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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4-02-11 주일예배

2월 11일 주일예배(1,2부 연합예배)
본문: 빌립보서4:2-3
제목: 결핍_어떻게 살아야 채워질까
찬송: 85장(구주를 생각만 해도)
찬양: 내 삶 드리리, 나의 믿음 주께 있네

1. 빌립보 교회의 뛰어난 사역자 유오디아와 순두게_빌립보서4:2-3

• 권하다-바로 옆에서 부르다, 말하다라는 의미인데 요한복음14:26 보혜사가 생각나게 하리라, 여기서 보혜사라는 단어가 동사의 명사형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보혜사(옆에서 부르는자, 말하는자) 그러니까 단어로 보면 유오디아 순두게를 권하다의 권하다는 성령과 같이 바로 옆에서 가르치고 안내하다는 뜻입니다. 
• 그럼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누구인가?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게도냐(유럽)로 가는데 첫번째 도시 빌립보에서 루디아를 만나고 거기서 교회가 시작됩니다. 빌립보교회는 유럽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입니다. 원래 바울은 가까운 소아시아지역의 에베소로 가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빌립보는 바다도 건너서 가야 할 만큼 쉽지 않은 사역이었습니다. 이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힘든 여정도, 많은 경비도, 일정의 문제도 있었을 것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로 갔던 이유는 사도행전16:6-7에 자세히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말씀은 바울 입장에서만 봤을때는 잘 풀리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사역이 막 풀리고 잘되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막으셔서 잘 안되는 것입니다. 사역의 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고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끌려간 곳이 빌립보입니다. 빌립보교회입니다. 결과적으로 바울이 사역하는데 가장 든든한 사역처였고 또 교회였습니다. 
• 바울의 선교사역에 베이스 역할을 했던 사람이 루디아입니다. 그냥 여성 성도가 아니라 사업가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든든한 후원자였는데, 유오디아와 순두게도 비슷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개척 초기부터 전도를 위해 복음을 위해 온전히 헌신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실력있는 평신도 사역자입니다. 
•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든지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두 사람의 불화가 빌립보교회 안에서는 큰 문제가 됩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와서 전한 소식 중에서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2. 결핍의 문제_사무엘상1:1-18

• 그런데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무엇때문에 다투었을까요? 성경은 왜 이런 기록들을 우리에게 남겨두었을까요?
•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결핍의 이유를 설명해주기 위함입니다.  
• 사무엘상에 보면 두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나와 브닌나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상1:2절에 이렇게 두 여인의 차이를 기록하는데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다고 기록합니다. 당시의 상황은 결혼한 여인에게 자녀가 없다면 저주와 같습니다. 저주 받은 여인이라 남편에게 버려져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인 엘가나는 한나를 버리지 않았고 또 브닌나보다 한나에게 갑절의 분깃을 주었다고 합니다. 제사를 드리고 난 후 음식을 그렇게 줬다는 것입니다. 참 멋진 남자입니다. 불임한 한나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녀의 결핍까지도 사랑했습니다. 엘가나 같은 배우자를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 그럼에도 한나의 고통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한나의 고통은 남편의 사랑으로 해결이 될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통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시대를 열기 위해서 한 여인의 결핍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의 고통은 남편의 사랑이나 분깃(재물)으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 우리는 흔히 ‘이것만 아니면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문제만 아니면 내가 행복할 거 같은데’ 하는 그런 문제들이 여러분에게 있지 않습니까? 이럴때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고통을 낭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런 고통속에서 일어나 걸어 나오길 원하십니다. 
• 이 결핍으로 한나는 주님께 나아갑니다. ‘믿음의 행위’로 끌어올릴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아가지 않으면 평생 불행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두 여인의 갈등, 가족의 갈등이 끊임이 없었을 것입니다. 극복되지 못하고 좌절 속에 상처받고 포기하고 누군가를 평생 원망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 그러나 한나는 사무엘상1:9-10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 여기서 두 동사가 나오는데 한나는 일어서고, 엘리는 앉아있었습니다. 한나는 믿음으로 일어서는 것이고, 엘리는 영적으로 주저 앉아 있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어두운 시대적 상황에서 시대의 문을 열었던 것은 결핍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었던 한 여인이 주님께 나아가기 위한 행위 때문이었습니다. 한나의 선택은 새시대를 여는 문꼬리였습니다. 
• 공산주의자들에게 두 아들을 잃었던 손양원목사님은 새벽마다 사랑하는 두 아들을 잃은 슬픈 마음은 어찌 기도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아들을 죽인 사람을 평생 원망하고 살아도 될만큼 당연한 슬픔이고 고통인데, 하나님께서 나아가는데 하나님이 독생자 아들을 주신 이유가 저 영혼들을 사랑하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슬픔을 가지고 새벽마다 기도하는 그 기도의 행위가 우리 민족이 당한 상황을 이겨낼 문꼬리가 된 것입니다. 
• 이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에는 끊임없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실재)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을 덮어준 채 남의 이야기, 환경, 상황, 기적, 표적, 환상, 꿈과 같은 것은 믿음을 자라게 하지 못합니다.’
 
3. 결핍_어떻게 살아야 채워질까_사무엘상1:26-28

• 한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섰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나가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엘리는 술취했다고 오해하고 책망까지 합니다. 책망한 내용을 살펴보면 노골적으로 너 언제까지 술취해서 살래? 이렇게 비난합니다. 그러니까 엘리는 성령충만한 기도를 이해조차 못하고 있고 사실 뜨겁게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을 본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늘 전통에 따라, 행정적으로만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저 월급이나 받으면서 말입니다. 
• 한나의 기도가 2장에 나오는데 그 기도의 시작이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한나는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 쏟아놓은 거예요. 이 마음으로 나아가서 새문을 열었고 인생의 전환을 맞았고 새로운 시간을 열었습니다. 마음을 다 쏟아서 사랑하고 기도하고 예배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고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심령가운데 부어지길 원합니다. 
• 여러분 오늘 한나의 이야기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녀 없는 한나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자녀 없는 아버지의 고통입니다. 사사기 350년동안 생명을 잉태하지 못한 고통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한나와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단 한사람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사시대를 말씀이 희귀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예배, 무엇보다 자기 뜻대로 살았던 시대라고 기록합니다. 
• 불임이라는 결핍을 통해 고통을 받았던 한나의 기도는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과 맞닿게 됩니다. 자기의 고통을 통해, 자기의 슬픔을 통해 하나님의 고통을, 슬픔을 이해한 것입니다. 손양원목사님도 그러하셨듯이 말입니다. 
•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진 상처,아픔,고통,그것들로 주님을 섬기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결핍이 주님앞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행위로 말미암아 새시대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 한나는 고백합니다. 아들을 주시면 아들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이 기도에 대한 설교를 많이 들었는데 잘못 적용된 것이 전부입니다. 흔히, 서원기도는 주님과 협상하는 것처럼 하는데 사무엘이 주님과 협상하는 도구가 되는 것인가요. 아니죠. 자신의 필요를 구했지만 그것이 나중에 주님의 마음을 알아 주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 그러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결핍과 고통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서 마음으로 기도할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채워지는 그것은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시는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말합니다. 유오디아나 순두게를 권면하라고 하면서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6절에 기도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유오디아나 순두게에 무엇을 권면합니까? 어떤 결핍이 너희로 하여금 뜨거운 복음의 헌신을 잃어버리게 했는가? 무엇이 서로를 비난할 만큼 고통을 주고 있는가? 우리가 복음을 받고 빌립보교회를 세우기까지 뜨거운 삶을 살았는데 이제 어떤 결핍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다시 주님앞에 나아가 기도하라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_사무엘상1:28’

• 믿음의 사람들의 결핍은 주님이 채우십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는 결핍으로 주님앞에 나아가 기도했고 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주셨지만 그 사무엘로 결핍을 채우지 않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사무엘을 기쁘게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얼굴로 인해 기뻐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 응답 이상의 응답, 바로 주님을 얻은 것입니다. 한나는 주님을 만나 새시대를 열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에게 지금 그 뜨거운 마음을 전하는것입니다. 서로 권면하는 내용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우리 가스펠교회의 성도들의 기도가 다시 회복되길 원합니다. 우리 인생의 결핍을 채우는 데 그냥 응답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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