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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25-03-23 주일예배

3월 23일 1,2부 예배
본문: 출애굽기 17: 8-16
제목: [모세 14] 하나님의 백성이 싸우는 방식(feat.아말렉전투)
찬송: 364장(내 기도하는 그 시간)

1. 원수의 갑작스러운 공격


이스라엘의 구속사의 두가지 사건 중에 하나는 홍해사건과 또 하나는 오늘 아말렉 사건입니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했어야 한다. 그런데 홍해 사건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속과 깊이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모든 과거를 끝내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말렉과의 전투는 하나님이 직접 싸우게 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_출애굽기 17:13-14’

아말렉(에서의 후손들: 팥죽 한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자들이고 성경은 이들을 망령된 자들)과의 전투는 홍해사건과 전혀 다릅니다. 

신명기 25:17-18 이스라엘 대열이 약해진 틈을 타서 후미에서 공격한 자들이라고 나옵니다. 

뒤에 쳐진 사람들을 성경은 ‘약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행진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부터 물리적으로 가장 멀리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원수의 공격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멀어질 때)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외부에서도 아말렉이 있겠지만, 우리 내면에도 아말렉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것들로 외적으로 약해지거나, 우상이나 유혹 혹은 수많은 시험의 공격들로 마음이 하나님의 임재에서 멀어질때 그러니까 약해질때 원수가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전투 방식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투에서는 이스라엘이 직접 싸우길 원하셨습니다. 칼을 들고 피를 흘리면서 싸웠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향도 정해주시고 또 승리할 방법도 제시해주셨지만, 이스라엘이 직접 싸워야 했습니다.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너희가 너희의 미래를 위해 직접 싸우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언약의 성취를 위해, 미래의 승리를 위해 회개도 해야 하지만, 믿음의 싸움도 해야 합니다. 이 싸움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7:8 르비딤은 아말렉의 홈입니다. 즉,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하지만,  이 싸움에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승리는 우리 주님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 지 배우고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싸워서 승리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 경험이 있나요? 오로지 주어진 일만 하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광야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말렉은 광야의 민족입니다. 지형도 잘 알 뿐더러 전투에 익숙한 족속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만 전투의 경험이 있습니다. 역사 기록에 보면 모세가 에디오피아의 전투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전쟁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갑자기 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_출애굽기 17:9’

유일한 전투 경험자인데 산에 올라가서 그것도 지금 공격해온다는 데 내일 기도한다?! 사실 유일한 전투 경험자이자 수장이었던 모세가 산위로 갑니다. 이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도망갈 곳도 없는 것이고 적들에게도 다 노출되는 것입니다. 어디로 숨든지 지휘를 하든지 해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적인 아말렉도 다 보이는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배워야 할 첫번째 전략은 필사적 의존입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 가장 높은 산으로 올랐습니다. 이것은 전투 지휘자로서가 아니라 영적 지도자임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니면 아말렉을 이길 수 없다. 하나님앞에 절박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하나님앞에서 결사각오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인 거장들은 이렇게 필사적 의존을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엘리야입니다. 엘리야가 850명의 바알의 선지자들과 목숨을 건 싸움을 합니다. 소를 각을 뜨고 장작 위에 올리면서 어떤 신이 불을 내려주냐 대결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미친 짓을 합니다. 물 12통을 붓습니다. 불이 붙을 수 있나요? 불이 붙을 수 있는 조건을 다 없애버립니다. 나무가 다 젖게 만들어버립니다. 엘리야는 불이 붙는 가능성을 다 차단합니다. 불로써 응답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왜 이런 행동을 합니까?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다 보는 앞에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능 외에는 안된다는 절박함입니다. 더 자신의 능력은 내려놓고 철저하게 하나님께만 의존하는 행위입니다. 

산위에서 얼굴을 보이시고, 산위에서 말씀을 주셨던 분이 다시금 이 상황에서 역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산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은혜를 말씀을 플랜b로 생각하지 마시고, 다 하고 마지막으로 기도나 해보자 하시 마시고 주님앞으로 가셔야 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라_출애굽기 17:11’

하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필사적 의존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3.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관계

모세의 두번째 전략은 바로 모세의 관점입니다. 모세는 아말렉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아니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전쟁을 한 차원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압도적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홀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_출애굽기 17:10’

모세는 젊은 여호수아를 전쟁 앞에 세우고 본인은 산으로 기도하러 갑니다. 모세는 예전에 광야에서 40년이나 살았고, 아말렉에 대해서도 잘 알았습니다. 아말렉이 얼마나 악하고 한번 공격하면 끝장을 보는 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싸움은 그냥 싸우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높은 산으로 갔습니다. 높은 곳은 다 보이는 곳입니다. 즉, 현실 세계에 시야가 매몰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땅위의 일에 매몰되지 않도록 모세는 높은 산으로 갔습니다. 그것도 바로 싸우지 않고 내일 싸우도록 유도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전에 하나님앞으로 먼저 간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을 하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적국와 아군을 한눈에 보고 적들의 공격의도를 파악하고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땅의 일을 보는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인해 바뀐다는 것을 모세는 알았습니다. 영적 고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영적 전망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에 영향을 주는 세번째 전략은 바로 기도의 전략입니다.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싸움의 승패가 뭐에 갈린다고 기록하죠?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손을 든다는 표현은 기도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두 손을 모으로 눈을 감으면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것처럼 이스라엘은 손을 들면 이 사람이 기도하는 구나 이런 식입니다. 즉, 모세가 기도하면 이기고 모세가 기도하지 않으면 지는 전쟁입니다. 저는 이 기도의 능력을 몇번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능력은 알지만, 기도의 근성은 없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던 시기에 기록들을 보니까 목사님들이 40일 철야기도회 금식기도 거의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했던 기록들이 있습니다. 이 기도가 주님의 참된 임재 안에서 행해질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전라도 신안에 가면 작은 섬 증도가 있는데 거기에 여자 전도사님 문증경 전도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기도하는 기록을 봤는데, 이 섬은 미신과 우상숭배가 가득하고 집집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너무 가난하고 피폐한 그런 섬인데 심지어 본인의 남편도 죽어서 과부가 되었는데 이 섬에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하나님께 매일 저녁 교회에서 기도했습니다. 사역하고 오면 얼마나 피곤합니까? 그래도 꼭 교회에 들려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근성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표현입니다. 전쟁은 칼로 결정되는 것인데, 이 전쟁의 승패는 칼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 곧 엘로힘 하나님의 힘이였습니다. 백성들이 지팡이를 봅니다. 이 전쟁은 칼 끝에 있지 않고 저 지팡이에 있다는 것을 다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아 봐라! 내 손에 들려진 이 지팡이에 전쟁의 승패가 있다!

또한 모세가 산에 올라갈때 누굴 데리고 가나요? 아론과 홀입니다. 아론은 형이고, 홀은 누나인 미리암의 남편이니까 모세보다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즉, 할아버지 3분이 올라가신 것입니다. 이 세명이 200만명의 전쟁, 목숨을 책임지고 기도하러 올라가신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의 영적 노후 생활을 이렇게 제공합니다. 나이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책임지고 기도의 자리로 가는 아름다운 영적 황혼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들은 여호수아처럼 싸워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_출애굽기 17:13’

기도는 (믿음으로) 행해질 때 가장 강력한 임재이고 생명이며 능력입니다. 

그러면서 모세가 제단을 쌓습니다. 그런데 기류가 변합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_출애굽기 17:15-16’

원래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이었잖아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싸우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 싸움의 끝에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싸우리라로 결론을 맺습니다. 이제 이 싸움은 (이스라엘 )에서 (여호와)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런 결론을 맺길 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싸우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우리 대신 싸우시는 그래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상황과 환경에 매몰되지 마시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시고, 기도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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