 차도 그렇고 막 너무 좋아서 눈물 흘리고 그랬는데...이제는? 지금도 집에 갈때 눈물 흘리고 그러나요?  결혼도 그렇잖아요? 이 사람 아니면 죽을 거라고 부모 마음에 대못을 박고 결혼해놓고 결혼해서는 이렇게 냉랭할 수 있나요? 우리 마음이 그래요.
• 우리가 정말 좋아하고 또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자인 플라톤이나 이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사람들도 당시 로마의 법을 따라 태아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내장의 물질(material viscera)로 간주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낙태는 법적으로나 도적적으로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는데, 자기 재산을 여러 후손들과 공유하기를 원치 않았던 부유한 이들은 낙태를 선택했고, 가난한 이들은 많은 자식을 부양하기 어려워서 낙태라는 수단을 이용했습니다. 당시 낙태는 치사량에 약간 밑도는 독약을 복용하는 것이 가장 큰 방법중 하나였는데 잘못해서 산모도 죽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로마법은 집안 식구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할 권리를 남성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 말씀을 통해 변화된 공동체인 기독교는 이러한 로마의 법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는데, 2세기 변증가인 아데나고라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청원을 했습니다. ‘우리는 낙태를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여성은 살인을 저질렀으며, 하나님께서도 낙태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궁속의 태아조차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돌보시는 대상이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생아를 유기하지 않습니다. 신생아를 내다버리는 이들은 유아 살해 죄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 당시에 버려진 아이만 연간 15만명에 이르고 대부분 들짐승이나 새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직업적인 장사꾼들이 아기를 주어다 키워 노예로 팔거나 사창가로 넘기는 일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 이런 끔직한 일도 당시 법과 도덕, 심지어 학문과 지식을 주도했던 철학자들도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 우리 마음은 이처럼 악하고 약해서 사회의 제도나 분위기에 당연하다는 반응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기적과 같습니다. 마음에 생긴 믿음을 지키는 것은 성경에서 다루는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2. 방어할 때 사용할 것들_에베소서6:14-17
•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십갑주는 믿음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전신갑주 6가지가 나오는데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말씀의 검(성령의 검)’ 이 중에 말씀의 검을 제외하고 5가지는 전부 방어용입니다. 
• 방어는 왜 해야 하나요? 무엇을 방어해야 할까요?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 담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왜 지켜야 할까요? 우리 마음에서 믿음을 빼앗아가는 영적인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낙태법과 같은 세상 법이기도 하고 또 우리 스스로 타락하게 하는 그 어떤 유혹일수도 있습니다.
• 전신갑주는 전부 방어하는데 사용되는 것인데 한가지, 말씀 만은 공격무기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지키기만 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마음을 지키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믿음으로 더 풍성해지고 더 강해지고 성장해서 하나님께 쓰임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공격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의 검입니다. 

3. 단 하나의 공격 무기 : 말씀의 검, 성령의 검_요한복음6:66-67, 히브리서4:12, 로마서1:17, 요한복음14:16-17, 고린도전서2:10, 요한복음16:13, 시편1:1-2, 여호수아1:7-8, 야고보서1:22, 사도행전17:11, 누가복음6:47-49

-말씀을 믿는 사람 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 요한복음6:66-67‘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예수님의 물음에 베드로는 68절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 가오리이까’ 하고 했습니다. 히브리서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로마서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처음부터 담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소심하고 늘 우유부단하고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로 우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 그런 그의 마음에 로마서의 말씀이 들어가고 그 말씀으로 힘을 얻으니 세계 역사를 바꾸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담으면 기쁨이 생기고 그 기쁨은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검이 곧 말씀입니다.  
• 그런데 왜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검이라고 할까.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른 말씀, 또 말씀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새 교만하거나 낙심하거나 시험들거나 우리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기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 본래 말씀은 로고스라고 하는데 로고스는 객관적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게 엄청 중요합니다. 객관적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로고스가 주관적으로 특별히 은혜로 다가오는데 그 말씀을 레마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 둘을 같은 뜻으로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그럼에도 로고스는 성경의 내용, 레마는 어떤 상황이나 경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레마입니다. 실제로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사용하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 요한복음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고린도전서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 요한복음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례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그러니까 말씀을 실제로 사용할때 성령께서 일하시는데 그때 그것은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이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이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연마하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연마해야 합니다. 
• 시편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말씀이 결코 불안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사용하는 일을 연마하지 않아서 죽은 말씀으로 만드는 우리의 연약함을 점검해야 합니다. 
• 여호수아1:7-8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라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아멘.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연마해야겠지요.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도록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의 축복을 맛보도록 나를 연마해야 합니다. 
• 야고보서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가복음6:47-49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 보통 사람들이 환경이나 상황을 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자체가 거기에 얽매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약한 마음입니다. 절대 말씀이 실제로 사용되는 마음이 아니게 만듭니다. 그것이 죄가 하는 일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사용되지 않으니 마음은 그대로 변함없이 죄의 노예가 됩니다. 말씀이 마음에 사용되도록 우리는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서 마음에 담겨야 합니다. 
• 오윤빈이 자주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너와 나의 모습이 예수님 닮아’ 아마도 주일학교에서 매주 부르고 성경학교때도 부르고 그래서 마음에 있으니까 기분이 좋으면 튀어나옵니다. 묵상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 계시죠? 뭘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평생 성령과 상관없이 자기 생각, 자기가 믿는 신념 이런 것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믿음의 결이 다릅니다. 묵상이 없으면 고집과 아집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신앙의 열매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신앙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 사도행전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 여러분이 정말 신앙생활을 하시고자 한다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마음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의 검입니다. 말씀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갑옷을 멋지게 입고 있어도 검이 없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말씀을 사용해야 합니다. 아니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사용되도록 연마해야 합니다. 
• 신앙생활은 이것이 핵심중에 핵심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삶,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삶은 흔들리다가 끝날 것입니다. 
• 우리 교회의 핵심 사역은 말씀 사역입니다. 모두가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또 이것을 훈련하지 않으면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10월에 소그룹리더 모임이 토요일에 있습니다. 당회도 있습니다. 모두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점검할 것입니다. 장로님들도 함께 말씀묵상합시다. 교회 걱정할 거 진짜 많다는 것 압니다. 재정도 어렵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말씀을 마음에 담아 사용하는 훈련을 통해 우리 다시 새롭게 시작합시다. 정말 말씀의 인도를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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