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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4-02-18 주일예배

2월 18일 주일예배
본문: 빌립보서4:4-7
제목: 기도_믿음의 행동
찬송: 361장(기도하는 이 시간)
찬양: 비 준비하시니, 보라 너희는 두려워말고

1.결핍이 하나님의 뜻을 향하게 하라_빌립보서4:4,사무엘상3:1-9

• 결핍을 당장 해결하고 상황에 부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음이 말하는 진짜 삶, 거짓 없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거짓없는 믿음의 삶이 기다리는 것이 꼭 축복이 아니고 응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빌립보교회의 결핍과 같습니다. 거짓없는 믿음의 삶을 살았는데 유혹이나 위기와 같은 상황이 분명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 그때 오늘 본문 4:4처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사무엘상 3장에 결핍을 통해 기도했던 한나에게 하나님은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사무엘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시면 1절에 ‘어린 사무엘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린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 밑에서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특이점이 있는데 ‘그때에는 여호와께서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환상을 보는 일도 없었습니다.’ 라고 기록합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2절에 보면 엘리 제사장은 눈이 어두워져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 우리는 보통 탓을 많이 합니다. 부모탓, 상사탓, 환경탓, 상황탓, 혹은 나의 과거 탓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앙도 탓을 많이 합니다. 내 과거의 상처를 아느냐로 시작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느냐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못해도 이해해달라,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달라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눈이 어두워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엘리 제사장 밑에서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렇게 섬기던 때에 어김없이 성막 안에 자기 자리에 누었습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등불 아래에 누워있던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때 4절에 어린 사무엘은 곧장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음성을 들었는데 그 음성이 엘리 제사장의 소리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곧장 엘리에게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아니니까 다시누웠더니 또 음성이 드립니다. 엘리 제사장이 내가 너를 부르지 않았다. 
• 7절을 보십시요. 사무엘은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라고 기록합니다. 나중에 엘리 제사장이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엘리도 들어본적이 없는 하나님의 음성이었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신앙이 온전해지기 위해서 우리의 결핍은 기도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향해야 합니다. 수도 없이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시는데 그것이 엘리의 소리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구분도 못하는 어린 사무엘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아직 어린 사무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대의 어둠 속에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이 사라진 시대에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섬겼던 어린 사무엘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여호와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현실과 비전의 사이를 메우라_빌립보서4:5-6,사무엘상3:10-11

• 드디어 엘리 제사장이 한마디 합니다. 다시 너를 부르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제가 듣겠습니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래도 엘리가 이거 한가지는 제대로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엘리 제사장 가문에게 내릴 벌에 대한 내용인데도 말입니다. 사무엘을 통해 엘리 제사장 가문이 어떻게 멸망할지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반대로 그것은 사무엘을 통해 새시대를 열겠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영적인 뜨거움도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을 쫓는 공동체도 사라진 공동체가 아니라 다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영적인 뜨거움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새시대를 여시겠다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 가문은 당시 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려고 하십니다.
• 사실 우리가 말씀을 들어도 실제 현실은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됩니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기뻐하면 됩니까? 라고 반문합니다. 아니 엘리 제사장도 저러는데 어린 사무엘이 기도한다고 됩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는데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하는데 그럼 됩니까?
• 마귀는 교묘하게 영적인 실패와 죽음으로 이끕니다. 마귀가 우리를 사냥하는 방법에 우리 자신을 내어놓아주지 말아야 합니다. 사무엘이 처한 시대는 신앙에 대해 실패하였고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죽음으로 결론이 난 것처럼 보입니다. 엘리 제사장 가문은 두 아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심지어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기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그런 현실은 오늘 날 신앙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어둡거나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가정복음화니, 교회부흥이니 다음세대에 일어날 하나님의 역사니 그런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을 말입니다. 어느 정도 개인의 기준을 가지고 적정선을 지키는 것 같지만 그 선이 점차 뒤로 밀리는 때입니다. 그러면서 기도하면 됩니까? 기도해도 안되니 세상 사람들 속에 숨어서 살기 바쁩니다. 
• 그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은 비전을 주십니다. 참 어렵습니다. 다 갖추고 준비해주시고 완벽하게 계획을 보여주시고 비전을 주시면 좋은데 하나님은 항상 최악의 상황 같은 지금, 메마른 땅에서, 광야에서, 아골 골짝 빈들에서 비전을 주십니다. 
• 그리고 그 현실과 비전을 기도로, 믿음으로 메우라 하십니다. 그것이 사무엘이 할 일이고,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삶이 바로 교회의 삶이고, 믿음의 삶입니다. 그것이 진심으로 하늘에 상급을 받을 이유입니다. 
• 그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합니다. 사무엘상3:11 ‘내가 이스라엘에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 그 일을 듣는 사람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 일은 엘리 제사장 아들들의 죄에 대한 벌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예배 해야 하는,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삶을 다른 곳에 사용한, 빼앗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벌을 말씀하십니다. 이건 단순히 벌 같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십시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라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_사무엘상3:11’

3.기도는 믿음의 행동이다._빌립보서4:7,사무엘상3:19-21

• 우리가 기도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상3:19에 참 멋진 말씀이 있습니다. 사무엘은 점점 자라났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무엘과 함께 하셨고, 사무엘에게 말한 것을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20절에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이 여호와의 예언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항상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 기도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현실과 비전 사이를 메우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 어쩌면 신앙은 설득이 아니라 순복입니다. 유럽 땅에 시작된 작은 빌립보교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커다란 결핍이고 또 어려움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설득하는 것은 어쩌면 누구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유오디아나 순두게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설득이 아니라 순복하길 원하셨습니다.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을 섬겼고, 또 그의 음성을 듣고 순복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믿음의 행동을 통해 현실과 비전 사이를 메우길 원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 우리의 신앙이 현실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고, 자녀를 키워야 하고, 험한 세상에서 우리 역시 살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사무엘과 같은 우리에게 비전으로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 비전은 아무런 쓸모짝에 없는 하찭은 기독교의 욕심이 아닙니다. 제가 이번 주에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정치적인 논쟁이 약간은 있지만, 실제로 있었던 영상들을 모아 다큐로 만들었기에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대통령, 정치인, 건국의 아버지 그런 한 인간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양의 작은 나라에 지도자를 미국에서 카퍼레이드를 해준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그간 얼마나 노력했을까? 미국에서 그가 공부하면서 보고 배운 것들을 가지고와서 우리 나라에서 많은 적용을 하지만, 실제로 그가 보고 온 것은 미국은 뭐가 다를까? 그것이 신앙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
• 우리는 엘리 제사장과 같이 자리만 지키는 종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의 행동을 한 사무엘과 같은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 세계 2차 대전에서 강제수용소에서 갇혀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 믿음을 잃지 않고 기도했던 코리 덴 붐의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리 라는 책에서 그는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다니 얼마나 기쁜지요 우리 가운데 아들, 딸을 위해, 부모를 위해, 형제를 위해, 남편과 아내를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아주 오랫동안 기도한 이들이 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이 엄습할 때면 물리쳐야 하겠지요. 하지만 주님, 우리의 중보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령 하나님, 중보의 방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승리합니다.’ 라고 간증합니다. 
• 시편147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십니다. 네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시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며, 경내를 평안하게 하십니닥. 말씀을 보내사 당신의 백성에게 보이십니다. 그 말씀을 이루며 살 수 있는 복을 주십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하라, 시온아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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